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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 “미성숙한 사랑이 자녀를 멍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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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부모가 돼서 나에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2년여간 <한국일보>에 정신 상담 칼럼을 연재해 온 오은영 박사의 메일함으로 수많은 편지가 날아들었다. 해결되지 못한 내면의 아픔 때문에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로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의 삶과 다른 듯 같은 그들의 사연을 보며 칼럼을 읽는 독자들은 공감하고 함께 눈물 흘렸다. ‘제게도 비슷한 상처가 있어요.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제가 엄마를 용서하지 않아도 될까요?’ 그 처절한 울음들을 보며 오은영 박사는 책을 집필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렇게 탄생한  『오은영의 화해』는 어린 시절의 상처로 여전히 힘든 ‘나’, 그 상처를 안고 부모가 돼 아이에게 같은 상처를 물려주게 될까 두려운 ‘나’의 삶을 다시 세우는 데 필요한 위로와 조언이 담긴 책이다. 우리는 누구도 부모를 선택하지 못한 채 세상에 태어났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작된 삶이 나의 가슴을 찌를 때, 조건 없이 사랑을 받아야 할 부모로부터 외면 받을 때 오는 좌절감은 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곤 한다. 오은영 박사는 그런 아픔을 가진 이들에게 담담히 전한다. “부모를 미워해도 괜찮습니다. 그 상처는 당신의 문제가 아니었어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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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의 시작은 ‘나’때문이 아니었다


<한국일보>에 연재 중인 칼럼 ‘오은영의 화해’와 동명의 책이에요.

 

정신 상담 칼럼을 2년여간 연재하면서 사연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많이 보게 됐어요. 사연자를 지면으로 만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었지만, 진심으로 조언을 해왔죠. 그렇게 칼럼을 연재하다 보니 사연을 읽으며 함께 아파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사실 우리 모두는 사연의 각기 다른 주인공들이니까요. 특히 부모와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로 성인이 된 후에도 고통받는 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이들이 모두 정신과 전문의를 만날 수 없으니,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침서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쓰기 시작했죠. 사실 책의 구성을 고민하는 데만 6개월 이상이 걸렸어요. 칼럼은 한 편씩 읽을 수 있지만, 단행본은 호흡이 길게 이어져야 하기 때문에 단순히 칼럼을 묶어서 출간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칼럼 속 사연들이 더러 실렸고, 제목도 같지만 엄밀히 말하면 전혀 다른 책이에요.

 

실제로 칼럼마다 댓글이 굉장히 많이 달리더라고요. 우리가 느끼는 아픔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맞아요. 그 안에 상처받고 아파하는 수많은 ‘나’가 있어요. 각각의 상처가 있는 ‘나’들이 댓글로 서로를 위로하기도 하고 조언하거나 언쟁을 벌이기도 해요. 블로그에 찾아와 ‘제 얘기 좀 들어주세요’라며 도움을 요청하는 분들도 많았어요. 정신과 의사로서 그러면 안 되지만, 만약 그분들이 옆에 있다면 손 한번 꽉 잡아주고 안아주고 싶다는 마음이 정말 많이 들었죠.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고, 다른 한편으로는 댓글을 통해 힘을 얻기도 했어요. 어떤 분께서 ‘참 하나님 같은 말씀이네요’라고 댓글을 달아주셨는데 그 문장을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고요. 종교가 있는 사람들은 종교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잖아요. 제 글이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고맙더라고요. ‘앞으로 어떤 글을 쓰든 정말 책임감을 가져야겠다, 은연중에 쓴 어떤 단어 하나로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육아서가 아니라 의아해하면서도 반가워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 같아요.


