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것도 물리학인가요?”
통계물리학자 김범준 교수가 자주 듣는 말이다. 그의 연구에는 사람과 사회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혈액형과 성격의 상관관계’나 ‘윷놀이에서 말을 업는 것과 잡는 것 중 무엇이 더 유리한가’는 실제로 김범준 교수가 진행했던 연구 주제다. 흔히 물리학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에서 한참 동떨어져 있는 것들이다.
김범준 교수의 두 번째 책 『관계의 과학』은 그래서 흥미롭다. 우리 사회를 색다르게 바라보는 통계물리학자의 시선을 엿볼 수 있어서다. 그는 누적확률분포로 부의 불평등을 읽고, 페이스북 친구의 연결망을 만들어 과학적으로 절친을 찾아본다. 비폭력 시민운동의 성공을 예로 들어 통계물리학의 개념 중 하나인 ‘상전이’를 설명하는가 하면, 배우 차은우와 저자의 합성사진으로 ‘중력파’의 검출 방법을 소개한다. 그러니 물리학이라는 말에 책을 읽기도 전에 겁먹지 않아도 된다. 책에 실린 과학적 개념은 어려울지라도 저자의 설명은 쉽다. 이과 센스가 없다고 자부하는 이들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쉽게 읽히는 과학책
통계물리학이란 무엇인가요?
물리학의 전통적인 분야 중 하나예요. 입자의 숫자가 굉장히 많을 때, 어떤 물리 현상이 드러나는지 연구하는 학문이라서 뭐라도 많으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할 수 있어요. 전통적인 물리학에서는 입자가 많을 때를 뜻하는데, 관점을 조금 바꿔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도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 많은 사람이 관계를 주고받으면서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를 알아볼 때도 통계물리학의 연구 방법을 적용해 이해할 수 있어요. 한 마디로 ‘무어라도 많을 때 전체를 이해하는 연구 방법’이라고 할까요. 실제로 사회현상이나 경제현상 같은 것도 통계물리학자들이 연구를 많이 해요.
책에 실린 재미있는 연구들이 많았는데, 연구 주제는 어떻게 정하는 편인가요?
크게 고민하지 않고 궁금한 걸 택해요. 그리고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통계물리학을 공부하면서 얻은 방법들을 적용하는 거죠.
리뷰도 종종 보세요? 물리학이라고 해서 어려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재미있게 읽었다는 평이 많아요.
하루에 몇 번씩 찾아봐요.(웃음) 이번 책에는 꼭지가 끝날 때마다 마지막에 그 글에서 주로 다룬 과학 용어에 대한 설명을 넣었거든요. 출판사에서 용어 설명을 넣자고 제안했을 땐 꼭 필요할까 싶었는데, 그 부분을 좋게 봐주신 분들이 많았어요. 저의 글쓰기 스타일을 간파해주신 분도 있고, 웃음을 주려고 썼던 몇몇 문장들을 재밌다며 좋아해주시는 분도 있었어요.
교수님이 차은우보다 잘생겨 보인다는 리뷰도 있었어요.
저도 봤어요. 듣기 좋으라고 해주신 말씀이겠죠.(웃음)
각 편이 끝날 때마다 에세이가 함께 실렸는데, 그게 참 좋더라고요.
여러 매체에서 청탁받아 썼던 원고들인데, 과학 칼럼이 아닌 제 생각을 썼어요. 그 글들이 실린 건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있어요.
제목은 직접 정하셨어요?
출판사에서 지었어요. 제목에 관해 어떤 논의를 하는지 담당 편집자가 계속 내용을 전달해줬는데, 치열하게 고민하시더라고요. 여러 후보가 있었지만, 제 의견도 그렇고 편집부에서도 『관계의 과학』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후보에서 아쉽게 탈락한 제목은 어떤 게 있었나요?
굉장히 많았어요. 『곁을 읽는 물리학』 『복잡한 세계를 경쾌하게 읽는 통계물리학의 다섯 방정식』 『연결사회』 등이요. 『관계의 과학』은 정말 많은 고민 끝에 지은 제목이에요. 마음에 들어요.(웃음)
그런 것도 물리학인가요?
