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ne Kim
Tweet. 작은 새가 우는 소리 ‘짹짹’. 140자로 제한되는 트윗을 고 황현산 문학평론가는 각별하게 여겼다. 2014년 11월 8일부터 2018년 6월 25일까지, 총 8,554개의 트윗을 남긴 황현산. 언젠가 김민정 시인은 그에게 물었다. “트위터를 왜 하시는 거예요?” 선생은 답했다.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2019년 8월 8일. 고 황현산 선생의 1주기를 맞아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가 출간됐다. 문학평론가의 트윗 모음집이라니. 전무후무할 것 같은 이 책의 뒷이야기가 궁금했다.
모든 사람에게 배울 준비로 제 온몸을 열었던 공간
고 황현산 문학평론가의 첫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 가 출간된 해가 2016년이죠. 편집자와 저자로 만나기 전에도 인연이 있었나요?
첫 만남은 기억이 안 나요. 제가 『문예중앙』에서 일하기 시작한 2003년 말부터 오가며 뵈었던 것 같은데 메일을 뒤져보니 친근한 편지는 2005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주고 받았더라고요. 그때부터 시집 해설이며 추천사, 문학상 심사 등 많은 일을 함께 시작했던 것 같아요.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 눈으로 제목을 읽었을 뿐인데, 책 한 권을 다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한 문장으로 한 사람을 파악할 수 있을 때가 있잖아요.
원래 제목 짓는 스트레스가 별로 없는 편인데요. 이번 책은 너무 힘들었어요. 책 내용이 엄청 방대하면서도 실은 잡다하잖아요. 방향을 잡기 너무 어려운 거예요. 표지로 삼은 팀 아이텔(Tim Eitel)의 그림은 작년부터 정해뒀는데, 7월 초순까지 제목이 안 나왔어요. 어느 토요일 오후엔가 교정을 보다가 너무 답답해서 와인 한 병을 마시고 취해 잤어요. 찔끔찔끔 울다가요. 그렇게 자다 깼는데 어디선가 선생님 말소리가 들리는 기분이 드는 거예요. 두리번거렸죠. 당연히 아무도 없었는데 느낌이 이상해요. 교정지를 다시 봤죠. 600쪽 언저리였는데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이 문장이 들어차 있었어요. 보고 또 봤는데 안 보이던 문장이 소리로 들려요. 음성 지원되는 느낌이요. 평소 선생님이 자주 하신 말씀인데 제가 잊고 있던 거죠. 이거다 싶어서 밑줄을 긋고, 미국에 있는 선생님의 아들에게도 보냈어요. “딱 아버지 목소리”라고 해요. 선생님이 다녀 가셨구나, 싶었어요.
2018년 2월 25일 지인의 결혼식에 갔다가 호텔에서 받은 꽃을 들고 고대 안암병원으로 갔던 일요일. 사모님이 여보, 들고 한 장 찍어요, 해서 내가 찍어드릴 수 있던 날.
암 투병 중에도 완전히 기력을 잃으시기 전까지 트위터에 마음을 많이 쓰신 걸로 알아요.
애정이 너무 많으셨어요.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신 게 8월 8일이니까 근 한 달만 놓으셨던 거잖아요. 선생님 살아 계실 때 제가 트위터 좀 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뜯어말렸나 몰라요. 사실 트윗이라는 글이 140자로 한정되다 보니까 예리하게 깎여서 빗금으로 이해가 되어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하잖아요. 아프셨고, 쉬셨으면 좋겠고 하니 제발 좀 그만 좀 하시라고 해도 말을 안 들으셨어요. 사실 저도 뭐 들여다보면 재밌기도 하고 하니까 저 말의 흥이라는 게 한층 올랐나보다 어느 순간 포기했죠.
트위터로 소통도 각별하게 하셨으니까요.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저 혼자 남아 이 책을 만들다 보니 이제야 알겠어요. 선생님의 이런저런 말씀들이 필요한 순간들 제가 닥치더라고요. 부지불식간에 아무 쪽이나 펼쳤는데, 몰라서 답답했고 막막했던 답이 막 거기 있어요. 밑줄 긋고 휴대폰 메모창에 적어서 갖고 다니면서 봤어요. 선생이었구나, 우리 선생님이. 그렇게 당신이 필요할 때 선생이 되어 주려고 저걸 글쎄 그렇게 붙들고 했구나, 싶었어요.
