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녹은 버터처럼, 몽글몽글한 질감의 물감이 붓에 배어있다. 붓이 지나간 자리마다 흰 바탕에 색이 입혀진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색감이 모여서 다양한 모습의 ‘메리’를 만들어낸다. 서로 다른 공간과 순간 속에 있는 인물들. 작가는 그들을 모두 ‘메리’라 불렀다. 말갛게 상기된 볼과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즐거움을 가진 사람들’. 그렇게 ‘메리’는 드로잉메리 작가의 손에서 탄생했고, 독자들의 손으로 건네졌다.
작가의 드로잉 영상을 본 이들은 하나같이 ‘보다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자신도 그 즐거움을 느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국내 최초의 아크릴물감 컬러링 아트북 『Merry Summer』이다. 그리고 드디어! 두 번째 책 『Merry People』 이 출간됐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아크릴물감 세트’를 선보이는 『Merry People』은 알찬 구성으로 독자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드로잉메리 작가가 직접 사용하는 용지와 물감이 포함되어 있고, 컬러링 방법을 담은 ‘튜토리얼북’과 스케치가 실린 ‘컬러링북’으로 구성되어 있다. 심지어 종이 팔레트는 작가가 실제 사용하는 것보다 더 질 좋은 것으로 특별히 준비했다. 쓱쓱 칠하기만 하면 작품이 되는 『Merry People』을 즐기기 위해 필요한 건 붓과 느긋한 마음, 잠깐의 휴식뿐이다.
이태원에 위치한 드로잉메리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햇살이 쏟아지는 창 옆으로 따스한 색감의 러그가 걸려 있다. 포르투갈의 브랜드 ‘GUR’와의 콜라보로 탄생한 작품으로, 꽃다발을 형상화한 그림을 입체적으로 담아낸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새하얀 공간을 채우고 있는 다채로운 물감과 화구들이 눈에 띈다. 반가운 ‘메리’들의 모습도 보인다. 그 속에 ‘메리’와 꼭 닮은, 시종일관 즐거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던 드로잉메리 작가가 있었다.
공감 얻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요즘 많이 바쁘시죠? 두 번째 전시회를 여셨잖아요.
작은 전시예요. 지난 10월에 첫 번째 전시회를 했는데, 그걸 보신 분께서 컬렉션 숍의 한 쪽 벽에 작품을 전시하면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해주셔서 하게 됐어요. 공간도 예쁠 것 같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항상 가벼운 건 없더라고요(웃음).
첫 번째 전시회는 정말 느낌이 남다를 것 같아요.
제가 감흥을 많이 못 느끼나 봐요(웃음). 뭔가 바쁘게 준비하고 정신없이 흘러간 것 같고, 지나고 보면 ‘그래도 어떻게 해냈네’ 싶기는 한데, 당시에는 그런 걸 느낄 새 없이 지나간 것 같아요.
SNS에 올리신 영상을 봤는데,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전시회가 끝나고 정리하시는 모습을 찍어서 올리셨죠.
오히려 전시를 할 때는 정신없이 한 것 같았는데, 그림을 뗄 때는 그 순간 공간이 없어져 버린다는 생각이 들어서, 뭐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냥 사진 속에만 있는 걸로 끝난 느낌도 있었고요.
새해 시작부터 좋은 소식이 들리더라고요. 『Merry People』 이 중쇄에 들어갔다면서요.
감사합니다(웃음). 작년에 예스24에서도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에요. 저는 부산에 갈 일이 잘 없는데 그런 기회로 가게 돼서 너무 좋았어요.
예스24 수영점에서 『Merry Summer』 특별전을 여셨었죠. 처음에는 한 달로 계획됐었는데, 반응이 좋아서 세 달로 연장됐었잖아요.
책을 만들면서도 많이 느꼈지만, 많은 분들이 잘해주신 덕분인 것 같아요. 고맙기도 하고, 약간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요(웃음).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작가님의 그림을 좋아하는 걸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림을 봤을 때 어려운 느낌이 없는 것 같아요. 밝고 가벼운 느낌이 드니까 잘 받아들여주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창작자 입장에서는 간결하게 표현하는 게 더 어렵잖아요.