물리학의 여러 분야 중에서도 통계물리학을 전공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연구 방법에 따라 물리학을 크게 둘로 나누면 실험물리학과 이론물리학으로 나뉘어요. 그런데 실험은 제게 전혀 재능이 없다는 게 너무 명확했어요. 결과가 이상하게 나오는데 왜 그런지도 모르겠고 잘 안되더라고요.(웃음) 대학 동기들 중에 실험에 재능 있는 친구들이 몇 명 있었는데요. 그 친구들을 보면 정말 놀라워요. 컴퓨터 하드웨어 같은 걸 스스로 설계해서 자동적으로 실험 데이터를 모으더라고요. 그걸 보고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싶었죠. 그래서 이론에 관심을 뒀고, 그러다 보니 선택지가 많지 않았어요. 처음엔 큰 고민 없이 통계물리학을 택했어요.
그런데 스웨덴에서 조교수로 임용될 때쯤부터 내 관심사와 굉장히 잘 맞는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독립적으로 연구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제 책에 실린 것 같은 다양한 내용의 연구를 할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독자분들이 자주 오해를 하세요. 제가 항상 그렇게 엉뚱한 연구만 하는 건 아니고요. 설명하면 아무도 관심이 없을 것 같은 주제들도 연구를 계속 해요. 하지만 그걸 책으로 쓰면 아무도 안 보겠죠.(웃음)
폭력적인 시민운동보다 비폭력 저항운동의 성공률이 훨씬 높다는 연구 결과를 물리학의 ‘상전이’로 설명한 내용을 읽고 과학이 위로가 된다는 생각을 처음 했어요. 올바른 생각을 가진 소수가 모이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게 환상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가 있는 사실이니까요.
맞아요. 이 책을 통해 정확히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누적확률분포로 부의 편중을 설명하면서, 부의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기본소득을 말씀하셨는데요.
저는 기본소득을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이에요. 물리학자들이 무엇에 대해 생각할 때는 먼 미래를 먼저 상상해 봐요. 100년이 짧다면 1000년 뒤까지요. 그때는 어떤 세상일까 상상하면 인공지능이나 자동화된 기계에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많이 의존할 게 분명하잖아요. 그러한 미래에서 사회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게 너무 자명한 것 같아요. 지금 사람의 노동력에 기반해 재화를 생산하는 것 중 상당부분이 기계화 될 텐니 미래에는 기업이 지금보다 수익을 더 많이 낼 가능성이 아주 커진단 말이에요. 그럼 그 수입의 일부는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사람의 노동력으로 지불되어야 했을 돈이잖아요. 그런데 기계를 도입함으로써 비용은 줄이고 수익은 더 많아졌다면 당연히 사람에게 돌려줘야죠. 기업이 얻은 추가수익을 국가에서 세금으로 걷고, 그걸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럼 인공지능을 낙관하는 입장이신가요?
낙관적이라기보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조심해야 하고 두려워할 필요가 있다는 점엔 동의하지만, 지금 당장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요. 그런데 ‘1000년 뒤에도 괜찮을까?’라고 생각하면 그건 아닐 수도 있죠. 어쨌든 인공지능도 사람이 만드는 거잖아요. 사람들끼리 합의해서 어느 선까지는 허락하고 어느 이상은 조심해야 한다는 지점을 정해두면 분명 인공지능이 우리 삶에 도움 될 여지는 훨씬 크죠. 물론 지금도 그렇고요. 우리가 태블릿 PC나 핸드폰을 사용하지만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모르잖아요. 미래에는 그런 것들이 더 많이 늘어난다고 볼 수 있을 거예요.
화장실에서 종종 하던 게임의 승률 데이터를 1년간 모아 그동안 게임 실력이 좋아졌는지, 어떤 시간대에 주로 게임을 하는지 푸아송분포로 알아본 내용을 보고 많이 웃었어요. 이외에도 ‘대체 이게 왜 궁금할까?’싶은 연구들이 많았는데요.(웃음) 물리학자가 갖춰야 할 최고의 덕목은 역시 호기심일까요?
