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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규 “버닝썬 사태는 포화 상태에 이르러 공론화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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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와 재명은 같이 ‘설계’를 한 적이 있다. 새벽의 가로수길에서 젊은 여성이 구타당하는 사건이 있었고, 두 사람은 가해 남성이 무혐의 판결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범인은 잘나가는 중견기업의 외아들, 피해 여성은 콜걸이었다. 그런데 이 두 사람, 민규와 재명은 변호사이고 경찰이다. 민규는 강남 중심부에 자리한 로펌의 변호사이자 ‘설계자’다. “실제 발생한 사건을 고객이 의도하는 상황과 배경에 맞춰 재구성하는 것”이 그가 하는 일. 재명은 강남경찰서 강력계 형사로, 하우스에서 도박을 하다 거액의 빚을 진다.

 

두 사람은 새로운 사건 앞에서 재회한다. 강남의 한복판, 초고층으로 지어 올린 ‘카르멘 호텔’. 아직 오픈도 하지 않은 이곳에서 열 명의 남녀가 전라 상태의 시신으로 발견된다. 확인된 신원은 금감원 원장, 유명 가수 등의 남성. 그리고 콜걸들. 의뢰인은 “여자들하고 남자 고객들”을 “꼭 개별 사건으로 처리” 해 달라고 말한다. 민규와 재명은 ‘설계’에 뛰어든다. 소설  『메이드 인 강남』의 이야기다.

 

주원규 소설가를 만난 지난 11일, 가수 정준영에 대한 보도가 쏟아졌다. 불법 촬영한 성관계 영상을 지인들에게 공유한 정황이 포착된 것. ‘버닝썬 사건’의 조사 과정에서 밝혀진 진실이었다. 해당 사건은 처음부터 경찰과의 유착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었고,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가수 최종훈의 음주운전 사건 은폐에 경찰이 개입한 정황이 발견된 것이다.

 

소설가 주원규는 “버닝썬 사태도 예전부터 축적돼 왔던 것들이 포화 상태에 이르러서 공론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의 밤은 (다른 곳보다) 더 천박하고 천민자본주의적”이며, 팩트를 조작하는 경찰과 변호사가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메이드 인 강남』을 집필하기에 앞서, 6개월 동안 강남의 호스트바에서 일하며 취재를 이어왔다.

 

2009년 『열외인종 잔혹사』 로 ‘제14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주원규 소설가는 지속적으로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내 보였다. 『반인간선언』 ,  『크리스마스 캐럴』 , 『망루』, 『나쁜 하나님』 ,  『시스템』  등 다수의 작품을 통해 사회 전반의 문제들을 짚어왔다. 정치와 경제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목회자임에도 불구하고, 종교 집단의 횡포와 부패까지 날카롭게 비판했다. 드라마 <아르곤>의 극본을 공동 집필한 바 있으며, 현재도 자신의 작품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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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의 밤, 더 천박하고 더 천민주의적이다


굉장히 흥미로운 소설이었는데요. 사실 읽는 동안 힘들었습니다(웃음). 

 

그러실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그런데 한 번은 이런 소설을 써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예전에는 사회파 리얼리즘 소설만 계속 추구했는데, 장르의 외피를 쓴 작품도 써보고 싶었어요. 최근에 제가 드라마나 영화 시나리오에도 관심을 갖고 작업을 하다 보니까 그랬던 것 같습니다.

 

드라마 대본을 쓰고 계신다고요.


네, 제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 중인 드라마가 있어요. 지금 소설 제목을 말씀드리기는 어렵고(웃음), 드라마 가제는 ‘모두의 거짓말’입니다.

 

『크리스마스 캐럴』 의 시나리오 작업도 하고 계시죠?


감독님과 공동 개발해서 시나리오 각색 작업을 마무리했고요. 투자부, 캐스팅부와 작업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개봉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요.

 

『메이드 인 강남』을 쓰기 전에 호스트바에서 일하면서 취재하셨다고요.