그렇죠, 그릴 때도 가볍게 그리는 건 아니죠(웃음). 그런데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느껴주시는 것 같아서 좋아요. 많은 사람들한테 공감을 얻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Merry People』을 준비하시는 과정은 어땠나요? 『Merry Summer』 작업을 하셨었기 때문에 한결 익숙해졌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많이 익숙해졌죠(웃음). 한 번 정리가 되어 있는 셈이니까 준비 시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았어요. 『Merry Summer』를 만들 때는 종이 선택하고 물감 준비하는 것부터 해서 출판사랑 같이 고민도 많이 했어요. 이번에는 패키지 박스를 준비하는 데 고민이 많았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왜요?
『Merry Summer』 는 한 권의 책으로 되어 있었어요. 앞부분에는 설명이 있고 뒷부분에 스케치가 실려 있었는데, 독자 분들이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을 보시기가 힘드셨던 것 같아요. 저희도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이번에는 분리를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러면서 책이 두 권이 되었는데, 이걸 어떻게 묶어야 할까 라는 고민을 하게 됐고요. 물감도 함께 구성되어 있으니까 그러면 박스를 만들어서 같이 담자고 의견이 모아졌어요.
첫 번째 책을 만드실 때부터 패키지 구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셨을 것 같아요. 아이디어도 제시하셨을 테고요.
출판사에서는 어떤 종이를 써야 할지도 고민이 되니까요. 저한테 물어봐 주시면 나름 충실하게 대답하면서 진행을 했죠(웃음). 사실 물감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생각도 못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그림 그리는 영상을 보시고 쉴드(SHIELD) 물감 대표님이 메일을 주셨더라고요. 제가 그 제품을 쓰고 있으니까요. 그때 딱 물감을 고민하던 시기였는데 연락이 와서, 저는 출판사에서 연락을 받으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출판사에 여쭤봤더니 아직 연락을 안 드렸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러면서 쉴드 물감 대표님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출판사와도 이야기가 돼서 패키지를 만들게 됐어요.
작가님과 똑같은 종이, 물감을 사용해서 컬러링할 수 있다는 것도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어떤 종이, 붓, 물감을 쓰는지 물어보시는 분들도 많았어요. 아마 많은 작가님들이 그런 질문을 받으실 것 같아요. 분명히 궁금하실 것 같기는 해요. 저도 다른 작가님들이 쓰시는 걸 보면 ‘저건 뭘까’ 궁금해지거든요(웃음).
패키지에 팔레트까지 들어있는데요. 이것도 실제로 사용하시는 건가요?
아니에요. 제가 쓰는 것보다 훨씬 좋아요(웃음). 제가 쓰는 건 종이 느낌이 강한데, 이건 더 코팅된 느낌이에요. 출판사에서 만드신 건데, 독자 분들이 사용하시기에 더 좋지 않을까 싶어요. 크기가 작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는데 직접 써보니까 가능하더라고요. 그림 하나를 칠하는 데 팔레트 한 장을 쓰면 되더라고요.
메리의 시그니처 ‘볼터치’
포털 사이트에서 작가님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화홍 848’이 뜨는 거 아세요(웃음)?
아, 정말요(웃음)?
네, 작가님이 추천하시는 붓이잖아요. 또 다른 연관 검색어로 ‘아크릴 붓 추천’도 있어요(웃음).
저도 독자 분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거든요. 작가님들은 어떤 걸 쓰실까 답이 듣고 싶잖아요. 제가 독자 분들의 질문에 다 대답을 못 해드리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말씀드리려고 해요(웃음).
드로잉 영상에서 실제로 쓰신 게 화홍 붓이죠?
네, 여기 필통에도 꽂혀 있고요.
왠지 더 좋은 화구를 쓰실 것 같았어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비싼 외국 제품만 쓸 것 같고. 일본 제품 중에 ‘바바라’라는 브랜드의 붓이 굉장히 좋아요. 그런데 쓰다 보면 그것도 한계가 있죠. 아크릴은 수채화보다 붓이 빨리 망가지는 편이기도 하고요. 화홍 붓은 더 저렴하지만 불편 없이 쓰고 있어요.
‘튜토리얼북’에서 조색 방법도 자세하게 알려주셨어요. 어떤 색을 섞어서 칠하면 되는지 가르쳐주셨는데요. 글로만 보고도 다들 잘 따라하시나요?