호기심이 맞는데, 그걸 해결하는 과정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생각하는 것도 무척 중요하죠. 궁금한 게 많다고 다 과학자가 되는 건 아니니까요.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요즘 특히 궁금한 게 있나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요.(웃음) 저와 함께 공부하는 대학원생들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데이터를 살펴보자고 했더니 한 학생이 지금까지 공개된 데이터를 분석해 보여줬어요. 지금은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서 미래를 명확히 예측할 순 없는데요. 그 학생이 사용한 모델을 통해 예측한 바로는 누적환자 4~5만 명 정도에서 확산이 멈출 것으로 봤어요. 물론 아직 감염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단계라서 확실한 건 아니에요. 증가폭이 둔화되는 시점까지의 데이터는 있어야 미래를 제대로 예측할 수 있거든요.
지금까지 한 연구 중 가장 흥미롭고 재미있었던 게 뭔가요?
재미의 방점을 ‘의미’에 둔다면 학교와 커피숍의 수에 관한 이야기요. 커피숍 수가 인구밀도와 비례하는지, 그렇다면 초등학교의 수는 어떤지 알아본 연구였어요. 커피숍은 이윤을 추구하는 시설이기 때문에 인구밀도에 정비례하지만, 학교는 공익적인 곳이고 사람의 이동거리까지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았죠. 인구밀도가 아무리 적은 곳에도 학교, 병원 같은 시설물이 있어야 하는 이유예요. 연구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의미가 있었어요. 가장 최근에 했던 것 중에는 사람의 체질량 지수와 직립보행의 관계에 관한 연구가 있어요. 사람이 직립보행을 한다는 게 체질량 지수를 계산하는 방법과 연결된다는 걸 발견하고 아주 짜릿했죠. 재미삼아 피카추의 체질량 지수도 계산해 봤는데, 이 연구의 내용이 한 어린이 과학책에 실려 곧 출간될 예정이에요.(웃음)
통계물리학의 매력은요?
통계물리학을 이용해 해결할 수 있는 궁금증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어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전파를 살펴볼 수 있는 물리학 분야는 통계물리학밖에 없죠. 이런 점이 아주 매력적이에요. 사회에서 맞닥뜨리는 문제의 상당수를 통계물리학의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거든요. 다른 물리학 분야보다 훨씬 열려있죠. 덕분에 엉뚱한 연구를 해도 통계물리학자로 사는 데 크게 위험하지 않았어요.(웃음) 직립보행과 체질량 지수의 관계 같은 것도 통계물리학 분야의 학술지에 충분히 실을 수 있어요. 아, 물론 피카추 얘기는 빼야 하지만요.(웃음) 자기가 관심 있는 것의 상당수를 통계물리학의 연구 방법으로 살펴볼 수 있기 때문에 덕업일치가 가능한 학문이에요.
“그런 것도 물리학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요.
정말 많이 받아요. 그런데 통계물리학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제가 아주 이상한 사람은 아니에요.(웃음)
과학은 지식이 아닌 태도
그동안 과학은 지식인 줄 알았는데, 책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과학은 ‘생각의 태도’더라고요.
맞아요. 저는 진실인 것, 참인 것이 결국 우리 모두에게 더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하는 과학자예요. 세상에는 온갖 지식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어떤 것은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고 어떤 것은 근거가 없잖아요. 그런데 과학적인 판단 기준으로 참인 것을 선별해내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많을수록,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고 믿어요. 단순히 과학적 지식을 가져야 한다는 게 아니라, 과학자들이 생각하는 사고의 방식을 경험해보고 그걸 아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면 그간 우리 사회에서 벌어졌던 말도 안 되는 일들은 좀 없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거죠.
대중이 가진 과학에 대한 오해 중 억울한 게 있다면요.
억울하기보다 걱정되는 오해가 있어요. ‘과학자들이 하는 말은 진실이다. 믿을 수 있다’는 거예요. 제가 최근에 했던 강연에서 “과학자를 믿지 말라”고 했어요. 과학자들이 집단적으로 진행하는 일들의 과정은 상당히 합리적일 때가 많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과학자는 누군가의 부모이고 어디선가 월급을 받는 한 시민이거든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과학자로 대표되긴 하지만, 정말 과학자로서 하는 이야기인지 그 사람에게 규정된 사회적 역할 때문에 하는 이야기인지 헷갈리면 안 된다는 거예요. 과학자가 하는 이야기라고 해도 다 믿지 말고 항상 의심해야 해요. 저 사람이 저 이야기를 왜 하는지 생각해보고요.