사실 제가 그동안 쓴 책에는 나름의 순서가 있거든요.(웃음) 첫 책 『엄마표 마음처방전』은 태어난 아이를 올바로 이해하고 알아가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고, 이후에는 아이가 조금 큰 뒤에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어 『학교생활처방전』을 썼어요. 다음으로 이어진 『가르치고 싶은 엄마 놀고 싶은 아이』 ,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  등도 나름의 순서대로 출간이 되었죠. 인간을 이해하는 데 있어 알아야 할 부분들을 한 단계씩 나아가는 형태로 책을 쓰고 싶었거든요. 제 책들을 쭉 나열해 보면 아이가 태어나 성장하는 과정과 같아요. 이제 다 성장한 ‘나’와 마주할 차례가 되어 『오은영의 화해』 를 펴낸 거예요. 이 책은 전 연령대의 독자들이 읽어도 괜찮을 거라 생각해요. 모든 사람이 부모는 아니지만,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자식이니까요.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나를 살펴보고,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좀 더 단단하고 고요하게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해요. 

 

부모와의 관계는 성인이 된 이후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왜 그런가요?


아이에게 부모는 너무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독립적이고 성숙한 어른이 되는 데 필요한 대부분의 기반은 0세부터 20세 사이에 갖춰지는데, 이 시기 동안 아이 인생의 전부인 부모가 무조건적인 사랑과 정서적 안정을 주지 못하면 그 아이는 성인이 된 이후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데도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는 아이에게 있어 생존의 문제거든요. 자신이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고, 또 사랑을 받고 싶은 대상이기 때문에 부당한 대우에도 아이들은 부모에게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합니다. 그 상태로 성인이 되면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자꾸 자신을 찔러요. 아이의 미래를 위한다며 자녀를 다그치고, 윽박지르고, 비난하는 부모들이 있지요. 그로 인해 자녀는 가장 안전한 대상이어야 할 부모를 두려움의 존재로 느끼게 되죠. 자신을 가장 인정해주어야 할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한 상처는 아이의 자존감을 떨어뜨려요. 우리의 인생은 늘 행복할 수 없고, 불행은 예고 없이 닥치는 데 어린 시절 부모에게 심리적 지지를 받지 못했다면 삶에 위기가 왔을 때 이를 극복해나갈 힘을 갖기 어려워요. 자식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식의 입장에서는 아주 속절없는 일이에요. 

 

부모는 가장 큰 사랑을 주는 사람인 동시에 가장 큰 상처를 주는 사람이기도 해요. 

 

부모의 사랑은 자식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사랑이에요. 너무 깊어서 감히 헤아릴 수 없어요. 이 전제는 아마 대부분의 부모가 동일할 거예요. 옳지 않은 태도로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들도 그 의도는 언제나 좋거든요. 아이를 더 잘 기르고 싶은 마음인 거죠. 단지 미성숙한 부모가 있는 거예요. 자식을 목숨 바쳐 사랑하지만 자신이 그 사랑을 올바로 표현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되지 못하다 보니 미성숙한 상태로 아이를 대해요. 그렇게 준 사랑은 상처를 남겨요. 그러한 태도가 문제라는 걸 인식하지도 못하는 경우도 많죠.

 

구체적으로 어떤 태도가 있을까요?


훈육을 핑계로 아이를 공격하고, 비난하고, 비교해요. 가르치는 것과 화내는 것을 혼동하는 경우도 많고요. 또 자식을 온전히 사랑한다는 걸 표현하지 않아요. 성적을 잘 받거나, 부모의 뜻대로 행동해야만 아이를 인정하죠.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갑자기 폭발하거나 때리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데 아이들은 어른과 달라서 알아듣도록 좋게 말해주지 않으면 부모가 욱해서 내뱉은 말 속에 숨겨진 뜻을 이해하지 못해요. ‘우리 엄마 아빠가 나를 생각해서 그런 말을 했구나’라는 걸 해석할 수 없으니 그게 그대로 상처가 되어버리는 거예요.

 

 

상처받은 나, 부모가 되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상처를 받은 경우 ‘나는 저런 부모가 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부모가 되면 같은 상처를 대물림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합니다. 왜 그런 걸까요?