대부분 잘 하시는 것 같아요. 저도 그 부분을 쓰면서 ‘이렇게 말씀드리면 아실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SNS에 올리시는 작품들 보면 다들 잘 하시는 것 같아요. 오히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질문이 별로 없어요. 많이들 물어보시는 게 ‘물 농도는 어느 정도로 맞춰야 되나요’, ‘물감을 얼마나 짜야 되나요’, ‘물감이 다 떨어지면 어떻게 해요’ 같은 거고요. 간혹 색을 만들기 어렵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 잘 하시는 것 같아요.
독자들이 SNS나 인터넷에 올린 작품들을 많이 보셨어요?
네, 블로그까지는 많이 못 봤는데 인스타그램은 거의 다 보지 않았을까 싶어요. 작품들을 보면 그냥 신기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그리는 동안 진짜 즐거웠다고 하시는 글들을 보면 재밌어요(웃음).
책을 만들 때 독자 반응을 참고하기도 하셨나요?
네. 그래서 튜토리얼북과 컬러링북을 분리하게 됐고요. 편집자님이 난이도를 고려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그 의견도 반영했어요. 그림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쓰실 거라는 생각을 조금 더 많이 한 것 같아요. 『Merry Summer』를 만들 때 보다요. 그때는 22~24개 스케치 중에서 어렵거나 조금 난해한 것들을 빼고 20개를 실었었거든요.
컬러링북을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눠서 만들어달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그럴 수도 있을까요(웃음). 그런데 정말 잘하시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미술을 하다가 쉬고 계신 분들 중에서 책을 사서 색칠하는 분도 계시고요. 엄청 잘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부담감도 들어요. 조금 더 디테일하게 만들면 재밌어하실 분도 있으실 것 같고요. 많지는 않으시겠지만요. 예전에 전시회 준비할 때는 큰 캔버스에 그림 그리는 영상을 올렸더니 캔버스에 컬러링할 수 있게 만들어달라고 하신 분도 계셨어요(웃음).
작가님의 드로잉 영상을 보고 ‘기분이 좋아진다,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왜 그럴까요?
제가 느끼는 것 그대로 느끼시는 것 같아요. 저도 가끔 그림을 칠하면서 몽글몽글, 부드럽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드로잉 영상을 한 번 올려봐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올렸던 건데, 엄청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 거예요. 직접 그리지 않더라도 제가 느끼는 것과 비슷하게 느끼시는 게 아닐까 싶어요. 흰색에 부드럽게 색이 채워지는 느낌을 좋아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 느낌 때문에 아크릴물감을 좋아하시는 건가요?
저한테 맞는 재료를 찾고 싶어서 다양하게 써봤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건 색이 가득 찬 느낌이었는데요. 예를 들어서 색연필 같은 경우에는 꽉 채워도 보슬보슬한 느낌이 있잖아요. 그것보다 조금 더 강하게 색이 입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 이것저것 써봤어요. 사실 아크릴은 사용하기에 불편한 점이 많아서 더 편리한 걸 쓰고 싶기도 했어요. 수채화는 굳혀서 오래 쓸 수 있지만 아크릴은 짜놓고 쓸 수도 없잖아요. 매번 짜서 써야 되니까 물감도 크기가 작지 않고요. 그런데 결국은 아크릴물감을 쓰게 되더라고요(웃음). 색이 다 채워졌을 때의 느낌이 좋아서 그런 것 같아요.
이번 책에는 『Merry Summer』에서 사용되지 않았던 색깔들을 담으려고 하셨다면서요.
독자 분들이 안 쓰셨던 색깔을 써보실 수 있으면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았어요. 새로 사용한 색도 있고요. 아무래도 겹치는 색이 반 정도 되기는 하는 것 같아요.
겹치는 색은 작가님의 최애 컬러인가요?
최애 컬러도 있어요(웃음). 컬러 중에서는 기본적으로 초록, 파랑, 그리고 ‘메리’의 볼을 칠할 때 사용하는 코랄 레드가 있고요. 또 블랙과 화이트가 있죠.
왜 모든 ‘메리’에게 볼터치를 해주시는 거예요?
지금은 약간 시그니처처럼 넣고 있고요. 볼터치가 없으면 메리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약간 있죠(웃음).
인물들마다 볼터치를 그린다는 걸 아셨어요?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그리시게 된 건가요?