네, 그런데 제가 호스트로 일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더라고요(웃음). 주로 20대를 많이 찾거든요. 제가 외모가 그렇게 뛰어난 편이 못 되기도 하고(웃음). 그렇다 보니까 저는, 흔히 호스트바라고 알려져 있는, 남자 접대부가 있는 클럽에서 주류 배달원이나 캐셔 아니면 운전을 하는 일을 했습니다.

 

왜 가셨던 거예요?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책을 쓰면서 가출 청소년 아이들을 인터뷰하고 연구했었는데,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소년원 강의를 나가게 됐어요. 그곳에서 아이들이 ‘강남’이라는 구조를 자꾸 언급하더라고요. ‘거기에 가면 많이 벌 수 있다, 한 탕 할 수 있다’ 그런 말들을 하는 거죠. 아이들을 그렇게 유혹하고 있는 클럽이나 주류 산업의 구조가 뭘까,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래서 강남에 가서 취재를 시작했는데요. 하다 보니까 판이 너무 커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좋은 의미가 아니라 부정적인 의미에서요. 음성적인 산업들이 너무 발달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큰 판이었다는 말씀이시죠?


네. 그냥 상상했던, 영화나 소설에서 꾸려볼 수 있는 수준을 많이 넘어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그게 강남이라는 지역과 결탁되니까 더 버릴 수 없는 의혹으로 넘어갔던 것 같습니다. 놓칠 수 없고 표현하지 않을 수 없는 의혹이요.

 

『메이드 인 강남』과 ‘버닝썬 사건’을 함께 다루는 기사도 있더라고요. 둘 사이에 유사한 모습들이 있죠. 클럽에서 마약이 유통되고, 타락한 성문화가 넘쳐나고... 보면서도 믿기 힘든 이야기인데, 직접 보신 바로는 어땠나요?


소설에 등장하는 살인 사건이나 그것을 위장하는 ‘설계’가 조금 과잉된 면은 분명히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데 저는 경험이 다 되는 것 같았어요. 강남의 밤은, 다른 어떤 지역들의 밤과는 다르게, 더 천박하고 더 천민자본주의적이고 더 끔찍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가 경험했던 강남의 6개월은 그랬던 것 같아요.

 

민규라는 인물은 변호사이자 ‘설계자’이잖아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실제로 있을까?’ 싶어요.


강남에서 생활하면서 그곳의 주류 업계에 종사하고 계신 분들의 대화나, 흔히 ‘정보원’이라고 불리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소설에 나온 것처럼 조직적으로 설계 일을 하는 건 없을 수 있어도, 개별로 팩트를 조작한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 일에 종사하는 변호사들은 있는 것 같더라고요.

 

불법 행위를 했는데 전관예우로 무혐의나 집행유예를 받고, 그런 식이죠?


네. 아니면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 단계에서 불기소 처분이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더라고요.

 

『메이드 인 강남』의 재명도 돈을 받고 사건 조작에 가담하는 경찰이잖아요.


그렇죠. 경찰 자체에서 의지가 꺾여서 불기소 의견을 내버리면 검찰이 아무리 용을 써도 안 되는 경우가 있는 거예요. 초동 단계에서부터 그런 설계들이 조금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싶고요. 과문하지만, 사실은 버닝썬 사태 같은 것도 예전부터 축적돼 왔던 것들이 포화 상태에 이르러서 여론화, 공론화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강남의 유흥업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에게는 ‘비리 경찰과의 유착’이 놀라운 이야기가 아닐 것 같아요.


진짜 안타깝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되어 있는 것 같아요. 이것도 안타까운 이야기인데, 경찰들 안에서도 ‘어느 구역을 맡느냐’, 그러니까 ‘강남 구역으로 들어가느냐 아니냐’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는 경우도 있고요. 희망 근무 지역으로 강남이 꼽히는 것도 그런 유착과 아예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없는 것 같고, 그런 현실이 씁쓸하게 다가왔습니다.

 

소설의 첫 장면부터 강렬해요. 민규가 자위를 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후에도 성적인 요소가 등장하거든요. 그 부분을 빼놓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아요.


