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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주 “쓸데없는 덕질이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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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가방과 분홍색 문구류, 그리고 분홍색 책 표지. 소지품을 보며 조심스레 추측했다. ‘작가님, 분홍색 좋아하시나 봐요.’ 어떻게 알았냐며 되묻는 작가의 표정에서 의아함과 함께 반색하는 기운이 읽혔다. 다시 한 번 책의 제목에 눈길이 머문다.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도 좋아』  , 소설가 조영주의 세계를 더없이 잘 드러내는 문장 같았다. 좋아하는 것들에 흠뻑 빠져들었던, 너무도 좋았던 순간들의 이야기가 책 속에 빼곡했다. <채널예스>에 연재했던 칼럼 ‘조영주의 성공한 덕후’를 바탕으로 쓴 ‘덕질 라이프 에세이’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살아가는 것도 그런 일이 아닐까. 줍고 모으고 쓸 만하게 잘 다듬어서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 어쩌면 소설가 조영주의 ‘덕질’도 그런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모으고 잘 다듬어서 자신만의 이야기로 완성시키는 것. 1년 동안 매일 떡볶이를 먹었다는 작가는 떡볶이에 대한 에세이와 소설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오래도록 덕질해 온 커피, 카페 홈즈, 추리소설이 한 데 어우러진 작품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소설  『홈즈가 보낸 편지』  로 ‘제6회 디지털작가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조영주 작가는 ‘제2회 김승옥문학상’ 신인상, 예스24와 카카오페이지 등 각종 공모전을 섭렵했다. ‘글 쓰는 바리스타’라는 별명으로 불리다  『붉은 소파』  로 ‘제12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전업 소설가가 됐다. 현재 <채널예스>에서 ‘조영주의 적당히 산다’ 칼럼을 연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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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만 파고 들어서 ‘덕후’입니다


첫 번째 에세이입니다. 책에서 “소설을 쓰면서도 소설이 뭔지 잘 모르겠는 나는, 에세이를 쓰자니 에세이도 뭔지 잘 모르겠다”고 하셨어요.


맞습니다, 굉장히 난감했습니다(웃음). 진짜 책을 내게 될지 몰랐거든요. 처음에 쓰려고 했던 에세이 기획은 있었어요. 제가 카페에서 오래 일했으니까, 커피와 바리스타 이야기를 에세이로 써보자는 제안이 있었어요. 열심히 원고를 준비했는데 출간으로 이어지지는 않았고요. 아까워서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엄지혜 기자님이 그걸 보시고 연락을 주셨어요.

 

그때부터 <채널예스>에 ‘조영주의 성공한 덕후’ 칼럼을 연재하게 되신 거예요?


나중에 다시 엄지혜 기자님한테 연락이 왔어요. 제가 ‘세계문학상’을 수상하고 나서 한 지인이 저한테 ‘너 이제 정말 성덕이야’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올렸거든요. 엄지혜 기자님이 그걸 보시고<채널예스>에 ‘성공한 덕후’ 칼럼을 연재하자고 하신 거예요. 반년 정도 칼럼을 쓰고 나서 언젠가는 책으로 내야지 생각했는데 곧 잊어버렸어요. 그리고 ‘세계문학상’ 상금을 받은 뒤에 놀면서 지냈죠(웃음). 정말 2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놀기만 했거든요. 상금 다 떨어지니까 다시 글을 쓰더라고요(웃음). 에세이를 내야 될 것 같은데,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제 칼럼을 봤다면서, 칼럼이랑 블로그에 쓴 글을 모아서 책으로 내면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작년 이맘때 계약을 했어요. 원고가 다 모이는 데 4년 정도 걸린 거죠.

 

세계문학상’ 수상 이후에 놀았다고 하셨는데(웃음), 사람들한테 잊히기 전에 빨리 다음 작품을 내야 된다는 생각은 안 하셨어요?


그랬어야 되는데(웃음)... 정말 우연히 상을 탔던 거라서 아무 계획도 없었고, 책을 계속 써야 되는지도 몰랐어요. 상금 받고서 ‘내 인생에 이렇게 큰 돈을 언제 받아보겠어’ 하고 놀 생각밖에 안 하다가 굉장히 놀랐죠(웃음). 그때 ‘에세이를 써볼까’ 생각은 했었는데, 결국 3년이 걸렸고요(웃음). 올해는 열심히 쓰고 있어요.

 

쓰고 계신 작품은 소설인가요?


