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바이브는 비브라폰 연주자다. 비브라폰은 실로폰을 닮은 악기인데 피아노처럼 페달이 있어 음을 길게 늘일 수 있고 무엇보다 영롱한 소리를 낸다. 그는 이 영롱함 속에 삶의 쓸쓸함이 있다고 말한다. 밝음과 어두움의 공존. 즉, 삶의 모습을 닮았다.
비브라폰계의 대모란 이름처럼 호기롭게 세상에 나온 정규 1집 <마더바이브>에는 2013년부터 작업한 결과물들이 모여 있다. 딸 아인이를 향한 노래부터, 외로움, 슬픔, 육아의 고충들이 고루 담긴 앨범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또 동시에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의 이름으로 처음 발매된 음반으로 제16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신인 후보에 올랐다. 솔직하고 진솔했던 그와의 만남을 공개한다.
비브라폰에 대한 국내 관심이 그리 크지 않다. 비브라폰이 중심이 된 음반을 만들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음악 하는 게 재미있다. 그래서 시작했다. 정확하게 '앨범을 만들자!' 이렇게 결심한 것은 아니었지만 2013년 즈음해서 하나 둘씩 곡을 녹음했다. 트랙마다 도와준 연주자들이 다 다른데 그 때문이다.
음반을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는 건가?
기획을 잡고 준비한 게 아니어서 곡마다 결이 다 달랐다. 주체성이 없는 것 같고, 나만의 이야기가 없는 것 같아서 그냥 발표를 안 하려고 했다. 그러던 와중, 음악가 정원영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보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금까지 만든 걸 잘 묶어야지, 다음 것도 잘 올 수 있다'고 말이다. 그 말에 자신감을 얻었다.
비브라폰을 전공한 것인가?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 클래식 타악기로 방향을 바꿨고, 대학을 다니면서 비브라폰을 처음 접했다. 대학원 졸업 후 버클리 음대에 다시 들어가 악기를 정식으로 배웠고. 어쩌다 보니 대학을 두 번 다니게 됐다... (웃음)
학창 시절에 클래식 타악기로 전공을 바꾼 건 어떤 이유 때문인가?
대학에 가려고 했다. 그 당시에는 뭐가 좋은지 잘 몰랐다. 음악을 그 자체로 즐기지 못한 거다. 그러다가 미국으로 대학원을 가게 됐고 키스 자렛 카피 공연을 하고, 학교 주변에 자유롭게 퍼져 있는 버스킹을 보면서 듣는 음악으로써 클래식을 좋아하는 것 말고, 내가 직접 하고 싶은 건 무엇일까, 내가 평생 곁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게 바로 비브라폰이었다.
태초의 자립적 음악 선택이라는 말로 들린다. 그런데 비슷한 악기로 마림바도 있지 않은가?
마림바가 한없이 맑게 느껴진다면 비브라폰은 영롱한데 쓸쓸하다. 인간 자체를 닮은 거다. 그리고 또 나는 비브라폰이 중간을 담당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음악에 비브라폰이 들어가면 천국과 우주 그 어딘가의 몽롱한 세계가 그려진다. 악기 자체가 중간 음역대를 담고 있기도 하고.
인간을 닮은 악기란 표현이 참 좋다.
우리 마음이 결코 하나가 아니 듯, 이중적인 면을 지녔다. 아까 말했던 마림바는 공포 영화 사운드 트랙으로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반면, 비브라폰은 배경음으로 자주 들려오지 않는가. 공포와 대조되는 콘트라스트 덕택이기도 하고... 사실 삶은 누구에게나 순탄하지 못하다. 내가 비브라폰을 정식으로 손에 쥐게 되었을 때, 내 순탄치 못한 삶에 가장 큰 위로를 주는 악기는 바로 비브라폰이었다. 비브라폰은 인간과 닮아있고, 나 스스로에게는 가장 큰 재미를 준다. 물론 그걸 음악적으로 옮기는 것은 어렵지만, 나에게 이 악기는 매력적이고 편한 친구다.
그럼 음악적 측면에서 봤을 때 인간 이희경(마더바이브 본명)은 어떤 사람일까?
뭐가 굉장히 많다. 생각이 많고, 고민도 많고. 많은 것들이 들어 있다. 그래서 요즘은 내려놓으려 한다. 음악적인 중심은 결국 다 아래쪽에서 나오는 건데, 생각이 위로 뻗어나가면 이를 결코 음악적으로 컨트롤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정리하고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전까지 계속 앞으로 갔었다면 이제는 중심을 더 무겁게 다듬어야 오랫동안 음악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떨쳐버릴 것을 떨쳐내니 이렇게 좋은 것을, 10대 때는 학습과 경쟁만 했으니... 이제는 더 내면을, 중심을 살피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곡을 쓰게 된 것인가?