이 작품에서 섹슈얼리티를 다루고 싶었던 게, 여성을 대상화하는 부분을 강조하려고 했던 건 아니고요. 남성들이 힘과 권력을 추구하는 게 결국 섹슈얼리티, 섹스로 연결이 되잖아요. 그 끝이 결국에는, 주인공(민규)의 마스터베이션처럼, 성적인 질서가 무성생식화 된다고 해야 될까요. 거의 식물화 되어가는 인간의 모습으로 환원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쾌락을 집요하게 추구하는 그 끝에는 결국 모든 것들이 식물화 되고 사물화 된다는 느낌이었어요. 다 죽어있는 형체들이 부유하는 느낌으로 다가왔었습니다. 그래서 첫 장면과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을 그렇게 묘사했던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성은 도구처럼 소비되고 버려지는 게 현실이잖아요. 그런 모습이 가감 없이 담겼더라고요.


네. 그게 오늘날 성을 사고파는, 성문화와 성인식의 극단적인 면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쪽에서는 미투 운동을 통해서 성차별을 넘어설 수 있는 성숙한 담론이 일어나고 있는데, 반면에 다른 쪽에서는 밤문화라고 할 수 있는-자신을 배설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하위 문화에서는 여성을 성상품화하는 의식이 극단적으로 강화되는 느낌이에요. 그렇게 대비되는 지점을 묘사해 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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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은 밝은 빛으로 은폐되어 있는 공간


첫 문장이 “밤이 오히려 더 밝은 곳. 그렇다고 밤인 사실을 숨기려 하지 않는 곳.”이에요. 강남에 대한 묘사인데요. 강남이 어떤 곳이라고 생각되세요?


가장 엘리트인 사람들과 가장 좋은 것들이 있는 곳이고, 한국 사회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가장 추구하는 곳임과 동시에, 금권주의가 가장 수월하게 만연할 수 있는 곳인 것 같아요. 두 가지 양가적인 가치관이 대립되는 곳이 강남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적으로도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가장 실천되는 곳도 강남이고요. 반대로 클럽 문화나 주류 문화, 성접대나 성상품화, 변태 성욕이 가장 첨단으로 추구되는 곳도 강남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설에도 강남이라는 공간에 대해서 사람들이 묘사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사실 그건 강남이라는 밤문화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했던 말 중에서 가장 떠도는 것들을 제가 잡아서 표현한 겁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여긴…… 강남이니까.” 같은 말이라든지.

 

“‘강남’이란 말만 들으면 떠오르는 건 모든 게 가능하거나 모든 게 불가능하거나 둘 중 하나다.” 같은 문장들도 그렇고요.


네. 그 표현들은 제가 창작한 거라기보다는 그쪽에 계셨던 종사자 분들이 항상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었습니다.

 

강남의 이미지가 검은색으로 표현된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야경을 묘사하는 부분들도 나오고, 민규는 “검은빛”이 자신에게 스며드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말하기도 해요.


검은빛이라고 하는 것 안에 상당히 대립된 이미지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실제로 조사를 해보면 강남구의 전력 소비량, 저녁 6시 이후부터 새벽 5시까지 사용하는 전력량이 서울의 모든 구보다 월등히 많아요. 전국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쇼윈도나 야경을 비추는 모든 것들이 가공할 만큼 강렬한 하얀 빛을 쏟아내고 있는 거죠. 그런데 그 빛이 오히려 모든 걸 은폐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인간이 숨겨야 되는 모든 것들이 오히려 밝은 빛으로 은폐되어 있는 게 결론적으로 검은빛이 아닌가 생각됐어요. 음성적이어야 될 밤의 문화마저도 강남이라는, 금권이 지배하고 있는 구역 안에서는 그냥 다 편하게 용인이 되는 거죠. 그 자체가 검은빛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사회나 여론도 강남이라는 화려함에 취하다 보니까, 그들이 갖고 있는 검은빛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는 눈감아 주는 면이 있지 않나 싶어요. 강남은 성공한 사람들이 다 모여 있는 곳이라는 ‘동경과 무언의 합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강남의 고등학교 출신들이 가장 SKY에 많이 가고 또 사회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쉽게 비판할 수 있겠지만, 그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문화를 동경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되기도 하고요.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검은빛으로 묘사된 것 같습니다.

