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다 미리가 『월간 채널예스』 독자들에게 보낸 ‘잘될 거야’ 메시지 카드
1969년생 만화가 마스다 미리. 그를 소개할 때마다 따라붙는 타이틀은 ‘일본 여성 독자들의 정신적 지주’. 요즘은 잘 쓰지 않는 말이지만 어쩐지 마스다 미리의 작품을 떠올리면 곧장 수긍하고 싶어진다. 『걱정 마, 잘될 거야』를 읽으면서도 같은 마음이었다. 만화 속 주인공은 세 명의 마리코. 언제까지 신입사원처럼 일할 수 없다고 조바심 내는 2년차 마리코, 직장 내 남성 문화를 보고도 박자를 맞춰주는 자신을 진절머리내는 12년차 마리코, 자신의 입지가 경력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 괴로워하는 20년차 마리코. 어쩌면 나의 현실, 주변의 이야기를 눈으로 읽는 느낌이었다.
마스다 미리는 만화가로 데뷔하기 전 일반 직장에서 근무했다. 여러 작품에 여성 직장인들의 현실적인 이야기가 줄곧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4세, 34세, 42세 같은 이름을 가진 세 명의 마리코는 매일같이 자신의 삶을 고민하면서도 조금씩 앞을 향해 나간다. 지나치게 자족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곁을 살피면서 서서히 자기 생각을 꺼내 놓는다.
『걱정 마, 잘될 거야』 를 읽고 나서 나에게 말했다. “걱정 마, 잘될 거야.” 그리고 동료에게도 같은 말을 전했다. 좋은 책은 나의 ‘곁’을 살피게 한다. 마스다 미리는 언제나 ‘곁’을 생각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걱정 마, 잘될 거야』의 첫 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열심히 일하면 보상 받을 수 있을까요? 일한다는 건 대체 뭘까요. 마리코들은 생각합니다.”
(C) 마스다 미리(Miri Masuda)
도움이 되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
안녕하세요. 마스다 미리 작가님을 인터뷰하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일본으로 날라가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이메일 인터뷰도 큰 기쁨입니다.
감사합니다. 한국 독자들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월간 채널예스』라는 좋은 잡지에서 저를 커버 스토리로 다뤄 주신다니 무척 감사하고 영광입니다.
드디어 봄입니다. 요즘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시나요?
밤에 원고를 쓰기 때문에 오전엔 잠을 잡니다. 낮에는 협의 미팅이 없으면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합니다. 친구와 케이크를 먹으러 가기도 하고요. 일본에서는 겨울부터 봄에 걸쳐 호텔에서 개최하는 ‘딸기 뷔페’가 굉장히 인기입니다. 신선하고 맛있는 딸기 디저트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답니다. 봄에 일본 여행을 한다면, 추천합니다.
딸기 디저트는 일본에서도 큰 인기로군요. 저도 딸기를 무척 좋아한답니다. (웃음) 주말은 어떻게 보내세요?
짧은 여행에 나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열차를 타고 느긋하게. 해외여행도 하고요. 요즘엔 매년 핀란드로 나 홀로 여행을 합니다. 여행을 떠나면, 인생이 한 번뿐임을 절실히 느낍니다. 작년, 핀란드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밖에서부터 석양이 쏟아져 들어와 가게 안이 오렌지색으로 빛나며 정말로 아름다웠습니다. 가게 안 모든 사람이 한 장의 그림처럼 행복해 보였습니다. 이토록 아름답지만 여기 있는 우리들에겐 수명이 있다. 언젠간 죽으리란 것을 알기 때문에 지금 이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한국에 마스다 미리의 작품으로 일본어를 공부하는 모임이 있습니다. ‘마스다 미리 덕후’라고 불릴 정도로 한국 독자들이 작가님에게 각별한 애정을 품고 있다는 걸 아시는지요?
몰랐어요. 굉장히 기쁘네요. 행복합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 한국에서 열린 이벤트에서 한 독자가 일본어 원서에 사인을 해달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원서를 소장하고 있는 독자들을 보고 놀랐습니다.
이번에 한국에서 출간된 『걱정 마, 잘될 거야』를 보면, ‘열심히 힘들게 산에 올랐는데’ 눈앞에 펼쳐진 것은 ‘밋밋한 평지’였다는 대사가 있어요. 성실함의 결론이 나온 셈일까요? 이 작품의 출발점이 궁금해요.
『걱정 마, 잘될 거야』는 회사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세대별로 묘사한 만화예요. 20대, 30대, 40대, 각각의 입장에서 세계가 어떻게 보이는지, 많은 여성을 취재하며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느꼈던 점은, 모두 즐겁게 살고 싶다 따위를 생각하는 게 아니구나, 열심히 일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고 생각하는구나, 였습니다. 그런 그녀들의 강인한 생각을 이야기하고 싶었지요. 꼭 읽어주었으면 합니다.