과학적 태도네요. 끊임없이 의심하고, 근거를 찾고요.
그렇죠. 이렇게 이야기하면 대중들이 싫어해요. “그럼 도대체 뭘 믿어야 하냐”고 묻는데, 저는 “믿을 게 하나도 없다”고 대답하죠.(웃음) 과학적 사고를 하다보면, 어떤 부분은 믿을 수 있고 어떤 부분은 믿을 수 없는지도 판별할 수 있게 돼요. 예를 들어 누가 손바닥에 있는 동전이 스스로 공중에 뜰 수 있다고 하면 다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하잖아요. 그건 우리가 아는 확실한 과학적 지식인 거죠. 그런데 누군가 음이온이 건강에 좋다고 해요. 그럼 “아 그래요?”하고 믿는단 말이에요. 그러지 말고 고민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음이온이 몸에 들어오면 건강에 왜 좋을지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죠.
과학을 잘 모르는 경우에는 어려운 과학적 개념을 가져와 설명하면 혹하고 믿게 되거든요.
그 부분에 대해서도 과학자 사회 전체가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봐요. 유사과학 같은 것들이 판치고 있는데, 이에 대해 과학자들이 명확하게 비판할 수 있어야죠. 단 과학자 개개인에게 맡기기는 어렵고요, 집단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출판, 강연 등을 통해 대중과 활발히 만나고 계신데요.
과학이 즐겁다는 것, 즐거울 뿐 아니라 삶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개인이 어떤 것을 판단할 때도 과학은 분명 도움이 될 것이고요. 사회 전체로도 과학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과학을 배우는 것과 과학적 사고방식을 익히는 건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굳이 특정 분야의 과학을 전공해야 과학적 사고방식이 생기는 게 아니거든요. 과학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자주 듣고, 그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결론에 도달하는지 유심히 보신다면 누구나 과학적 사고방식에 익숙해질 수 있을 거예요.
‘물리학과 같은 기초과학의 연구에 응용가능성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과학을 질식시키는 행위(322쪽)’라고 했어요.
과학이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된 예는 정말 많지만, 사실 도움이 되지 않고 사라진 과학적 연구 결과는 훨씬 더 많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착각해요. 모든 과학은 도움이 된다고요. 처음 과학의 연구 결과가 생산되는 이 시점에서, 어떤 연구는 50년 뒤에 도움이 되고 어떤 연구는 100년 뒤에 도움이 될지 지금 판단할 순 없어요. 일단 과학자들에게 폭넓은 연구의 자유를 주고, 그게 시간이 지나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는 게 맞는 거죠. 반대로 세상에 도움이 될 것만 연구하라고 하면 오히려 도움이 될 연구가 만들어지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나는 행복한 물리학자다
어릴 때부터 물리학을 좋아하셨어요?
아주 어릴 때는 천문학에 관심이 있었고 고등학교에 가면서 자연스레 물리학을 좋아하게 됐어요. 단순히 물리학을 전공해야겠다는 정도가 아니라 ‘물리학자가 아니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어요. 과학자가 아닌 미래는 상상할 수 없었어요.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았나요.
천문학 책을 보면 우주가 엄청나잖아요. 그에 비하면 인간은 무척 하찮은 존재예요. 그런데 그 하찮은 인간이 우주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게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인간의 이성이라는 건 정말 허접하잖아요.(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게 멋지더라고요. 저도 그 일부가 되고 싶었죠.
‘물리학의 아름다움도 친해져야 드러난다.(153쪽)’고요. 아직 물리와 친해지지 못한 이들에게 물리의 아름다움을 전한다면요.
예술 작품을 보고 아름답다고 하는 것과 물리학자가 물리학을 보고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의미가 다를 거예요. 그 느낌을 말로 표현하기가 정말 쉽지 않은데요. 물리학을 이용해서 어떤 대상을 명확하게 이해했다는 느낌이 들 때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물리학자들은 실제로 “저 이론 정말 아름답지 않아? 그 논문 봤어? 너무 멋지지” 이런 이야기를 나눠요. 모호했던 대상이 한 순간 명징해질 때의 짜릿함이라고 할까요.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 아름다움을 다 느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물리학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들은, 그게 정말 아름답다고 느낀다는 것에 공감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썼어요.(웃음)
책을 읽으며 ‘과학자가 이렇게 글을 잘 써도 되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글을 잘 쓰기 위해 하는 개인적인 노력이 있나요.