 

민규와 재명을 둘러싸고 ‘인간적, 비인간적’에 관한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등장해요. 집필하는 동안 작가님의 화두였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작품만이 아니라, 제가 글을 쓰게 되는 주제와 질문도 그것인 것 같습니다. 과연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이 무엇일까. 우리 시대에서 둘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그 기준들이 완전히 뒤바뀐 것은 아닐까. 그래서 저는 부패한 경찰인 재명이 오히려 인간적인 질문을 던지는 인물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민규라는 인물은 자기가 가장 도덕적으로 깔끔하고 덕성을 지닌 사람이라는 자기 허위와 착각에 빠져 있는 거고요. 그게 강남이 가지고 있는 ‘허울뿐인 사상누각’의 상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고 재명이 윤리적인 건 아니거든요. 강남이 제공해주는 떡고물을 버리지 못하고 끌려 다니면서도 ‘이게 과연 인간적인 걸까’ 끊임없이 질문하는 거예요. 그런 것들이 한국 사회를 거미줄처럼 지배하고 있는 질문이 아닌가 생각되더라고요. 제 자신도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고요.

 

이 소설에는 순수한 인간, 선한 인간이 없어요. 타락한 인물들만 등장하는데, 이전의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독자들이 알 수 없죠.


이 작품은 제목부터 떠올리고 쓰게 된 것 같습니다. ‘완전히 식민지화된 부유하는 공간’인 강남, 그 대상과 공간을 생각한 이후부터는 어떤 사회학적인 깨달음이 왔다고 할까요. 윤리적인 질문을 던진다든지 선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들이 거세되는 거예요. 그런 출발점이 있다 보니까 인물을 선한 인간으로 설정하는 것 자체가 어색해지더라고요. 악의적이나 의도적으로 피카레스크한 인물을 먼저 설정한 게 아니라, 제가 느꼈던 강남이라는 사회학적인 공간을 구성하고 보니 ‘그 안에서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은 선의 의지 자체가 거세되어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그렇게 구상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선함이나 윤리는 왜 거세된 걸까요? 작가님도 ‘무엇이 사람들을 이렇게 만들까’라는 질문을 품으셨을 것 같아요.


네, 그 질문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것 같아요. 왜 이렇게 됐을까. 강남이라는 곳이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는 땅이기도 하거든요. 이 사회를 주도하고 있는 오피니언 리더들이 추구하고 있는 스타일도 강남 스타일이고요. 그런데 왜 이렇게 인간다움에 대한 윤리적 질문들이 형편없이 거세됐을까, 그게 여전히 저의 연구 주제예요. 이 소설을 통해서 다 밝히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그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습니다.

 

민규가 소속된 로펌은 ‘설계’의 대가로 200억이 넘는 돈을 받잖아요. 사건 하나의 수임료가 그만큼인데, 나중에는 실감도 안 나는 금액이 쌓이겠죠. 왜 계속 돈을 모으는 데에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걸까요?

 

돈의 논리라는 것은 탐욕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인간 존재의 가치를 완전히 교환해 버린 상태라는 느낌도 들고요. 200여억원이라고 쓴 건, 오히려 낮게 부른 액수였어요. 실제로 제가 들은 성공 보수의 사례는 기본이 거의 500억 단위가 넘어갔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장 자체가 너무 크구나’ 하고 정말 깜짝 놀랐었습니다. 변호사들이 나름의 사건을 조작해서 성공했을 때 받게 되는 수임료라는 건 제가 생각하고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 같았어요. 그런 것들 때문에 강남이라는 지형학적이고 사회적인 구조가 그렇게 거세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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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질문합니다


작품을 통해서 사회의 어두운 면을 계속 이야기해오셨어요. 용산 참사 문제라든지(『망루』), 종교계의 문제들(『나쁜 하나님』 ,  『반인간선언』 )을 날카롭게 비판하셨죠. 이번 소설에는 성범죄, 살인까지 나오고요(웃음).목사로서의 자아와 소설가로서의 자아가 서로 충돌하지는 않나요?


