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나이마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겠지만, 특히 50대의 나이는 여러모로 조금 더 특별할 것이다. 노년이라고 하기엔 아직 너무 젊고, 삶의 어떤 부분에서는 손을 내려놓아야 할 시기이기 때문이다. 자녀들은 품을 떠나 독립하고, 누군가는 청춘을 바친 자리에서 물러나야할 지도 모른다. 몸과 마음에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도 이 즈음. 백세의 절반을 지났지만 여전히 절반을 더 살아내야 하고, 입지는 자꾸 좁아지는 것 같은데 책임져야할 일들은 여전히 많다.
젊은 시절 ‘딴지일보’의 편집장을 지내고 『남편의 본심』 , 『어른의 발견』 ,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 자신의 솔직한 속내를 고백하는 책들을 펴낸 작가이자 15년째 치유프로그램 전문회사 ‘노매드힐링’을 운영하는 저자 윤용인에게도 50대는 ‘혼돈의 시기’였다고 한다. 삶에 대한 고민이 닥칠 때마다 그는 책과 문장을 붙들었고, 그 흔적은 2017년 연재종료된 채널예스 칼럼 ‘윤용인의 노비문장’에 담겼다. 『내일 일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은 이 칼럼을 다듬고, 그동안 쌓인 새로운 생각을 보태어 펴낸 책이다. 그는 책을 쓰며 가장 많이 되뇌었던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지금보다 더 나은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자문하며 쓴 책
2017년 6월에 칼럼이 연재종료됐어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강연이 많았어요. 이전에 출간한 책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가 경상남도 지역 도서관 사서들이 뽑은 최우수 도서에 선정돼 지방에 자주 내려갔죠. 제가 만든 명상 프로그램으로 기업체 대상 강연도 계속 진행했고요. 계속 바쁘게 지냈습니다.(웃음)
채널예스에 연재했던 ‘윤용인의 노비문장(노안 이후 비로소 보이는 문장)’이 엮인 책이에요. 열 번째 출간인데 소감이 어떤가요?
공저로는 10권이지만 단독 저자로는 8번째 책인데, ‘아 이만큼 나이 먹었구나’ 싶어요. 운이 좋았다고도 느끼고요. 이 책은 이전 책들과 비교해 가장 불안한 상태에서 썼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어요. 과거에 책을 쓸 때는 무슨 이야기를 할지 자신감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내일 일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을 쓰는 동안은 마치 사춘기 소년이 된 듯 삶에 대한 불확실함으로 혼란스러웠어요.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맞나? 내 생각이 옳은가?’라며 끊임없이 자문하는 과정에서 나온 책이에요.
‘작가의 말’에서 그 고민이 고스란히 드러나요. ‘집필의 시기는 나에게 혼돈의 시기였다(6쪽)’고요. 50대에 접어들며 일어난 마음의 변화였나요?
그랬던 것 같아요. 특정 사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나이대에 찾아오는 고민이죠. 보통 각 나이마다 누군가에 의해 삶을 평가받곤 하잖아요. 10대 때는 선생님이나 부모님, 20대에는 직장 상사나 친구, 30-40대에는 직장 동료 또는 후배들에게 평가를 받는데, 50대가 되면 자녀가 그 역할을 해요. 아이들이 굳이 부모의 삶을 평가하려 들지 않아도 자연스레 그렇게 느껴지더라고요. 이전까진 내가 아이들의 삶을 검토해주고 있었다면, 이제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는데 그게 자신 없고 불안한 거예요. 자녀가 성인이 되면 절로 부모의 허점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오는 걱정이 컸어요.
책 제목을 짓느라 무척 심사숙고한 것으로 알아요.