작가님의 대표작인 ‘수짱 시리즈’가 완결된 것인지, 아닌지 궁금하던 중에, 작년부터 연재를 시작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38살의 수짱을 만나게 되는 걸까요? 새로운 수짱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최신작에서 수짱은 40세입니다. 항상 저는 잡지 등에 연재하지 않고 새로 원고를 썼는데요. 이번에는 겐토샤(幻冬舍)의 문예지 『쇼세쓰겐토(小說幻冬)』에 지금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작년은 나 자신이 40대인 마지막 해였기 때문에 “그래, 써보는 거야!”라며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5권 구상은 줄곧 생각하고 있었지요. 먹는 것, 사는 것에 관해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3년 전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좀더 좀더, 맛있는 음식을 드시게 했었더라면” 돌이켜 생각하곤 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나니까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수짱은 내가 아닌 가공의 인물이지만 길을 걷다가도 수짱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할까? 를 생각하곤 합니다. 5권은 올해 안에 완성할 예정입니다.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빨리 선보이고 싶습니다.
수짱은 성실하고 부지런한 캐릭터인 것 같습니다. 이런 인물형에 대한 호감이 있으시나요?
저는 수짱을 “강인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짱은 울기도 하고, 갈팡질팡하기도 하고, 화내기도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강함을 믿습니다. 수짱에게서 가장 좋아하는 점입니다.
‘수짱 시리즈’도 그렇고, 『걱정 마, 잘될 거야』에도 ‘어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진짜 어른은 어떤 사람인가요?
해서는 안 될 말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제가 생각하는 어른은 그런 사람입니다.
작가님께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요?
가족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늘어나는 일도 있습니다만 슬픈 이별도 있습니다. 추억 또한 가족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답할 수 있는가
저는 작가님의 그림체도 좋지만, 글을 더 좋아합니다. 간결하지만, 해야 할 말이 다 들어 있죠. 어떻게 이런 대사를 쓸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선생님의 간결한 대사는 어떻게 나오는 걸까요. 카피라이터로 일하신 경험 때문일까요?
감사합니다. 영광입니다. 항상 뭔가를 느끼면 “나는, 지금, 이렇게 생각했다”라고 머릿속에 문장으로 만들어 생각합니다. 감정을 흘려 버리기 싫은 거지요. 잊어버리지 않도록 휴대폰에 메모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그려온 캐릭터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을 꼽아보신다면요?
아무래도 수짱이 저와 가장 오랫동안 만났기 때문에 애착이 갑니다. 처음에는 그녀와 같은 나이였지만 어느새 내가 열 살 많아졌습니다. 수짱은 말하자면 ‘보통 사람’입니다. 이런 보통의 여자가 주인공인 만화를 과연 읽어줄까? 처음에는 걱정했습니다. 그랬지만 “이것은 내 이야기예요”라며 많은 편지를 받았습니다. 수짱은 혼자가 아니라 많은 사람으로 이루어졌음을 느꼈습니다. 저자인 저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수짱 시리즈’에 등장하는 사와코 씨도 좋아합니다. 성실하게 꾸준히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신작에서도 큰 역할로 등장합니다. 작가님을 실제로 가장 많이 반영한 인물이 ‘수짱’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지금은 어떤 캐릭터가 선생님과 가장 가까울까요? 『주말엔 숲으로』의 하야카와일까요?
어느 주인공이라도 저와 닮은 점이 있습니다만, 저는 아닙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녀들을 동경하는 부분도 많습니다. 이상하지요. 『주말엔 숲으로』에서 생각해본다면 저는 ‘하야카와’가 아니라 안경 쓴 ‘세스코’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나중에 후회하는 타입입니다. 언젠가 세스코가 주인공인 만화도 그려보고 싶습니다.
작가님의 만화를 볼 때마다 유독 반가운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백화점 지하 식품 코너와 디저트 이야기가 등장할 때죠. 특정한 장소와 음식이 작가님께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궁금해요.
누군가를 만날 때, 함께 뭔가를 먹어야지,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저는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과 먹는다는 건 행복한 일이지요. 가게에 진열된 디저트를 보면서, 멀리 떨어진 고향의 엄마에게 사다 주고 싶단 생각도 종종 합니다. 물론 저 자신을 위해서도 삽니다. 자신을 향한 보상도 중요합니다.
작가님의 작품을 읽다 보면, 일찍부터 ‘욜로’, ‘소확행’의 가치를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작가님의 작품이 한국 독자에게도 꾸준하게 사랑받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요.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소중한 사람들이 있고, 일이 있다는 것. 이것이 내게는 행복입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답할 수 있는지 여부는 중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2015년 10월에 나온 작품인데요.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 생활』을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한국의 많은 출판 관계자들이 좋아하는 만화이기도 한데요. 작가님이 좋아하는 편집자들의 특징을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각각의 업무 방식이 있으므로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이 담긴 편집자에게는 나도 진심을 담아 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기 힘든 말』이라는 작품도 좋았습니다. 작가님은 어렵지만 해야 할 말이 생기면, 어떻게 말하려고 노력하시나요?
