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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고전학자 김헌 “질문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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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는 삶을 살고 있나요?’ 서양 고전학자 김헌 교수가 수업할 때 꼭 던지는 질문이다. 망망대해와 같은 인생을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답이 아닌 질문. 스스로 묻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길을 찾을 수 있다.

 

내가 누구인지 묻는 행위는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그리고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고민으로 이어집니다.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어 내가 바라는 삶을 사는 데 있어 꼭 필요한 질문인 거예요. 또한 이런 질문들은 그 영역이 점점 확장되기 마련입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라는 질문은 ‘사람은 꼭 무엇을 좋아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거든요.(52쪽)

 

『천년의 수업』은 김헌 교수의 강의와 글을 토대로 만들어진 책이다. ‘좋은 질문은 무엇인가’로 시작해 ‘나는 누구인가’, ‘죽음은 정말 끝인가’,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가능한가’와 같은 인류의 근원적 질문을 서양 고전에 비춰 새롭게 이야기한다. 김헌 교수는 ‘서울대 도서관 대출 순위를 바꾼 강의’의 주인공으로 이름을 알린 후, <차이나는 클라스>, <요즘책방: 책 읽어드립니다> 등에 출연하며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고대 그리스의 시인들』 , 『인문학의 뿌리를 읽다』 , 『그리스 문학의 신화적 상상력』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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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가요

 

서울대에서 한 서양 고전 강의의 인기가 대단했다고요. 이유를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생각하죠. 두 가지 때문 아닌가 싶은데요. 일단 글을 많이 쓰게 했어요. 책 읽고 마음을 울리는 구절을 하나 꼽아서 쓰라고 했죠. 요즘 유행하는 표현으로 말하면 ‘인생 구절’을 꼽는 거예요. 그리고 그 문장이 왜 인상적이었는지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 쓰라고 했어요. 마지막에는 문제의식을 느끼고 자기 생각을 정리해 보라고 미션을 줬고요. 또 다른 이유는 우리 사회를 비추는 은유로써 신화가 지금도 유효하다는 걸 이야기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글쓰기’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준 셈이네요.


무작정 쓰려면 막막하잖아요. 이렇게 하면 책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워하는 학생도 쓸 수 있거든요. 한 문장만 고르면 되니까요. 글쓰기 싫어하는 학생이 많으니까 포기하는 사람도 많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한 학기 지나고 다음 학기 되니까 학생 수가 늘어나는 거예요. 원래 정원이 20명이었는데 30명 되고 50명 되고 80명 되는 식으로요. 글쓰기가 막연하지 않다는 걸 학생들이 경험한 거죠.

 

‘도서관 대출 순위를 바꾼 강의’라는 말도 있더라고요.


그게 어떻게 알려졌냐 하면요. 어느 날부터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 희극 같은 책이 도서관 대출 순위 10위권에 올라간 거예요. 에우리피데스 비극이나 아리스토텔레스 희극같이 일부러 읽으려 하지 않으면 읽지 않을 책들이요. 그러니까 학교에서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도대체 『총, 균, 쇠』를 어떻게 밀어냈냐’하는 반응이 생긴 거죠. (웃음) 이 현상을 의아하게 생각한 모 일간지에서 제 실명을 거론해 기사를 내면서 알려지기 시작했고요. 어느 국회의원은 ‘서울대 학생들의 독서 편식이 심해서 문제’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더라고요. 기사가 나가고 몇 년 사이에 갑자기 주목받았고 많은 기회가 생겼죠. 운이 좋았어요. 

 

대학뿐만 아니라 중학교부터 공공도서관까지 다양한 곳에서 강의하시더라고요. 최근에는 TV로도 진출하셨죠?  


새로운 사람은 만나는 일에 대한 기대감이 커요. 제가 가진 생각을 여러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고요. 이런 일에 대한 도전정신이 있는 거 같아요. 거창하게 말하면 사명 같고요. 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최대한 많이 가는 게 제가 월급 받고 생활을 보장받는 대가라고 생각해서 어디든 가는 편이에요.

 

고등학교 교사 출신이시라고요.


20대 중반부터 30대 중반까지 10년가량 교사로 일했어요. 한 반에 4~50명 정도 있었는데 성적도 다르고 성격도 천차만별이잖아요. 저마다 다른 학생들을 어떻게 잘 가르칠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어요. 그때 경험이 지금 대학 강의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 강연을 하게 하는 바탕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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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가지고 갈 굵직한 질문이 있어야

 

직선주로였던 삶이 망망대로임을 깨달을 때 질문한다(10쪽)고 했는데 언제 처음으로 망망대로임을 느꼈나요?