몰랐어요. 낙서하다가 자리가 잡힌 경우인데, 그 낙서에 볼터치가 크게 있었어요. 그게 조형적으로 재밌는 것 같았고 약간 포인트처럼 보였어요. 그래서 쭉 모든 그림에 그리게 됐고요. 예전에 그렸던 그림들을 보니까 다 볼을 그려 넣었더라고요. 형체는 다른데 다 있어요. 그때 대충 그렸던 볼의 형태가 약간 길쭉했는데, 그걸 그냥 가지고 오게 된 것 같아요. 동그랗게 그리지 않고요.
기분이 좋을 때 그려요
‘즐거움을 가진 사람들’을 통칭해서 ‘메리’라고 부르시잖아요. 왜 즐거운 사람들만 그리세요?
요즘 모토로 잡고 있는 게 ‘즐거움’이기도 하고, 그러면서 『Merry People』까지 그리게 됐는데요. 그냥 제가 즐거운 감정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다른 기분이 들 때보다는 기분이 좋을 때 그림을 많이 그렸거든요. 그런 제 기분이 약간 녹아들어서 많은 분들이 그림을 보시고 ‘편안하다,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으시는 것 같기도 해요. 우울이나 다른 감정을 잘 표현하시는 분들도 많고, 그런 것도 나쁜 게 아닌데, 제가 그런 걸 잘 못하는 것 같아요. 밝은 걸 좋아해서 그런가 봐요. 그런데 또 차분한 것과는 거리가 조금 있는 것 같고요. 그것보다 조금 더 느낌이 밝지 않나 생각돼요.
일상에서 직접 만났던 사람을 모델로 그리신 ‘메리’도 있더라고요. 어떤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나의 메리가 될 수 있겠어’라는 느낌이 드시나요?
그 분을 봤을 때 순간적으로 어떤 감정이 들면 뇌리에 남는 것 같아요. 대부분 눈에 띄는 분일 때가 많고요. 이번 책에 실린 「뮤직 이즈 마이 라이프」 같은 경우도, 뉴욕에서 지하철을 탔는데 진짜 이런 모습을 하신 분이 앉아 계셨어요. 그림처럼 올블랙 옷을 입고 계셨고 머리 스타일도 똑같았어요. 「길 위에서」도 길을 걷다가 본 할아버지예요.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다니는 길이었는데 혼자 서서 위를 계속 쳐다보고 계시더라고요. 그렇게 순간적으로 봤을 때 기억에 남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특별한 생각을 가지고 그린 건 아니에요.
#3 길위에서
#6 뮤직이즈마이라이프
유독 눈길이 가는 사람들이 있죠.
지하철에서도 그런 분들을 볼 때가 있고요. 어떤 분이 머릿속에 남으면 약간 각색되어서 나오기도 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 제 전시장에 오셨던 분이 계셨는데, 인사도 나누지 못했던 분이었어요. 그런데 군중 속에 있는 그 분의 모습이 계속 기억에 남아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림으로 그린 적이 있어요. 모두 닮지는 않았어요(웃음). 아마 본인은 알아보지 못하실 거예요(웃음). 제 기억에만 있는 모습을 그릴 때도 있고요.
작가님에게는 그림을 그리는 게 일이기도 하잖아요. 여전히 그림 그리는 시간이 즐거우세요?
그 순간에는 좋아요. 일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많은 업무가 필요하니까 그런 부분들이 힘들죠. 이메일도 주고받아야 하고 여러 가지 조율도 해야 되잖아요. 그림 그리는 자체는 너무 좋아요. 책을 만들 때도 그림 그려서 색 채울 때는 되게 재밌었어요. 바쁘긴 해도 엄청 재밌어요(웃음).
일하지 않는 시간에도 그림을 그리세요?
혼자 그림을 그리기도 해요. 취미로 그리거나, 심심할 때도 그림을 그려요.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 그런가 봐요(웃음). 그런데 일로 그릴 때와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그냥 심심해서, 아니면 하고 싶어서 그릴 때는 또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으니까 좋기도 하고요.
지금까지와는 다른 작품을 보여줬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그렇죠. 지금은 이대로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슬그머니 조금씩 보여드려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아예 다른 게 나오면 알아보시지 못할 것 같기도 해요.
