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가 방귀를 뀌었다. ‘방이봉방방’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무지개가 방귀를 뀔 수 있을까? 40년 전 일찍이 동요 앨범을 발표했던 ‘산울림’ 김창완이 첫 동시집 『무지개가 뀐 방이봉방방』 을 썼다. 오래 전 안다고 생각했던 ‘동심’이 어쩌면 진짜 동심이 아니었을지 모른다고, 김창완은 말했다. “아이가 어른 같고 어른은 유치하기 짝이 없다”는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이 동시집은 아이에게 전하는 어른의 뒤늦은 반성문 같기도 하다. 동요를 부를 시간을, 동시를 읽을 시간을 주지도 않고 ‘동심’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던 어른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묘수일 지도.
출발역 같은 책
‘무슨 말을 해야 할지......’로 시작하는 서문을 읽고서 ‘김창완의 글이네’ 싶었습니다. 동시에 오늘 인터뷰는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할지’ 고민이 되더군요.
서문을 쓰라고 하는데, 뭔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 말부터 쓰기 시작했어요. 이 책에 실린 시들은 길어야 10분 정도 걸려서 썼어요. 머릿속에서 너무 오래 생각하면 말들이 윤색돼요. ‘멋있어야 하는데?’ 같은 마음이 고개를 들죠. 이 뱀이 고개를 들기 전에 펜을 놓아야 해요. 스스로를 너무 검열하는 태도는 안 좋아요. 거름망이 생기는 거니까요. 거침이 없어야 자연스러워요. 전 요새 비빔밥, 회덮밥도 잘 안 비벼요.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맛으로 먹으면 지겹잖아요.
덕분일까요? 동시집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어요.
보통 책을 내면 종점에 내렸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번 책은 출발역 같아요. 여행을 마친 게 아니라 이제 막 짐을 싸는 느낌이에요. 탈고를 하면 집에 돌아간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았어요. 하기야 제가 동심을 알면 얼마나 알겠어요.
51편의 동시를 찬찬히 읽었는데 기분이 좋아졌어요. 저는 성인 독자이지만 어떤 쾌감도 느꼈고요. 김개미, 김용택 시인을 비롯한 6명의 시인이 추천사를 써주셨는데, 박철 시인의 글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아무려나 김창완은 좋겠다. 본성이 아직 아이라서 쓰면 곧 시가 되니까.” 퍽 긍정이 되더군요.
‘아이 같다’라는 말이 가장 어려운 지점인 것 같아요. 아이가 이럴 것 같다는 것도 어른의 생각이잖아요. 이 선입견이 오히려 동심을 가릴 수 있는 거예요. 동시를 쓰면서 생각한 것은 모든 걸 드러내 보이고 싶다는 마음이었어요. ‘숨기고 싶은 것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해보자’는 마음. 그런데 아이들이 동시를 보고 ‘이건 우리 마음이 아니에요’라고 할지도 몰라요. (웃음)
동시집을 낸 후 아이들을 만나셨나요?
서울과 대구에서 북 토크가 있었는데,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왔어요. 느낌이 많이 달랐죠. 서울에서 만난 아이들은 굉장히 얌전히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대구의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행사장을 막 돌아다니면서 저를 약 올렸어요. (웃음) 우리는 완전히 소통한 거죠.
『무지개가 뀐 방이봉방방』 을 읽고 나서 한번도 들지 않았던 생각이 들었어요. ‘거짓말을 안 하는 어른이 쓴 동시라서 다행이다’.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 동시를 쓰면 안 될 것 같았어요.
동시만 안 쓰면 좋은가요? 그런 사람들은 정치도 안 하고 다른 것들도 안 해야죠.
그렇네요. 동시까지 쓰면 화가 날 것 같네요.
제가 동심을 느낀 건 나이 오십이 넘어서예요. 제가 뭘 좀 아는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죠. 물론 이 생각은 10년 후에 바뀔 수도 있어요. 지금 안다고 생각했는데 진실이 아닐 수도 있어요.
가볍고 유쾌한 시가 있는가 하면 의미를 곱씹을 시도 등장하고요. 이건 어른이 읽어야지 싶은 시도 자주 마주쳤습니다.
기자님이 책에 표시한 시들을 보니까 어른에게 대드는 시를 좋아하시네요. 어른들을 욕 먹이는 시.
