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방문 앞에서 노크를 해야 할지, 말을 걸어도 될지 서성거리게 된다면? 자녀의 사춘기를 감지한 것이다. 좋은 대화법을 그토록 공부했는데, 사춘기에 접어든 내 아이에게는 적용이 안 된다면? 아이의 마음을 여는 대화법을 공부해야 한다. 『엄마의 말 공부』 , 『따뜻하고 단단한 훈육』 , 『상처 주는 것도 습관이다』 로 유명한 이임숙 맑은숲아동청소년상담센터 소장은 “아이를 보는 부모의 시각이 달라져야 아이의 행동이 변할 수 있다”고 말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사회조사보고서’를 보면, 13~18세 청소년들의 가장 큰 고민은 공부(47.3%), 외모(13.1%), 직업(12.3%) 순이다. 19~24세로 접어들면 가장 큰 고민은 공부에서 직업 문제(45.1%)로 넘어간다. 이임숙 소장은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아이 자신의 마음보다 더 간절할 거라는 생각은 오해”라며, “아이보다 늘 앞서가며 무작정 끌어당겨야 한다고 여기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아이의 방문을 열기 전에』 는 수많은 아동, 청소년을 상담하며 ‘청소년과의 대화는 달라야 한다’는 믿음으로 공들여 쓴 책이다.
이임숙 소장과 1년 반 동안 상담한 한 청소년은 말했다. “선생님은 제게 유일하게 혼란을 준 사람이에요. 억지로 강요하지 않았어요. 제가 힘들다고 하면 선생님은 늘, 다른 걸 생각하게 해주셨어요.” 어떤 대화법을 썼길래 이임숙 소장은 이 청소년의 마음을 열 수 있었을까. 진심으로 아이를 인정하고 수용해주고 단단한 진심과 따뜻함으로 들어주고 또한 기다려줬기 때문이다.
사춘기 아이들과 대화하려면 일단 멈춰야 해요
청소년 대화법에 관한 책은 처음입니다.
구상은 오래 전부터 했어요. 좋은 대화법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에게는 적용이 잘 안 돼요. 따로 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에 출판사에서 제안을 주셔서 쓰게 됐어요.
표지에 아이의 방 앞에 앉아서 고민하는 엄마의 모습이 그려져 있어요.
강의할 때 자주 하는 이야기인데요. 아이가 사춘기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방법은 아이의 방문 앞에 서서 노크를 세게 할까, 하지 말까 고민된다면 내 아이의 사춘기를 감지한 거예요.
프롤로그가 이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내가 만약 열다섯 살로 돌아간다면, 나는 나의 부모님께 어떤 도움을 청하고 싶을까?” 부모들이 꼭 한번 자문자답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어릴 때 부모에게 바랐던 것들이 있잖아요. 그 부모의 역할을 10대가 된 우리 아이에게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부모님이 제 말에 진심으로 관심을 주길, 조금이라도 노력하고 잘하는 걸 인정해 주길, 공부를 좋아해주는 아이로 키워 주길, 관심 있는 일에 미친 듯이 빠져 보도록 허락해 주기를 바랐거든요.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말리지 않는 것도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니까요.
1장은 ‘사춘기의 이유’, 2장은 ‘부모가 꼭 알아야 할 청소년 심리 5가지’, 3장은 ‘청소년과의 아주 특별한 대화법 5가지’가 실렸습니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많이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옳은 말만 전하는 게 아니라, 부모님들이 힘을 내서 적용해볼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사춘기 아이들과 대화하려면 일단 멈춰야 해요. 아이가 부모의 말을 듣기 싫어하면 1주일은 아무것도 안 해볼 필요가 있어요. 2단계는 같이 웃는 일인데요. 1단계 멈추기, 2단계 함께 웃기를 실천해봐야 그 다음 단계인 ‘믿어 주기, 인정하기, 감사하기’가 가능해요. 한꺼번에 1-5단계 대화법을 다 적용하는 것은 추천하고 싶지 않아요. 우선 1단계를 해보시는 게 중요해요.
