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답다’라는 수식어는 또 하나의 온라인 서점이 아니라 변해가는 세상 위에서 자신밖에 할 수 없는 새로운 일을 해나가는 이들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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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마존에서 미래를 다녔다』 를 펴낸 박정준 저자는 아마존이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본 유일한 한국인 목격자다. 평균 근속연수가 1년 남짓인 회사에서, 그는 12년간 근무하며 근속 연수 상위 2%의 사원이 됐다. 이 경험으로 박정준 저자가 얻은 것은 단순히 ‘아마존 출신’이란 번쩍이는 경력이 아닌 ‘나만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얻은 삶의 자유’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옳은 일을 하고, 장기적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본질에 집중해 혁신을 일으키는 아마존의 원칙은 곧 박정준 저자의 성장 방식이 되었다. 12년간 체득한 이 성공의 비결을 전하며 그는 “나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그 가치를 나누는 삶을 살게 된 것은 아마존에서 얻은 가장 귀한 결실”이라고 말했다.
원칙이 정말로 지켜지는 회사, 아마존
집필 과정에서 구성이 바뀐 책이에요. 에필로그에서 책 쓰는 동안의 고민이 묻어나더라고요.
2015년 퇴사 직후부터 책을 쓰기 시작했는데요. 처음에는 아마존이 어떻게 일을 하고, 어떤 회사인지에 대해 3인칭으로 페이지를 채워나갔어요. 그렇다보니 내용이 마치 기사처럼 딱딱했고, 이미 시중에 있는 아마존 관련 책들과 다를 바가 없어보였죠. 때마침 출판계약이 이루어졌는데, 출판사에서 제가 직접 겪은 일들을 기록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나만 할 수 있는 아마존의 경험을 토대로 내용을 재구성해 처음부터 다시 글을 써서 출간하게 된 책이에요. 아마존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한국인이었고, 덕분에 어마어마한 성장을 두 눈으로 목격했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전하는 게 더 가치 있는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 쓰는 작업은 어땠나요?
너무 힘들었고요, 제 책꽂이에 있는 책들을 다시 보게 됐어요(웃음). 책 한 권에 저자의 인생이 담겼다고 생각하니 함부로 볼 수가 없겠더라고요. 글을 다듬고 또 다듬어서 책 만드는 과정이 마치 조각을 하는 것 같았어요. 책은 결코 상품이라고 말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값으로 책정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는 걸 집필하며 더욱 실감했죠.
입사 당시인 2004년, 아마존이라는 회사에 지원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때 당시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장 좋은 회사였는데요. 면접을 보러 갔지만 제가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면접관이 15분 만에 거절 의사를 밝혔어요(웃음). 이후로도 취직을 위해 계속 회사를 알아보던 중이었고, 아마존은 같은 학교를 다녔던 일본인 친구가 먼저 입사해 다니고 있던 기업이었어요. 그 친구가 추천을 해줘서 전화 인터뷰 후 면접을 보러 가게 됐는데 신기하게도 어려운 문제들을 척척 풀게 되더라고요. 5시간에 걸친 면접을 보는 동안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죠. 무조건 아마존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까다로운 면접 과정을 수월하게 거치고 나니 아마존이라는 회사가 운명처럼 느껴졌어요. 나를 위해 준비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 힘들어도 쉽게 그만둘 수가 없었죠.
책을 읽으며 가장 놀랐던 건, 한국과 너무 다른 직장문화였어요.
한국 회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없어서 회사 대 회사로 문화를 비교할 순 없겠지만, 저도 한국에서 자란 사람으로서 놀라는 일들이 많았어요(웃음). 처음 입사하고는 상사에게 “화장실 가도 되냐”고 물었을 정도니까요. 한 번은 회의실에 들어갔는데 한 사원과 상사가 앉아있는 거예요. 그런데 사원이 테이블 위에 두 다리를 올린 채로 개를 끌어안고 있었어요. 상사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요(웃음). 너무 쇼킹했죠. 그런데 그걸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없다는 게 더 신기했어요. 직원들의 복장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자유롭고요. 또 한국은 프로그래머들이 대체로 젊고,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레 관리직으로 가기 마련인데 아마존에는 할아버지 프로그래머가 많은 것도 생소한 풍경이었어요. 실제로 아마존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개발자로 근무하는 게 일반적이고, 그런 분들이 존경을 받아요. 관리자가 될지, 개발자로 남을지는 철저히 본인의 선택인데 계속 실무에서 근무하는 분들이 많죠.