밖으로 표출하지 못한 욕망이 있었나 봅니다. (웃음)
독자들이 눈치를 채실 지는 모르겠어요. ‘엄마가 숙제하라고 했는데’로 시작하는 긴 제목의 시는 형식으로 내용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사람들이 재미있대요. 그런데 저는 심오하게 쓴 시예요. (웃음) 사람들에게 “당신의 인생은 뭐냐?”고 물으면 언제 태어났고 어디 학교를 나왔고 무슨 일을 했는지를 말하잖아요? 이것이 자신의 인생 내용이라고 하면서요. 하지만 이게 곧 제목이라는 거예요. 인생 자체는 삶이에요. 각자의 제목이 다를 뿐 삶은 같은 거예요.
동심의 가이드북이길
제목 이야기를 해볼까요? 직접 정하셨다고요.
‘방이봉방방’은 개가 뀌는 방귀 소리를 흉내 내는 의성어입니다. 여기서 ‘개’는 동시 「받아쓰기」에 등장하는 무지개죠. 무지개의 방귀는 해소를 의미하고요. 어찌됐거나 아이들에게 해방감을 주고 싶었어요. 숨기고 있는 것을 드러내서 하나의 경계를 허문다면 넓은 의미의 소통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었어요. 어른이 됐든 아이가 됐든 모두가 유쾌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지은 제목이에요.
이 바람은 시인에게도 이뤄졌나요?
글쎄요. 제가 『삶으로서의 은유』라는 책을 좋아해요. 곡을 쓰거나 연기를 하면서 은유 속에 빠지곤 하는데, 그 은유조차도 틀에 갇힌 익숙한 은유일 때가 많아요. 나를 빗대어 이야기하는 모든 은유가 충분히 익숙해졌을 때, 동심, 동시가 비상구처럼 보였어요. 은유의 늪을 빠져나온 거죠. 빠져나오고 보니 은유의 세계가 자유롭고 풍부해요. 그래서 자꾸 동시를 쓰게 됐어요.
2013년 「할아버지 불알」 「어떻게 참을까?」 외 3편을 동시 전문지 『동시마중』에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올해 「칸 만들기」로 제3회 ‘동시마중 작품상’을 받으셨다고요.
『동시마중』은 격월로 나오는 잡지인데 내용이 너무 좋아요. 이 잡지를 만드는 분들이 진짜 고마운 사람들이에요. 저한테는 영원의 소주 같아요. 꿀 같기도 하고요. 요즘 내가 동시에게 은혜를 입었다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요. 이 은혜를 일깨워준 책이기도 합니다.
「칸 만들기」는 형식을 깨는 작품이에요.
이 시로 말하고 싶었던 건, 내가 정말 갖고 싶은 것은 말로 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어요.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표현하고 싶었죠. 형식을 깨 보고 싶은 욕구가 있었는데, 이 시도는 앞으로도 하고 싶어요.
「나쁜 동시」 이야기도 묻고 싶습니다. “아이들한테는 잘해 주는 게 좋다 / 더 나빠지면 안 되니까” 굉장히 짧은 시인데 뜨끔하더군요.
요즘 아이들은 동시를 안 읽고 가요만 듣잖아요. 이런 현실을 비꼬는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 사실 저는 아이들이 동요를 들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말하면 거부감이 너무 크죠. 산울림의 「금지곡」을 들어보시면 이해가 쉬울 거예요. 동요를 부르도록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말을 어른이 하면 나쁜 말 같으니까요.
대기실 풍경을 묘사한 「대본 읽기」에서는 ‘배우 김창완’의 시선이 보입니다.
화자가 되기도 했다가 관찰자가 되기도 하면서 쓴 시예요. 개인적인 경험을 쓴 시죠. 시가 잘 써질 때는 유체 이탈을 했을 때예요. 스스로를 너무 또렷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을 때는 동시가 잘 안 나와요. 온갖 글쓰기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문학동네 동시집 시리즈는 시인과 그림 작가가 함께 책을 만들어요. 이번 책은 오정택 작가님이 그림을 그리셨고요.
작가님의 그림이 너무 좋아서 한참을 봤어요. 「밤 잡기」라는 시와 함께 놓인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요. 제 마음속을 보고 그린 것 같았어요.
꾸미면 안되요. 안 꾸며도 안되요
3년 전 산문집을 출간했을 때, “나는 내 책이 다른 사람에게 요만큼의 영향을 끼치길 원치 않는다. 영향을 끼치길 원하는 마음은 내 욕심일 수 있다”고 말하셨어요. 지금은 어떤가요? “동시를 통해 동심으로 건너가 보자”는 이야기도 독자에게는 영향일 수 있는데요.
