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수미는 고향을 노래한다. 파도처럼 철썩이는 얼트 록의 성난 소음을 재료로 해변가에 아련한 모래성을 쌓아 올리는 이들의 음악은 2018년 한국 대중음악에 선명한 자국을 남겼다. 짙은 노스탤지어의 마법은 해외 마니아들의 높은 지지와 더불어 '로켓맨' 엘튼 존의 귀까지 사로잡았다. 광안리의 너른 해변, 남포동의 작은 찻집, 부산대 앞의 에너지를 공통의 향수(鄕愁)로 엮어내는 세이수미. 공연을 위해 상경한 최수미, 하재영(베이스), 김창원(드럼), 김병규(기타)를 2월 18일 홍대 공중캠프에서 만났다. 아, 인터뷰는 부산 사투리로 진행됐다.
좌측부터 최수미(보컬/기타), 하재영, 김병규(기타)
2월 17일과 2월 18일, 이틀 연속으로 서울에서 공연을 가졌다.
수미 : 어제(2월 17일) 문화역서울 284에서의 공연은 일본 밴드 카네코 아야노와 함께하는 한일 문화교류의 장이었다. 문화역서울은 처음 가봤는데 건물도 멋졌고 관중도 많아서 재미가 있었다. 오늘(2월 18일)은 홍대 공중캠프에서의 정기 공연 '공중파'의 일곱 번째 공연에 초대를 받았다. 올라오는 김에 날짜를 어제오늘 맞춰서 하게 됐다.
내일 다시 부산으로 가는 건가.
수미 : 오늘 늦은 차를 타고 다시 부산으로 간다. 서울은 공연 있을 때만 올라온다.
향후 일본과 대만은 물론, 영국과 아일랜드를 포함하는 유럽 투어가 예정되어 있다. 각 국에서의 현지 반응은 어떤지.
수미 : 나라마다 굉장히 다르다. 영국은 세 번 갔고 이번이 네 번째인데, 아무래도 저희가 영국 레이블 댐나블리(Damnably)로 출발했기에 반응도 제일 좋고 단골 관객들도 있다. 일본 같은 경우는 지난 1월 두 번째로 공연을 갔는데 더 반응이 있었다. 그 호응이 있기에 4월 단독 공연도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해외에서 공연하는 기분은 남다를 것 같은데.
재영 : 처음 서울에 공연을 하러 올라왔을 때도 어색했었다. 대도시에서 다 불러주시고 싶었는데… 해외까지 가게 되니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어색한 부분도 있다.
수미 : 즐겁고 재미있다. 많은 관객들과 만나는 것이 좋다.
좌측부터 김창원(드럼), 최수미(보컬/기타), 하재영, 김병규(기타)
세이수미는 부산 광안리 바닷가에서 출발했다. 결성 과정을 간략히 소개해준다면.
수미 : 재영과 병규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고 중학교 때부터 같이 음악을 시작했다. 오랫동안 여러 밴드를 거쳐서 활동해왔는데, 새로운 무언가를 하고 싶어서… 맞나?
재영 : 약간 기분 전환 같은 밴드를 시작하고 싶어서 시작하게 됐다. 병규와는 어렸을 때부터 친했지만 세이수미에 합류하게 된 건 나중의 일이었다.
수미 : 나는 원래 밴드 멤버들과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다. 병규가 하고 있던 밴드 '우주농담'의 공연도 자주 가고, 어울려 놀던 사이였는데 어느 날 나에게 보컬을 해보라고 했다. 나도 음악 좋아하고, 기타 치는 것도 좋아했는데… 밴드 멤버들이 날 키워줬다(웃음) 원래 세이수미에서 베이스를 치던 분은 밴드 '사이코 로켓'에서 드럼을 쳤는데 세이수미에 들어오고 싶어서 베이스를 잡은 케이스였다. 그분이 나가고 재영이 들어왔다. 재영이 합류하고 나서부터 곡도 쓰기 시작했다.
재영 : 다른 밴드 카피하면서 시작하고, 이때쯤 맞물려서 곡을 만들고 앨범 작업을 시작했다.
주로 어떤 밴드를 커버했나.
수미 : 덴마크의 밴드 레비오네츠(The Raveonettes) 커버를 많이 했다. 다른 밴드는 거의 안 했다.
광안리 해변가에는 바다를 바라보며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라이브 펍이 많다. 밴드 결성 초기 라이브 하는 모습이 일견 상상이 되는데.
수미 : 광안리에서도 많이 했지만 처음에는 주로 부산대 앞 클럽에서 활동을 많이 했다.
