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 임현정이 돌아왔다. 1996년 데뷔한 뒤 '첫사랑', '사랑은 봄비처럼...이별은 겨울비처럼', '고마워요', '사랑의 향기는 설레임을 타고 온다' 등 애청곡을 내놓았지만 2007년 5집을 끝으로 건강 문제로 무려 11년을 쉬었다. 지난해 '사랑이 온다'와 'God bless you' 그리고 얼마 전 발표한 '청춘'으로 다시 돌아와 본격적인 활동의 고삐를 당기고 있다. '청춘'은 결코 젊지 않으나 여전히 청춘의 세포를 간직한 기성세대에 대한 위로를 담았다.'음악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그 목소리에는 과거의 지난(至難)을 뚫고 나온 담담함과 의욕이 퍼져있었다. 록과 클래식 등 음악 스타일. 대중 감성과 실험성. 어느 것 하나 허투루 결정하지 않는 그는 인터뷰도 섬세하고 사려 깊었다. 질문마다 꼼꼼히 추억과 경험을 꺼내 응답했다. 어느덧 데뷔 23주년을 맞은 중견 임현정을 서울시청 부근 한 카페에서 만났다. 긴 공백기에 대한 뒤늦은 인사와 함께 소망과 음악 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거리낌 없이 피력했다. 그는 '임현정다운' 음악을 하겠다고 말했다.
오랜만의 컴백이다. 얼마 전 발표한 싱글 '청춘' 공개 후 현재 심정은 어떤가.
사실 녹음 해 둔 지 1년이 넘은 곡이다. 마스터링을 작년 5월에 끝냈으니까. 그때가 가장 기분이 좋았고 지금은 덤덤하다.
발표가 미뤄진 이유는?
밀도를 높이고 싶었다. 우선 'God bless you'가 작년 12월에 나왔고, 정규 음반을 올해 하반기쯤 내려는 목표를 세우고 보니 ('청춘' 발표 시점으로) 지금이 가장 적절했다. 'God bless you'와 '청춘'을 비교했을 때 '청춘'이 내용적으로 더 중요했다. 그래서 다듬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고 할 수 있다. 때마침 '첫사랑'이 수록된 정규 2집 앨범 <가위손>의 리마스터링 시기와 겹쳐 여러모로 뒤로 밀렸다.
꾸준히 애청 되는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이 수록된 정규 4집 <A Year Out..In The Island>이 2003년도에 발매됐다. 인기와 지구력 측면에서 보면 이 음반을 재발매했을 법도 하다.
4집 역시 고려하지 않은 건 아니다. 시도는 했는데 여러 가지 문제들이 겹쳐서 잘 풀리지 않았다. 현재 음원 사이트에서 정규 1집과 2집이 유통되지 않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가위손> 재발매를 반겨 주실 것 같다.
앞서 '청춘'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어떻게 만들어진 곡인가.
느지막한 오후에 오피스 단지 근처 선릉의 공원을 걷고 있었다. 평일임에도 직장인들이 많았다. 삶에 지쳐 남의 눈을 피해 쉬고 싶어 하는 피로감이 역력히 느껴졌다. 안쓰러웠다. 부양가족, 아이들 학원비 등이 걸려있으니 기계 바퀴 같은 삶에서 탈출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의 중독에서 조금만 벗어나고 의심을 품어본다면 청춘을 되돌릴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쓰라림을 담은 곡이다.
노랫말은 쓸쓸한데 반해 선율은 재즈 풍으로 풍성한 느낌을 전달한다. 노래가 끝나고 후반부 1분가량 악기 연주를 길게 배치한 편성이 인상적이다.
현실을 고민하고 일상에 작은 균열만 내본다면 희망을 볼 수 있다. 가사가 '멍하니 발끝만 본다'로 마무리되고 곡이 끝날 때까지 긴 솔로 연주를 넣었다. 소주라도 한잔 마시러 가서 깊은 절망을 제대로 느껴보자는 의미다. 상념에 잠길 기회를 주고 싶었다.
기존의 것을 비틀어 생각하는, 조금은 반항적인 기질이 엿보인다.
'나'로 태어나지만 관습, 교육, 재창조를 통해 '이렇게 해야만 하는' 사람으로 길러진다. 내 주관이 아니라 사회적 주관을 주입 받는 것이 아닐까. 본질적으로 의심을 해야 한다. 이 생각이 맞는지, 이 경우가 맞는지를 말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특히 요새 매스컴 홍보나 조회 수 등이 그래서 더 못 미덥다. 기존 체계에 묶어 두려 하는 것들을 의식적으로 지양한다.
노래나 보컬은 고민의 잔부스러기 없이 깔끔하다.
보컬의 힘을 빼야 할 순간들이 있다. 음악에서 빼야 더 강해지는 부분이 있는 거다. 힘이 있어야 뺄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힘을 푸는 게 더 어렵다. 특히 이번 싱글에서는 보컬에 여유를 주고 다른 것들을 더 부각하고 싶었다. 원하는 만큼 잘 반영되지 않아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얼마 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그랬지만 본인만의 확고한 사고가 느껴진다. 특히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라디오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하고 싶다'는 말이 깊이 와닿았다.