저는 이 책을 ‘동심 가이드북’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나의 동심을 구경하라는 게 아니라, 각자의 동심의 가이드북이길 바라는 거예요. 많은 분들이 산울림의 노래 「기타로 오토바이 타자」를 ‘사이버 세상으로 나아갑시다’는 의미로 이해하는데요. 이 노래는 어떤 메시지가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저 ‘각자의 사이버 세상으로 가세요’라는 거예요. 같은 맥락이에요.
“왜 이렇게 멋있어지고 싶은지 모르겠어요”라는 말도 기억에 남아요. 이런 마음이 생기면 시를 쓰면 안 될까요?
그럼요. 이미 그른 거죠. 그르다는 말은 아이에게 안 좋은 말이긴 해요.
‘배우’라는 직업은 멋있어져야 하잖아요? 꾸며야 하기도 하고요.
그건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해요. 제가 연기하면서 어떤 주문을 외우냐면 “연기하면 안돼 연기하면 안돼”라는 말이에요. 연기는 곧 꾸미는 일이잖아요. 꾸미면서 연기하면 안 되는데, 그렇다고 안 꾸미잖아요? 그럼 아무것도 안되요. (웃음) 매우 애매한 거예요. 굉장히 어려워요. 이건 연기뿐이 아니에요. 노래를 부를 때도 마찬가지예요. 자신으로부터 동떨어져서 그야말로 몰입이 됐을 때, 나를 잊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요. 감독이 “컷”을 외치면서 “죽인다”고 할 때는 막상 내가 뭘 했는지를 몰라요. 반면에 내가 속으로 ‘아, 이거 좋은 표정일 텐데’ 생각하면 좋을 수가 없어요. 노래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건 잘하는 노래가 아니에요. 그때는 공연장에 온 게 아니라 노래방에 온 거죠.
현 시대를 생각해보면 동시는 거짓말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솔직하지 않은 사람이 쓰면 안 되는 장르인 것 같기도 해요. 시인은 솔직해지려고 노력해야 할까요?
솔직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어른들이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해요.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거짓말을 하죠. 어른들이 가장 자주 하는 거짓말은 ‘아, 진짜 사는 게 고달파’라는 말이에요. 실제로 정말 그런가요? 자문해봤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살다 보면 진짜 고달플 때가 있어요. 하지만 매일 그런가요? 한 끼를 굶었다고 그것이 엄청난 비극일까요? 우리가 인생을 과연 정확하게 보고 있는가,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현실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볼 필요가 있어요.
시집은 자주 읽으시나요?
손에 잡히는 대로 닥치는 대로 보고 있어요. 무명 시인이라도 작품이 좋네, 싶으면 읽어요. 예전에는 과학 책을 많이 봤는데 요즘은 TED를 더 많이 봅니다.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컴퓨터 윤리에 관심이 많아요. 자율 자동차 시대가 왔을 때, 사고가 나면 100% 사람의 과실로 판단이 날 거 아니에요? 또 의료 문제도 많아질 거예요. 사람들은 의사를 안 믿겠죠. 이런 여타 문제들이 발생할 때 옳고 그름이 어떻게 판명 날 것인가, 윤리 기준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가, 이런 문제에 관심이 가요.
이 인터뷰를 아마도 어른들이 보겠죠? 동심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는 것, 그조차 귀한 생각이지 않을까 싶어요.
‘아이 속에 어른이 있고 어른 속에 아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어른 같은 아이가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이인 어른, 어른인 아이가 한 몸이 됐으면 좋겠어요. 제가 『무지개가 뀐 방이봉방방』 으로 허리띠를 매줄 테니, ‘어떤 건 어른 모습이고 어떤 건 아이 모습이다’ 이 정도로 생각하면 어떨까요?
1977년 ‘산울림’으로 데뷔, 2008년 ‘김창완밴드’를 결성해 40년 넘게 음악 활동을 해 오고 있다. 틈틈이 동요 앨범을 발표하였으며, 1997년에는 제10회 대한민국 동요 대상 ‘어린이를 사랑하는 가수상’을 받기도 했다.
무지개가 뀐 방이봉방방김창완 글/오정택 그림 | 문학동네
8, 90년대를 기억하는 어른들에게는 반갑고, 노래보다 연기로 더 잘 알고 있을 2019년의 어린이들에게도 그의 첫 동시집은 ‘네 맘이 내 맘’을 담당하는 단짝처럼 다정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