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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천경우 “이미지보다는 과정의 시간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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붐비는 인도 뭄바이의 기차역, 한 작가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 중에서 버리고 싶거나 타인에게 주고 싶은 물건을 가져와 달라고 요청한다. 준비한 테이블 위에는 딸이 태어나서 처음 신었던 분홍색 양말과 20년간 팔에 끼고 다니던 팔찌, 폐병을 앓았을 때 찍은 엑스레이 사진 등이 놓인다. 남원의 해인사와 스페인 나바라 주에서는 붉은 보자기에 자신이 생각하는 고통의 무게만큼의 돌을 모아 담고 한 장소에 늘어놓는 퍼포먼스를 제안한다. 일견 황당해 보이는 요청에 사람들은 진지하게 반응하고, 반응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된다. 


천경우 작가는 1990년대 중반부터 전 세계 곳곳에서 사진, 영상, 대중 퍼포먼스,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탐구해 왔다. 별개의 공간을 무대로 그곳의 사람들에게 하나의 질문(요청)을 던진 후, 그들이 질문에 반응하여 어떤 경험과 조우하는지를 지켜본다. 시간과 경험, 관계와 소통, 실재와 부재에 대한 질문 앞에서 벌어진 낯선 경험은 참여자들의 표정과 행동을 다르게 한다.


천경우 작가의 첫 에세이집 『보이지 않는 말들』은 그동안의 주요 작품을 토대로 기록한 작업노트이다. 지금까지의 작품 모티프에서부터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 진행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 그 후의 기억까지 퍼포먼스의 여정을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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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 현장에서 직접 느끼는 작품


부제가 ‘천경우 작업노트’에요. 에세이 같은 느낌도 나고요.


작업하면서 있었던 일들을 기획자들과 여담으로 나누거나 대담에서 종종 이야기하거든요. 가까운 기획자 한 분이 글로 써서 사람들과 공유하면 좋겠다고 권하셨고, <현대문학>의 제안으로 기고를 했었어요. 미술지가 아닌 오래된 문학지였기에 용기가 난 것 같아요.


용기를 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그간 적잖은 메모와 스케치들이 여기저기 쌓여가는 것을 보며 언젠가 정리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하곤 했어요. 작업노트들을 들여다보고 기억을 되짚다 보니 뜻밖에 과거의 저 자신과 새롭게 만나게 되더라고요. 책을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기보다, 자연스럽게 계기가 만들어졌어요.


글을 쓰기 전부터 기록물을 꾸준히 남기셨어요. 월간 <현대문학> 연재 전에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나요?


기록은 항상 해요. 저만 알아보는 개인적인 기록, 지도, 도구 등 다양한 형태의 흔적들이 남고요. 기록을 가지고 뭘 하겠다기보다는 기억을 선명히 하고 다음 이정표의 실마리를 남겨두는 거죠. 또 스스로 검증하고 돌아보기도 하고, 새로운 작업과 연결되기도 해요. 아마 대부분의 작가는 어떠한 형태로든 기록하겠지만 저는 남겨지는 형태가 없는 작품이 많아서 의식적인 사건으로 기록되기도 하죠. 생각을 공유하는 일은 중요한 소통방식이기도 하고요.


처음 물성으로 된 책을 받으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무겁지 않지만 묵직한 오브제 느낌이 좋았어요. 작품집하고는 달랐고요. 작품집에는 제 글이 들어간 적이 없어서 특별했어요. 영상이나 조형 언어가 아닌 문자 언어로 남긴 첫 번째 책인 데다, 이제 꼼작 없이 이 어설픈 글들도 나의 일부가 되었다는 조금은 무거운 느낌도 들었죠. 이미지의 인쇄 질보다는 책의 무게. 손으로 만졌을 때 감촉과 무게에 더 중점을 둬서 출판사와 함께 제작했어요. 책은 제게 공간체험이기도 해요. 종이로 인쇄된 책을 손에 들고 보는 건 책과 독자의 일대일 만남이거든요. 작품의 소유나 전시를 보는 일과는 달리 의지만 있다면 경제적인 여건과 크게 상관없이 누구나 손에 쥘 수 있어요.


QR코드를 통해 직접 감상할 수 있는 작품(‘Perfect Relay’)도 있었어요. 사진과 영상이 책과 만난 느낌이에요.


처음부터 판매하지 않고 11분가량의 영상을 쉽게 공유하게 한 영상작품이었어요. 현장을 상상하던 독자들이 책 속 이야기를 함께 느껴보게 하려고 작은 통로 같은 장치를 넣어 보았지요. 이 엄지손톱만 한 통로로 들어가 보면 18명의 어린이들이 손으로 달리고 있어요. 

