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학자 박혜란의 에세이 『모든 아이는 특별하다』 를 읽었다. 그간 써온 육아서, 에세이와 다른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까? 궁금한 마음에 서둘러 책을 읽었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서 읽은 책인데 엄마로서의 내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게 됐다. 내가 진짜 아이에게 원하는 게 뭘까? 아이에게 무언가를 원하는 게 옳은 일일까? 왜 젊은 엄마들은 옆집 엄마들을 탓하며 사교육 시장에 흠뻑 뛰어들고는 자책하고 두려워할까.
‘1946년생 엄마’ 박혜란은 뒤늦게 여성학을 공부한 늦깎이 학생이었다. 아이들은 당연히 공부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자랐다. 스스로를 돌보느라 자신의 공부를 이어가느라 세 아들에게 잔소리할 틈이 없었다. 아이들은 자신을 존중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저절로 잘 자랐다. 잔소리를 하는 것보다 잔소리를 안 하는 게 더 어려운 일이기에,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엄마 곁에서 존중감을 느끼며 창의적인 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손주들의 각종 발표회에 꽃다발을 들고 나타나는 할머니가 된 박혜란. 젊은 엄마들의 비장함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샘솟는다는 그에게 독자로서 진짜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유치원생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심정으로 질문했다. 10개의 질문에 심플하게 답한 박혜란. 그의 답신을 한참동안 읽고 또 읽었다. 10개의 해답이 보였다.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10가지 이야기를 기억한다면, 좀 다른 육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자유롭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창의적인 아이 키우기’ 라는 주제로 책을 쓰셨어요. 그 전의 책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아이 키우기에 대해서 전에 쓴 두 책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과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에서는 저의 육아 경험에 대해서 가감 없이 털어놓았을 뿐, 젊은 부모들에게 ‘나를 따르라’는 식으로 가르치려 들지 않았어요. 이번엔 좋게 말하면 메시지를 좀 강하게 전하려 노력한 편이고, 솔직하게 말하면 꼰대처럼 잔소리를 쏟아냈죠. 아이들 키우면서도 안 했던 잔소리를 이번 책에서 하게 된 건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더 젊은 부모들과 아이들이 안쓰러워 보이고, 제한된 조건에서나마 조금이라도 자유롭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해져서 그런 것 같아요.
아이에게서 한 발 떨어지도록 노력하십시오
이번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선생님의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낙천적이셨다고요. 자녀의 행복을 위해선 부모의 낙천성이 꽤나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낙천적인 성격을 못 가진 부모들은 걱정이 됩니다. 고민 많고 매사 심각한 성격을 가진 부모들에게 조언을 해 신다면요?
살아갈수록 제 어머니로부터 좋은 유산을 물려받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머니의 좌우명이 ‘웃으면 집안이 무고하다’였거든요. 걱정거리가 생겨도 일단 웃으셨어요. 많은 부모, 특히 엄마들은 아이를 잘 키워야겠다는 마음이 너무 앞선 나머지 아이의 미래에 대해 걱정이 지나치게 많은 것 같아요. 마치 걱정을 하지 않으면 좋은 엄마 자격을 박탈당하기라고 하는 것처럼. 걱정이 넘치다 보니 성격마저 비관적으로 바뀌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걱정이란 건 정말 쓸데없는 거잖아요. 걱정한다고 일어날 일이 안 일어나는 게 아니니까요. 엄마가 걱정이 많으면 아이에게 불안이 전염됩니다.
쉽지 않겠지만 도를 닦는 심정으로 스스로를 달래세요. 아이에게서 한 발 떨어지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리고 ‘아이는 나보다 훨씬 낫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워 보세요.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는 대신 아이의 미래를 궁금해 하세요. 엄마의 표정이 달라지면서 아이에게 건네는 말투가 바뀌는 걸 경험할 수 있을 겁니다.
무엇을 하든 우린 네 편이다
"아이 앞에서 싸우지 말고, 아이 없는 곳에서 부모가 피 터지게 싸워서 하나의 방향성을 정하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자녀교육의 철학 중 이것 만은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부모가 아이를 두고 서로 다투는 이유는 결국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대개 한쪽은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많이 시켜서 좋은 대학 보내 사회적으로 성공시켜야 아이가 행복하다고 믿고, 다른 한쪽은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그걸로 밥을 먹으면 그게 행복이고 성공이라고 믿는 데서 다툼이 일지요. 어느 쪽을 택하든 ‘아이는 믿는 만큼 자라는 신비한 존재’라는 믿음만은 버리지 말고 ‘네가 무엇을 하든 우린 네 편이다’라는 확신을 주십시오.
네 인생은 네 꺼
세 아드님이 선생님께 고마워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안 한 것일까요?
공부나 일상 생활에서 잔소리를 하지 않고 키워서 엄마가 자신들을 굉장히 존중한다는 느낌을 갖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네 인생은 네 꺼’라는 생각을 확실히 심어준 데 대해서도 고마워하는 것 같아요. 비 오는 날 한 번도 우산을 가져다주지 않았으니 어떻게 보면 매정한 엄마라 섭섭하게 여기기도 했겠지만, ‘내 인생 내가 챙기지 않으면 큰일 나겠구나’라는 일종의 경각심을 갖게 해 자신들을 자립적인 인간으로 성장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보는 거죠.
짜증내지 않고 잘 웃은 일
지금 돌아보니, 내가 아이들에게 이것만은 잘해준 것 같다고. 스스로 칭찬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스킨십을 많이 한 것.
짜증내지 않고 잘 웃은 것.