작곡은 어렸을 때부터 했다.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린 시절 피아노 앞에서 앉아서 무턱대고 곡을 썼다. 재밌고 즐겁게!
이번 정규 1집 <마더바이브>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제일 먼저 만든 곡이 무엇인가.
예전부터 작업한 트랙들을 중심으로 묶어낸 것이기 때문에 녹음하고 앨범에 안 들어간 곡도 많다. 아마 '아인랜드'를 가장 먼저 만들지 않았나 싶다. 최근에 작곡한 건 '여우비가'였다. 개인적으로 가장 대중적인 곡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만큼 반응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웃음)
대중성이 무엇일까? 요즘 시대에는 특히 그 대중감을 포착하는 게 어려운 것 같다.
대답 없는 메아리를 할 수는 없으니까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만한 감성을 전달해야 한다. 그런데 '여우비가'처럼 나는 곡이 쉽다고 생각해도 어렵게 느끼는 분들이 분명 있다. 대중 감성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음악이 워낙 다양해졌으니 무엇을 들어야 할지 모르실 수도 있고. 고착화되지 않고 내 개성과 대중의 감성을 잘 조율하려 한다.
'여우비가'를 들어보면 멜로디도 아름답고 맑은 색의 비브라폰 매력이 십분 담겨있다. 그런데 또 마냥 밝지만은 않다.
맞다. 제목 자체는 설화 중에 <여우가 시집가던 날>에서 따왔다. 여우를 사랑하던 구름이 흘린 눈물이 비로 내린다 뭐 그런 내용이다. 현대 미술관을 지나가는 길에 비가 내렸다. 전시물들 사이로 비가 내리는 게 아름답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근데 또 조금 있다가는 해가 쨍하게 비추더라. 그때 감정을 담은 곡이다.
반면, 'Paquito'는 무척 활기차다.
색소포니스트 파키토 드리베라의 광팬이다. 그분이 가진 특유의 엄청 밝은 에너지가 있는데 말하자면 신나고 유쾌하다. 그 영향을 받아서 썼다. 한 마디로 파키토 드리베라 트리뷰트 송이다.
일반 청중은 잘 알지 못할 개인적인 일화와 감정이 많이 담긴 음반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다. 워낙 긴 시간동안의 작업물이 담기기도 했고 모든 음악이 그렇겠지만 사실 한 곡 한 곡 다 의미가 있다. '불꽃놀이'는 원래 'Alone at last'란 제목으로 인간은 혼자다, 혼자 있는 시간에 관한 노래였고, 'Every time you call my name'에는 육아의 고충이 표현돼 있다. (웃음)
이 앨범이 어떻게 남길 바라는가?
현재의 내 생각들과는 조금 다른 곡들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사랑과 위로의 곡들이 많다. 내가 이렇게 표현 하겠다 정하고 만들어나가지는 않았지만 이런 감정을 가지길 바란다는 마음으로 편곡했다. '히피의 아침', 'sLow&Low'는 느리고 평안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 이 음반으로 어떤 식으로든 위로를 받는다면 그게 정답이다. 내가 원한 전부이기도 하고.
다음 앨범을 구상 중인지 궁금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을 쓸 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길 때까지 기다렸다가 글감이 쌓이면 수도꼭지 틀듯이 적는다고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음반을 낸다는 건 결국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아무 말이나 할 수는 없으니, 허튼 소리 할 수는 없으니, 에너지와 상상들을 잘 모아두고 있다.
마지막 질문이다. 긴 시간을 돌아 앨범을 발매했다. 마더바이브로 말고 이희경으로서 행복한가?
음반을 냈다는 것은 내가 한 계단 올라섰다는 의미이다. 내 이야기, 내 관심, 내 감정들이 잘 녹아 있는 앨범이라 개인적으로 자서전 같기도 하고 만족스럽다. 늘 곁에서 공감해 주시는 분들이 있어 매듭지을 수 있었다. 세상에 대한 내 목소리를 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도 얻었다. 이 정도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모든 준비를 마친 게 아닐까? 행복하다.
인터뷰 : 김도헌, 박수진, 임진모, 임동엽
사진 : 김도헌
정리 : 박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