대중이 자신을 하나의 이미지로 규정해 버린다면, 창작자로서는 고민이 되겠죠.
그렇겠죠. 그리고 제가 잘 질리는 편이에요, 뭐든지. 굉장히 오래 이어져온 게 메리라는 캐릭터예요. 그 전에는 엄청 많이 바뀌었었어요.
‘메리’라고 불리는 사람이 한 명이 아니잖아요. 할아버지도 ‘메리’, 강아지와 산책하는 여성도 ‘메리’, 남성은 ‘남메리’. 굉장히 독특한 것 같아요.
우연히 그렇게 됐어요. 그림체가 비슷하니까, 딱히 다른 캐릭터가 없이 ‘얘도 메리, 쟤도 메리’ 다 메리라고 말하게 됐는데요(웃음). 저는 한 가지만 그리지는 못하는 것 같은데, 어쩌면 그래서 메리를 질리지 않고 그리는 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Merry Summer』 , 『Merry People』을 통해서 그림의 매력을 알게 된 분들도 계신데요. 작가님은 무엇을 통해서 그림의 즐거움을 알게 되셨어요?
어렸을 때부터 언니 오빠 따라서 그림 수업에 갔었어요. 그냥 쫓아갔다가 재밌어서 그림 그리고, 그러다가 수업도 듣게 됐어요. 그때는 주입식처럼 그림 그리는 방법을 알려줬던 것 같은데, 예를 들면 나무는 고동색과 황토색을 섞어서 칠하면 되고 창문을 그릴 때는 흰색 크레파스로 빛을 표현해주면 좋다는 식이었어요. 그게 재밌어서 학교에 가서 그림 그릴 때도 그렇게 했는데, 그러다 보니까 잘 그렸다고 칭찬을 받았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미술부에 들어가서 그림을 그렸고,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미술학원을 다니면서 일찍 입시 미술을 시작했어요. 미술을 전공하겠다는 생각은 없었고, 제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엄마가 권유해서 미술학원에 갔던 거였어요. 그렇게 고등학교 3년 내내 미술학원에 다녔고, 미대 입시 준비했고, 미대에 다녔고... 특별히 계기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평범했어요. 그냥 즐겁게 그린 것 같아요(웃음).
입시 미술을 하는 동안 굉장히 힘들지 않나요? 미대를 다니는 동안에도 ‘앞으로 그림을 그려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고민되고요.
제가 철이 없었죠(웃음). 막상 졸업할 때가 되니까 ‘회사에 다녀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기는 했어요. 저는 애니메이션학과를 나왔는데, 졸업 작품으로 애니메이션을 하나 만들었었어요. 그거에 매진하면서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회사를 들어가야 되나?’ 하는 고민을 했던 거죠(웃음). 철이 없어서 돈에 대한 관념이 적었고, 그래서 독립영화 쫓아다니기도 하고 그랬어요.
의외의 이력이네요.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기획하는 단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 그게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런데 애니메이션은 호흡이 너무 길어서, 영화 쪽은 뭔가 재밌지 않을까 싶었어요. 콘티 작가, 스토리보더가 돼야겠다고 생각하고 알아봤는데 마침 찾는 팀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체계가 잡혀있다기보다는, 저처럼 학교에 다니면서 한 번 독립영화를 만들어보자고 모인 친구들이었어요. 그 팀에서 같이 작업했었는데, 직접 해보니까 제가 생각했던 것과 조금 다르더라고요(웃음). 감독이나 다른 사람들의 권한이 크고 제가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은 적은 것 같았어요. 스토리보드가 그냥 기획을 공유하기 위해서 쓰이는 것 정도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상업영화는 다를 수도 있고, 그건 제가 해보지 않아서 다 아는 건 아니지만요.
즐겁게 그리셨으면 좋겠어요
기업들과 협업도 많이 하시는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거예요?
제가 철이 없어서(웃음), 회사는 다니기 싫고 이쪽으로 계속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해야 될지 막막했고, 용돈 벌이로 알바 같은 걸 하고 있었는데요. 그때 한참 웹툰을 해야 된다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저도 꾸준하게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웹툰을 열 몇 편 그려서 블로그에 올렸는데 아는 분이 보시고, 그 분도 그림을 그리는 분인데, 그걸 보고 말씀을 해주신 거예요. 자기한테 기업 홍보 웹툰 제안이 왔는데 한 번 해보지 않겠냐고요. 그 후로 홍보나 설명을 위한 웹툰을 그렸었어요. 그림으로써 하고 싶었던 게 있어서 그쪽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계속 했었고요. 아주 천천히 오게 됐어요.