어렵네요! 어떡하면 좋을지 나도 알고 싶습니다. 대부분 나중에 이메일로 전합니다.
『영원한 외출』에서 “돌아갈 수 있다면 38살 정도가 좋다”는 문장이 나옵니다. 저는 곧 38살이 되는데요. 정말 38살이 좋은 나이인가요? 어쩌면 5권 수짱의 나이일 수도 있겠네요. (웃음)
네, 아주 멋진 나이라고 생각합니다. 되돌아봤을 때, 분명 그러리라 생각해요.
좌우지간 다양한 책을 읽고자 합니다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어시스턴트가 있으신가요?
“앞의 컷에 있던 컵이 다음 컷에선 사라졌습니다”라는 말을 편집자에게서 자주 듣습니다. 잊어버리고 쓰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 쓴 후에 체크하고 있습니다만……. 어시스턴트는 없습니다.
하하. 네, 사용하는 펜은 어떤 브랜드인가요?
일본 브랜드인 SAKURA의 PIGMA, 0.05밀리를 애용합니다. 한 자루 200엔 정도입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장점과 단점을 알려주세요. 저는 누구에게나 ‘스스로가 생각하는 장단점’이 궁금하더라고요.
장점은 마감을 잘 지키고요. 단점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서툰 점이지요.
『월간 채널예스』 4월호 특집 주제가 ‘90년대생이 도착했습니다’입니다. 작가님 작품 중에 20대가 보면 좋을 만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우선은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입니다. 학생 시절 친구와 어른이 되어 만난 친구. 20대는 친구에도 변화가 생기는 시기입니다. 친구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수짱은 만화에서 분명하게 답합니다.
『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도 추천합니다. 결혼 스타일엔 여러 가지가 있음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신혼 초에 읽었던 『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 1,2권은 제 인생 만화입니다.
하하.
그런데 요즘도 여러 장소에서 잠입 취재를 하시나요?
아. 예를 들면, 네일 숍에서 손톱 손질을 받을 때 네일 아티스트의 이야기는 어떨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를 질문합니다. 길거리에서 싸우는 연인을 보고 이야기가 떠오를 수도 있고요.
패키지 여행을 좋아하시잖아요. 여행 에세이 출간 계획도 있으신가요?
작년엔 캐나다 패키지 여행에 홀로 참가했습니다. 『빨간 머리 앤』을 좋아해서, 작품의 무대가 되는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 갔었습니다. 실제로 이야기의 장소에 가면 또 새로운 감각으로 『빨간 머리 앤』을 읽을 수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수짱』 만화의 무대는 도쿄의 ‘지유가오카’라는 거리를 이미지로 삼았습니다. 겐토샤 출판사 웹진에 연재 중인 에세이에서는, 새로운 핀란드 여행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이것도 언젠가 책으로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슬럼프가 오면 어떻게 해결하시나요?
슬럼프는 오히려 작가가 되기 전인 학생 시절에 있었습니다. 자기 안에 있는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를 몰랐었기 때문이죠. 만약 지금 슬럼프가 온다면, 좌우지간 다양한 책을 읽고자 합니다.
다작을 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제대로 휴식을 취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카페에서 느긋하게 있기도 하고. 저는 이런 시간도 스케줄에 넣습니다.
독자들의 팬레터를 받고 계실 텐데요. 어떤 이야기를 들을 때, 작가로서 기쁜지 궁금합니다.
굉장히 기쁩니다. 팬레터는 모두 읽고 있습니다.
작가님을 롤 모델로 생각하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조언을 한 마디 해주신다면요.
무엇을 하고 싶은 지가 아니라, 무엇을 하고 싶지 않은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무엇인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한국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끝까지 인터뷰를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제 만화가 뭔가 힘이 된다면 영광입니다.
1969년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에세이스트로 활동 중이다. 만화 ‘수짱 시리즈’를 비롯해 『오늘의 인생』, 『영원한 외출』, 『사와무라 씨 댁, 오랜만에 여행을 가다』 『주말엔 숲으로』 등을 출간했다. 2014년 제11회 부천만화대상 해외작품상, 산케이 아동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걱정 마, 잘될 거야마스다 미리 글그림/오연정 역 | 이봄
마스다 미리는 밋밋한 평지에 서 있는 것 같아 불안해하는 마리코들에게 딛고 있는 땅이 아닌 저 위 멋진 저녁놀을 바라보길 권한다. ‘네가 지금까지 애쓰며 올라온 그곳에서, 잠깐 쉬었다 가도 괜찮아. 걱정 마, 잘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