책 읽는 모습을 보여준 것.
남의 인생이 아니라 내 인생을 살아야 해요
우리 나라 교육의 상당 부분 문제는 남과 비교하는 것, 지나치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비교하려는 마음이 사라질까요?
우리 사회는 오래 전부터 삶의 기준을 남에게 두었습니다. ‘남 보란 듯이’ 사는 게 인생의 목표였으니까요. 행복도 주관적으로 느끼는 게 아니라 남들이 ‘아이구, 넌 돈도 많고 명예도 있으니 참 행복하겠다’라고 말해 주기를 바라지요. 아이 역시 남들 아이보다 잘 키워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무리수를 두는 거고요.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면서 살다 보니 웬만해서는 행복을 느낄 수 없죠. 요즘 너나 없이 불평, 불만이고 너나없이 화가 많잖아요. 행복해지려면 남의 인생이 아니라 내 인생을 살아야 해요. 더 이상 남을 비교대상으로 삼지 말고 ‘어제의 나’를 비교 대상으로 삼아 보세요. 어제보다 조금 나아진 나, 어제보다 조금 더 행복해진 나를 목표로 삼으세요.
배려심 많은 부모와 좋은 관계 속에서 자란 아이
잘 큰 아이들(스스로를 잘 파악하고 행복한 아이)을 보실 때가 있으실 텐데요. 그들의 부모들은 어떤 성격을 갖고 있던가요? 특별히 갖고 있는 공통점이 있을까요?
잘 큰 아이들은 대부분 긍정적이고 배려심 많은 부모와 좋은 관계 속에서 자랍니다. 내가 아는 어떤 엄마는 고등학생인 아들이 못 말리는 사고뭉치인 데도 큰 걱정이 없다고 말해요. 아들에게 ‘내 인생은 내 꺼’라는 신념 하나는 확고부동하다면서. 제 생각엔 이렇게 느긋한 엄마 덕분에 아이가 잘 자라준 게 아닌가 싶어요. 때로는 부모들보다 훨씬 나은 아이들도 많이 봅니다. 아이들을 보다가 기대를 갖고 그 부모를 보곤 깜짝 놀랄 때도 적지 않죠. 그럴 때마다 아이들이 얼마나 큰 힘을 갖고 태어나는지 새삼 감탄하게 되지요.
아이한테 짜증을 쏟아내지 마세요
불안한 부모처럼, 아이에게 독은 없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보시기에 가장 그릇된 부모의 습관적 태도는 무엇인가요?
가장 나쁜 건 아이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생각하는 부모들입니다. 기분 좋을 땐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이라며 물고 빨다가, 기분이 나쁘면 아주 사소한 잘못에도 지나치게 흥분해서 악담을 퍼붓는 부모 밑에서 큰 아이가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을까요? 요즘 아이 키우는 많은 엄마들이 마음속에 화가 가득 차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아요. 다섯 살짜리 아이를 나무랄 때도, 별 것 아닌 잘못을 지적할 때도 기본적으로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 나오는 것처럼 들리거든요. 제발 아이한테 한숨, 불평 불만, 짜증을 쏟아내지 마세요.
자연을 보여주세요
만약 지금 유치원생을 키우는 젊은 엄마 시절로 돌아가신다면요, 아이들에게 어떤 것을 해 주시고 싶으신가요?
텃밭을 마련해서 아이들과 함께 가꾸고 싶어요. 시골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나는 당연히 알고 있는 꽃, 채소, 과일 이름을 아이들은 마흔이 넘어서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더군요. 몇 년 전 온 가족이 가파도에 여행 가서 청보리밭 사잇길을 걸었는데 세 아이 모두 푸른 잔디처럼 보이는 것이 청보리라는 걸 몰라서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몰라요. 아스팔트킨트로만 자라게 해 자연을 충분히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못한 게 많이 미안하지요.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지금은 모두 예술과 관련된 일을 하고 산다는 게 정말 신기하기도 하고요.
행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어요. 엄마가 내 행복에 집중하면, 그 모습을 보는 아이도 자기 스스로 자신의 행복을 찾아갈 거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엄마들이 자기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니까, 자꾸 아이들을 들들 볶는 것 같아요. 선생님은 현재 행복하신지요? 앞으로의 꿈, 계획이 궁금합니다.
모두가 행복을 바라지만 행복은 저절로 오지 않아요. 행복은 행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만 옵니다. 그 능력을 어디서 키우겠어요. 어렸을 때부터 행복한 사람을 봐야 가능하겠죠. 그래서 전 아이들의 행복을 원한다면 엄마들부터 행복해지라고 누누 이 강조합니다.
제가 지금 행복하냐고요? 네, 행복합니다. 워낙 낙천적인 성격이라 아주 힘들 때도 이만하면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아이 키울 땐 ‘지금처럼 행복한 날은 없을 거야’라고 생각했었는데 요즘 생각엔 지금이 가장 행복한 때가 아닌가 싶어요. 솔직히 젊었을 적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 노년이 꽤 행복해서 공연히 송구스럽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꿈이요? 하루하루 체력이 떨어지지는 걸 실감하지만 앞으로도 지금처럼 되도록 많이 돌아다니고, 재미를 추구하고 틈틈이 책 쓰는 것이 꿈입니다.
모든 아이는 특별하다박혜란 저 | 나무를심는사람들
뮤지션, 건축가, 드라마감독으로 세 아들 모두 뛰어난 아티스트로 자라게 한 비결이다. 창의적인 아이로 키우기 위해 부모들이 꼭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이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