개인 작업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세요?
하죠. 그럴 수 있다면 제일 좋죠. 개인적으로 작업을 안 한 지 오래 됐거든요. 정말 온전히 아무것에도 쓰이지 않는 그림을 혼자 그리는 것, 그런 건 안 한 지 조금 오래 됐어요. 못했다고 해야 하나요. 그렇게 그림을 그릴 때는 정말 좋아요. 행복해요(웃음).
『Merry People』 에서 독자들이 가장 어려워할 그림은 무엇일까요?
「언덕에서」 같은 경우는 배경까지 칠해야 하고 머리, 옷, 스카프 등 다 명암이 들어가요. 색깔도 11가지가 사용되고요. 「아름다운 메리들」은 두 가지 색만 쓰기 때문에 색을 섞을 때는 쉬운데, 작은 붓으로 그려야 하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래서 붓 컨트롤에서 어렵게 느끼실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어요.
#9 스치는기억
#11 언덕에서
「스치는 기억」은 어떤가요? 꽃의 볼륨감을 살리려면 여백을 잘 활용해야 하는데, 초보자에게는 어려운 부분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꽃잎이 겹겹이 포개진 모습을 표현하려면 볼륨감이 있어 보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명암을 다 넣을 수는 없으니까 여백만 남겨도 그런 느낌이 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여백을 남기시라고 말씀드렸는데요.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실까 봐 걱정돼서, 연필 선을 아주 연하게 표시해야 하나 싶기도 했어요. 그런데 꼭 그렇게 안 하셔도 된다고 생각해요. 꽃을 다 채워서 칠하셔도 되고 다른 색을 섞어서 그리셔도 되거든요. 조금 더 자유롭게 칠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연필 선은 넣지 않았어요. 여백 남기는 걸 어려워하시고 스트레스 받으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안 그러셔도 될 것 같아요.
작가님 그림과 똑같이 그려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을 느끼실 필요도 없을 것 같고요.
물론 그렇게 하고 싶으실 수도 있지만, 아무튼 스트레스 받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웃음). 『Merry Summer』 , 『Merry People』은 드로잉 영상을 봤을 때의 느낌을 직접 경험해 보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책이잖아요. 그냥 그 느낌을 가지고 스트레스 안 받고 그리셨으면 좋겠어요. 즐겁게. 독자 분들이 진짜 재밌게 그렸다고 말씀해주실 때가 정말 좋아요.
인내심을 가지고 차분하게 그려야 할 부분에는 ‘Keep Calm’이라고 쓰셨어요. 조급한 마음으로 그리면 마음에 안 드는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을까요?
저는 스스로가 조금 빠르게 칠하는 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 영상을 유심히 보신 편집자님이 엄청 천천히 칠한다고 하시더라고요. ‘Keep Calm’의 아이디어는 편집자님이 주신 거예요. 예전에 제가 작은 부분을 칠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린 적이 있는데, 그때 ‘Keep Calm’이라고 썼었거든요. 그 표현이 좋은 것 같다고 하셔서 넣어주셨어요.
그림을 그릴 때 차분함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도 라인 근처를 그릴 때 물감이 밖으로 벗어나지 않게 칠하려고 숨을 참기도 해요.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처럼, 순간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 같아요.
SNS에서 올해는 더 다양하고 재밌는 작업을 꿈꾼다고 하셨어요. 어떤 작업을 하고 싶으세요?
음... 종이에 그려진 그림 외에 더 꺼내오고 싶다고 해야 하나요. 전시회 때 나무에 색칠하는 작업을 했는데, 그것처럼 조금 더 다른 식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GUR와 콜라보로 러그를 만들었던 것처럼 색다른 오브제가 나오는 작업도 너무 재밌고요.
Merry People드로잉메리 저 | 휴머니스트
아크릴물감 초보를 위한 기초지식, 준비물과 컬러링 기본기와 컬러링하는 방법을 ‘튜토리얼북’에 담았습니다. 엄청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어서 그대로 따라 색칠하기만 하면 돼요. 처음이어도 걱정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