빠르고 바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맞춰서 갈 필요는 없다. 내 길을 가야 한다. 개인적으로 연습도 많이 필요하고, 고민도 많다. 특히 4집부터는 사운드 더빙을 줄이고, 에센스만으로 정면 승부를 보고 싶었다. 녹음환경이 받쳐줘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작업을 하다 보면 자꾸 제약이 걸린다. 형식이 구조화되고 그 안의 콘텐츠가 좋아져야 하는데 여기서는 구조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 같다. 스튜디오에서 음악가들이 연주할 기회가 적다 보니 녹음실 상태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다. 반면 외국에서는 각 파트 별 최고만 섭외해 레코딩 할 수 있다. 시간은 많이 걸리나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경험이 많으니까 말이다.
느린 속도가 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인가.
맞다. 아직 만들어진 것이 적기 때문에 편곡도 최선을 다 하고 무엇보다 느긋하게 가려 한다. 예전에는 결국 제작자가 원하는 것에 다 맞췄다. 그러다 보니 다시 듣고 싶지 않을 정도로 실망스러운 곡들이 많다. 절충이 필요한데 그 무게중심을 잡는 건 어렵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 입맛에만 맞추고 싶지도 않다. 모든 걸 다 쏟아도 부족하다. 그래도 그렇게 만들면 나 스스로 다시 들을 만은 하더라. 그렇게 천천히 다져나가고 있다.
그래도 공백기가 너무 길었다.
공황장애의 고통도 있었고... 또 음악현실에 대한 회의감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활동할 당시 '내가 들을 음악을 하자' 다짐했는데 그게 뜻대로 안 됐다. 어느 순간에는 음악 팬들이 어떤 노래들을 좋아하는지 감이 잘 잡히지도 않았고. 시간이 변함에 따라 사람들의 노래를 듣는 양태도 달라졌다. 듣기 편하고, 즐기기보다는 소비되는 노래들이 대세를 점하는 현실이 된 거다. 그때는 그런 흐름이 아쉬웠는데 이제는 이해하게 됐다. 어떻게 보면 내가 대중에게 호소할 수 있는 부분이 적다는 걸 인정했다고나 할까.
하지만 '사랑은 봄비처럼..이별은 겨울비처럼' 등 애청곡들이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드라마 <이 죽일 놈의 사랑>에 쓰였던 클래시컬한 감성의 곡 '재회'도 생각난다.
어린 시절 퀸(Queen)의 열렬한 팬이자 록 키드였다. 이 곡에 기타 솔로가 나오는데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Brian May) 스타일로 쳐달라고 했다. 클래시컬함과 록의 감성을 교배했다.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이 라디오 애청곡이 된 것은 클래시컬한 분위기 때문으로 보고 여기에 중점을 두려고 한다. 하지만 록 사운드도 배제하지는 않으려 한다. 사회적 시선들을 록으로 꺼내 들겠다. (웃음)
모든 음악이 아티스트의 자기만족으로 출발하는 것이긴 하지만 발매되면 산업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그만큼 대중성을 잡기 어렵고, 그 때문에 록 감성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할 것 같다.
나는 늘 대중성을 우선에 둬 왔다. '첫사랑', '고마워요',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 '재회'... 전부 사랑에 쉽게 반응하는 사회에 맞춘 곡들이다. 그런 내 선택들이 지칠 때도 있었고 다소 실험적이더라도 내 취향을 십분 살려야 하나 고민할 때도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가정환경 탓에 사회 비판적인 성향을 가지고 자랐다. 그래서 한때 더 록, 록의 저항성에 끌리기도 했다.
그렇게 자라고 그렇게 생각해왔는데 문득 이 모든 비난이 사랑만 있다면 해결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가 변해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 미적 가치가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정규 6집은 그런 측면에서 대중성, 록, 개인적인 것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이란 그릇에 묶어 담아 내보려 한다.
그렇다면 본인에게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이라... 어렵다. (웃음) 공황장애로 힘들었을 때 옆을 지켜준 남편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때 약에 기대지 않고 자연적으로 극복하려고 생각했고 그래서 많이 힘들었다. 남편이 늘 함께하고 힘을 실어줬다. 사랑은 나를 낮추고 버리면서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작년 에 발표한 '사랑이 온다'가 바로 남편에게 쓴 곡이다. 거기에 사랑이 담겨있다. 사랑은 매번 배우고 있다.
공백기가 시작될 즈음 남편을 만난 걸로 안다. 사랑의 감정으로 음악 창작력이 넘쳐났을 거 같은데. 모든 곡을 직접 쓰는 싱어송라이터 아닌가.
음악은 처참하고 괴로울 때 더 잘나온다. 처참하고, 괴롭고, 벼랑 끝, 가지에 매달려 있을 때 감정이 오롯이 드러난다. 그 아픔을 곡을 쓰며 치유하는 것이고. 음악이 없었다면 내가 지금까지 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예전에는 정말 음악 말고는 생존 이유가 없었다.