올해는 많이 나옵니다. 소설만 2권이 나오는데요. 하나는 ‘혐오자살’(가제)이라고, 혐오 문제에 대해서 쓴 소설이에요. 또 하나는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가 끝났는데 『반전이 없다』라는 ‘카페 홈즈’가 배경인 장편소설이에요. 작년에 ‘카페 홈즈’에 단골로 드나들면서 이곳을 배경으로 장편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하고 집필을 시작했고요. 올해 11월에 출간 예정이에요.

 

‘혐오자살’(가제)은 언제부터 쓰셨어요?


2014년부터 썼어요. 당시에 촛불 시위나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조명이 안 될 때였는데, 그때 오랜만에 최인훈의  『광장』  을 읽었어요. 너무 좋더라고요. 읽고 나니까 혐오 문제에 대해서 써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계속 공부를 했고요. 올해 초에 계약하고 지금 계속 작업하고 있습니다. 제가 게을러서 한 번에 쓰지를 못해요. 도중에 쓰기 싫으면 던져 버리는 스타일이어서. 지금 원고는 세 번째 버전이에요. 앞의 두 개 버전은 쓰다가 버렸는데, 그게 3,000장 정도 돼요.

 

3000매를 버리셨다고요?


네, 저는 소설 쓸 때 보통 3,000매를 버립니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고요. 쓰다 보면 앞부분은 마음에 안 들어서 못 봐주겠어요. 그래서 제가 버리자고 하기도 하고, 편집 과정에서 버리기도 해요. 『붉은 소파』  도 두 번 엎었어요. 세 번째 썼던 원고가 가까스로 상까지 탄 거예요. 저는 늘 그래요(웃음). 『흰 바람벽이 있어』  도 지금까지 5,000~6,000장 버린 것 같아요. 제가 20대 때 우울증이 심각했는데,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를 읽고 깨달음을 얻었어요. 인생은 원래 이런 거구나, 하고. 그때부터 이 시를 가지고 글을 쓰고 싶었어요. 시에 따라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이야기를 쓰겠다고 결심했는데, 그게 2004년이에요. 아직까지 못 쓰고 있죠. 언젠가는 쓸 겁니다(웃음). 거의 다 된 것 같아요(웃음).

 

요즘 ‘덕질’하고 계신 대상은 뭐예요?


떡볶이입니다. 오직 떡볶이(웃음). 덕후는 한 가지만 파고들기 때문에 덕후예요. 저도 한 번에 하나씩만 팝니다. 2010년에는 해골에 꽂혔었어요. 해골 가디건, 해골 가방, 해골 머리띠, 해골 모자... 해골과 관련된 물건이 되게 많았어요. ‘해골녀’로 TV에 출연할 뻔 한 적도 있고요. 그때는 되게 말랐을 때라 모습도 해골 같았어요. 가끔 스트레스 받으면 온 몸을 해골로 휘감고 외출하고, 그러면 사람들이 다 쳐다보고 그랬죠.

 

해골에 빠지신 건, 어떤 계기가 있었어요?


이유가 없습니다. 늘 어느 날 갑자기 좋아집니다. 그 다음에는 리락쿠마에 꽂혔었어요. 한 2년 정도 덕질을 했는데, 당시에 친구들이 해외에 갈 때마다 리락쿠마를 사다 줬어요.

 

보통 ‘덕질’ 기간은 얼마나 되나요?


1~2년 정도 되는 것 같고요. 짧으면 3개월 정도 지나서 끝나는데, 그렇게 짧게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작가도 한 명한테 꽂히면 되게 오래 가요. 정유정 작가님 책은 당연히 나올 때마다 다 모으고 있고요. 미야베 미유키 책도 다 모으고 있어요. 저는 서재의 모든 책을 작가별로 꽂아놔요. 마스다 미리 책이 한 칸을 차지하고 있고, 미야베 미유키 책만 해도 세 줄이에요. 마쓰모토 세이초, 김영하, 김탁환, 정유정, 헤밍웨이... 다 작가별로 나뉘어져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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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되기 전에는 글 쓰는 게 재밌었어요


가장 오래 ‘덕질’하신 대상은 ‘책’일까요?


그렇죠. 만화책 같은 경우에는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해서 여전히 끊임없이 보고 있고요. 이렇게 계속 이어질지 몰랐어요.

 

아버님께서 만화가이시죠?


네, 지금은 안 그리십니다.

 

“빨랫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아버지의 만화 원고”가 인생 최초의 기억이라고 하셨어요.


그때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그때 저희가 반지하에 살고 있었는데, 밖에서 동네 언니들이 고무줄놀이 하는 소리가 들리고, 빨랫줄에 매달린 원고를 봤던 기억이 나요. 나중에 엄마한테 물어봤더니 장마철이라 매달아 놨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원고가 잘 안 마르니까요.

