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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준 “아름다움으로 촘촘해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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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메트로폴리탄뮤지엄을 방문한 적이 있다. 웅장한 규모, 각 전시관의 시대적 배경이 되살아난 인테리어, 책에서만 보았던 원작의 감동도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놀랐던 점은 수천 년 전 유물이 널려 있는 전시관 바닥에 둥글게 모여 앉은 초등학생들의 모습이었다. 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열 살 남짓의 학생들은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예술을 곁에 두고 자라는 일상에 감탄하다 문득 내 어린 날 박물관 견학 풍경이 떠올랐다. 그 당시 우리는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수첩과 필기도구를 꺼내지 않았던가?


‘글 쓰는 사진가’이자, 다양한 분야의 예술을 즐기는 ‘딜레당트(예술애호가)’임을 자처하는 저자 윤광준이 추구하는 바가 이런 것이다. 예술과 일상이 분리되지 않은 삶, 예술이 친근하고 가까운 삶. 그는 자신의 하루를 풍족하게 해주었던 예술의 아름다움을  『심미안 수업』에 풀어냈다. 책을 통해 그가 경험하고 감탄한 ‘미술, 음악, 건축, 사진, 디자인’의 다섯 가지 예술 분야가 지닌 아름다움과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감각적인 사람들을 흠모하며 부러워했던 이들, 예술에 대해 알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난감했던 이들, 우리가 왜 예술을 즐겨야 하는지 궁금했던 이들 모두에게 답이 될 수 있는 반가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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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음악은 어떻게 위안이 되었나


제목이 먼저 지어진 책이다. 2015년 채널예스 인터뷰에서 다음 책의 제목이  『심미안 수업』이라고 이야기한 지 3년 만에 출간됐다.

 

인터뷰에서 예고를 했는데 시간이 이렇게 흘러버렸다.(웃음) 제목과 구성은 대략 생각한 상태였는데 막상 쓰려고 하니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막막했다. 그렇게 고민만 하던 와중에 갑자기 시야가 어두워졌다. 망막박리라는 병이었고, 검사를 위해 찾은 세 군데의 병원에서 모두 실명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어쩌면 영영 책을 쓸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또 시력을 잃어가면서 막연했던 ‘감각’에 대한 생각들이 조금씩 정리가 되어 집필에도 탄력이 붙었다. 그때부터 책 작업에만 집중했다. 신체적 변화가  아주 큰 동기가 된 셈이다.

 

병의 고통을 이겨내는 데 예술이 큰 힘이 되었다고.


두 번의 수술 끝에 다행히 실명은 면했지만 치료를 하는 6개월이 내겐 절망이었다. 그런데 ‘만약 세상을 영원히 보지 못한다면 어떨까?’ 상상하며 지난 삶을 돌이켜보니 별로 억울할 게 없겠더라.(웃음) 세상에 내로라하는 좋은 것은 다 보고 다녔으니 말이다. 정말 질리도록 많이 봤다. 그 생각을 하니 위안이 됐다. 이 책은 아름다움의 정점에 있는 예술을 보고, 듣고, 느낀 게 절망의 순간에 왜 위안이 되었는지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한 것이다. 남들보다 아름다움을 많이 본 경험을 의미화하는 게 내가 해야 할 남은 과제인 것 같았다.

 

『심미안 수업』이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가치를 알아보는 능력’을 갖는 방법에 대해 차근차근 알려준다. 책의 주제를 이렇게 구성한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예술을 좋아하고 즐기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더라. 예술이라고 하면 먼저 ‘어렵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록이나 재즈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도 “음악회 보러 갈래?”라고 물으면 “나 클래식 잘 모르는데…”라며 주눅이 들고, 마지못해 약속을 잡으면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한다.(웃음) 그걸 보며 무언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예술은 알아서 즐기는 게 아니고 알아가는 과정이 즐거운 것인데 그걸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게 안타까웠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설명이 필요 없다. 감각을 지닌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다. 나는 예술적 느낌이 나는 모든 것이 다 좋다. 그걸 뭉뚱그리면 아름다움일 것이다. 두려워하고 편견을 가지기 전에 이 아름다움을 우리가 어떻게 감각하고 알아갈 수 있는지, 어떻게 배울 수 있는지 쉽게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수많은 예술 분야 중 미술, 음악, 건축, 사진, 디자인의 다섯 가지 분야가 실렸다.