특별히 훈련을 한 적은 없는데 계속 쓰다 보니 점점 나아지는 것 같아요. 아마 모든 작가들이 그럴 텐데, 제 앞에 독자가 있다고 상상하고 글을 써요. 나에게는 너무 자명하고 당연한 이야기일지라도, 상상의 독자에겐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상상의 독자가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쉽게 쓰려고 노력해요. 퇴고도 많이 하고요. 제가 쓴 글을 소리 내서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가상의 독자는 어떤 사람이라고 설정하나요?
과거에는 제 아내였어요. 첫 책 『세상물정의 물리학』을 쓸 땐 원고의 상당 부분을 아내에게 봐달라고 했었어요. 요즘은 아내에게 부탁하진 않고요. 과학자들이 흔히 말하길 ‘당신의 청중이 완벽하게 무지하지만, 무한한 능력이 있다고 상상하라’고 하거든요. 제가 상상하는 독자도 그래요. 아무 것도 모르지만, 내가 설명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죠.
물리학자들이 펴낸 대중과학서가 많은데요. 다들 글을 잘 쓰셔서 ‘물리학 논문을 쓸 때 글쓰기 능력이 필요한가?’라는 생각도 했어요.(웃음)
저도 동의해요. 논문은 전문적인 분야이지만 읽는 사람을 설득해야 하잖아요. 제가 상상하는 독자가 물리학자냐, 아니면 물리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냐의 차이는 있지만 상상의 독자를 앞에 두고 그를 설득하는 글을 쓴다고 본다면 논문이나 책에 실린 글이나 큰 차이가 없는 거죠.
SF소설 같은 문학을 써보고 싶은 마음은 없으세요?
전에 한 번 수필을 청탁받은 적이 있어요. ‘별 거 아니지 뭐’ 하고 쉽게 생각했는데 못 쓰겠는 거예요.(웃음) 그때 알았어요. 과학자가 쓰는 글과 문학가가 쓰는 글에는 차이가 있다는 걸요. 과학자들은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도록 훈련 받아요. 논문을 쓸 때도 내가 쓴 문장이 다른 과학자가 보기에 동의할 수 있을지 계속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문학이나 에세이는 그게 아니잖아요.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런 걸 쓸 능력은 안 될 것 같은데, 수필은 재미있어졌어요. 제가 겪었던 일들을 개인적인 관점에서 풀어내는 글이라면 한 번 써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독가이시잖아요. 최근 재미있게 읽은 책이 있나요?
『아름다움의 진화』 요. ‘적응주의만으로 진화를 이해하는 건 협소한 시각이 아닐까?’라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 책이에요.
독자들이 『관계의 과학』을 어떻게 읽어주길 바라나요.
‘이렇게 해야 하는 구나’라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 ‘통계물리학을 하는 사람은 세상을 이렇게도 보는 구나’라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얼마든지 다른 시각으로도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서문에 ‘나는 행복한 물리학자다’라고 쓰신 게 기억에 남아요.
꿈이 작다는 이야기겠죠. 내일 당장 삶이 어떻게 된다고 해도, 아주 만족할 수 있을 정도로 아쉬움이 없어요. 더 해보고 싶은 것도 없고 노벨상 받고 싶다는 생각도 한참 전에 접었고요.(웃음) 그냥 연구하는 게 재밌고 즐거워요. 요즘은 대학원생들과 많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궁금증을 생각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떤 방향을 찾게 되고, ‘아 이런 거였구나!’라고 깨닫는 순간이 너무 즐거워요. 책 내는 것도 좋고요. 이전에는 과학자들을 많이 만났다면 책을 출간하면서 사회의 다양한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됐어요. 물리학자들은 콧대가 높잖아요. 세상에서 자기들이 제일 똑똑한 줄 알거든요.(웃음)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덕분에 자연히 겸손해지고, 세상이 더 재미있어요.
관계의 과학김범준 저 | 동아시아
우리의 일상과 친구 관계에서부터 사회 현상과 재해 등 자연현상까지 어떻게 작은 부분들이 전체로서의 사건이 되고 현상이 되는지 통계물리학의 방법으로 조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