“부모의 피드백이 마음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청소년 자녀의 자기효능감을 높이고 싶다면, 남들과 비교하는 피드백이 아니라 좀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해요. ‘맞다, 틀리다, 잘했다, 못했다’ 같은 평가하는 피드백은 오히려 아이를 좌절하게 만들죠. 자신이 얼마나 나아지고 있는지, 좀 더 잘하려면 어떤 것이 중요한지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가 없으면 자기효능감이나 학습 흥미를 높일 수 없어요.
아이들의 성향에 따라서 다르게 적용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기효능감이 높은 청소년의 경우, 외부의 피드백보다는 스스로 판단하는 것을 더 신뢰할 수 있겠고요.
피드백에 관한 다양한 연구들이 있어요. 대부분 긍정적 피드백이 부정적 피드백보다 내재적 동기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죠. 하지만 자신감을 주려고 자신의 능력보다 쉬운 과제를 주면 오히려 자기 능력을 스스로 낮게 평가할 수 있어 지속적인 동기 부여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긍정적 피드백이라도 잘해야 한다는 ‘과도한 부담’을 주면 자율성이 오히려 감소해서 도전 의지가 줄어들 수 있고요. 가장 중요한 건, 타인과의 비교보다는 청소년 자신의 점진적인 변화, 과제에 관한 효과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정보적 피드백을 제공하는 일입니다.
명령어를 쓰지 마세요
‘행복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리처드 레이어드 교수는 “성인기 삶의 만족도를 가장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변수는 청소년기의 학업 성취도가 아니라 정서적 건강”(125쪽)이라고 말합니다.
기본적인 정서가 탄탄하면 사춘기에도 덜 흔들려요. 똑 같은 자극을 줘도 파르르 떠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덤덤하게 넘기는 아이들이 있잖아요. 상담을 하다 보면, 되게 멋있게 잘 성장하겠다 싶은 아이들이 보여요. 하지만 또 아닐 수도 있어요. 성인기에서 겪는 경험들로 충분히 달라질 수 있죠.
책을 보면서 놀란 점 중 하나가 아이들이 부모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그럼요. 아이들이 표현을 못할 뿐이지 충분히 자각하고 있어요. 아이가 아무리 짜증이 많거나 문제가 있는 상황이라도 아이 마음속 진심을 믿는다면, 충분히 대화가 가능해요. 청소년들은 어른이 화를 내거나 윽박지른다고 혹은 어설프게 칭찬한다고 변하지 않아요. 자신을 인정하고 수용해주는 동시에 자신이 몰랐던 뭔가를 깨닫도록 도와주어야 변화가 시작돼요.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잘 읽는 편이라면, 자녀가 사춘기를 잘 이겨내는 것 같아요.
확실히 그렇죠. 문제는 아이가 11살, 12살이 넘어갈 때 생겨요. ‘나 정도면 좋은 부모야. 나는 아이들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편이야’라고 생각했던 부모님들이 있는데요. 아이가 사춘기를 겪으면서 방문을 닫고 들어가는 시간이 길어지면, 당황하세요. 당연한 변화인데 그동안 부모로서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고집을 부리시는 거죠. 부모가 지금까지 했던 방식이 사춘기 아이한테는 적용이 안 될 수가 있거든요. 이 점을 아셔야 해요.
부모가 자신의 성격을 탓할 때도 있어요. 아이에게 잘 다가가고 싶은데, 무뚝뚝한 성격 때문에 어렵다고 고민을 토로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성격과 타고난 기질은 다른데요. 우리가 소통할 때는 비언어적인 것과 언어적인 것이 있어요. 특별히 살가운 말을 하지 않아도 돼요. 엄지 손가락만 올려줘도, 아이의 어깨를 톡톡 쳐주는 것도 아이에게 힘을 줄 수 있는 표현이에요. 너무 많은 걸 하지 않아도 돼요. 한 가지만 하셔도 아이들은 부모의 마음을 금방 알아채요.
“아이들은 진심이 아닌 것을 가장 싫어한다.”(158쪽) 이 이야기도 기억에 남아요.