부모와의 관계가 안정적이지 않았던 사람들은 아이를 사랑하면서도 긍정적인 관계를 맺어나가는 데 서툰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막상 자녀와의 문제가 닥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익숙한 방식으로 아이를 대하게 되는 거죠. 또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은연중에 나오는 행동들이 아이에게 상처를 주곤 해요. 어른의 시각으로 아이를 바라보기 때문이에요. 앞서 말했듯 아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의도나 감정을 해석하는 데 서툴러서 휴일에 아빠가 소파에 누워 잠만 잔다면 ‘우리 아빠가 일하느라 힘들구나’라고 생각하지 않고 ‘아빠는 나랑 노는 걸 싫어하는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많은 어른들이 그걸 이해하려 하지 않아요. 아이의 투정에 때로는 손이 올라가고, 언성이 높아지죠.

 

상처의 대물림을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내가 나를 알아차리는 게 문제 해결의 시작이에요. 내가 어떤 부분에 감정적으로 예민하게 반응한다면 왜 그런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거예요. ‘내가 어린 시절에 이러한 양육을 받고 컸구나’를 알고 한 단계 더 나아가 ‘우리 엄마 아빠가 그만큼 미성숙한 사람이라 나에게 상처를 주었구나. 나를 그렇게 대한 부모님을 이해할 순 없지만 어쨌든 나는 지금 이 부분에서 아파하고 있구나’를 깨달으면 그것만으로도 문제의 50%는 해결돼요. 내가 아이에게 그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사실이 아이의 잘못이 아닌 내 잘못이라는 걸 느끼게 되거든요. 이를 통해 ‘내가 이 나이 때는 어땠지? 나도 어린 시절에 이렇게 투정을 부리고 징징거렸구나. 이 나이의 아이들은 그게 당연한 거야. 그런데 우리 엄마는 그런 나를 때리려고 빗자루부터 찾지 않았던가? 엄마의 그 이글거리는 너무 눈이 공포스러웠어. 내 아이도 나의 이런 모습을 두려워하겠구나’를 깨닫게 되는 거죠. 물론 이걸 알게 돼도, 내일 또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알고 저지르는 것과 모른 채 저지르는 것은 전혀 달라요.

 

아이를 키우면서 매 순간 침착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에요. 같은 실수를 반복했을 때 이를 수습할 방법이 있을까요?


아이에게 솔직한 마음을 말하고 사과해야 해요. 어느 날 또 욱했어요. 그럼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세요. “좋게 이야기해도 되는 일에 소리를 질렀다. 정말 미안해. 이건 엄마가 고쳐야 할 문제야. 사실 네가 그렇게까지 혼나야 할 일은 아니었어”라고. 그럼 아이가 “엄마는 매일 미안하다고 하면서 나중에 또 그러잖아”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러면 또 사과하세요. “그래 맞아. 엄마가 미안해. 그렇지만 앞으로는 안 그러도록 계속 노력할게. 네가 미워서 그런 건 아니라는 걸 알아줘.”라고요. 그럼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를 용서해요. 어리고 순진해서일까요? 아니요. 자신이 받은 상처보다 부모의 진실한 사과가 더 무겁게 느껴지기 때문이에요. 부모를 너무 사랑해서 아이들은 바로 손을 내밀어요.

 

만약 아이가 너무 악을 쓰고 통제가 되지 않아 화를 낼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상황이 온다면요?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말고 아이를 가만히 지켜보세요. 아이가 악을 쓰는 중에 부모가 말을 하게 되면 자연스레 언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거든요. 아이를 노려보거나 한숨을 쉬는 등의 제스처도 하지 마세요. 그냥 지켜보세요. “그렇게 한다고 아이가 괜찮아질까요?”라고 묻는 분들이 많은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기다려주는 태도는 첫째로, 아이에게 ‘네가 감정적으로 격한 상황이 왔을 때 그 이유가 타당하든 그렇지 않든 엄마아빠는 네 감정을 공격하지 않을 거야’라는 걸 알려줘요. 둘째로, 아이 스스로 진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서 엄마아빠가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죠. “네가 스스로 한 번 감정을 추슬러 봐. 그걸 성공적으로 경험하는 걸 엄마아빠가 도와줄 거야. 그래서 가만히 기다리는 거야. 나는 널 지켜주고 있어.“라는 걸 말하지 않아도 부모의 태도를 보며 아이가 알게 되는 거예요.