미국 내 직장의 보편적인 모습인가요, 아니면 아마존의 특징적인 문화인가요?
일반적인 IT기업들도 대체로 복장 규정이 없고, 오랜 시간 프로그래머로 남는 직원들이 많아요. 그런데 회사에 개를 데리고 출근하는 건 아마존의 특징적인 문화 중 하나예요. 아마존 설립 초기인 스타트업 단계 때 사원 부부가 개를 데리고 오면서부터 그러한 문화가 생겼는데 실제로 수천 마리의 반려견이 주인과 함께 회사에 출근해요. 로비에는 개를 위한 비스킷과 밥그릇이 준비돼 있고, 새 사옥을 지을 때도 개를 산책시킬 공원을 따로 만들었죠.
회사가 중요하게 추구하는 가치 중 하나가 ‘절약’인 것도 인상 깊었어요. 제프 베조스 회장의 절약정신은 아마존의 혁신과도 연결이 된다고요.
아마존의 절약은 단순히 돈을 아끼고, 더 저렴한 것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낭비를 줄이겠다는 의미예요. 모두 풍족하면 발전적인 게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예를 들어 책상을 구입하면 100달러가 들고, 나무판자를 사면 30달러가 들어요. 그럼 그 나무판자에 다리를 붙여서 50달러짜리 책상을 만들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절약정신이 없다면 큰 고민 없이 그냥 100달러짜리 책상을 사서 쓰겠죠. 이처럼 ‘어떻게 하면 낭비를 줄일까,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 라는 고민이 혁신과 연결돼요. 단순히 비용을 줄이는 게 아니라 시간, 결제 등 모든 비용에서 낭비를 줄이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고요. 세계 최초 무인매장인 ‘아마존 고’의 경우가 그렇죠. 물건을 가지고 카운터로 가서 결제하는 과정 자체를 낭비라고 보고, 물건을 집어서 나오기만 해도 자동으로 결제되는 시스템을 도입한 거잖아요.
그리고 절약정신을 강조하다보니 고객의 신뢰도가 높아지기도 했어요. 구글, 페이스북 등의 기업은 최고의 인재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줘야 회사가 성장한다는 논리를 가지고 사원에게 정말 좋은 환경과 음식 등을 제공하는데요. 아마존은 반대예요. 직원에게 쓰는 비용을 최소화하죠. 그러다보니 소비자들은 자연스럽게 ‘아마존은 낭비하지 않고 그 돈을 고객에게 투자 한다’는 이미지를 갖게 됐어요. 결국 절약정신이 신뢰로까지 연결된 거예요.
지금은 세계 최대의 오픈마켓이 됐지만, 아마존의 시작은 온라인 서점이었어요. 사업의 첫 아이템이 ‘책’이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추측해본다면 아마 회장이 굉장한 독서광이라는 사실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어요. 온라인에서 판매하기에 가장 적합한 형태의 상품이 책이라고 생각했을 테고요. 실제로 초창기 아마존 서점의 훌륭한 전략 중 하나가 ‘롱테일’이었잖아요. 이전까지는 베스트셀러 위주로 책이 추천되고, 진열됐는데 아마존에서는 이 상식을 과감히 깼죠. 아주 오래 전에 출간된 좋은 책들, 베스트셀러는 아니자만 누군가는 꼭 찾을 책들을 쉽게 검색하고 구입할 수 있도록 만들었으니까요. 그런 혁신 또한 책을 상품으로 했기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아마존은 원칙이 반드시 지켜지는 회사라고 썼는데요. 제프 베조스 회장의 확고한 철학이 사원들에게 어떻게 공유되고 있는지 궁금해요.