사춘기 아이에게 말을 건다는 건, 부모의 진실하고 솔직한 마음을 보여주는 일이에요. 어르거나 달래는 아동기의 태도로 자녀를 대하면 안됩니다. 어른스럽게 감정을 조절하면서 승낙과 거절의 이유를 진심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해요.
아이의 마음 상태를 보고, 말을 거는 지혜도 필요할 텐데요.
아이가 엄마 아빠 말에 짜증을 내고 있을 때는 말을 안 거는 게 나아요. 화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이상적으로 대화해야죠. 아이와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려면 우선 지금이 대화가 가능한 때인지 알아채야 해요.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때, 웃긴 상황이 벌어졌을 때, 성적이 올랐을 때, 게임을 실컷 하라고 하루 동안 자유를 줬을 때 등이 좋은 타이밍이죠. 또 부모의 마음이 불편할 때는 아이에게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 것이 좋아요. 그건 아이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기억해야 해요.
사춘기 아이들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 무엇이 있을까요?
일단 명령어를 쓰면 안 좋죠. 부모들이 아이한테 하는 말을 들어보면 거의 명령어예요. 내가 하는 말을 5분만 녹음해서 들어 보세요. 내 말투가 어떤지 파악할 수가 있어요. 상담가는 자신의 말투를 분석하는 일부터 시작하는데요. 부모의 경우, 아이에게 “숙제 해라, 밥 먹어라, 준비물은 다 챙겨라” 같은 말을 가장 많이 해요. 사람이 이런 말만 듣고 살 수는 없거든요. 우리가 회사에 출근했는데 “보고서 써라. 빨리 써라” 같은 말만 들으면 버틸 수 있을까요? 회사 다니기 싫을 거 아니에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죠.
아이와 자신을 분리할 줄 알아요
부모의 태도가 아이를 변화시킨 사례가 책에도 많이 나옵니다.
상대가 변하려면 내가 먼저 변해야 해요. 관계가 좋으면 아이도 부모의 충고를 얼마든지 받아들이는데, 관계가 어설프면 어려워요. 소통을 잘하는 분들을 보면, 아이의 마음을 잘 알아채요. “누울 자리를 봐 가며 발을 뻗는다”는 말도 있잖아요. 상황과 타이밍을 잘 읽어야죠.
말투도 중요할 것 같은데요.
그럼요. “밥 먹자”와 “밥 먹어”, “밥 차려 놓았어”가 모두 달라요.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 모든 말에 짜증 내요. 밥 먹기 싫은데 자꾸만 먹으려고 하면 화가 나죠. 그럴 때는 “밥 차려 놓았어”라고 말하고, 그냥 방에 들어가 계세요. 5분 정도 지나면 밥 먹는 소리가 나요. 이럴 때 부모님이 나가서 “이렇게 먹을 거 왜 안 먹냐고 했냐” 같은 말을 하면 절대 안 돼요. 그냥 지켜 보는 거예요. 부모님이 이렇게 행동을 바꾸면 아이가 일주일 뒤에 와서 이렇게 말해요. “우리 엄마가 달라졌다”고, “내 마음을 조금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고. 이렇게 한 번 성공하고 나면 부모도 아이도 달라질 수 있어요.
상담을 하러 오는 아이들은 대개 어떤 부모의 권유로 오나요?
다 달라요. 부모가 권해서 오는 경우도 있고 학교에서 권유를 하기도 하고요. 아이들 스스로 오고 싶다고 이야기해서 부모님과 같이 오는 경우도 있어요. 확실히 10년 전, 5년 전을 비교해보면 많이 들었어요.
부모 역할을 잘해내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을까요?
아이와 자신을 분리할 줄 알아요. 불안과 욕심나는 마음을 잘 조절하시죠. 이런 역할이 아주 쉽지는 않지만 아이와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이해한다면 조금씩 자연스럽게 잘할 수 있게 돼요. 아이가 독립심이 있고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자라기를 바란다면 꼭 필요한 부모 역할이기도 하죠.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오늘 하루 우리 아이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록 배려하고, 작은 일에도 뿌듯한 성취감을 느끼게 한다면 아이와의 관계가 좋을 수밖에 없죠.