 

아이가 조금 진정하고 나면 그때 ”왜 이렇게 울었니?“라고 물어보세요. 예컨대 ”사탕을 먹고 싶은데 엄마가 못 먹게 했다.“고 이야기하면 ”사탕을 오늘 많이 먹어서 줄 수가 없어. 내일 줄게. 너를 위해서 그런 거야.“라고 설명해주면 돼요. 그런데 많은 부모들이 이걸 하지 못하죠. 자신이 그러한 양육을 받아본 경험이 별로 없거든요. 그래서 같은 말도 다르게 전달해요. ”너 그렇게 사탕 먹으니 이 다 썩어서 매일 병원 가잖아. 너 땜에 정말 미치겠어!“라며 화를 내는 식으로요. 그리곤 착각하죠. 나는 사탕을 먹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아이에게 잘 설명해주었다고요.

 

‘어린아이답지 않았던 아이는 사실 아팠던 거예요(212쪽)’라며 허구의 독립성을 이야기하셨어요. 내 아이가 어른스럽고 의젓할 경우, 한 번쯤 마음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까요?


아이 때는 아이다워야 해요. 떼도 부리고, 무엇을 사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철없이 굴어야 건강한 거예요. 의젓하고, 말썽 한 번 부리지 않고 부모를 생각하는 자녀가 있다면 그 아이의 내면에는 자신의 의존적 욕구를 표현해보지 못해 생긴 구멍이 있을 수 있어요. 부모들이 그걸 알아야 하죠. 인간에게는 의존욕구가 있거든요. 이 의존욕구는 아무 조건 없이 나에게 중요한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로 여겨지는 경험을 통해 채워져요. 의존욕구를 채우지 못한 아이들은 ‘허구의 독립성’을 갖게 됩니다. 마음에는 상처가 있는데 겉으로만 독립적으로 보이는 거예요. 의젓하고, 알아서 제 앞가림을 다 하는 아이들이 이런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아이에게 “의젓하다, 착하다”는 말을 하는 건 결코 칭찬이 아니에요. 허구의 독립성을 갖게 된 아이들은 부모를 실망시킬까 봐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잘 표현하지 못하거든요. 그리고 부모의 처지를 예상하죠. 내가 지금 엄마를 필요로 하지만, 엄마가 바쁘고 힘들 것을 생각해서 말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렇게 자라 성인이 된 후에도 고통받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어요. 어린 시절 허구의 독립성을 가졌을 경우, 가족의 모든 일을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힘들게 살아가곤 해요.

 

첫째들이 그런 경우가 많죠.


첫째 또는 순한 아이에게 부모가 의젓함을 강요하곤 합니다. 형제 중 유난히 신경을 써야 하는 아이가 있어 다른 자녀에게 소홀해진다면 “네가 형이니까, 네가 더 착하니까”라고 하지 말고, “동생의 행동에는 분명 문제가 있지만 아직 어려서 그런 거야. 엄마가 동생을 더 감싸거나 더 사랑해서 그런 게 아니니 네가 이해해 줘”라고 설명해줘야 해요. 그리고 “동생 때문에 너무 힘들면 꼭 말해줘. 동생을 보살피는 건 엄마아빠의 몫이니 네가 걱정하지 마. 그리고 너도 엄마아빠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얘기해. 엄마가 힘들까 봐 말하지 않는 것보다 말해주는 게 훨씬 더 기뻐.”라고 이야기해주세요. 가정 안에서 자녀의 역할과 부모의 역할은 따로 있어요. 아무리 의젓한 자녀라고 해도 아이는 결코 부모의 부모가 될 수 없다는 걸 명심해야 해요.