정말 고민 많았어요. 처음 책을 쓰면서 독자 타깃을 40대 중반~60대의 중년 남성으로 겨냥했거든요. 그들의 책이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알려주고 싶어서 ‘그랬구나, 이 남자’ 같은 제목을 지었는데 출판사에서 반대했어요.(웃음) 20~30대 여성 독자들도 호기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요. 이 제목은 편집자분이 정해주신 건데, 제 심정을 함축하고 있어서 마음에 들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중년 남성들에게 ‘당신들 이야기야’라는 돌직구를 던지고 싶었어요.
실제로 ‘아빠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쓴 리뷰를 봤는데요. 독자들 반응은 느껴지세요?
이번 책은 지인들의 반응이 좋은 편이에요. 특히 제 또래의 중년 남성들이 공통적으로 ‘완독’이라는 표현을 쓰며 감상평을 전하는 게 참 신기해요. ‘처음으로 완독한 책이다, 담배 석대 피우며 다 읽었다, 완독할 만큼 좋은 내용이었다’ 등 마치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사람들처럼 책 한 권을 다 읽은 것을 굉장히 뿌듯해하더라고요. 사실 중년 남성들에게는 책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런데 이 책은 자신들의 이야기이다 보니까 어렵지 않게 후루룩 한 권을 다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한 독자층에게서 반응이 있어 더 기뻤어요. 지금까지 책을 내면서 느낄 수 없었던 신기하고 새로운 경험이에요.
샤이한 어른이 되는 길
우아하게 나이 드는 자세로 ‘샤이(shy)하기’를 이야기했어요.
대다수의 젊은 사람들은 타인을 많이 의식하며 사는 것 같아요. ‘혹시 나 때문에 누군가가 불편하진 않을까, 내가 폐를 끼치지 않을까’ 생각하죠. 그런데 나이가 들면 비교적 뻔뻔해져서 행동이나 언행이 거침없어지거든요.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말을 하거나, 옆에 사람이 가까이 앉아있는 데도 신문을 크게 펼쳐 보는 것 처럼요. 옛날에는 지하철에서 신문 읽는 어르신들이 많았는데, 어떤 사람은 양팔을 크게 벌리고 신문을 펼쳐 본다면 어떤 사람은 16분할로 손바닥만하게 접어서 보곤 했어요. 후자가 ‘샤이한 어른’인 거죠. 나이가 들면 이렇게 점유하는 공간을 좀 버릴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일으키는 소음도 마찬가지고요. 평생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많이 애써왔으니 나이를 먹으면 거꾸로 그 존재감을 축소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조금 더 소심하고, 조금 더 부끄러움을 탄다면 훨씬 우아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나이가 들면서 은연중에 행동이 거침없어졌다고 느낀 적 있으세요?
아이들이 왜 이렇게 목소리가 크냐고 하거나 발자국 소리, 기침소리가 너무 크다고 할 때 놀라곤 해요. 저는 한 번도 의식하지 못했는데 아이들은 그렇게 느끼나보더라고요. 노화로 인해 청각 능력이 조금씩 떨어지다 보니 소리의 데시벨을 올바로 판단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TV소리도 점점 커지잖아요.(웃음) 그래서 요즘은 그런 부분에서 타인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고 신경 쓰고 있어요.
책을 읽으면서,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과연 ‘좋은 아버지’란 무엇일까요?
옛날에 그 질문을 받았다면 정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을 거예요.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고, 잘 들어주고, 아이들의 속도를 잘 기다려주는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요. 그런데 지금은 솔직히 모르겠어요.(웃음) ‘과연 좋은 부모라는 것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굳이 부모로 대상화된 존재가 아니라 좋은 사람으로 늙어가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게 맞을 것 같고요. 이 나이쯤 되면 자녀가 보통 20세가 넘기 때문에 부모자식이 아닌 철저히 성인 대 성인으로 아이들과 마주하게 되거든요. 그렇기에 아이들 눈에 비친 내 삶보다 실존적인 ‘나’의 삶이 어떤가가 더 중요하게 느껴져요. 여전히 ‘부모’라는 틀에만 나를 가둬두기에는 좀 불행한 것 같아서요. 예를 들어 황혼이혼을 하는 부부들이 있잖아요. 이들이 이혼을 하는 건 개인과 개인의 문제예요. 하지만 ‘좋은 부모’라는 틀이 둘 사이에 끼어들면 부부는 절대 이혼하지 못하겠죠. 뒤늦게나마 자신의 행복을 찾으려는 선택이 옳은가, 아니면 좋은 부모의 역할을 하기 위한 선택이 옳은가는 스스로 판단할 문제여야 하죠. 그래서 요즘은 좋은 부모가 무엇인지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아요. 좋은 부모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럼 질문을 바꿔볼게요. 좋은 어른이 갖춰야 할 태도가 있다면요?
