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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민 목사 “자신과 화해한 사람은 분노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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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마시는 생수 한 컵만큼 건강에 좋은 것이 없다. 그렇다면 마음 건강을 위해서는 무엇이 좋을까. 쉴새 없이 쏟아지는 뉴스 속에서 읽고 싶은 소식만 듣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나, 들으면 들을수록 좋은 이야기도 있다. 잠시 묵상을 하고 나면, 마음속에 감춰있던 착한 기운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게 하는 글. 조정민 목사의 트위터(@ChungMinCho)를 팔로우하는 까닭이다.
사랑하면 사람을 배려하고 두려워하면 사람의 눈치를 봅니다.
배려하면 평안하고 눈치 보면 피곤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침묵하지만, 마음이 허전한 사람은 자랑합니다.
자랑은 교만의 가장 흔한 얼굴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실패한 사람들보다 덜 실패한 것이 아니라,
많이 실패했지만 그 실패로부터 더 많이 배운 사람들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2010년 5월에 트위터를 시작한 조정민 목사는 매일 아침 기도와 함께 140자 짧은 글을 트위터에 올린다. 전도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다. 수 없이 많은 이야기가 쏟아지는 트위터 세상 속에서 잠시 잠깐이라도 숨을 돌릴 수 있는, 위로가 되는 말을 전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16만 팔로어의 마음을 사로잡은 조정민 목사의 글은 2011년부터 ‘트위터 잠언록’ 시리즈로 출간되고 있다. 『길을 찾는 사람』『인생은 선물이다』『사람이 선물이다』에 이어 지난 11월 『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을 펴냈다. 션, 이지선 작가부터 슈퍼주니어 동해와 최시원, 소녀시대 수영 등 아이돌 스타까지, 이들은 모두 조정민 목사의 트윗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며 정성스레 추천사를 남겼다. 2014년을 기다리는 지금, 새로운 길을 계획하고 있다면, 조정민 목사의 글을 하루 아침 생수 한 잔을 마시듯 읽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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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걸 붙들면 내려놓을 수 있다

4년 넘도록 트위터에 꾸준히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대부분 새벽이나 오전 일찍 올리시는데 무척 부지런하신 것 같습니다. 트위터를 시작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2010년쯤 트위터를 우연히 알게 됐는데, 140자 공간이더라고요. 언론사에서 방송기자 생활을 25년 동안 했는데, 가장 많이 훈련 받은 게 글을 줄이는 연습이었어요. 앵커 멘트도 모두 100자에서 140자 안에 소화가 되잖아요. 호기심이 생겨 트위터를 열었는데, 깊이 있는 글을 찾아보기가 어렵고 너무 사적인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어쩔 때는 듣기 거북스러운 이야기도 많고. 트위터라는 게 일종의 광장이잖아요. 사람들이 나왔다 들어가는 공간이더라도 뭔가 마음의 위로가 되는 글들을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이야기는 되도록 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하루에 두 번 정도 트윗을 올렸어요. 올해 들어와서는 하루에 하나씩만 올리고 있죠.

140자를 올리기까지 여러 번 생각하고 정리하실 것 같은데요.

하루 종일 생각이 날 때마다 수첩에 글을 적어요. 대여섯 줄이 될 때도 읽고 한두 줄이 될 때도 있죠. 보통 새벽 4시쯤 일어나는데, 기도하고 말씀 준비를 하다 보면 생각이 떠오르죠. 사람들을 만나고 교제하는 가운데서 얻는 깨달음도 있고요.

트위터에서 목사라는 신분을 굳이 밝히지 않고 계세요. 글에서도 종교색을 발견할 수 없고요.

직장 생활을 25년 동안 했는데, 모든 직장이 그럴 테지만 언론사라는 직장도 무척 고통스럽고 힘든 곳이었어요. 현실을 살아가는 게 너무나 힘들다는 걸 많이 경험했고, 인생 선배로서 경험이 축적되어 있으니까, 30, 40대 직장인을 상대로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힘이 되는 작은 가이드라인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 정도였어요. 굳이 크리스천들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니까 내세울 까닭이 없었죠.