 

자녀를 양육하는 데 있어 부모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자녀가 부모로부터 가장 소중한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보호가 필요할 땐 보호를 해주고, 사랑이 필요할 땐 사랑을 주고, 외로울 땐 옆에 있어주어야 하죠. 예를 들어 아이가 “엄마, 나 오늘 학교에서 억울하게 선도부에 불려갔어요.”라는 말을 했어요. 이때 엄마가 “네가 매일 문제를 일으키니 그렇지. 네가 잘했으면 왜 너를 불렀겠니?”라고 말하는 것은 아이를 보호해주는 게 아니에요. 학교에 가서 우리 아이를 왜 나무라느냐고 따지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아보고 만약 아이가 잘못한 게 있다면 아이에게 왜 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지 잘 설명해줘야 한다는 거죠. 아이의 말대로 정말 억울한 상황이라면 전후관계를 따져서 억울함을 풀 수 있도록 도와야 하고요. 이렇게 엄마 아빠는 조건 없이 너를 믿고 보호해준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거죠. 아이가 엄마를 필요로 할 때 “엄마 지금 일하잖아. 바빠”라고 말하지 않고, “엄마가 지금 일하는 중이라 바로 갈 순 없지만 최대한 빨리 끝내고 너에게 갈게. 조금만 기다려 줘.”라고 말해야 해요. 있는 그대로 사랑을 표현하고, 네가 세상에서 제일 귀하고 소중한 존재라고 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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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아팠다면 아픈 게 맞아요


책에서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털어놓으라고 조언하고 있어요. 상처가 깊을수록 그 사실을 말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용기를 내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한 말씀 해주세요.


당연히 어려운 일이에요. 아마 평생 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상처를 털어놓으라는 건 꼭 상처를 준 대상에게 가서 말을 해야 한다는 뜻만은 아니에요. 당신이 그렇게 고통스러웠다면, 그게 맞으니 그 마음을 표현해도 괜찮다는 의미죠.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뭐 그런 사소한 일로 상처를 받아?”라고 말한다 해도 그들이 틀린 거예요. 당신이 아팠다면 아팠던 게 맞습니다. 용기 내 이야기한다고 해도 부모는 끝까지 사과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요. 하지만 내가 그렇게 힘들었다는 걸 말하는 것만으로도 개인의 내면은 단단해집니다. 그로 인해 나를 마주 대할 용기를 내고 나와 화해할 힘을 얻게 돼요. 너무 큰 상처를 받아 부모와 대면하는 게 두렵다면 편지를 써도 좋아요. 그 편지를 부모가 읽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마음에 있는 말들을 쓰는 행위 자체가 내 내면을 마주하는 일이거든요.

 

화해의 시작은 결국 나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겠네요.


그렇습니다. 자신에 대해 계속 질문하고, 아주 사소한 것까지 알아가 보세요. 내가 무엇에 화를 내고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부모를 생각할 때 어떤 감정이 드는지 말이에요. 그리고 그 마음을 인정하세요. 내게 상처가 있는 것도, 그 상처로 현재의 삶이 힘든 것도, 부모가 너무 미워서 연을 끊고 싶은 마음도 다 인정하세요. 화해는 나와 내가 하는 거예요. 나의 부모는 죽을 때까지 사과를 하지 않을 수도 있고, 설사 사과를 한다 해도 내가 그를 용서하지 못할지도 몰라요. 괜찮아요. 모든 감정을 그냥 두세요. 그런 마음이 드는 나를 비난하지 말고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말해주세요. 그건 당신 때문에 일어난 문제가 아니었으니까요.