<Where We Were Together>는 이즘 '2018 올해의 가요 앨범'에 선정됐다. 많은 이들이 이 앨범을 두고 공통적인 정서를 '쓸쓸함'이라 언급한다. 그 쓸쓸함의 근원이 어디 있다고 보나.
재영 : 복합적이다. 그리움이라는 게 꼭 하나 지정해서 그립다기보단 과거가 그리울 수도 있고, 익숙했던 것들이 하나하나 떠난다거나, 변한다거나… 작업 과정에서 이래저래 그런 쓸쓸한 정서가 커져 있던 상황이었다.
광안대교를 타고 가다 보면 앨범 커버에 등장하는 쓸쓸한 아파트 단지를 볼 수 있다. 앨범 아트도 이런 그리움의 정서가 담겨있는 것인지.
수미 :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찍은 사진은 아니고 직접 돌아다니면서 찍었던 사진이다. 커버를 만들려 다양한 사진을 찍었는데, 저희가 다니는 데가 그 근처다 보니 정규 1집과 같은 곳에서 새 앨범 아트를 만들게 됐다.
좌측부터 김창원(드럼), 최수미(보컬/기타), 하재영
많은 이들에게 바다는 낭만, 여유, 경쾌함의 이미지로 기억된다. 그와 반대로 앨범은 쓸쓸하고 외로운, 노스탤지어적인 경향이 있다. '바다'보다는 '부산'이라는 도시의 특징이 상당히 많이 묻어나는 앨범이라 본다.
수미 : 우리는 항상 바다를 늘 보고 지내기에 그렇게 특별한 느낌이 들진 않는다. 일상과 굉장히 맞닿아 있지. 매일 날씨가 맑을 수 없으니 성난 파도 등 바다의 여러 모습을 보다 보니 그런 모습이 나오는 것도 있다. 거기다 앨범 작업 과정에서 겪었던 일들이 겹쳐지며 복합적이고 자연스럽게 그런 정서가 나온 게 아닐까. 그렇다고 우리 노래가 마냥 어두운 건 아니지 않나.
드럼을 치던 멤버 세민이 사고를 당한 것도 그 '과정의 일' 중 하나인가.
수미 : 당시엔 그 일이 굉장한 충격이었고 지배적인 사건이었다. 아무래도 그때 감정이 많이 들어갔다.
앞서 말한 대로 'B Lover'나 'Funny and cute' 같은 곡은 발랄하다. 일부러 밝은 이미지를 주고자 했는지.
수미 : 'B lover'는 꽤 오래된 곡이다. 내가 알기로 병규가 다른 로큰롤 밴드에게 주고 싶어서 만든 노래로 안다. 그런 뼈대에 가사를 붙일 땐 우리에게 일어난 사건,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을 넣었다. 믹스 앤 매치(Mix & Match)인데, 개인적으로 그런 걸 좋아한다. 'Funny and cute'도 예전에 만든 거 아닌가?
재영 : 한참 전이지. 편곡을 나중에 한 거지.
수미 : 편곡에서 일부러 밝게 한 건가?
재영 : 원래 곡이 좀 더 경쾌했지.
수미 : 편곡을 더 조용하게 했다.
부산은 지속적인 경제 침체를 겪고 있다. 나의 유년기 때도 부산의 기억은 '사람들이 떠나간다' '도시가 정체되고 있다' 등 침체되는 소식이 유독 많았다. 세이수미는 부산을 어떻게 바라보나.
수미 : 늘 애틋한 곳이다. 지금은 살고 있으니 어떤 특별한 감정을 갖기 어려운데, 떠나와서 보니 애틋하고, 좀 더 발전 가능성도 있는 것 같은데 갈수록 수도권과의 격차도 벌어지는 것 같고…
재영 : 부산에 있을 땐 특별한 감정을 갖기 어렵다. 투어를 돌고 해외를 나가게 되면 부산에 있을 때 우리가 제일 안정감을 느낀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런 걸 보면 역시 고향이다. 마냥 좋았던 일만 있던 건 아니지만, 좋았던 일은 대부분 부산에서 일어났다. 제일 좋았던 일도, 제일 안 좋았던 일도 부산에서 있었으니까.
1집과 비교해서 2집이 더 큰 변화가 생겼다. 퍼즈 톤도 더 많이 들어갔고, 긴 러닝 타임의 곡도 수록됐으며 수미의 창법에도 변화가 생겼다.
수미 : 발전해야 한다. 발전하기 위해 더 나은 방법을 계속 찾아가는 과정이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도 내 보컬의 정체성을 찾지 못했다고 본다. 내 것을 추구하는 과정이다. 자체 녹음을 했던 1집에 비해 아는 것도 많아져서 그런 것들을 적용하고 싶기도 했다.