그런데 트윗만 올리시고 댓글을 달거나 리트윗은 하지 않으세요. 일방적인 소통이라고도 보는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댓글을 달았죠. 초기에 제 글에 댓글을 단 사람들은 딱 두 부류였어요. 크리스천들은 “목사라는 사람이 왜 종교적 컬러를 버리고 글을 쓰냐”고 했고, 다른 사람들은 “왜 목사 신분을 감추고 위장 취업을 하냐?”는 반응도 있었어요. 일부 사람들은 “왜 글을 베끼냐?”면서 출처를 밝히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그런 사람한테는 “베낀 글이라면 그건 하나님한테 베낀 거다”라고 말했죠. 그런데 이런 반응들은 1년이 지나니까 딱 사라졌어요. 이후에는 인생의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죠. 일일이 답변을 공개하는 것보다는 일대일로 소통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타임라인에는 댓글을 달지 않고,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과는 친구를 맺어서 다이렉트 메시지로 소통하고 있어요. 그렇게 연결된 분들이 1천 명 정도 됐네요.

보통 어떤 조언을 구하나요?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고 하는 분들도 계시고, 집에 와서 상담을 해달라는 사람도 있었어요. 남편을 좀 전도해 달라고 해서 만나 뵌 적도 있었고. 트위터를 보고 교회로 찾아오신 분들도 있고요.

의도하지는 않으셨겠지만 최근 교회를 개척하면서 트위터, 페이스북을 통한 전도가 저절로 되겠네요.

끊임없이 접촉점을 찾으려고 해요. 페이스북을 시작한 건, 교회를 떠난 사람들에게도 영적인 자양분은 공급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페이스북에는 매일 아침 말씀 묵상을 12줄 정도 나눠요. 다 읽으려면 1분 20초 정도가 걸리죠. 주일예배는 나가지 못하더라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면 다르니까요. 오프라인 교회를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SNS도 좋은 수단이에요. 중요한 것은 예배의 일상화를 위해서도 쓸데없는 메시지가 흘러나가는 것보다 복음적인 메시지가 흘러가는 게 영적인 유익이 되는 거죠. 그런 메시지를 흘러 보내기 위해 애를 써야 해요. 너무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보다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도전이 되는 메시지를 흘러 보내야, 세상을 살아가는데 조금이라도 힘이 되지 않겠어요.

MBC 사회부 기자에서 앵커까지 25년 동안 언론인으로 활동하다가, 10년 전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 신학을 공부하셨어요. 아내의 열성적인 신앙 생활을 지켜보다가, 의심스러운 마음에 교회를 찾았다가 예수님의 포로가 되셨다고요. 정치인의 꿈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는데 쉽게 포기가 되던가요?

어려웠죠. 몇 십 년을 한 가지 꿈을 향해 살아왔으니까 아깝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것이 답이다. 이것이 길이다”라고 생각했을 때는 바꾸는 게 어렵지 않아요. 내가 가진 걸 내려놓긴 어렵지만 더 좋은 걸 붙드는 순간, 부지불식간에 자기도 모르게 떨어뜨려 버리게 돼요.

사회 생활을 오랫동안 했기 때문에 교인들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겠지만, 단번에 비판적인 시각들을 버리긴 쉽지 않았을 텐데요.

언론은 비판이 사명이라고 생각했고,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존재 의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어느 날 깨달은 게, 비판한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거예요. 또 ‘내가 비판할 자격이 있나?’를 생각해봤을 때, 비판하는 동일한 기준을 나에게 적용해봤을 때, 나는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신앙은 반대 패러다임으로 접근하는 거예요. 사랑하고 용서하고 덮어줌으로써, 비판하는 것보다 근본적인 치유가 일어난다는 거예요. 언론인이었을 때는 뜨는 사람을 조준해서라도 쏴놓고 떨어뜨려 놓았다면, 이제는 실망하고 좌절하는 사람도 일으켜 세우려고 하는 거죠. 제 자신이 정반대로 바뀌지 않으면 언론인을 하다가 목회하기는 쉽지가 않은 일이에요.

신앙을 갖게 되면서 본질적인 변화가 가능했던 건가요?

저는 학창시절 때부터 세상에 대한 비난, 비판도 많았고 세상을 뿌리 채 바꿔놓고 싶은 혁명적인 욕구가 강했던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언론인이 됐고 정치에도 관심이 많았고요.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면서 그것이 본질적인 해결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권력은 인간의 욕구, 대중적 욕구를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에요. 하지만 예수님이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방법은 사랑이에요. 모든 악순환의 종지부를 끊는 게, 바로 사랑인데 예수님은 그 길을 선택한 거죠. 사실 예수님이 이 시대 인기로 보면 정치를 했으면 왕이라도 될 수 있는 분이었는데 왜 정반대로 십자가를 졌는지. 그게 답이라는 걸 깊이 깨닫고 난 후로는 권력의 길로 갈 것이 아니구나, 사랑의 길로 가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구나. 그래서 제 인생을 바꿔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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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완적 패러다임으로 사는 삶

트위터를 보면 유독 말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는 글들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언론인 생활을 오랫동안 한 까닭일까요?