 

만화가가 되고 싶지는 않으셨어요?


제가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사실 아버지 때문이에요. 여섯 살 때 집에 앉아서 낙서를 하고 있었는데 옆에서 아버지가 보시더니 ‘넌 그림에 소질이 없구나’ 그러시는 거예요(웃음). 그때 저는 되게 진지하게 ‘나는 그림에 소질이 없으니 다른 재주를 찾아야 돼’라고 생각했어요(웃음). 그러고 나서 1년쯤 지나서 처음으로 시를 썼는데요. 학교에서 시화전을 한다고 한 편씩 내라고 했었어요. 시가 뭔지도 모르고 쓰고 있는데, 아버지가 보시더니 ‘글에는 재능이 있군’ 하시는 거예요. 그 순간 제 꿈은 작가가 된 거죠. ‘내가 글은 잘 쓰나 보다, 그러면 글을 써서 먹고 살아야지’ 하고. 

 

등단 전까지는, 글쓰기가 어렵게 느껴지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맞아요. 그 전까지는 글을 쓰는 게 되게 즐겁고 재밌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작가가 되고 나니까 진짜 싫더라고요(웃음). 이전에는 고치는 일이 없었잖아요. 뭘 쓰든, 내 마음대로 써도 누가 뭐라고 안 하고요. 그런데 돈을 받는 ‘일’이 되니까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게 됐어요. 글을 쓰는 게 싫고 재미가 없어지기도 했어요.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셨죠. 합평회 하면 날 선 비판들이 오고가는데(웃음), 그때는 어떠셨어요?


그때 욕 많이 먹었습니다(웃음). 항상 듣는 말이 있었어요. 너무 대충 쓴다, 성의 없게 쓴다... 그런데 그건 사실이었어요. 그때 저는 고민하는 방법을 아예 몰랐거든요. 사는 데 주제의식이 없었어요. 그냥 써서 재밌으면 된다고 생각할 때였어요. 왜 그렇게 주제의식이 없냐고, 주제의식 좀 가지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요. 그래서 잠입 취재도 하게 된 거였어요. 어떻게든 현실 감각을 기르려고요. 그런데 아무래도 잘 안 되더라고요.

 

추리소설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하시기 전이었나요?


네. 그래서 다 포기했었는데, 우연히 남산 도서관에 갔다가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  를 봤어요. 이달의 추천도서로 선정된 책이었는데 한 달 동안 아무도 안 빌려가더라고요. 그래서 궁금해서 빌려봤어요. 처음에는 재미가 없었는데 100쪽부터 재밌어졌어요. 나머지는 밤을 새면서 읽었죠. 그러고 나서 ‘추리소설이 이런 거라면, 추리소설을 쓰고 싶다’고 결심했어요. 그때는 계속 영화 시나리오를 쓰라고 연락을 받을 때였는데, 제가 단호하게 ‘저는 오늘부터 추리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으니까, 영화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말했어요.

 

이후부터 추리소설가가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셨고요.


일단 미야베 미유키 소설들을 다 읽었고, 미야베 미유키가 추천한 책도 다 읽게 됐어요. 마침 미야베 미유키 책만 출간하는 출판사가 있었는데, 그게 북스피어였어요. 출판사 블로그에 추천도서로 올라오는 책은 다 읽었고, 3년 동안 끊임없이 소설을 읽었어요. 처음으로 추리소설을 써서 북스피어에 투고했는데, 일본 소설만 출간하는 곳이다 보니까 출판은 안 됐고요. 그래도 북스피어에서 추천하는 책은 다 사서 읽고, 매일 리뷰를 쓰고, 행사하면 찾아가고 그랬어요. 그러다 보니까 어느 날 갑자기 상을 타더라고요.

 

대학 졸업 후에는 시나리오를 쓰셨어요?


네, 입봉을 되게 빨리 했거든요. 2002년에 영화 시나리오가 TV 특집극으로 나왔어요. 사실 제가 그 전에 김영하 작가님을 뵀는데, 저희 학교에 특강을 오셨었어요.  『아랑은 왜』   발표하셨을 땐데, 저희한테 숙제를 내주셨어요.  『아랑은 왜』  를 읽고 시나리오로 써오라고요. 저도 열심히 써서 냈는데, 김영하 작가님이 보시고 칭찬을 해주셨어요. 너무 재밌었다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개적인 자리에서 잘 썼다는 칭찬을 받은 거였어요. 너무 감동 받아서 약간 울었어요. 저한테 재능이 있다고, 시나리오를 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에 꽂힌 거죠(웃음). 그날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어요. 너무 신이 나서 미친 듯이 썼어요. 1년 동안 100편 정도를 썼으니까요. 끊임없이 써서 투고를 했는데, 그렇게 1년이 지나니까 특집극을 하자는 연락이 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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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소파』, 세 번 거절당한 원고였어요