진심으로 믿는 건 전달이 되는 것 같아요. 고객중심, 절약, 장기적 관점, 혁신 등의 철학을 회장이 진심으로 믿거든요. 스스로 그걸 실천하고 있고, 그에 따른 좋은 결과가 늘 검증이 됐어요. 이게 쌓이다보니 사원들을 자연스럽게 감화시키는 거죠. 특별히 사원들에게 어떤 코칭을 하는 건 아니에요. 예를 들어 제가 아이들에게 TV보지 말라고 이야기해놓고 저는 TV를 보면 아무도 제 말을 안 들을 거 아니에요. 하지만 제가 솔선수범하면 아이들도 제 말을 따라주겠죠. 그런 이치인 것 같아요.
그럼 실제로 사원들이 회장의 철학을 진심으로 믿고, 지지하는 분위기가 사내에 형성 되어 있는 건가요?
모든 사원이 그렇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어쨌든 중심에 회장이 있고 그 주변을 둘러싼 리더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일단 아마존이 요하는 인재상을 다 갖춘 사람들이에요. 인재상이 멀리 있고, 이상적인 게 아니라 회사가 원하는 캐릭터가 강하면 강할수록 아마존의 중심부로 들어갈 수 있거든요. 실제로 회의를 할 때도, 고객의 입장에서 사업을 설명하지 않고 ‘그렇게 하면 회사가 손해를 본다’는 등의 주장을 결코 할 수 없는 분위기예요. 인사고과에도 직접적인 사례를 들어서 이 직원이 얼마나 고객중심적인지 평가를 하도록 되어있고요. 그래서 일단 아마존에 입사해 근무를 하다 보면 회장이 주장하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고, 지키게 되는 것 같아요.
아마존은 목표가 아닌 과정이었다
‘회사는 평생 있어야 하는 곳이 아니라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이 역설적으로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었던 힘이었다고요.
입사 6년차쯤 됐을 때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서 휴직기간을 가졌거든요. 그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많이 생각했어요. 하루도 더 다니기 힘들 것 같은데, 당장 회사를 그만두면 가족의 생계가 걱정이었으니까요. 그쯤 제프 베조스 회장이 모교 프린스턴 대학 후배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보게 됐는데 아마존 창업기를 이야기하면서 후회 없는 도전을 하라고 조언하는 게 굉장히 모순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정작 회사 곳곳에는 열심히 일하라는 문구가 붙어있었거든요. 그래서 마음이 힘들었는데, 아마존의 시간을 도제의 과정으로 보니 문제가 해결되더라고요. 끝까지 있을 곳, 도저히 나갈 수 없는 곳이라 생각하면 답답하지만 여기서 최대한 많은 걸 배워서 나만의 일을 찾아 나갈 거라고 생각하니 편해졌어요. 학교는 돈을 내고 다녀야 하잖아요. 그런데 아마존에서는 돈을 받으면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의 면면을 지켜볼 수 있으니 좋다고 생각했죠. 모든 선택권은 나에게 있다는 걸 자각한 순간, 오히려 회사에 남을 수 있는 힘이 생기더라고요.
회사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마음을 힘들게 했나요?
일단 경쟁이 굉장히 치열하고요. 그만큼 승진은 힘들어요. 분명 제가 더 오래 다녔는데, 나중에 들어온 사원이 먼저 승진을 하는 등의 모습을 보면 조급해지죠. 그래서 얼른 승진해야겠다는 욕심을 품으면 또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고요. 그런데 ‘난 곧 여기를 나갈 것이다’라고 생각하니까 그런 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그때부터 개발자를 그만 두고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마케팅 경영 분석, 비즈니스 인텔리전스 등 다양한 직종을 선택해 부서를 옮겨 다녔어요. 그렇게 아마존의 다양한 사업을 경험하니 회사 생활도 더 재밌고, 열심히 하게 되었죠.
‘정글에서 터득한 생존법’ 파트는 일하는 누구에게나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많았어요. 업무 효율을 높이는 여러 비결 중, 특히 추천하고 싶은 게 있다면요.