고등학교 2학년에서 3학년 될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인생이 어느 순간에 갑자기 끝날 수 있다는 걸 알았죠. 살아 있다는 게 낯설게 느껴지더라고요. 공부하고 대학에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싶어서 방황하다가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겨우 마음을 잡았어요. 이때가 처음이었죠. 두 번째는 유학을 다녀와서였어요. 교사로 일하다 유학을 결심하고 사표를 냈는데 모든 게 정리되는 순간 막막하더라고요. 말 그대로 망망대해에 있는 것 같았어요. 유학 가서 박사학위 받고 오면 교수 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지만, 아무것도 보장된 게 없거든요. 유학 끝내고 돌아왔는데 그야말로 학위증 있는 거지더라고요. 이런 얘기까지 해도 될는지 모르지만, 아이는 넷인데 수입은 적으니까 어머니 집에서 커튼 치고 방을 만들어서 살 정도였어요. 시간 강사로 여기저기 다니면서 일하니까 체력적으로도 힘들었고요. 정말 죽겠더라고요. (웃음) 제가 오십에 정규직이 됐거든요? 공부하기로 하고 외길을 갔지만, 앞만 보고 간 게 아니라 망망대해 속을 헤집고 다닌 거예요. 당시에 너무 힘들어서 저를 가르쳤던 프랑스 선생님께 ‘전망도 안 보이고 힘들다’고 ‘이렇게 살다 죽을 것 같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딱 한 마디 하시더라고요. “책을 보라”고요. 

 

아…너무 모범 답안 아닌가요. 힘이 될 것 같지 않은데요. (웃음)


그 말씀을 듣고 그대로 해봤어요. 결국 책 읽고 공부하는 과정이 강의나 기고를 준비하는 건데요.  책 읽고 공부하고 글 쓰는 일에 푹 빠지니까 일단 빠져있는 시간에는 다른 생각 안 하게 되더라고요. 운이 좋을 때는 내 문제에 관한 답이나 힌트를 찾을 수도 있었고요.

 

그때도 주로 서양 고전을 읽으셨겠네요.


그렇죠. 제 일이니까요. 그 프랑스 선생님이 책을 읽으라는 건 다시 말해 죽을 각오로 공부하라는 거였어요. 그 길밖에 없다고 하신 거죠. 다른 길을 찾으려 들면 못 찾는다고요. 공부하는 사람들이 묘한 구석이 있는데요. 특히 저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필사적으로 공부하셨어요. 어떻게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요. 플라톤을 가르친 선생님도 ‘죽을 각오로 공부하라’는 말을 자주 하셨거든요. 

 

질문을 많이 하기보다 평생 붙들 굵직한 질문이 있는 게 중요하다고요. 교수님의 굵직한 질문은 뭔가요?


타인에게 행복을 주고, 느끼는지 자주 질문해요. 행복이 가장 큰 가치라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공감하는데요. 행복한 관계만 갖고 불행한 관계는 피하겠다는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태도가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서로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찾으려는 태도를 말해요.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행복하고 다른 사람으로 인해 내가 행복한 관계 속에서 살면 그게 가장 좋은 삶이 아닌가 싶고요.

 

행복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궁금해요.


‘행복을 주고받고 있느냐’라는 질문에는 ‘행복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포함되기 마련인데요. 이 역시 끝까지 가지고 가야 할 굵직한 질문인 것 같아요. 그러니 어떤 답을 제시하기보다 계속 품고 살아갈 질문이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만 말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행복이 무엇인지 묻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 행복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거죠.

 

계속 안고 갈 굵직한 질문이군요.


라틴어에는 영어 much에 해당하는 말이 단수형(multum)과 복수형(multa) 두 가지가 있어요. 희한하죠? 많다는 뜻이니까 복수형만 가능할 것 같은데 단수형이 있는 거예요. ‘책을 많이(multa) 읽기보다 여러 번(multum) 깊게 읽는 게 중요하다’고 할 때 쓰여요. 질문이나 생각에 관해 말할 때도 적용되는데요. 쉽게 답을 얻고 끝내는 얄팍한 질문이 아니라 끝까지 가지고 가야 할 질문을 하라는 거예요. 살다 보면 그런 질문이 추려지거든요. 답은 잘못될 수 있어요. 어느 순간에는 폐기해야 할 답이 있을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질문의 가치는 손상되지 않아요. 이런 사람이 진정한 의미에서 질문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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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의심하지 않죠?