성경에서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고 쓰여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마음이 없는 말을 훨씬 많이 해요. 마음에서 영근 말을 하면, 그 말은 영혼에서 영혼으로 전달돼요. 하지만 우리는 순간적인 충동이나 느낌만으로 말을 하다 보니,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가 쉬워요. 언론계에 오래 있으면서 깨달은 것이 내 말이나 글이 밖으로 표현되지만, 그것도 나를 형성하고 나간다는 사실이에요. 내가 거친 말을 하면 내 안에 거친 상처가 생긴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잊어요. 욕을 하면 욕이 먼저 나를 해치고 남에게 전달되는 거예요. 고운 말을 쓰는 건 어떤 수양보다 중요한 일이에요. 한 마디 한 마디 마음을 담아서 말하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내 인격 자체가 성숙하기가 어려워요. 논어에 보면 “부지언 무이지인(不知言, 無以知人)”이라는 말이 있어요. 그 사람의 말을 모르면 사람을 알 수 없다는 거죠. 말을 통해서 인격을 알 수 있다는 것만 명심해도, 함부로 말할 수 없죠.

남에게 한 말이지만 때론, 나에게 더 큰 상처가 될 때가 있어요. 비단 남을 향한 이야기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죠.

인간의 뇌는 언어와 현실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언어로 선포되는 것은 실재화가 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해요. 남에게 공손한 말을 하는 것이 비단 남을 위한 것만이 아니에요. 남을 이롭기 전에 나를 먼저 이롭게 하는 일이고, 남에게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면 남을 해치기 전에 나를 먼저 해치게 돼요. 폭력적인 언사를 쓰다가 폭력배가 되고,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하다가 자살을 하게 되는 거예요. 말이 사람을 죽이고 살린다는 점을 명심해 둬야 합니다.

“부드러운 말은 사람의 분노를 삭이고, 거친 말은 분노에 불을 붙입니다. 막말 하다 막장에 이르고, 막장 벗어나지 못하면 막판입니다.”라고 하셨어요. 언제나 그러했지만, 여전히 분노를 조절하기 힘든 시대입니다. 분노를 품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사실 자신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는 겁니다. 자기 자신과 화해한 사람은 분노하지 않아요. 더 깊은 뿌리를 살펴보면, 하나님과 화해된 사람은 사람에 대해서 쉽게 분노하지 않아요. 저는 인간의 분노에 대해서는 분노하지 않아요. 나에게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부드럽게 응대해요. 화가 나게 했다면 미안하다고 사과해요. 심지어 어떤 분은 저에게 “어떻게 교회를 청담동에 개척할 수 있냐?”고 하셨어요. 자초지종을 일일이 설명할 수 없지만, “우선 당신의 이야기를 경청하겠다. 내가 생각이 모자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어요. 부드럽게 받아주면 자기가 오히려 미안하다고 말해요. 어떤 사람은 트위터를 통해 제게 욕을 하기도 해요. 그렇다고 제가 블로킹하지 않아요. 욕을 하기 전에는 분노의 원인이 있기 마련이에요. 자기 자신의 분노의 원인을 발견할 때까지 남에게 분노를 폭발하고 있는 거죠. 그 분노를 보았을 때 불쌍히 여기는 것이, 긍휼한 마음을 갖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정당한 분노, 의로운 분노도 있을 텐데요.

내 개인적인 분노가 아니라 남을 위한 분노가 분명히 있어요. 공동체를 위한 분노, 거룩한 분노라고도 말하는데 분명 필요한 부분이에요. 그러나 그 분노조차도 긍휼화하지 않으면 독이 됩니다. 또 다른 상처를 주는 칼날을 만드는 거예요. 분노가 사랑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그건 독이에요. 사랑에서 출발한 부모의 분노는 자식에게 상처를 주지 않아요. 아이를 때려도 눈물로 다시 품어주니까, 부모에게 분노하지 않는 거예요. 욕이라고 해도 사랑이 있는 욕이 있고, 교양 있는 말이라도 허언이 있잖아요. 어떤 표현이 전달될 때, 마음속에 깊이 영글어 나온 말과 그렇지 않은 말은 전혀 다른 말로 전달될 수 있어요.