데뷔작  『홈즈가 보낸 편지』  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장충동 카페에서 일하고 있을 때, 정명섭 작가님이 제가 인터넷에 올린 글을 보시고 찾아오셨었어요. 그때 작가님은 파주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계셨어요. 나도 일하면서 투고했다고, 내가 볼 때는 네가 글을 잘 쓴다고, 잘 될 거라고, 그런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그리고 계속 기회를 주셨는데, 제가 인지도가 없으니까 작가님이 소개를 해주셔도 계약이 안 되더라고요. 그러다가 ‘디지털 작가상이라는 게 있는데 한 번 내 봐라, 좋은 기회인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때 저는 쓰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그 말을 듣고 잊어버렸어요. 저는 평생 작가 지망생으로 살다가 죽을 줄 알았지, 작가가 될지 몰랐거든요. 그런데 그 해에 <셜록>이 방영을 했어요. 너무 재밌더라고요. <셜록> 같은 작품을 쓰고 싶었어요. 정말 쓰고 싶은 게 생긴 거죠. 그래서 쓰게 된 게  『홈즈가 보낸 편지』  예요.

 

이 작품으로 ‘제6회 대한민국디지털작가상’ 우수상을 수상하셨죠.


처음에는 ‘웹진 판타스틱’이라는 카페에서 연재를 했어요. 5개월 동안 쓰다 보니까 원고가 600장이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다른 글과는 다르게, 뭔가 잘 쓴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책으로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하다가, 정명섭 작가님이 말씀해주셨던 공모전이 생각난 거죠. 찾아봤더니 마침 공모 기간이었어요. 예스24와 매일경제에서 같이 주최를 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전화가 오더라고요. 제가 상을 탔다고. 그렇게 데뷔한 거예요.

 

‘세계문학상’ 수상 때는 “주최 측의 실수였다고 사과 전화가 오는 상상”을 하셨다고요(웃음).


잘 썼다는 감각이 없었거든요. 그게 출판사에서 계약 파기 당했던 원고였어요. 모 출판사와 계약을 해서 진행을 했었는데, 세 번 원고를 써서 거절당했었어요. 결국 계약을 파기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는데, 그게 12월 22일이었어요. 그런데 그 다음 날이 ‘세계문학상’ 마감일이었거든요. 출판사에 연락해서 충동적으로 계약 파기하자고 말하고 다음 날 문학상에 투고를 했는데, 당선될 거라는 생각을 하나도 안 했어요. 세 번이나 거절을 당했으니까 자신감이 없었던 거죠. 그러다가 당선됐다는 전화를 받으니까, 계속 의심이 드는 거죠(웃음). ‘이건 뭔가 잘못된 거다, 조금 있으면 당선이 취소될 거다’(웃음). 시상식 때까지도 그랬어요. 그 다음 날 상금이 입금 된 걸 확인하고 나서야 ‘됐어, 이제 당선이 취소되는 일은 없을 거야’ 하고 그때부터 안심하고 놀았죠(웃음). 아직도 그때 일은 꿈 같아요.

 

“소설을 쓰는 일은 늘 어렵다”, “나는 또 도망치고 싶어진다”고 쓰셨어요. 지금도 그러세요?


맞습니다. 여전히 한 번에 원고가 O.K. 되는 일이 없어요. 단편을 하나 쓰면 최소 두 번은 거절당해요. 단편집  『카페 홈즈에 가면?』  의 원고도 처음 쓴 건 주변 반응이 좋지 않았어요. 다 엎고 새로 썼어요.

 

그렇게 힘든데 왜 계속 쓰는 걸까요?


아버지가 만화가라서 그런지, 저는 어렸을 때 돈을 벌려면 글을 써야 되는 줄 알았어요. 아버지 친구들이 다 만화가니까, 주변에 만화가들밖에 없었던 거예요. 집에 가보면 다 글을 쓰고 있는 거죠.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하루 종일 글을 쓰고 있는 줄 알았어요. 중학교 때 친구 집에 갔다가 ‘왜 너희 아버지는 글 안 써?’ 하고 물어본 적도 있어요. 그 친구 아버지는 은행에서 일하시는 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글을 안 쓰시는 걸 보고 정말 놀랐었거든요. 아무튼 저는 글을 써야 돈을 벌 수 있는 줄 알았고, 그래서 계속 글을 썼어요. 고등학생 때도 처음 소설을 써서 교내 문학상을 받고, 덕분에 학비 면제를 받아서 계속 학교를 다녔거든요. 그때 저희 집이 굉장히 어려울 때라서 전화, 전기, 가스가 끊어졌었어요. 그때 그런 생각을 했죠. 글을 쓰면 돈을 준다, 빨리 글을 써야 된다. 이후에 대학에 가서도 글 쓰는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10년 넘게 바리스타로 일하셨잖아요. 그래도 ‘나는 글을 써서 돈을 벌어야 돼’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나요?