자기 자신을 계속 돌아보는 거죠. 내가 잘 살고 있는지, 문제는 없는지. 혹자들은 ‘왜 이렇게 생각이 많냐’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나이 들수록 자기 자신에 대해 좀 불편해질 필요가 있어요. 내가 혹시 나쁜 사람은 아닌가? 내 행동이 좀 후지지 않나? 그렇게 자꾸 생각하고 돌아볼수록 덜 나쁜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도 인상적이었어요. ‘그 어떤 철학이나 사상, 이념, 가치보다 개인의 사소한 사정을 더 중히 여기고 예민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갖고 싶다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203쪽)’고 쓰셨는데, 남녀 갈등이 수면으로 급격히 올라온 이 시대에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민서영 작가의 『썅년의 미학』이라는 책을 본 적 있어요. 읽으면서 절반은 통쾌했고 절반은 불편했어요.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하고 내가 몰랐던 이야기들로 나를 깨우치는 부분에서 통쾌했다면, 다소 공격적이고 뒤틀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대목에선 불편했었죠. 어쨌든 다 읽은 후 아들 방 책상 위에 이 책을 올려뒀거든요. 아들이 올해 스물한 살인데 책을 보더니 “이걸 왜 가져다 놓으셨냐”고 묻더라고요. 그 질문을 받고 내가 왜 그랬을까 생각해봤어요. 그 책이 좋든, 불편하든, 그 뜻을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상관없이 ‘세상에 이러한 소리가 있다는 것 자체를 들어줄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고, 이러한 문제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네가 알아야 한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판단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지만, 이러한 소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한 번쯤 충분히 들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보통 나이대에 따라 각기 다른 고민을 하며 살게 되는데요. 50대에 접어들며 자주 하게 되는 고민은 무엇인가요?
50대를 보편적 수치로 설정할 순 없을 것 같고 ‘2019년을 지나는 50대’의 고민을 이야기해야 맞을 것 같아요. 저를 포함한 요즘 중년 남성들의 고민은 빠르게 변하는 세대, 문화, 세태 속에서 나름대로 건강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자신의 기반이 흔들리는 것에서 오는 혼란이 가장 클 거예요. 과거에는 50대에 찾아오는 갱년기, 우울증 등의 신체적 변화, 혹은 갑작스러운 명예퇴직 등이 고민이었다면 지금은 우리와 너무 다른 아랫세대라는 외계적이고 낯선 우주와의 대면에서 찾아오는 당혹감이 마음을 힘들게 하죠. 내 입장에서는 상식적으로 젊은 직원들과 소통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어떤 대화법이 문제를 일으킨다거나, 아버지로서 어떤 말을 했는데 자식에게 그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 등,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옳음’에 대한 생각이 빠르게 뒤집어진 세대 속에서 느껴지는 혼돈이요.
작가님이 겪은 경험이 있다면요?