이 질문을 많이 받는데, 충돌되는 건 거의 없고요. 이야기를 쓰는 사람과 목회하는 사람, 그게 꼭 섞여야 된다는 생각이 처음부터 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목사가 소설을 쓴다고 하면 계몽적인 작품들을 많이 기대하시는데, 오히려 목사는 사회의 가장 어두운 면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더 정확하게, 윤리적이거나 종교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작품이 더 어두워지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고요(웃음). 위장과 가식은 오히려 종교의 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있는 그대로, 과장하지 않고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계, 특히 한국의 기독교와 교회의 문제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건 일종의 내부자 고발이기도 하잖아요. 쉽지 않은 일일 것 같은데요. 종교계의 비난이나 반발은 없었나요?


욕을 많이 먹죠(웃음). 저도 정식 교단에 소속된 목사이다 보니까, 일종의 홍보라는 측면에서는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해서 안타까운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그런데 저는 한국 기독교가 우리 사회의 문화, 경제, 사회를 좋지 않은 방향으로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악영향이나 문화를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러지 못하면 한국 사회가 조금 더 바른 방향 인간다움을 회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에 치명적인 해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웃에 사랑을 나눠야 될 종교가 사람들을 황폐하게 만드는 종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고발의 형식을 띈 작품들은 계속 나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교회나 기독교라는 종교 집단은 지금 너무나 기형적으로 비대해졌어요. 그에 비례해서 인간다움이나 인간성에 대한 것들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성 상실을 찬양하고 있는 집단화가 되지 않을까 우려되고요. 그런 일은 꼭 막아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성 상실은 찬양한다는 건, 사회적 성공이나 부를 추구해야 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는 의미인가요?

 

네, 맞습니다.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정당화시키는 것 같아요. 어떻게든 상위 0.1%의 자리에 올라서야 가난한 사람들이나 안타까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 힘이 있어야 도울 수 있다는 논리가 기독교 안에 더 팽배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한 대담에서 영화 <밀양>과 관련해서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요. 신의 이름으로 인간이 용서를 하고 죄를 사해주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이었죠. 그런 목적으로 교회에 모이고 자신들의 카르텔을 형성하는 사람들이 있는 게 현실이고요.


그렇습니다. 카르텔을 이야기하셨는데, 강남이라는 사회 구조도 교회라는 사회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그리고 면죄부를 남발하는 경향이 있죠. 신의 이름으로 당신이 용서 받았다, 이렇게 비윤리적인 짓을 해도 나중에 신이 다 용서해주실 거다, 라는 거예요. 신이라는 개념이 하나의 보험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언급하셨듯이, 규모도 힘도 거대해진 교회들이 있잖아요. 그런 교회를 상대로 내부고발을 하다 보면 좌절감도 느낄 것 같아요.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거죠. 


그래서 자괴감이 많이 들죠(웃음). 그런데 계몽주의적인 생각을 가지지 않으면 마음이 조금 편하더라고요. ‘내가 이렇게 외치면 저들이 변할 거야’라는 기대를 버리고, 우리 각자가 갖고 있는 삶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자기 성찰이나 생각이나 폭로의 메시지들을 같이 가져가자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것이 변화냐 변화가 아니냐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우리 자리에서 서서히 한 사람씩 자기 주체성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소설 쓰기나 문화 공유 같은 나눔이 자기 주체성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즐기는 마음으로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게 잘 되지 않는 건 현실적인 한계이고요(웃음).

 

‘목회자의 일’과 ‘소설가의 일’이 서로 상반되는 건 아니군요.


네, 조금 뒤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소설을 쓰는 일도 ‘내가 가지고 있고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어두운 환부’에 대해서 함께 대면하고 의논해 보자는 취지니까요. 그런 맥락이라면 목회와 소설, 소설과 목회가 뒤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것이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는 절대로 없을 것 같고요.