사랑이 담긴 분노는 어떻게 표현되어야 좋을까요?

일상에서도 옳은 분노가 있어요. 그러나 사랑이 있으면 분노 쪽보다는 긍휼로 변해요. 길거리에 쓰레기가 무단으로 방치되어 되어 있다고 생각해보면, 그 상황을 대하는 사람들은 제각기 달라요. 누가 버렸는지를 찾는 사람이 있고, 그 쓰레기를 분석하는 사람이 있고, 또 쓰레기의 책임 소재, 법적 문제까지 따지는 사람이 있어요. 여기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쓰레기를 자신이 치우는 사람이에요. 쓰레기를 치우면 그걸로 끝나는 거니까요. 우리 사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건, 쓰레기를 버린 사람을 찾겠다고 몽둥이를 들기만 했지 빗자루를 드는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몽둥이 가지고 설치면 피투성이만 되지 쓰레기는 절대 없어지지 않아요.

쓰레기를 치웠는데도 또 버리면 어떻게 하나요.

또 치우고, 또 버리면 다시 치우면 돼요. 그러다가 아이가 어른이 되는 거예요. 말 실수할 때마다 때리면 어떻게 배우겠어요? 아이가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정상적인 언어 생활을 하듯이, 수없이 배변, 배뇨훈련을 거치다 보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어른이 돼요. 누군가 참아주고, 대신 치워주는 사람이 있어야 성숙한 사회가 되는 거예요. 자꾸만 목청을 세우는 사람만 많지, 소리 없이 책임을 감당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사회가 점점 어려워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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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것을 잘 돌려줘야죠

『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프롤로그를 읽어 보니 “돌아보면 진심으로 손뼉을 쳐 준 사람이 많지 않았다”고 쓰셨어요. 그런데 트위터 프로필 사진이 손뼉을 쳐주는 사진입니다.

누군가가 찍어준 사진인데, 흐릿하지만 마음에 들더라고요. 박수를 쳐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감사하기도 하고요. 내가 죽고 내 안에 예수님이 살아있는 걸 경험하면 더 이상 경쟁적 패러다임으로 살지 않아요. 보완적 패러다임으로 살게 되죠. 내가 박수를 기대하기 보다는 쳐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요.

목회자들은 대부분 대학, 대학원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목사 안수를 받고 목회 활동을 시작하죠. 사회 경험이 없는 목사들을 만날 때면, 답답하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습니다. 오랜 직장 경험이 목회 활동에 도움이 되나요?

저에겐 큰 도움이에요. 술집에서 목회 훈련을 받은 거 같아요. 술집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기 상처를 스스럼 없이 드러내잖아요. 그렇게 짧은 시간에 많은 실수를 하는 경우도 없을 거예요. 인간의 참모습이 다 드러나죠. 누가 쓰러지면 집에 데려다 주고, 돈도 안 내고 그냥 가버리면 대신 돈 내주고 그러잖아요. 그게 제겐 목회 훈련이었던 것 같아요. 가끔 생각해보면 목사가 된 게 더 편한 길 아닌가 싶어요. 믿지 않는 사람을 만날 기회가 세상에서 살아갈 때보다 많지 않으니까요. 목사들은 어찌됐든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 틈에서 시간을 보낼 때가 더 많은데, 현실에서는 안 믿는 사람이 많고, 적대적 환경, 엄청난 대립구조 속에서 살아가야 하잖아요. 누군가의 표현대로 그들만의 천국을 꿈꾸는 사람들 틈에서 사는 길이 가장 편한 길이죠.

대형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하다가 올해 개척교회를 열었어요. 더 편한 길이 있었지만 선회를 한 셈입니다. 교회 이름이 ‘베이직교회’인데,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뜻인가요?

저는 교회에 있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자는 입장이에요. 세상에서 살아내는 게 더 어려우니까요. 교회라는 건 잠깐 들러서 말씀과 기도로 본인이 채워지면 돼요. 상처가 깊으면 회복되는 곳이고. 여기서 살면 안 되는 곳이에요. 세상이 교회 때문에 더 좋아졌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어요. 교회는 부흥했지만, 세상 속에서 부흥을 꿈꿔야 할 사람들이 교회를 부흥시키느라 다 탈진한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에요. 교회 안에서 활동하지 말라는 입장이에요. 활동하러 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러 오는 곳이 교회이고 그것만으로 충분해요. 현 사회에서는 교회가 건물과 제도로 갇히는 부분이 많지만, 예수님은 사람이 교회, 사람이 성전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일상에서 주님이 가르치신대로 말씀대로 살아내기만 한다면 사실 교회는 정말 새로운 종교개혁이 되겠죠. 전임으로 사역하는 목회자를 보면, 내 눈 앞에 교인들이 많이 모여있으면 그걸 부흥이라고 생각하고, 교회 안에 오랫동안 머무르면 성령 충만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가장 살아가기 치열한 곳에서 죽을 힘을 다해서 살아남는 게 성령 충만이에요. 그걸 바꿔주지 않으면 우리는 자폐증 환자처럼 죽어가는 거죠. 세상에서 살아내는 게 중요해요. 사람이 교회이고 성전이니까요.