 


 


리뷰를 보면 작품 설명으로 받아들이는 분이 있더라고요. ‘도슨트를 듣는 기분’이었다고 남기셨어요.


물론 이 책의 글을 읽으면 제 작품을 이해하고 작가의 생각을 엿보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작품에 대한 해석은 기록되어 있지 않아요. 책에 실린 퍼포먼스나 설치사진들은 그저 작품의 기록일 뿐 이것 자체가 작품은 아니에요. 작품은 행위 현장에서 직접 느끼는 것들이죠. 단편적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이 어렴풋하게나마 참여하는 과정을 상상해볼 수 있다면 그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더라고요. 어떤 사람들은 타인을 통한 간접경험을 선호하기도 하지요. 엄격히 이야기하면 이 책은 저에게는 그냥 노트예요. 제가 기획하고 이런 일이 일어나게 만들었지만, 작품을 대하는 해석은 감상자 각자의 몫이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 저 또한 감상자이기 때문에 책에 담긴 내용은 감상자 중 한 명의 시각이기도 해요. 가급적이면 느끼면 느낀 대로, 사실을 사실대로 공개했어요. 현장에서 작가의 존재가 의미 있는 작품들도 있지만, 작가를 떠난 대부분의 작품은 작가로부터 독립해서 다 각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 거죠. 책이 좋은 게, 사람보다 오래 살더라고요. 디지털 이미지나 데이터와는 다르게 모든 책이 다른 모양으로 낡을 수 있고요.


사진작가로 표기되어 있지만, 대부분 퍼포먼스 위주의 작품이 소개되어 있어요.


책에 들어 있는 25개 프로젝트 중에 순수한 사진 작품에 가까운 것은 네 개밖에 안 돼요. 나머지는 과정에 중심이 있는 작품들이죠. 퍼포먼스냐, 공공미술이냐 하는 카테고리 자체는 제게 그리 중요하진 않아요. 자연스레 이어진 방법으로 하다 보니 이 시대 이론가들이 분류하는 영역에 속해있게 됐어요.


사진을 처음 했기 때문에 이런 작품들을 만들게 된 걸까요?


분명 사진적 체험들이 저를 이끈 면이 있어요. 사진을 찍으면서 공간을 느끼는 체험이 저에게는 중요한 발견이었어요. 사진은 이미지의 결과에 매진하다 보면 과정의 공간은 스치듯 지나가고 철거하는데, 이미지보다는 과정의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시간을 드러내는 건 사진으로부터의 해방과 동시에 사진의 영역을 확장하는 일이었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인간이 마주하는 공간에서는 상호작용을 통한 에너지들이 항상 오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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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포먼스를 기다리는 과정


’18x1 Minute’는 참가자들이 시계 없이 18분을 속으로 셈하는 내용이었어요. 사진 작품으로 남기도 하고, 퍼포먼스로 하기도 했죠.


6명이 함께하는 사진작품으로 시작해서 9명의 퍼포먼스로 발전되었던 작품이에요. 책에 실린 사진에는 안 드러나지만 참여했던 사람들은 복합적인 시공간 체험을 하게 되죠. 퍼포먼스는 실시간의 경험이 그 본질이지만, 어떤 의미에서 저는 이 작업을 확장된 사진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다른 18분이라는 시간을 우연히 모인 타인들과 함께하면서 서로 영향을 받는 우연적이고 인간적인 현상을 경험할 수 있지요. 사람 사이에 오가는 보이지 않는 무의식의 작용을 사진에서든 행위에서든 드러나는 것들을 찾기 시작한 중요한 계기가 된 프로젝트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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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ungwoo Chung, 18X1 Minute
Video based on performance, 2004

 

 


‘Happy journey’에서는 작품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작가님이 관찰하는 상황이 있었어요.


뭄바이에서는 사람들이 정말 저를 많이 관찰하더라고요. 현장에서 작업하는 동안 제 얼굴을 스케치하는 사람도 있었고요. 동아시아 사람들이 드물다 보니 그랬던 것 같아요. 우리가 누군가를 관찰한다고만 생각하지만, 그 순간 누군가도 항상 우리를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하는 것 같아요. 티 안 나게 애쓰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를 관찰하고 타인을 통해 자신의 인식을 경험하죠. 그래서 항상 상호관찰자들인 거예요.


불특정한 참가자들과 같이 작업을 진행할 때, 작가님만의 방법이 있나요?