돌아가실 때도 실은 저는 입술 깨물고 별로 안 울었거든요. ‘너 정말 슬퍼서 우는 거냐, 오버인지 아닌지 냉정하게 생각해라’, 저 자신에게 차갑게 되묻고 그러면서요. 그런데 책 만들면서 엄청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나한테 너무 필요한 사람이라서, 근데 없어서. 선생님이 생각하는 트위터에 대한 생각은 선생님의 아들 황일우 교수의 글이 정확하게 관통하고 있는 것 같아요. “나이와 직위에 상관없이 ‘트친’으로 수평적 관계를 맺는 공간이어서 모든 사람에게 배울 준비로 제 온몸을 열었던 공간.”
서문도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너무 좋은 글이라 여러 번 읽었습니다.
유족 가운데 한 사람이 무조건 써야 한다는 생각 속에 있었어요. 특히나 이 책은 가족들이 참 많이 기다렸던 책이기도 했거든요. 당연히 그런 아들이 써야 한다고 생각했고, 서문을 받아 읽고는 제가 미친 답장을 보냈죠. “넌 무슨 글을 이렇게 잘 쓰니, 아 눈물 나.” 자신의 아버지를 두고 이렇게나 객관적 거리감을 팽팽하게 유지하는 글을 써낼 수 있다니, 참고로 황일우 교수는 ‘난다’의 필자이기도 해요. ‘걸어본다 필라델피아’를 쓰자고 계약한 것이 4년쯤 되었네요. 선생님이 목포를, 일우가 필라델피아를 써서 '걸어본다' 부자 특집을 내자고 했었거든요.
2017년 11월 17일 성북예술창작터에서 열린 성북구 문인사 기획전 황현산 편 『밤이 선생이다』 에서 선생님과 함께.
우릴 안 흘릴 거라는 믿음
1주기에 딱 맞춰 책을 만들었어요.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평소 저는 이게 맞는지 틀린 건지 사람들에게 잘 물어봐요. 그런데 대답해 줄 선생님이 안 계시니까 너무 무서운 거예요. 제가 잘못된 길로 갈까 봐, 그것도 모르고 막 갈까 봐, 되돌아올 수 없을까 봐, 선생님을 잘못된 자리에 책으로 앉힐까 봐. 수도 없이 혼잣말로 선생님 많이 찾았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알았죠. 앞서 선생님 책( 『밤이 선생이다』 ,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을 만들 때마다 들기름 볶듯 들들 선생님 참 볶아댔다는 걸요. 내 무서움은 내 책임의 비대함에 비례한다는 것도 알았고요.
668쪽 환양장본이에요. 묵직하면서도 경쾌한 느낌인데요. 어떤 꼴을 상상했나요?
트윗을 모은 책이니까요. 트위터의 상징성이 스미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트윗은 수정이 불가하잖아요. 트윗을 올린 연월시가 상당히 중요하잖아요. 일기를 모은 것이 아니라 트윗을 모은 것이다, 하면 그게 쓰인 해와 달과 요일과 시간이 머리에 오는 게 맡겠다 싶은 거예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이 포맷을 잡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2014년부터 2018년까지의 기록이니 읽어나가는 데 있어 부담이 될 것 같아서 매달마다 끊어 표제지를 넣었어요. 그 표제지는 제가 그 달에 읽은 것 가운데 되새기고 싶은 것을 표시해 두었다가 넣었고요. 슬픈 것이 그 표제지가 뒤로 갈수록 되게 잦게 등장해요. 선생님 트윗의 수가 점점 줄었다는 얘기는 선생님이 트위터에 들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얘기죠. 마지막 2018년은 표제지가 딱 한 장이어요. 기본적으로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리트윗과 멘션을 빼자 작정을 했는데 그럼에도 분량이 방대했어요. 트위터는 가벼움이 생명인데 종이를 업으려니 양장을 안 할 수는 없고 해서 합지를 700그램짜리 얇은 것으로 댔어요. 어떻게든 무게를 줄이려 했지요.
이번 표지도 역시 팀 아이텔(Tim Eitel)의 그림이에요. 어떻게 이렇게 책과 어울리는 그림을 고를 수 있는지, 항상 놀라워요.