목사로서 어떤 숙제를 가지고 있나요?

‘성경 메시지를 어떻게 이 시대가 알아듣는 메시지로 전하느냐’가 저의 숙제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2천 년이 지난 지금, 이 시대가 알아듣는 말과 코드로 이해시키는 게 설교죠. “사랑, 소망, 믿음이 복음에 대한 씨앗”이라며, 사랑하라고 소리쳐 봐야 사람들은 못 알아 듣습니다. 사랑을 받아 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 아가페 사랑을 경험도 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자꾸 사랑하라고, 소망을 가지라고 하면 안되죠. 이 시대는 “꿈을 가져라, 배려하라, 관심을 가져라, 용납하라, 보살펴라”라고 말하는 게 통하죠. 시대적인 패러프레이즈가 설교자의 미션이죠.

“인생의 목표는 입상하는 것이 아니라 완주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지금의 인생을 돌이켜봤을 때 어느 단계에 와있다고 생각하나요.

올해 63세에요. 겨울 초입을 사는 셈이죠. 겨울은 마지막을 준비하는 순간인데, 지금까지 받은 것을 되돌려주고 떠나야 하는 때에요. 살면서 받은 교육, 그리고 관계 등을 생각해보면 정말 상상할 수 없이 많은 걸 받았어요. 제가 받은 메시지를 잘 정제해서 되돌려 드리는 일이 제 임두라고 생각해요. 저는 많은 종교적 방황을 통해서 예수님이 진리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어요. 그 분의 메시지를 어떻게 하면 이 시대가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복음적 메시지로 전할 것인가. 이것이 제 유일한 관심사에요. 목사로서 다른 꿈이 있다면 이상한 거겠죠.

혹시 이 것만큼은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후회하는 습관이 별로 없어요. 실수를 했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실패도 자산이 되니까요. 그 당시에는 쓸데없는 것 같지만, 언젠가 퍼즐처럼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있어요.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겼지?’라고 이유를 찾기보다는 이 어려움을 어떻게 지나가야 하나? 이걸 왜 이겨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게 현명해요.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들이 많아요.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일어나지 않아서 감사한 것들도 많죠.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들은 졸고 있는 내 인생을 깨워주기 위한 방편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생각 없이 사는 사람에게 생각을 하게 만드는 동기라고.

인생 선배로서, 지금 새로운 길을 가려는 청춘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은.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왜 이 직장을 다니려고 하는지 철저하게 고민하고 일을 결정해야 해요. 내면의 동기, 목적에 대해 자기 성찰,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일생을 쏟아도 될 일을 발견했다는 것 자체가 성공이기 때문이에요. 내 인생을 올인 해도 아깝지 않은 일, 그럴 만큼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 전제가 되어야, 거기에서부터 열정이 생길 수 있어요. 한 여자를 좋아하면 그 여자를 위해서 뭐를 해도 좋을 때가 있는 것처럼, 어떤 일을 해도 좋은 게 있잖아요. 꿈이 있는 사람에게는 열정이 없을 수가 없어요. 당장에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무의미해서 늘 괴로운 직장은 아니라는 거죠. 나에게 가치 있는 일을 찾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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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조정민 저 | 두란노
이 책은 길 잃은 사람들에게 한줄기 오솔길처럼 다가온다. 넓은 길, 편한 길이 아니라 좁은 길을 선택한 사람, 새로운 길을 가기 원하지만 용기가 없는 사람, 낯선 일을 앞두고 힘을 내고 싶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 “인생의 능력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들 사이에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힘입니다”, “걸어가는 속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가고 있는 방향을 바꾸는 것이 변화의 목적입니다. 진정한 변화는 언제나 방향을 바꾸는 일입니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이 인생길을 걸어가는 모든 이들에게 시원한 냉수 한 컵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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