원어민이 아니기 때문에 저는 일을 하면서 늘 영어로 인한 문제에 봉착했거든요. 상대의 말을 100% 이해하지 못하고, 제대로 질문하지 못하는 상황을 거듭 겪으면서 궁여지책으로 ‘도해 그리기’를 시작했어요. 제가 이해한 내용을 도형, 화살표 등을 활용해 그림으로 나타내는 건데요. 그림을 그리는 동안 스스로 문제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게 된다는 장점이 있어요. 또 동료에게 그림을 보여주면서 이 내용이 맞는지 물어보면, 이해가 동등한 상황에서 정확한 설명을 들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모르는 영역이 나오면 늘 차트든 도표든 그림을 그려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지하철 노선표가 있으면 길을 잃지 않고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듯 한 장의 그림이 그런 역할을 하죠.
또 스스로 하나의 질문과 하나의 답을 해보며 일을 해결해가는 방식을 굉장히 추천해요. 저는 구글닥스에 질문과 답을 기록하는데요. 첫 줄은 목표를 쓰고, 그 이후부터 뭘 해야 하는지 하나씩 질문하고 답을 해보는 거예요. 예를 들어 여행계획을 짠다고 하면 목표는 ‘여행을 잘 다녀오는 것’이 될테고, 그 이후부터 여행을 잘 다녀오기 위해 뭘 해야 하는지 하나씩 적어보는 거예요. ‘맨 처음에 뭘 해야 하지? / 날짜부터 정하자. ?월 ?일.’ 이렇게 하나의 질문에 하나의 답을 해보는 과정을 거치면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해야 할 것들이 명확해져요. 제 경험상 한 번에 두 가지 생각을 하면 마음이 복잡하고 일하기 싫어지거든요. 하지만 이렇게 하면 한 번에 여러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서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되죠. 기록이 남는다는 것도 굉장히 큰 자산이고요. 저는 이렇게 일을 처리하기 시작하면서 하고자 했던 일을 못했던 경우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높은 업무강도, 치열한 경쟁, 부족한 복지제도 등 아마존이 직원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많은데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저는 아마존에서의 시간을 도제의 과정이라 생각했고, 제 선택에 의해서 남아있었기 때문에 그 환경을 나쁘게만 생각하진 않아요. 분명 치열하고 힘들었던 게 사실이지만, 그랬기에 배운 것도 많거든요. 사실 그런 비판은 아마존이 직원들에게 일을 많이 시켜서라기보다는, 능력 중심으로 업무를 평가하고 업무 상황이 투명하게 공유돼 직원들이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에요. 최고의 성과를 위해서 모두 열심히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는 나 혼자 불평불만을 늘어놓거나 쉬엄쉬엄 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조성되니까요.
다만 섭섭한 게 있다면 제가 아마존을 다니면서 아이 셋을 낳았는데, 하루도 유급휴가를 받지 못했다는 거예요. 물론 법적으로 보장하는 무급휴가를 사용하긴 했지만 어쨌든 그만큼 처우가 좋진 않았어요. 뉴욕타임즈에서도 그 문제를 꼬집은 적이 있고요. 다행히 제가 퇴사한 이후에는 곧바로 시정이 되어서 여자는 3개월, 남자는 1개월까지 유급휴가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제도가 변경됐다고 해요. 이런 부분은 분명 고쳐져야 할 점이죠.
그럼 ‘1년’이라는 짧은 근속연수의 가장 큰 원인은 역시 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물론 기본적으로 IT기업의 근속연수 자체가 그렇게 긴 편은 아닌데요. 그중에서도 아마존은 특히 짧은 것으로 유명하죠. 해고되는 직원의 비중도 있을 테지만, 대부분은 자발적으로 이직을 하거나 다시 학교로 돌아가거나 창업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보통 아마존에 오기 전에 다른 회사를 경험했던 사람들이 그때 당시와 아마존에 다닐 때의 워라밸, 업무 강도 등이 크게 비교가 되니까 그만두곤 하고요. 열정적인 젊은 친구들은 신생 기업에서 꿈을 펼쳐본다는 이유로 퇴사를 하기도 해요. 또 세계의 인재들이 모여 있는 회사이기 때문에 더 좋은 조건으로 스카웃되는 직원들도 많고요.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을 찾아서
퇴사하니 어떤가요?