 

부모와 자식 관계를 떠나 타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어떤 태도를 갖춰야 하나요?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요. 가까운 사람과는 인생의 대화를 하고, 모르는 사람 혹은 그리 가깝지 않은 사람은 그저 ‘The others'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거예요.(웃음) 내가 대인관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생각해보세요. 나의 배우자, 자녀와 깊이 있는 삶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친한 지인과 내 어려움을 나누고 나도 그들의 어려움을 들어주고 있는지, 그 외에 나와 별 관계없는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신경을 쓰고 있진 않은지요. 나에 대해 알게 되면 타인과 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거든요. 또 하나는 사소한 일은 사소하게 다뤄야 한다는 거예요.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사랑하는 자식과의 일도 사소하게 다루지 못하곤 해요. 예를 들어 아이가 양치를 안 하고 잠들었을 때, 아이를 억지로 깨워 이를 닦게 한다거나 혼을 내는 경우가 있죠. 양치를 가르치는 건 중요하지만 오늘 하루 이 안 닦고 잔다고 큰일 나는 건 아니잖아요. 많은 사람이 오늘의 사소한 일을 못 넘겨 큰일로 만들고 관계를 그르쳐요. 누가 어깨를 치고 간 것, 기분 나쁜 어투로 나에게 말을 건 것 등은 사실 사소한 일이잖아요. 타인과의 관계에서 큰 문제가 발생한 게 아니라면 그냥 흘려보내는 게 좋아요.

 

그렇다면 싫은 사람, 서로 맞지 않는 사람과 잘 지내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한 반에 30명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어떻게 모든 친구와 다 친하게 지낼 수 있겠어요. 싫은 사람은 생기기 마련이죠. 아무리 싫어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도 마음은 속절없는 거예요. 싫은데 어쩔 도리가 있나요? 그런데 다른 사람을 싫어하면 안 된다고 하는 건 강요죠. 우리나라는 감정을 굴복시키고 강요하는 면이 많은 것 같아요. 저는 싫은 사람, 맞지 않은 사람과는 지나치게 잘 지내려고 노력하지 말라고 해요. 그저 서로의 안전한 거리를 지키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진심을 다하면 타인이 알아줄까요? 아니요. 진심을 다해도 뒤통수치는 경우 있어요.(웃음) 그럼 왜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대해야 할까요? 우리는 인간이니까 최소한의 배려를 하는 거죠. 내가 타인에게 마음을 쓰고 배려하는 건, 내가 인간답게 살기 위함이지 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떤 보상을 받기 위함이 아니에요. 즉 모든 인간관계를 나에서 시작하면 돼요.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내가 있고 난 뒤에 다른 사람이 있는 거니까요. 그러니 싫은 사람과 잘 지내려 애쓸 필요 없어요. 단지 여러 사람 앞에서 그를 싫다고 말하는 건 모욕이니, 속으로는 싫다고 생각하되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 정도의 배려만 하면 돼요.

 

얼마 전 유튜브 채널을 오픈하셨어요.


유튜브 채널명은 ‘오은영 TV’이지만 프로그램 이름은 ‘오은영의 더 라이프’예요. 우리의 인생을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비단 육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수많은 ‘나’가 가진 고민과 상처를 나누며 좀 더 인간답게 사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채널이 될 거예요. 개인의 삶을 단단하고 고요하게 유지하면서, 항상 행복할 순 없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삶을 사는 방법을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어요.

 

아직 나와 화해하지 못한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많은 분이 제게 사연을 보낼 때, 내밀한 상처를 고백하는 동시에 “제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요. 그걸 볼 때마다 저는 너무 가슴이 아파요. 어떻게 하면 이 상처를 극복하고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될까 고민하는 그 간절한 마음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에요. 세상에 나쁜 인간은 있어도 못난 인간은 없어요. 그러니 잘난 인간도 있을 수 없죠. 우리 모두는 다 괜찮은 사람들이에요. 그러니 나를 못난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고통 속에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해요. 더 나은 인간이 되려 하지 마세요. 나를 아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이 책을 통해 내가 나를 마주 대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조금 더 단단한 마음을 갖는 데 힘을 보태고 싶어요.   


 

 

오은영의 화해오은영 저 | 코리아닷컴(Korea.com)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때와는 다르다고, 그때 상처받았고 지금도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독자의 내면에 힘이 있다는 것을 믿어 보라고 따뜻한 위로와 함께 명쾌한 조언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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