예를 들어 딸이 혼자 저녁을 먹고 있는 중에 제가 집에 들어왔어요. 그럼 제 생각에는 “아빠 식사하셨어요? 같이 드실래요? 저녁 차려드릴까요?”라고 물어야 맞는 것 같거든요. 제가 컸던 환경에서는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딸은 그 말을 안 하는 거죠.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돼서 딸에게 “서운하다”고 얘기하면 딸이 “저녁을 안 드셨으면 아빠가 제게 먼저 이야기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라고 반문해요. 막상 그 말을 들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자동적으로 생각의 알고리즘이 바로 전환되진 않죠.(웃음) 제가 성장한 환경에서는 밥을 먹고 있을 때 부모님이 들어오시면 식사를 차려드리고 함께 먹는 게 너무 일반적이었으니까요. 이유야 어찌됐든 딸에게 야단을 맞았잖아요.(웃음) 이런 일이 집안에서 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거듭 반복될 때면 ‘내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나?’라고 주춤거리게 되고, 자신이 없어져요. 눈치를 보게 되고요. ‘아직 그렇게 늙은 건 아닌데, 왜 이런 거지?’라는 생각이 들며 혼란스럽죠. 혼돈 속의 고립이라고 할까요. 대부분 이런 혼란스러움을 비밀스럽게 갖고 있을 거예요. 과거에는 가부장적인 힘으로 ‘내가 맞아, 내가 질서야’라며 소리치는 어른들도 많았지만, 지금은 그게 통하지 않는 시대니까요.
‘나이 먹기’가 아닌 ‘나이 버리기’
다독가이시잖아요. 요즘은 주로 어떤 책을 많이 읽으세요?
잡학스럽게 읽어요. 저는 책 한 권을 진득하게 끝까지 보지 않고 최소 7권~10권을 주변에 두고 그때그때 흥미가 느껴지는 걸 조금씩 읽는 편인데요. 요즘은 미술비평집이나 2019년 트렌드에 관련된 책, 헤밍웨이 단편선 등 다양하게 읽고 있어요. 피아노를 배우면서 독서량이 현저히 줄긴 했지만요.
피아노를 배우세요?
비교적 여유가 생기고, 하고 싶은 일을 특별한 목적 없이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서 글 쓰는 것 말고, 매년 새로운 걸 하나씩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덕분에 몇 년 전에는 테니스를 배워서 지금까지 치고 있고, 작년에는 합창단 활동을 하며 처음으로 악보를 보게 됐죠. 합창단에서 노래를 하다 보니 계명창을 하고 싶단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또 나이가 좀 더 들면 음악 봉사를 다니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지난해 12월부터 석 달째 피아노를 배우고 있어요. 매일 연습해야 손이 굳지 않기 때문에 하루에 2~3시간씩 피아노를 치다 보니 책 읽을 시간이 그만큼 줄어드네요.
직접 배워보니 어떠세요?
너무 재밌어요. ‘나 어쩌면 음악천재일지도 몰라’ 이런 생각이 들어요.(웃음) 분명 철저히 좌절될 꿈이겠지만, 좌절되기 전까지의 설렘이 있잖아요. 아무도 모르고, 나 자신조차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나에게 절대음감의 능력이 있을 수도 있다고 혼자 상상해요. 어릴 때, ‘나는 하얀 피가 몸에 흐르기 때문에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죽지 않을 거야’같은 공상을 했던 것처럼요. 그러니 일상이 지리멸렬하게 느껴지지 않아요.
책을 읽다 보니 명상에도 관심이 가더라고요. 마음이 힘들 때 일상에서 쉽게 명상을 할 수 있는 팁이 있을까요?