중간부터 바뀌었어요(웃음). 바리스타 일을 해봤더니 너무 재밌는 거예요. 딱 제 적성에 맞았어요. 스트레스도 안 받고 행복하더라고요. 계속 바리스타 일을 하려고 했어요. 그때부터 삶을 길게 보게 되고 서서히 주제의식이 생겨났어요. ‘지금부터 조금씩 소설을 쓰다 보면, 인생에 소설 한 편쯤은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 뒤로 4년쯤 지난 후에 추리소설을 읽고 처음으로 삶의 목표가 생겼죠. 그 전까지는 글을 써서 돈을 벌겠다는 게 목표였지, 위대한 작품을 쓰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막연하게 ‘나도 헤르만 헤세처럼 되고 싶어’라는 생각은 했지만, 뭘 해야 될지 몰랐어요. 『붉은 소파』  를 쓰고 난 뒤에도 그랬어요. 정말 영혼이 탈수된 기분이었어요. 이제 뭘 써야 될지 모르겠고, 잘 써야 될 것 같은 생각이 강했어요. 그걸 깨는 데 되게 오래 걸렸어요. 무서워서 가명으로 소설을 쓰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긴장이 조금씩 풀리면서 작년 초부터 서서히 쓸 수 있게 됐어요.

 

‘덕후’로 사는 것이 글쓰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그게 없으면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는 것 같아요. 이건 정말 솔직한 이야기인데, 저는 늘 아이디어가 안 떠올라요. 멍한 상태예요. 그러다가 소설을 써야 되는 상황이 오면 그때부터 고민을 해요. 처음에 쓴 원고는 대부분 거절당하는데, 억지로 써서 그래요. 그런데 한 번 거절당하고 나면 진지해지죠. 계속 그 생각을 해요. 하루에 한 권씩 소설책을 읽고, 넷플릭스도 보고, 그런 시간들이 쌓이고 쌓이다가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작가마다 타입이 다른데, 저는 한계에 치달을 때까지 뭔가에 푹 빠져있어야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타입인 것 같아요. 제가 고생을 하는 만큼 독자가 재밌다고 느끼는 것 같고요. 그게 너무 신기해요. 어떻게 아시는지, 제가 대충 쓴 건 다들 재미없다고 해요.

 

‘세상에 쓸데없는 덕질은 없다’고 생각하세요?


네. 제가 최근에 ‘조영주의 적당히 산다’에 직선무늬 떡살에 대한 글을 썼는데요. 『앤티크 수집미학』  이라는 책을 쓰신 박영택 선생님이라고 계세요. 온갖 잡다한 것들을 모으는 수집벽이 있으신 분인데, 자신이 과거에 정말 쓸데없는 물건들을 모아온 이야기를 책에 쓰셨어요. 그러다가 결국 앤티크를 모으게 되셨다고 하고요. 제가 그 이야기를 들으러 갔다가 격하게 감동을 받아서, 직선무늬 떡살을 모으고 싶어졌어요.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덕분에 좀비 소설을 쓸 수 있게 됐어요. 좀비 앤솔로지 원고를 마감해야 되는데, 거의 다 썼는데 아이디어가 안 떠올라서 끝이 안 났었거든요. 그런데 박영택 선생님 이야기 덕분에 ‘앤티크 도끼를 쓰는 좀비’를 등장시키게 됐어요. ‘도끼 자루가 썩을 정도로 오랜 시간 좀비였다면, 앤티크 도끼를 굉장히 아낄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 거예요. 그 날 박영택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러 가지 않았다면 ‘앤티크 도끼를 쓰는 좀비’는 쓸 수 없었을 거예요.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도 좋아조영주 저 | Lik-it(라이킷)
소소하고 깨알 같은 일상 속 에피소드를 따라가다 보면 조금은 별나 보이는 덕후의 삶에 한걸음 가까워지는 것은 물론, 어릴 적부터 글쓰기를 동경하고 책을 가까이하며 ‘좋아하는 마음’을 지켜온 작가의 진심에 어느덧 빠져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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