매번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에 특별한 묘수는 없어요. 그저 당신과의 소통을 진정으로 원한다는 메시지를 조용히 느끼게 하고, 내용을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할 뿐이죠. 예를 들어 중국을 오가며 프로젝트를 할 때는 소통은 거의 못 하더라도 중국어를 계속 배웠어요. 그 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려는 게 아니라, 이 사람들에게 제가 자신들과 소통하려 하는 조금 귀여운 모습을 엿보게 하려는 의도거든요. 그러다 보면 그래도 잠시 여행하는 사람보다는 깊이 들여다보게 되고, 서로가 서로를 더 보는 거죠. 어딘가 불쑥 찾아가 작품의 목적을 위해 그들의 삶을 리듬을 훼손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의식은 늘 갖고 있어요.


‘달리기 Run-Left or Right’에서는 노숙자의 참가가 가장 기뻤다고 쓰셨어요.


퍼포먼스를 진행하던 서울역 광장에 원래 노숙하는 분들이 있었어요. 항상 왜 저 사람들은 제외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는데, 그 마음을 다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어떤 사정에서든 거기 와 있을 것 아니에요. 이분들이 퍼포먼스가 완성되어가던 저녁 때가 되니까 모이기 시작하더라고요. 대부분 자기들이 배제되는 것에 더 화가 나서 방해를 하고 스텝들은 그 사람들을 끌어내는 식으로 공공 행사들이 이루어지는 걸 직간접적으로 봤거든요. 처음에는 계속 방해했어요. 그러다가 그분들도 참여하시라 권했더니 조금 당황하더라고요. 참여 전제가 ‘누구나’ 인데 왜 안 되겠어요. 그래서 함께 달리며 참여하고 주변 사람들은 손뼉도 쳐 주었는데, 자신도 무언가 역할을 부여받아 기뻐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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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말들 Die unsichtbaren Worte’도 독일에서 에너지공사, 시 당국과 온갖 협의를 거쳤죠. 힘든 협의 과정을 거쳐 작업을 계속하는 힘은 무엇인가요?


필연성이라고 할까요? 운이 좋게 미술관이나 재단에서 제가 평소에 관심 있던 주제로 작품 의뢰를 하면 고맙죠. 하지만 항상 그럴 수는 없어요. 그렇다고 행운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고요. 이것이 저에게 필연적이지 않다면 예산이나 계기들이 맞지 않은 채 2, 3년 있다가 흐지부지될 텐데, 몇 년이 지나도 그 에너지가 살아있으면 그건 반드시 해야 해요. ‘Thousands’도 굉장히 오랫동안 기다렸어요. 예산이 많이 드는 프로젝트였고, 한,중,독 3개 국가의 여러 후원이 필요하고 또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함께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요. 하지만 저한테는 필연적이었기 때문에 여건이 갖춰질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던 거였지요. 대부분은 편지 쓰고 기다리고,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이에요.


정부나 다른 곳과 협상을 오래 해야 했던 다른 작품은 무엇이 있나요?


‘Perfect Relay’는 18개국 어린이가 참여하는데, 촬영과 퍼포먼스는 며칠 안 걸렸어요. 리서치와 편지 쓰고 동의를 기다리는 과정이 길었죠. 심지어 일본문화원에는 직접 가서 일본인 공보관에게 제 목적을 설명해야 했어요. 지인들을 동원하면 더 쉽지만 저는 가급적 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여러 정책의 책임자들이 간접으로 퍼포먼스를 경험하게 하려 하는데, 그런 과정은 기다림이 길죠. 돌이켜 보니 정말 편지의 한 문장 한 문장이 중요하더라고요. 그것이 우리에게 의미가 있다는 걸 서로 확인했을 때 작품이 비로소 시작돼요. 오래 기다리고 결정된 만큼 더 안정감이 있어요. 급하게 이루어진 것들은 불안하기도 하고요. 이루어져야 할 일이면 이루어진다고 믿어요. 지금도 어딘가에 편지를 쓰고 기다리고 있어요.


후회가 남는 과정은 없었나요?


작업 자체에 대해서 아쉬움은 있어도 후회는 별로 없는데, 후회보다는 양심의 가책이 남아요. 이 많은 사람의 마음을 드러나게 했는데 그 사람들과 인연을 다 가져갈 수 없잖아요. 그래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떠오르면 가끔 밤잠을 설칠 때가 있어요. 참여자들이 저에게 연락해오기도 하는데, 모든 연락에 답변은 못 하지만 대신 다른 작업을 통해서 이분들에 대한 나름의 응답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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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것들