선생님 책은 웬만하면 팀 아이텔과의 협업으로 계속 이어 나가자, 작정을 했던 터였어요. 이 합이요, 이 맞아 떨어짐이요, 뭐 어찌할 수가 없더라고요. 1주기를 맞아 복간을 했던 평론집 『잘 표현된 불행』 역시 표지 그림으로 미리 골라두고 있던 참이었어요. 팀 아이텔의 한국 첫 전시 때 도록의 표지 그림이기도 했지요 .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에 쓰인 그림은 ‘블루 백’이라는 제목인데 그림 속 저 어른이, 저 남자가 선생님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가벼워 보여서요. 가뿐해 보여서요. 그런데 아들은 그 그림을 보자마자 그러더라고요. “아버지 가발 쓰고 다닐 때 모습이네. 몇 달 동안 가발 참 애정했는데.” 어떤 식으로든 선생님이라면 그게 맞겠지 않나 했어요. 팀 아이텔에게 너무 고맙기도 해요.
“잔인함은 약한 자들에게서 나올 때가 많다. 세상에는 울면서 강하게 사는 자가 많다”가 많이 회차되기도 했습니다. 편집자님이 가장 좋아하는 트윗 두 개를 꼽아주시고 이유를 말씀해주신다면요?
“오늘은 세월호 참사 1주기다. 1년 중에 애국가를 부르지 않고 태극기를 달지 않고, 나라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날이 하루쯤 있어야 한다. 오늘을 그날로 정하는 것이 옳겠다.”
세월호의 참사의 비통함과 애통함을 어른의 도리로 오래 아파한 끝에 내놓은 실천적 대안이라는 확신이 들어요. 정말이지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명랑하기는 성격만으로 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명랑하기는 윤리이기도 할 것이다. 늘 희망을 가지려고 애쓰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해야만 명랑할 수 있지 않을까.”
웃는 척하며 사는 게 너무 힘들다며 투정을 부린 어느 날이 있었는데요. 선생님이 이 트윗의 긴 버전의 글을 메일로 주신 적이 있었어요. 한동안 제 이름은 김명랑이야, 하며 뻐기고 다니곤 했어요.
2012년 출간됐던 평론집 『잘 표현된 불행』 도 복간했어요. 쌍둥이처럼 두 책이 같은 날 나와서 반가웠어요.
출간 당시 제가 밑줄 그어가며 엄청 읽어댔던 평론집이에요. 평론인데 뭐 이렇게 아름답지, 어떻게 이렇게 평론을 쓸 수가 있지. 이번에도 책 만드는데 함께 일하는 후배가 그래요. “교정을 봐야 하는데 텍스트에 매료되어 구절을 그냥 읽고 앉았다”고. “좋아서 미치겠다”고. 선생님의 평론은 그랬어요. 선생님이 다룬 텍스트의 주체들을 어느 순간 다 잊어요. 잊거나 말거나 선생님 글에만 매달려가요. 대롱대롱. 근데 겁이 안 나요. 선생님이 우릴 안 흘릴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2018년 5월 12일 비 내리던 토요일. 함께 점심을 먹고 포천 작업실로 들어가던 선생님과 나의 뒤를 이원 시인이 봐주었다.
넓은 공부와 깊은 유머
고 황현산 선생님의 1주기를 두 책의 출간 기념회와 겸해 특별하게 열었어요. 어떤 자리로 만들고 싶었나요?
선생님 장례식을 조촐하게 치렀어요. 유족의 뜻이기도 했고 우리도 다 경황이 없었고요. 해서 발인 때 문인들을 위주로 한 아주 작은 추도식을 했는데 그게 두고두고 제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선생님 좋아했던 독자들 많았는데 그들도 와서 가시는 길 봤으면 좋았을 텐데. 그 마음 끝에 한번 맘껏 열어놔 보자 하는 마음을 먹게 되었지요. 선생님 스타일이 뭔가 하면 도통 사람을 안 가렸으니까, 그래 내가 그걸 한번 해보자.
콘셉트는 ‘봄의 과수원’이었다고요.