크게 관심을 가졌던 분야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로지 직접 경험하고, 느낀 것에 대해서만 글을 쓸 수 있다. 물론 요리, 패션, 문학 등 여러 예술에 관심이 있지만 독자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분야가 이 다섯 가지로 집약되었던 것이다.

 

‘내가 미감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콤플렉스 때문이었다.(36쪽)’고 했다.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이었나.


결코 아니다. 진심으로 콤플렉스가 있었다. 1980년대에 직장생활을 했는데, 당시는 데모가 아주 치열했고 운동권과 비운동권이 극명하게 갈린 시기였다. 그때 학생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사회에서 낙인이 찍혀 졸업 후 취직이 어려웠다. 그 시대의 깨어있는 양심들, 지성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장은 영화, 출판 등 예술계뿐이었기 때문에, 대학 졸업 후 출판계에서 일하게 되면서 그들과 함께 직장생활을 하게 됐다. 그때 만난 분들이 너무 훌륭한 사람들이었다. 고은, 황석영, 유홍준, 이성복 등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한 사람들을 사회 초년생 시절에 만난 거다. 그들이 하는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무식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청난 충격이었지. 당시에는 오직 그들의 말을 알아듣기 위해서 예술을 공부하기 시작했다.(웃음) 그 사람들 덕분에 예술이 무엇인지, 그들이 무얼 지향하고 사는지 서서히 이해하게 됐다. 그들에 대한 경외심이 지금도 마음속에 남아 있다. 아무리 쫓아가고 싶어도 나는 감히 범접할 수가 없겠더라. 그래서 나는 관심을 수평적으로 넓혔다.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고 즐기며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은 그때의 콤플렉스 덕분이다.(웃음)

 

 

예술적 안목은 길러지는 것


그동안 안목은 타고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책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안목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다. 모든 감각은 성장한다. 와인도 그렇지 않나. 처음 와인을 마시면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뭐가 좋은지 잘 모른다. 그런데 마시다 보면 점차 차이를 알게 된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경험이 반복될수록 감각은 촘촘해진다. 그동안 앎과 감동을 일치시키는 사람들을 많이 봤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예술 작품을 보며 어떠한 감동을 느끼고, 그 감동이 다음 단계의 감동으로 넘어가는 경험이 중요하다.

 

같은 작품을 보아도 사람마다 감상이 다르다. 취향에 따라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 아름다움은 체험한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알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 작품에 존재하는 비례와 균형은 문장, 그림, 음악, 건축 등 어디에서든 발견할 수 있다. 체험을 통해 비례와 균형의 아름다움을 보게 되면 다른 분야의 예술에도 그 원리를 적용해보는 습관이 생긴다. 그걸 알고 나면 놀랍도록 많은 궁금증이 풀린다. 이 그림은 왜 이렇게 그렸는지, 저 건물에 창문은 왜 저렇게 생겼는지 알 수 있다. 아무렇게나 그린 것 같은 그림에서도 남들은 보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추상화가 있다.