공백기에 창작 활동도 거의 쉬었던 셈인가?
곡을 안 쓴 건 아니었다. 쓰긴 했는데 나와 맞지 않아 발매하지 않았을 뿐이다. 사실은 유기농 농사를 지으려고 했다. 일본에서 자연주의 농법을 하는 농장도 다녀오고 오스트리아도 가고... 2008년부터는 한 2년간 제주도를 계속 오갔다. 결과적으로는 실현하지 못했다. 개발이 쉽지 않았다. 결국 고민만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생태 환경주의는 무엇일까. 인간이 정말 극한 상황에 빠졌을 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환경도 사회도 아닌 사랑이다. 이런 생각들 많이 했다. 결국은 사랑이고...
오랜 음악 활동을 바란다.
예전에는 '55살까지 음악 하면 성공한 거 아닌가' 그때까지만 해보자 했다. 지금은 다르다. 정해진 일정대로만 어떻게든 맞춰 곡을 내려면 낼 수는 있다. 그렇게 음악 활동을 이어나갈 수는 있는데 요즘 음원 제작 시스템이 따라주지 않는다. 온라인으로 연락을 주고받고 왔다 갔다 하고... 그 틀에만 찍어 내다보면 내가 못 견딜 수준의 결과물이 나올 게 분명하다. 내 호흡대로 끌고 나가며 내 구역을 구축하고 싶다. 오래도록 하면 더 좋고!
가장 마음에 드는 본인의 앨범은?
2집과 4집이다. 2집은 사운드 입체감이 다르다. 그때가 록을 할 때다. 일렉트릭 기타나 신시사이저로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 콘솔 72채널을 넘어서 썼고 드럼만 16트랙, 기타만 해도 8개 이상 사용했다. 공간감을 키우려 최선을 다했다.그렇다면 4집은.4집은 변화하고 싶었다. 원하는 보이스 컬러를 만들어내기 위해 담배도 끊고 살도 10kg 정도 찌웠다. 물론 작업이 끝나고 바로 다 뺐다. 그만큼 감정의 우여곡절이 담겨있다. 지금 들어도 이 과도기를 잘 마칠 수 있을까, 발라드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생생히 느껴진다. 특히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을 들어보면 어떤 그루브가 있다. 내 본연의 그루브와 대중이 원하는 그루브 사이를 찾기 위해 노력했던 곡이다.
송 라이팅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곡을 추천해준다면.
잘 쓴 곡은 녹음이 잘 안 나와서... 실패다. (웃음)
임현정 음악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정체성은 없다. 세포들은 길어야 3개월이면 다 바뀐다. 관념, 추억, 사랑 같은 것들을 빼면 사람은 계속 바뀌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정의 내릴 수도 없고, 내려서도 안 된다. 다만 흘러가는 대로 내 모습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 그게 정답이 아닐까?
대중에게 어떤 뮤지션으로 남고 싶은가.
삶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뮤지션이 되고 싶다. 그런 모습이 대중에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 과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히트곡도 없이 실험적인 곡만 내느냐 불평을 들을 수도 있을 거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내면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진실한 사람다운 곡을 쓰고 싶다.
사람다운 곡? 무슨 말인지 조금 쉽게 풀어 달라.
거짓 없는 나로 분했을 때 좋은 곡이 나올 수 있다. 내가 의도해서 곡을 쓴 것 같지만 사실 그 이전에 세상이 나에게 던져준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걸 풀어서 만들어낸 게 노래고, 음악이다. 결국은 모든 게 사회가 나에게 건네준 것들이다. 그때를 위해 가식을 벗어야 한다. 음악가들이 위기일 때 좋은 노래들을 뽑아내는 건 절박함이 가식을 벗겨내기 때문이다. 꼭 벼랑 끝에 서지 않아도 솔직한 사람다운 곡을 끄집어낼 수 있는 뮤지션, 임현정이 되고 싶다.
끝으로 이즘 공식 질문이다. 임현정 인생의 음반 혹은 가수는 누구인가.
어린 시절 처음 퀸을 만났을 때가 생생하다. 그중에서도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가 들려주는 쫀쫀한 기타 솔로와 프레디 머큐리의 카리스마에 반했다. (웃음) 유투의 기타리스트 디 에지(The Edge) 역시 특유의 환상적인 기타 톤이 매력적인 뮤지션이다. 프린스도 좋아했고, 안드레아 보첼리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듣고만 있어도 위안을 받는다. 학생 때 들국화 콘서트에 갔었는데 충격적일 정도로 전인권 선생님께 빠져들었고, 이적 <빨래> 역시 삶에 지칠 때마다 들었다. 이적은 고교 동창이다. 비틀스도 빼면 안 되는데... 특히 나는 존 레논 파였다. (웃음)
인터뷰 : 임진모, 박수진, 정효범
사진 정효범
정리 : 박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