손바닥 명상이 있어요. 제가 ‘노매드힐링’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중에 있는 내용인데요. 사람들에게 테이블 위에 손바닥을 올려두고 손가락 끝 하나하나, 손바닥의 느낌을 관찰해보라고 이야기해요. 그 후 느낌이 어떤지 물으면 “차갑다, 딱딱하다” 등 다양한 대답이 나오거든요. 그때 다시 물어봐요. “그 딱딱함을 느낄 때 집안의 문제나 통장 잔고, 회사 업무에 대해 생각하셨나요?” 그럼 다들 아니라고 대답하죠. 이게 바로 명상의 핵심 포인트예요. 우리는 한꺼번에 두 가지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의 생각을 하게 되면 저절로 다른 하나의 생각은 끊어지게 되거든요. 이렇게 머리를 비우는 게 바로 명상이죠. 만약 회의를 하고 있는데 앞 사람의 이야기가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면 테이블 위에 손바닥을 올려두고 손의 느낌에 집중해보세요. 그럼 내 감정이 그 사람에게로 끌려가지 않을 거예요. 저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대하고 감정노동을 하는 분들에게 이 명상을 자주 알려드려요. 꼭 산속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야만 명상인 것은 아니거든요.
작가님에게 나이듦은 어떤 의미인가요?
우리가 나이를 ‘먹는다’고 하잖아요. 그 표현을 바꿔보면 어떨까 싶어요. 언어를 바꾸면 우리의 인식도 변하니까요. 예를 들어 태어날 때 카드를 85장 가지고 태어나는 거예요. 해가 지날 때마다 우리는 그 카드를 한 장씩 버려야 해요. 그럼 “몇 살이에요?”라고 했을 때 “53살 먹었어요”가 아니라 “53장 버렸어요”라고 해야겠죠. 결국 모든 카드를 다 버리면 내 삶은 끝나는 거예요. 그렇다면 카드 한 장을 내놓을 때마다 얼마나 아깝겠어요.(웃음) ‘먹는다’는 말에는 아까움에 대한 의미가 없잖아요. 배불러서 더 먹기 싫은 데도 꼭 먹어야 하고. 하지만 버린다는 것에는 자기 의지가 들어있어요.
나이 들수록 저절로 겸손해지겠네요.(웃음)
그렇죠. 그리고 기꺼이 한 장을 내놓는 힘을 가질 수 있기를, 옳은 판단력을 가질 수 있길 기도하고 바라게 되지 않을까요.
말년의 양식을 위한 10개의 자기 수칙 중 첫 번째로 ‘무엇을 할 것인가’ 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먼저 구상하라고 했어요. 올해 하지 않기로 생각한 것이 있나요?
마음 같아선 술을 끊고 싶은데, 왜 술 체력은 줄어들지 않을까요?(웃음) 지금으로서는 잠을 줄이는 게 제일 현실적인 것 같아요. 잠을 줄여서 아침 시간을 좀 더 유용하게 써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2014년경에 MBN의 토크쇼 프로그램 <아빠들의 청춘 블루진>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중년 남성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담은 토크쇼를 만들고 싶다는 기획의도에 반해 출연했는데, 오래 지나지 않아 방송이 막을 내렸죠. 처음의 기획은 ‘마음 속 남자들의 이야기를 다 끄집어내자’는 것이었는데, 토요일 8시 40분이라는 골든타임의 주 시청자가 중년여성들인 거예요.(웃음) 그래서 시청자 기호에 맞는 주제로 이야기가 흘러가다 보니 자연스레 프로그램 색이 없어졌어요. 저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마음이 안 좋아요. 40대 중반에서 60대 중후반을 지나는 중년 남성들도 하고 싶은 말 많거든요. 사회와 가정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관심 받아 마땅한데 자꾸 소외되는 것 같아서 속상해요. 이 책은 ‘당신들을 위한 이야기야. 이걸 읽으면 덜 외로울 거야.’라는 말을 중년 남성들에게 꼭 하고 싶어요. 어떤 독자층보다 그분들이 이 책을 몰라서 못 보는 게 더 슬플 것 같거든요.
내일 일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윤용인 저 | 위즈덤하우스
저무는 세대로 분류되는 이 시대의 희한한 어른들을 위한 공감적 사유물을 만들고 싶었다던 작가는 지나온 50년에 대한 회한보다 앞으로의 50년에 대한 기대로 설레는 하루하루를 살아가자고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