추상화는 고도의 정신적 작용이다. 피카소가 젊었을 때 그린 스케치는 얼마나 정교하고 아름다운가. 피카소가 추상화를 그리기까지 들인 노력은 무엇에도 견줄 수 없을 것이다. 촘촘한 관찰과 선택, 반복으로 얻어진 결과다. 어떤 상황을 그대로 보지 않고 변형할 힘이 생긴 것이다. 그러한 그림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작가와 주파수가 다른 것이다. 나는 추상화가 현대문명을 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왜 난해해졌는지를 이해하면 추상화야말로 궁극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추상화가 현대문명을 연 시작이란 어떤 의미인가? 부연설명을 해준다면.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난 뒤 대부분의 시간을 계속 똑같은 것만 반복하지 오지 않았나. 실물과 똑같이 그리는 원칙이 만여 년간 벗어난 적이 없다. 그런데 19세기에 와서 그게 깨진다. 사진과 기차가 발명되며 인간이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가장 큰 변화는 스피드다. 시속 60km를 처음 경험한 사람이 창밖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산과 사람, 마을은 제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창밖 풍경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걸 화가가 그림으로 그린다면? 볼 수 없는 것을 그리려는 노력이 바로 추상화의 출발이다. 어떤 사물을 재현하는 걸 넘어 해석하기 시작했다는 게 핵심이지.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그 그림을 이해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관점으로만 접근한다. 하지만 작가와 주파수를 맞추려 노력하면 그림이 다가올 것이다. 인간의 해석이 있기 때문이다. 예술이 자연과 다른 지점이 여기에 있다. 웅장한 자연경관을 보면 감탄이 나오지만 저릿한 감동이나 울림은 없다. 하지만 사람이 남긴 흔적에는 울림이 있다. 예술은 그걸 가장 극대화한 것이다. 그래서 좋은 작품을 보고 나면 또 보고 싶고, 나도 그러한 것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움튼다. 예술의 아름다움이 가진 힘이다.

 

이야기를 들으니 문득 생각난다. 얼마 전, 그래피티아티스트 뱅크시의 작품 ‘풍선과 소녀(Girl With Ballon)'가 경매에서 낙찰되자마자 파쇄됐다. 이에 ’뱅크시답다‘는 극찬과 ’지나친 우상화‘라는 의견이 분분했는데 이러한 퍼포먼스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대상을 똑같이 재현하는 게 좋은 그림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에도 ‘난 그런 건 하지 않을래’라고 말하는 예술가가 있었을 것이다. 마르쉘 뒤샹 같은 작가가 그런 사람이겠지. 미술은 왜 꼭 그림이어야 하나?는 물음이 있다면, 완성된 그림을 없애는 것은 그림이 아닌가?라는 물음도 있을 수 있다. 퍼포먼스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작가에게는 새로운 시도였단 것이다. 아무리 엉뚱한 짓도 의지가 없으면 할 수 없다. 나는 사람이 하는 모든 행위에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퍼포먼스는 파괴까지도 자신의 작품이라는 걸 계산한 행동이고, 이 또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해외에 나간 경험이 많은데, 예술에 관해 우리나라와 해외의 가장 다른 점이 무엇인가.


우리가 왜 예술을 ‘앎’으로 접근하는 강박이 클까 궁금했는데, 그 의문이 몽골에 가서 풀렸다. 11월경이 되면 몽골에는 사자자리 유성우가 쏟아지는 장관이 펼쳐진다. 그 시기에는 전 세계 천체 마니아들이 몽골에 모이는데, 그때 본 동양인과 서양인의 반응이 극명하게 달랐다. 별이 쏟아지는 장관을 보고도 동양인 그룹은 자기가 보고 싶었던 별을 찾았는지, 못 찾았는지에 대해 주로 이야기했다. 보려는 타깃이 분명하고, 책에서 보았던 것을 실제로 확인하는 데서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반면 서양인 그룹에서는 “원더풀(Wonderful)!"이란 외침부터 나왔다. 같은 대상을 보는 방식이 이렇게 다르다. 한쪽은 감탄이 없지만, 다른 한쪽은 감탄이 있다. 유성우가 예술로 바뀌어도 똑같다. 우리는 고흐의 그림이 지닌 아름다움보다 고흐의 작품을 직접 봤다는 것에 더 의미를 두지 않나.

 

왜 그럴까.