‘공공미술의 개념이 ‘장소’의 개념에서 ‘시간’의 개념으로 변해’(86쪽)가는 게 다행이라고 쓰셨어요. 어떤 뜻일까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공공장소에 놓인 작품은 그 시대의 사람들과 공유를 해야 하잖아요. 동시대의 통념, 감수성과 소통해야 하는데 돌이나 강철과 같은 물성으로 한 장소를 차지하면 소수의 명작을 제외하고는 수십 년, 수백 년간 소멸이 없고, 소멸이 없으면 공간의 새로운 가치가 생성되지 않죠. 도시마다 중요한 광장에 조각과 동상이 있는데, 언제까지 둘 수 있을까요? 기획자와 작가들도 문제의식을 많이 느낄 거고요. 그래서 설치기간을 정해둔 일시적인 조형물이나 퍼포먼스도 공공미술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거죠. 제가 가고자 하는 언어의 방식과도 맞고요. 조형적이고 물성적인 걸 통해 궁극적으로는 공간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데, 고정된 조형물을 통해서만 울림이 이루어지는 건 아니거든요.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것들이 긴 울림을 줄 수도 있어요.


작품 활동을 계속하면서 주제가 바뀐 게 있을까요?


근본적인 관심사는 크게 안 바뀌는 것 같아요. 초기에는 인간의 고유함과 다양성에 더 관심을 가졌어요. 지금도 당연히 유효하지만, 많은 문화권의 사람들을 대하고 나이가 들면서 인간의 근본적 감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경험해요. 언어와 삶의 방식이 달라도 뭔가 비슷하고 연결되는 게 있어요. 사회의 통념이나 규율 속에서 정해준 역할 외의 것을 하면 딴짓한다고 하거나 그 가치를 무게 있게 인정하지 않는데, 우리가 내면에 가진 게 그렇게 작은가요? 산업화된 효율적 가치 바깥의 영역에서 잠재적 감성을 확인할 기회가 너무 없는 것 같아요. 제 작업을 통해 이 영역을 제공해 주고 인식하지 못하던 인간의 인간다움이 드러나는 작은 기회, 각자의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는 영감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작가이자 교수이기도 하시죠. 가르치면서 중점을 두는 게 있나요?


예술을 가르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교수는 조력자 역할을 하는 건데, 모든 학생들에게 숨겨진 고유성이 있다고 믿고 있어요. 각자 가진 가장 강한 목소리를 학생들과 협력하여 찾는 게 제 수업이에요. 보통 예술 하면 재능 있는 사람만이 하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장인적이고 수공예적인 시대의 개념이고, 필연적 의식과 성실함이 있다면 지금은 굉장히 많은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중요하고, 자신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필요하죠. 학생들은 제게 무언가 완성도 있는 결과를 보여주려 하지만, 저는 과정과 결과를 50:50으로 봐요. 실패한 결과물과 성실한 과정을, 성공한 결과와 엉성한 과정보다 더 높게 인정해요. 테이블 위의 결과물보다 가방이나 폰 속에 담긴 잡다한 재료들에서 핵심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 맥락을 찾는 토론을 하지요. 학생들 역시 저를 관찰하기에 제가 작업을 지속하고 고민하는 걸 보여주는 것 자체가 중요한 교육이라고도 생각해요.


작가, 사진가, 교수 등 여러 직함을 갖고 계신데요. 직업적으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떤 걸 명함에 넣게 될까요?


이름만 넣으면 좋겠는데 꼭 필요하다면 작가라고 넣어야겠지요. 부족하나마 스승이 될 수 있는 전제니까요.


앞으로 준비하는 기획이 있나요?


올해 6월에 핀란드에서 발표되는 작업을 지난해부터 준비하고 있어요. 자연 속에서 가장 전형적인 새들의 소리를 조류학자와 같이 수집해서 헬싱키 앞바다 섬 공간에 설치하고 사람들이 새소리를 듣고 상상해 그리는 작업이에요. 오랫동안 느꼈던 것 중 하나가 세상에 말하는 사람은 많은데 듣는 사람은 점점 없다는 거예요. 이 작업은 인간과 자연 관계에 관한 이야기인데, 사실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도 역설이죠. 자연 안에서 그 자연에 도움이 안 되는 인간도 들어있으니까요. 또 하나는 오는 3월부터 광화문 일민미술관과 광장에서 시작되는 새 퍼포먼스와 설치가 있어요. 광장에 스피치 부스가 설치되고 전시기간 동안 사람들은 누구나 와서 꼭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보이지 않는 말들천경우 저 | 현대문학
지금까지의 작품 모티프에서부터 작품 제안의 준비, 진행 과정에서의 다양한 에피소드, 참여자들과의 시간 그리고 그 후의 기억에 이르기까지, 그간 꺼내놓을 기회가 없었던 퍼포먼스의 여정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작가 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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