퇴사한 날 밤에는 아내랑 같이 많이 울었어요. 운동선수들 은퇴할 때 눈물 흘리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었던 것 같아요. 아내가 케이크를 준비해줬는데 12년간 고생한 일들이 떠오르며 울컥하더라고요. 그 이후에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아요(웃음). 진짜 너무너무 좋아요. 그래서 아마존에게 더 고마워요. 아마 다시 가라고 하면 절대 못 갈 거예요. 아마존에 있을 때는 동물원 울타리에 갇힌 것 같았거든요. 살아있긴 하지만, 언제 잡아먹힐지 모르는 상태였다면 지금은 정말 자유롭게 살아있다는 걸 느껴요. 지금 퇴사 후 3년 반 정도 지났는데, 정말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아마존에서 얻은 것들 중, 가장 값지게 느껴지는 게 있다면요.
장기적 선택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지금의 기쁨을 참으면 훗날 더 좋은 걸 받을 수 있다는 마시멜로 이야기는 사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가 어려운 거잖아요. 그런데 아마존은 이걸 정말 잘 지키는 기업이에요. 이를 통해 실제로 수많은 성공을 거뒀고요. 그걸 몸소 경험했고, 그 힘과 가치를 목격했기 때문에 멀리 내다보는 시각이 생긴 것 같아요. 또 혼자 무얼 하든 다 잘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생겼어요. 내가 어느 집단에 속하거나 회사의 힘에 기대지 않아도 스스로 내가 가진 가치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줬죠. 분명 그렇게 살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줬고요.
아마존의 물류센터인 ‘풀필먼트 센터’에서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고자 로봇을 활용하게 된 사례를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작가님의 낙관적 시선이 인상적이었어요. 국내에는 4차산업혁명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데, 세계 최고의 IT기업에서 근무한 경험자의 견해가 궁금해요.
저는 혁신을 막을 순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혁신은 악당이 아니라 우리를 더 편리하게 하는 존재죠. 전기, 자동차, 비행기, 인터넷 모두 사람의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었잖아요. 하지만 혁신이 생길 때는 늘 수혜자와 피해자가 있기 마련이에요. 그럼 우리는 수혜자가 되면 되는 거죠. 제가 사는 시애틀의 이민자 역사를 보니, 150년 전에는 이민자들이 거의 통조림 공장에서 일을 했더라고요. 당시엔 음식을 오래 보관할 수 있고 깨지지 않는 통조림이 굉장히 큰 혁신이었거든요. 그런데 냉장고가 발명되면서 통조림 공장이 다 망해버린 거예요.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당연히 직장을 잃었겠죠. 그렇다고 해서 냉장고가 발명되지 말았어야 할까요? 그건 아니잖아요. 무작정 두려워하기보다 혁신의 등에 올라타면 된다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기존의 일자리 중 사라지는 게 있다면, 그보다 더 많은 일자리가 새로 생길테니까요. 사람보다 로봇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은 인공지능에게 맡기고, 우리는 그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특히 저는 하나의 직업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10년 뒤 아마존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는 물음에 제프 베조스 회장은 “10년 뒤에 아마존이 무얼 할지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지금 없다”고 답했어요.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틀에 갇히지 않는 사고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몇 년 전까지 아마존의 직원이었다면, 지금은 아마존에서 유아용 매트를 판매하는 사업자가 됐어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회사를 그만두고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는데 저는 아마존의 시스템에 대해 잘 알고, 한국어를 잘하고, 아빠라는 강점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의 유아용 매트를 아마존에서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했어요. 미국에서는 영아가 응급실에 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낙상이에요. 아이들을 다 높은 곳에 올려놓거든요. 신발을 신고 다니는 문화 때문에 바닥은 더럽다는 인식이 있어서 그런 것인데, 바닥에 아이를 두지 못해 다치게 한다는 건 굉장한 넌센스예요. 아이들은 바닥에 있어야 제일 안전하잖아요.