교육의 잘못이기도 하고, 체험을 못 했기 때문에 진가를 모르는 거라고도 할 수 있다. 한 번도 제대로 된 상태로 작품을 접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디테일을 하나도 모른 채 교과서로 지식만 배웠으니 감동이 생길 리가 없다. 동양화는 보통 8폭짜리 병풍에 그려지는데 그게 교과서에 실리면 손바닥보다 작다. 제대로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예술은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다는 편견이 생기는 것이다. 원본의 감동에 빠지는 체험이 쌓일수록 예술이 즐거워질 것이다. 일단 한 번 보고, 느껴보길 권한다.

 

국악에 대한 내용도 인상적이었다. 현장에 가야 비로소 국악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고.


1980년대부터 국악에 관심이 많았다. 기자생활을 하며 전국의 명인을 다 만났는데, 국악을 이야기할 때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고 지금까지 손꼽을 수 있는 것은 진도에 살던 김곡례 할머니다. 밭을 가는 평범한 할머니였는데, 아직도 그분을 잊을 수가 없다. 바로 앞에 앉아 노래를 하는데 우리 음악이 가진 힘이 무엇인지 느꼈다. 이게 바로 음악의 현장성이다. 스튜디오에서 녹음하거나 멋지게 차려입고 무대에 올랐다면 그 감동이 없었을 거다. 현장에서 국악을 들으면 소름이 끼친다. 날것의 아름다움이 국악의 매력이기 때문이다. 국악을 지키기 위해 국가에서 많은 공을 들였지만 음악을 전달하는 방식이 개선되지 않았기에 국악은 시끄럽고 지루하다는 편견이 생기고 말았다. 록 음악은 마이크와 앰프로 소리가 확성될 때 실력이 발휘되지만, 국악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우리 음악의 진가를 모르는 게 안타까워 영주의 한 대청마루에서 국악 공연을 기획한 적이 있다. 관객 모두 “우리 음악이 이런 것인 줄 몰랐다, 가야금 연주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며 감탄했다. 국악에 관심을 갖고 싶다면 원래의 상태를 경험해봐야 한다.

 

국악을 현장에서 경험할 수 있는 장소 혹은 공연을 추천한다면.


남산 한옥마을에 서울남산국악당이 있고, 계동에도 국악을 체험할 수 있는 홍보관이나 전수관들이 있다. 편견으로 인해 공연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못하는 거지, 실제로 국악 공연은 많이 열리고 있다. 책에 소개한 ‘악당이반’의 음반들을 들어보아도 좋을 것이다. 나와 비슷한 안타까움을 느끼고 설립된 국악 전문 레이블인데, 국악이 펼쳐지는 실제 공간인 한옥에서만 녹음을 하고 연주의 디테일을 담기 위해 프로그램으로 음을 조정하거나 오버 더빙하지 않아 아주 순도 높은 국악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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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일상으로, 일상을 예술로


농민신문에 쓴 ‘아름다움은 체험으로 살갑게 다가온다’는 칼럼을 보고, 공공건물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의견에 동감했다. 우리 사회가 일상과 예술을 구분하는 경향이 있어 예술이 더 멀게 느껴지는 것 같다.

 

구분을 넘어 예술을 생활에 끌어들인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 특별한 것, 특별한 사람의 영역이라 생각하고 그게 삶으로 들어온다는 걸 낯설게 여기는 것 같다. 나는 누구나 이용하는 공공건물이 1순위로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전철역을 보면 어떤가. 하나도 아름답지 않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 역 하나도 아름답게 지을 수 없는 나라인가? 결코 아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수용이 잘못된 것이지. 예술이 미술관 안에만 모여 있을 게 아니라 우리가 매일 걸어 다니는 길 위에 보여야 하고, 늘 사용하는 테이블에 구현되어야 한다.  

 

예술을 좋아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작은 차이를 섬세하게 느끼는 예민함’이라 생각한다. 생활 속에서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나.