가장 아름다운 그곳이 봄의 과수원 아니겠나. 선생님이 부디 그런 곳에 계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루미의 시처럼 꽃과 술과 초와 선생님을 대신하는 책이 비벼진 공간으로 사람들을 초대해봤어요. 8월 8일 단 8시간 동안 선생님의 방을 재현해보자, 그리고 8시에 아주 훈훈한 추도식을 해보자. 없던 방을 있던 방으로 만드는 상상 속에 이게 될까 이게 말이 되나 그럼에도 선생님이 이걸 시키고 있는 거다, 선생님이 원하는 게 이런 걸 거다, 밑도 끝도 없는 행보로 분주히 움직여봤는데요, 정말이지 많은 사람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도와줬어요. 얼굴도 모르는 황현산 선생님을 위해 그의 책을 읽어본 게 다였던 이들이 제 일처럼 새벽부터 뛰어와 황현산의 방을 재현해주었지요. 소나무를 짓이겨 방 안에 향을 풍기게 하는 일로부터 방은 시작되었는데 다른 건 말고라도 헌화용 장미 400송이를 그 아침에 다 다듬었던 일은 두고두고 기억날 것 같아요. 그 장미마다 헌화하는 이의 이름을 써 붙이게 함으로 선생님께 정말 장미를 드리게 되었잖아요. 선생님의 1주기는 선생님에게 장미 줄라고 모인 날, 이렇게 기억하게 될 것 같아요.
2019년 8월 8월 황현산 선생님 1주기를 맞아 열린 『황현산의 방, 황현산의 밤』. 정릉과 포천 선생의 서재를 합정동으로 옮겨봤던 8시간이었다.
편집자와 저자로 만난 인연이 가장 깊잖아요. 저자로서 황현산 선생님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이었나요?
저한테 도통 뭐라고 하신 적이 없어요. 틀려도 괜찮다, 늦어도 그럴 수 있다, 그렇다면 네가 옳은 거다, 하여간에 어쩜 저렇게 저런 순간에도 저런 말을 할 수가 있는 거지 싶게 아주 부드럽게 제 등을 툭툭 치며 저를 일어나서 뛰게 하는 말들을 내뱉는데 그럴 때마다 저는 묘하게도 자신감을 갖게 됐어요. 책임감을 절로 입게 됐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달려라 하니처럼 머리에 질끈 끈 묶고 내 발동에 못 이겨서 막 달릴 준비를 하는 거예요. 나도 몰랐던 내 안의 무한 에너지를 발견하게 만들어주는 저자, 흔치 않지요. 그 태도에 대해서만은 저도 꽤 닮으려 배우려 훔치려 노력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물론 흉내에 불과하지만 뼛속까지는 불가하다는 걸 이미 알기도 알았지만.
선생님의 가장 닮고 싶은 부분은요?
넓은 공부와 깊은 유머요. 제 유머는 지랄 맞은 1차원적인 웃음 유발이라면 선생님 유머는 차원을 가늠할 수 없는 웃음 유발인데 솔직히 유머가 꽈배기 같다는 생각 많이 했어요. 배배 꼬인 거 있잖아요. 어묵으로 쳐도 이것저것 많이 꽂혀 있는 그거. 저는 그냥 한 줄짜리 어묵이요. 직선으로 꽂혀 있는 그렇게 누워 있는 막대기 어묵.
편집자로서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는 어떤 책으로 기억될까요?
황현산 선생님은 1945년에 태어나 굴곡진 한국사를 몸소 겪어낸 특히나 남자인데 이 책을 보면 그런 성을 다분히 초월하거든요. 그러니까 유연성이 있거든요. 하여간에 자유자재로 휘어요. 말하고 있지만 들으려는 자세가 더 다분해요. 사람들이 눈이 아니라 귀를 자주 갖다 대는 책이었으면 좋겠어요. 가까이 하다 보면 정말이지 선생님의 말소리가 들리거든요. 외워서 아는 게 아니라 들려서 기억하게 되는 뉘앙스요. 그러면요? 사는 일에 덜 무서워지고 덜 외로워집니다.
어떤 분들께 특히 이 책이 가닿으면 좋을까요?
황현산 선생님의 이전 저작들이 어려워서 못 읽었다고 하신 분들이 꽤 계셨어요. 하고 싶은 말의 요지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회사로 항의 전화를 해오신 분도 있었고요. 트윗 모음집부터 보면 좀 수월하지 않을까 싶어요. 일단 짧고요, 무엇보다 재밌거든요. 아닌가, 나만 그런가(웃음). 아무튼 전 그 재미 찾느라 여전히 보고 또 봐요. 책이 주는 재미만큼 번짐의 파장이 빠르고 깊은 게 또 있나 싶거든요. 그 재미란 걸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다 보면 좋겠어요.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황현산 저 | 난다
우리만 만져보는 일로 생과 사를 구분하게도 해주는 한 권을 선보인다. 생전에 선생이 애정으로 재미로 책임으로 줄기차게 기록해왔던 트위터의 글들을 모아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