한 단계를 꼭 실행하고 성공해보세요
마흔이 돼서 아동심리를 공부하셨어요.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이유가 있었나요?
대학을 졸업하고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쳤어요. 6개월 정도 가르치면, 아이들의 성적이 대부분 올랐어요. 그런데 당시 제가 있던 곳이 조금 가난한 지역이었어요. 아이들이 성적이 오르면 학원을 그만두고, 몇 개월 있다가 성적이 떨어지면 다시 학원에 나오는 거예요. 왜 그럴까 분석해보니 아이들이 책을 안 읽더라고요. 근원적인 해결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독서 프로그램을 시작했어요. 효과를 본 아이도 있는데, 여전히 성적이 안 오르는 애가 있더라고요. 살펴보니 심리적인 문제였어요. 그래서 독서 치료 공부를 시작했고, 대학원에서 아동심리를 공부하게 됐어요.
선생님도 두 자녀를 키우셨습니다. 아이가 어릴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같이 있는 시간 동안은 재밌게 놀아주려고 노력했어요. 어떤 놀이가 아이에게 발달되는지 공부했으니까요. 정서적인 만족뿐 아니라 인지적인 면에서도 균형적으로 발달 시키려고 노력한 부분이 있죠. 사춘기 때는 저도 쉽지 않았어요. 그동안 공부한 걸로는 해결이 안 되더라고요. 다만 주의했던 건 있죠. 아이가 말하고 싶지 않을 때는 내가 말을 걸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요.
아이가 고등학생 때는 어떠셨나요?
생각해보면 아이가 고3일 때 저는 특별히 힘들지 않았거든요. 왜 안 힘들었을까? 생각해보니, 아이들과 웃고 떠드는 시간을 만든 덕분이었던 것 같아요. 아이가 학원이나 야간자율학습을 안 했거든요. 오후 4시쯤 집에 오면, 저녁 먹기 전까지 저랑 같이 떠들면서 놀았어요. 아이가 뭘 재미있어 할지 미리 생각해두고,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도 찾아 읽어보기도 했고요. 매일 이런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편안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던 것 같아요. 수다를 떨다 보면 별 거 아닌 걸로 웃게 되잖아요. 스트레스를 잊게 해주면 아이도 부모도 편할 수 있어요.
보통의 부모들은 학습 진도를 확인했을 텐데, 잔소리 대신 웃음을 주신 거네요.
부모 역할의 개념을 바꾸면 가능해요. 아이의 행동을 지적하는 게 부모의 역할이 아니거든요. 아이가 잘 웃고 행복해 하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면 가능한 일이에요.
독자들에게 꼭 염두에 두고 싶은 한 마디가 있다면요.
한 단계를 성실하게 수행해보시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1단계 ‘멈추기’를 제대로 해보신 후, 아이의 반응을 보셨으면 좋겠어요. 내가 말을 안 거니까 아이가 편안해 하네? 싶을 때, 그 다음 단계로 가시는 게 좋아요. 한 단계를 꼭 실행해보시고 성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임숙 소장이 제안하는 ‘청소년 자녀와의 대화 십계명’
1. 하루 대화는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로 충분하다
2. ‘너 때문에’가 아니라 ‘네 덕분에’로 마음과 말을 바꾸자
3. 하루 한 번, 함께 웃을 일을 만들자
4. 실수와 실패를 겪는 아이의 편이 되어 주자
5.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하고, 꼭 지켜야 한다
6. 속이 터지겠지만 때로는 심호흡하고 참아야 한다
7. 아이가 동의한 적 없는 것을 하기를 기대하지 말자
8. 아이가 생각지 못한 자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주자
9. 좋은 관계 없이는 영향력도 없다. 부모 자녀 관계를 회복하자
10. 아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자
아이의 방문을 열기 전에이임숙 저 | 창비
까칠하고 예민한 사춘기 아이의 진심을 알고 청소년기의 심리적 특성을 이해하면, 아이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아이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청소년과의 특별한 5단계 대화법을 통해 아이의 마음을 여는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접근법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