앨범 이후 공개한 싱글 'Just joking around'는 그런 음악적 변화를 상징하는 곡이다. 6분에 달하는 러닝 타임에 다양한 템포 변화와 변주를 삽입했는데, 왜 정규작에는 들어가지 못했나.
수미 : 'Just joking around'는 정규 앨범 녹음을 시작할 때쯤 완성된 노래다. 앨범을 만들 때 당연히 음반 콘셉트를 생각하지 않나.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봤고, 전체적인 완성도에서 앨범과 맞지 않았다고 봤다. 이걸 넣는다고 해서 우리 음반 내에서 연결고리가 없진 않지만… 완성되지도 않았고.
창원 : 같이 녹음한 거 아니었어?
수미 : 아 맞다. 녹음 같이 했어요. (웃음) 이래서 혼자 말하면 안 된다니까. 아무튼 앨범 러닝타임이나 다른 기타 요소들을 고려했을 때 싱글 공개하는 것이 좋다고 봤다.
'B lover'가 B면으로 들어간 이유는?
수미 : 7인치 싱글로 발매하는데 한 곡만 넣긴 좀 그렇고... 처음에는 'Old town'을 넣어볼까 했는데, 'Just jocking around'와 어울리는 건 'B lover'라 생각했다.
세이수미의 음악은 노이즈와 퍼즈 톤을 굉장히 많이 사용한다. 매체에서는 서프 록이라 칭하지만, 페이브먼트(Pavement), 다이노서 주니어(Dinosaur Jr.) 같은 1990년대 얼터너티브의 향수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수미 : 몇 곡을 빼면 서프 록으로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서프 록의 여러 요소들이 조금조금씩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부산이라는 이미지와 합쳐져서 고착화된 감이 있다.
김병규(기타)
일렉트릭 뮤즈의 김민규 대표는 <GQ 매거진>에 세이수미를 소개하며 '해외 시장이 놓치고 있는 인디 록, 인디 팝의 정수를 담고 있다'는 평을 남겼다.
수미 : (놀람) 사장님이요?
재영 : 사장님이 그렇다면 그런 줄 알고…(웃음)
실제로 지난해는 세이수미와 더불어 혁오, 아도이 등 여러 한국 밴드들이 독특한 로컬라이징으로 국제무대에서 주목을 받은 해였다.
재영 : 딱히 그런 건 생각 안 하고 열심히 우리의 것을 하다 보니 여러 가지가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운때도 잘 맞았고.
수미 : 정말 좋은 밴드들이 많은데 저희는 운이 좋았다. 몇 번 인터뷰에서 언급했는데, '향수를 자극하는 음악'이라는 설명을 느낄 때가 있다. 영국에서 공연을 할 때 나이 드신 분들, 예전에 음악을 정말 좋아하셨을 분들이 공연장을 많이 찾아온다.
2018년 엘튼 존이 애플 비츠원(Beats 1) 팟캐스트로 세이수미를 언급한 건 유명한데.
수미 : 전체 55분 중 잠깐 나온다. 'Old town'이 좋았나 보더라. 끌리는 점이 있었나 보다.
'운'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운도 항상 준비를 하고 있어야 올라탈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수미 : 우리가 은근히 근면 성실하다. 작년에 처음으로 우리 모두가 전업 뮤지션의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다른 일 안 하고 음악에만 집중한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 같다.
<Christmas, It's Not a Biggie> EP가 2018년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차기작 준비를 하고 있나.
수미 : 아직 계획은 없다. 정말 좀 쉬어야 할 것 같다. 이제 슬슬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떤 방식으로 낼지를 생각하진 않았다.
밴드 멤버들에게 세이수미가 갖는 의미를 말해준다면.
창원 : 편안함과 일상. 근처에 항상 가까이 있고, 때로는 뜨겁게 느껴지기도 하고…
수미 : 내 방 같은 공간, 제일 편한 곳. 같이 있어도 불편할 것도 없고. 뭐든지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다.
재영 : 직장이다. 월급은 안 나오는 자영업.
병규 : 동업자.
마지막으로 이즘 공식 질문이다. 세이수미 멤버들의 인생 음반은.
수미 : 페이브먼트의 <Slanted Enchanted>.
병규 : 욜 라 탱고(Yo La Tango) <And Then Nothing Turned Itself Inside ? Out>.
재영 : 블러… 그냥 블러 하겠다. <Blur>.
창원 :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의 데뷔작 <Rage Against The Machine>.
인터뷰 : 김도헌, 박수진, 임동엽
사진 : 임동엽
정리 : 김도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