디자인이다. 나는 생활용품을 엄선해서 고르고, 마음에 안 드는 물건은 버리거나 누군가에게 준다. 특히 매일 쓰는 물건이면 더욱 치밀하게 따진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들고 있는 이 커피잔이 너무 싫다.(웃음) 입술에 닿는 부분이 두껍고 투박해서 ‘이걸로 커피를 마셔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고, 무겁다. 감각적인 제품들은 형태도 아름답지만 입술에 닿는 감촉까지 좋다. 컵, 커피잔, 조명 등 매일 마주하는 것, 하루라도 안 쓸 수 없는 물건들은 정말 꼼꼼하게 좋은 것을 고른다.

 

보통 생활용품은 쉽게 사고, 아무거나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욕실 수납장에는 사은품으로 받은 수건만 가득하고.(웃음)


그렇지. 하하하. 일상을 왜 그리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내나 싶다. 사람들은 쾌적한 잠자리를 위해 비싼 돈을 주고 호텔을 예약한다. 그곳에서 푹신한 매트리스, 새털처럼 가벼운 이불을 보고 감탄한다. 그런데 왜 집에선 안 쓰나.(웃음) 호텔은 어쩌다 한 번 가는 것이고, 내 방에 있는 침대는 매일 쓰는 것인데. 나는 그런 불균형을 참을 수가 없다. 일상에 돈을 써야 한다. 마음에 드는 잔 하나 사는데 천만 원이 드는가? 아니다. 우리에게 일상이 아닌 시간은 언제일까? 인생의 99%가 일상이다. 소중한 것과 소중하지 않은 것을 알고, 그것을 나누는 출발은 아름다움을 보는 눈에서 시작된다. 그게 왜 중요한지 스스로 납득해야 행동하기 때문이다.

 

‘취향이 단단해질수록 삶은 구체성을 띤다. 그것이야말로 행복의 디테일을 채우는 방법이다.(143쪽)’는 문장과 통하는 말이다.


우리 사회가 가진 퍽퍽함이 왜 생길까 생각해보면 모든 게 너무 관념적이기 때문인 것 같다. 행복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쉽게 다가오는데, 추상적인 상태로만 존재하는 것이다. 행복을 이렇게 바꿔보자. 요즘처럼 추운 날, 밖에서 덜덜 떨다 들어와 아주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는 것, 조용한 카페에 앉아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는 것. 이 모든 게 아주 감각적인 행복이다. 설명할 수 없는 행복은 가질 방법이 없다. 행복이 다가와도 행복인 줄 모를 테니까. 아름다움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감각하고 느낄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삶은 더 구체성을 띤다.

 

요즘 제일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공간 큐레이션에 관한 일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양평 ‘이함캠퍼스’의 미술관을 오픈할 예정이다. 그동안 예술을 수용하는 입장이었다면 이제 만드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어떤 생각과 물건, 작품을 어디에 놓고 어떻게 보이도록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 오늘 한 얘기가 모두 담긴 공간이 될 것이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여러분, 촘촘해집시다.” 일상이 아름다운 것으로 채워질 때 내 삶이 바뀐다. 대한민국은 국민 소득 3만 불의 성공한 나라다. 지금까지는 고민할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세계 1등 기업만 따라가며 성장해왔으니까. 여태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이 다음은 어떡하나. 우리의 고민은 지금부터다. 이제 우리의 것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힘은 창의력에서 나온다. 그리고 창의의 바탕은 체험에서 온다. 예술에 대한 체험을 통해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눈이 생긴다면 각자의 영역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힘이 될 것이다. 앞으로는 한 개인의 취향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머지않아 우리의 자산이 될 테니까.

 

오래 전, 한 인터뷰에서 ‘나의 가장 큰 꿈은 내가 되고 싶다는 것’이라 했다. 그 꿈은 아직 유효한가?


당연하다. 내가 남으로 살 수는 없으니까.(웃음) 내가 될 수 있도록 ‘나’스러운 장치들을 끊임없이 리뉴얼해 나갈 것이다.

 

 

 

 


 

 

심미안 수업윤광준 저 | 지와인
좋은 공간이란 겉에서 보기 좋은 게 아니라 자신의 존재감이 달라지는 곳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아름다움을 살펴보는 눈, ‘심미안’을 기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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