 

관심사가 굉장히 다양하신 것 같아요. 건축 평론을 하신 적도 있고, 각 소설의 주제와 분위기도 다 달라요. 동화책, 청소년 소설, 청소년 인터뷰집도 내셨고요.


아무래도 기질의 영향이 있나 봐요. 저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되게 높은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다양한 환경과 문화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에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은 호기심이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연령대, 다른 환경, 다른 사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 환경과 부딪히면서 자기를 찾아가고 있는지 궁금하고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서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될까’ 질문합니다. 그 질문을 여전히 갖고 있기 때문에 다양하게 호기심을 갖고 찾아다니게 되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많은 분들에게 혼나기도 했어요. 하나만 해야지, 여러 가지를 하면 완성도가 떨어진다고요(웃음). 그런데 저는 제가 갖고 있는 호기심과 기질, 제가 좋아하는 방식을 존중하니까 앞으로도 다양한 것에 관심을 가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말에서, 이 작품 역시 ‘메이드 인 강남’임을 밝혀야 할 것 같다고 쓰셨어요. “그래야만 오히려 새로운 세상을 꿈꿀 수 있”다고요.


저는 파국의 실제를 그리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어요. 제가 본 사회학적인 강남이 대한민국 사회가 잘못 가고 있는 부분의 한 단면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파국의 실제를 똑바로 대면할 때, 다시 새로운 세상 사람다운 세상을 꿈꿀 수 있는 첫 단추를 열게 되지 않을까 싶었고요. 이 소설은 강남이라는 지역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강남이라는 상징으로 표현되는, 우리가 억눌려있고 지배당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고요. 종말이라고 하는 그것으로부터 끝을 고하는 행위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행위들도 또 상업주의의 논리 안으로 함몰된다는 거예요. 그게 아이러니하고 슬플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대면하는 작업들은 여러 매체를 통해서 계속 나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공멸의 길을 걷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도 쓰셨죠. 이 소설에 담긴 것이 ‘예외적인 사람들, 극소수의 경우, 일부의 지역’에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맞습니다. 예외적인 경우라고 보기는 조금 어렵다고 봐요. 보편적인 경우이고요. 돈이나 권력을 많이 소유했느냐 적게 소유했느냐의 차이지, 그 높낮이의 카르텔 자체는 보편적으로 응축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게 결코 심한 이야기나 과장된 이야기라고 보지 않고요. 오히려 현실이 제가 쓴 소설보다 더 잔인하고 대면하기 어렵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그동안 느꼈던 지점들에 대한 충격이 1/10도 표현이 안 된 거거든요. 그런 부분은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되는 지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민규라는 변호사는 평범한 엘리트 중의 한 명이었을지 모르죠. 재명도 평범한 형사 중 하나였을 수 있고요. 이들과 똑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나는 저런 선택은 안 해’라고 확언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해요.


그렇죠. 통장에 바로 30억이 들어오고, 성공보수가 200억이 넘는 현실 앞에서 과연 우리가 인간다움을 이야기할 수 있는 소재가 생길까요. 그런 딜레마들을 항상 자각하는 게 우리한테 필요한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이 프랑스어로 번역, 출간될 계획이라고 들었어요.


네, 추진 중입니다.

 

『메이드 인 강남』과 관련해서 또 준비하고 계신 일이 있나요?


이 작품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영상화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텍스트로 읽고 싶은 마음과 영상으로 대면하고 싶은 마음이 다 있었던 것 같습니다. 소설이 줄 수 있는 충분한 재미, 느낌, 감동과 그것에 반하거나 넘어서는 영상이 주는 재미, 힘도 같이 경험해 보고 싶습니다. 지금 시나리오 완고는 제가 쓰고 있고요. 이후에 리뷰를 받아서 작업을 진행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메이드 인 강남주원규 저 | 네오픽션
우리 사회의 모든 자본과 욕망이 몰리는 강남을 배경으로, 헤어날 수 없는 욕망의 덫에 빠져 좀비처럼 도시를 떠도는 사람들을 통해 ‘대한민국의 오늘’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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