아마존의 FBA(Fulfilment By Amazon) 시스템은 판매자에게 굉장히 유용한데요. 상품 등록 후, 물류센터에 물건을 보내주면 아마존에서 주문, 배송, 고객서비스를 모두 담당해요. 세팅만 해 놓으면 판매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거죠(웃음). 이걸 이용해 사업에 도전했어요. 지금은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서 제가 매트를 판매하기 시작하며 아마존에 ‘유아용 매트’ 카테고리가 새로 생겼고요, 이 분야에서는 독보적으로 판매되는 상품이 됐어요.
아마존의 근무 경험이 사업의 밑바탕이 되었네요.
사업을 시작하게 했을 뿐 아니라 상품의 정체성을 정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어요. 본질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마존의 정신을 체득했기 때문에, 사업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매트의 본질’을 깊이 고민할 수 있었거든요. 결론적으로 나온 생각은 ‘아이가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었는데, 그렇다면 ‘안전을 지키는 게 매트의 목적일까?’라고 질문해보니 그건 아니더라고요. 안전하려면 움직이지 않으면 되잖아요. 결국 매트는 넘어져도 괜찮은 환경을 만드는 것, 아이를 더 주체적이고 독립적이고 모험적으로 키우는 것이라는 생각에 다다랐어요. 그래서 만든 캐치프라이즈가 ‘Every adventure strarts from the safe ground(모든 모험은 안전한 땅에서 시작된다)’였죠.
지금은 혼자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사업의 규모를 키우고 싶은 욕심은 없나요?
네, 전혀 없어요(웃음). 저는 제프 베조스나 빌게이츠가 되고 싶지 않거든요. 그냥 자유롭고 싶어요. 아마존이 저를 너무 옥죄었기 때문에 생긴 마음일수도 있지만요(웃음). 그리고 저는 미안해서 사원을 못 쓰겠어요. 그 사람도 자기의 일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서요. 앞으로는 기업이 없는 세상이 올 거라는 전망이 많잖아요. 어딘가에 소속되어 일하는 방식이 아예 사라지진 않겠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그게 주류였던 이전과는 많이 달라질 거라 생각해요. 자신의 가치를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는 플랫폼이 많아졌으니까요. 사람은 누구나 좀 더 자유롭고 싶고,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타인과 나누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는 세상이 그렇게 변할 거라고 봐요. 제가 일에 대한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준 문구가 있어요. 아인슈타인이 했던 ‘성공한 사람보다는 가치 있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에요. 성공이나 도전은 목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가치는 목표가 될 수 있죠. 제가 세상에 나눌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일까 고민한 끝에 매트 사업을 시작했고, 책도 쓸 수 있었거든요. 언젠가 저보다 매트를 더 잘 파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땐 그 사람이 그 일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런 날이 온다면 저는 또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죠. 그렇게 가치를 추구하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미래를 고민하며 일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자신의 커리어가 회사보다 크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나를 책임져줄 수 있는 곳에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나는 여기서 많은 걸 배워서 독립할 거야. 내 커리어는 지금 회사보다 훨씬 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 열심히 그리고 기쁘게 일할 수 있을 테니까요. 지금 회사에 소속되어 있든, 아니든 간에 주체적으로 내 커리어를 생각하며 일하면 본인에게도 좋고 회사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관점일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이 책을 읽고 아마존에 입사하고 싶어지는 분들이 계시다면 제가 책을 잘못 쓴 것이고요(웃음). 아마존에 가지 않고도, 자신의 가치를 찾아 일할 수 있다는 동기를 부여하는데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아마존이라는 기업의 성장을 목격한 저의 경험담을 통해 ‘나만 할 수 있는 일, 내가 나눌 수 있는 가치’를 고민해보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썼거든요. 지금 회사를 다니고 계시든, 퇴사를 했든, 입사를 준비중이든 간에 궁극적으로 자신만 할 수 있는 가치를 찾아 세상에 나누어주는 일을 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훨씬 큰 삶의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나는 아마존에서 미래를 다녔다박정준 저 | 한빛비즈
결과적으로 점점 좁아지는 피라미드에 목숨을 걸기보다는 회사 그 이후의 삶을 주도적으로 계획하며 아마존에서 다양한 직종에 도전하여 많은 것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