 

최근에 들은 가장 인상적인 질문이 있다면요?


어려운데요. (웃음) 잘 생각나지 않는데… 그만큼 우리 사회에 질문이 많지 않다는 방증인 것 같아요. 가끔 학생들한테 이런 문제를 내요. 어떤 구절을 하나 주고 이 구절로 문제를 만들라고요. 그리고 그 문제를 풀어보라고 하죠.

 

어렵네요.


그렇죠? ‘괜찮다’ 싶은 질문이 안 나와요. 뻔한 것들만 물을 때가 많죠. 그렇다고 뻔한 질문이 가치 없다는 건 아니고요. 새로운 각도에서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이 귀하다는 거죠. 아, 최근에 EBS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철학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는데요. 여기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던지는 질문 중에 인상적인 게 많아요.

 

하나만 소개해 주세요.


<벌거벗은 임금님>을 이야기하면서 어떤 아이가 ‘임금님은 왜 사람들의 거짓말에 계속 속을까요?’라고 묻더라고요. 재봉사 말을 왜 그대로 믿냐는 거예요. 보통은 ‘거짓말하는 사람’에 집중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너 이거 거짓말이지?’라고 한마디만 하면 달라질 수 있는데 임금님은 왜  의심하지 않고 안 보이는 데도 보이는 것처럼 행동하는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여기서 우리 모습이 보여요. 사회가 정해 놓은 가치들이 있잖아요. 좋은 대학을 가야 출세할 수 있다는 등의 이야기들이요. 철저히 그 가치를 따라 살아요.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면 패배감을 가지고요. 마치 ‘착한 사람한테만 보이는 옷이야’라고 했을 때 ‘그게 진짜야?’라고 의심하고 물어보지 않는 것처럼요.

 

자신도 모르게 익숙한 쪽을 선택하게 되는 거 같아요.


뻔한 질문에 묻어가는 거죠. 가끔 기발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그런 질문이 나오면 텍스트를 새롭게 읽는 길이 열려요. 일례로 <토끼와 거북이>에서 우리가 얻는 익숙한 교훈이 있잖아요. ‘못난 사람도 열심히 하면 이룰 수 있어’와 같은… 그런데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어요. ‘거북이는 왜 그 경주에 응하지?’라고 질문하는 거죠. 거북이가 경주에 참여할 이유가 없잖아요. ‘이 경주가 이상한지 아닌지 묻지 말고 일단 시작해’라든가 ‘토끼가 빠르지만, 거북이 네가 열심히 하면 이길 수 있어’라는 말은 아이들을 속이는 이야기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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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이 신화를 만든 이유

 

오뒷세우스가 안락한 삶을 뒤로하고 고통이 있는 인간의 삶을 선택했다는 대목이 인상 깊었어요. 불완전한 인간의 삶을 겸허하게 수용하고 긍정하는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출판사에서 홍보용으로 만든 SNS 콘텐츠가 있어요. ‘세상을 아름답게 보자’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더라고요. 이건 문제가 있는데 싶어서 걱정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네가 교수라서 할 수 있는 말이다’, ‘버스비가 없어서 걸어 다니면 세상이 더 아름다울 거다’ 등의 날 선 댓글이 많더라고요. 세상을 아름답게 보려는 노력 자체에 반감을 갖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런 생각과 별개로 ‘사실 내가 그렇게 쉽게 산 사람은 아니거든?’ 하는 마음도..(웃음)

 

망망대해에 있었는데…(웃음)


그러니까요. ‘나도 망망대해에 있었는데 내 길을 찾아왔고 다행히 지금에 이른 거야’라는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이… (웃음) 결국에는 아무리 힘들어도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그런 삶을 사는 거 같아요.

 

희망에 차서 ‘삶은 아름다운 거야’라고 이야기하기보다는 담담히 ‘삶의 조건’이라고 말하는 거 같았어요. 이래서 고전을 읽는구나 싶었고요.


그리스인이 오뒷세우스 이야기를 왜 만들었을까요? 사실 세상에 낙원이 없잖아요. 모든 인생은 저마다의 이유로 고단하고요. 그리스인들도 그걸 안 거죠. 오뒷세우스의 병사가 외눈박이 거인(폴리페모스)한테 씹어 먹히잖아요. 그런 일도 결국 지금 일어나는 일과 다르지 않거든요. 친구가 노동 현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죽었는데 아무 보상도 못 받아요. 이게 외눈박이 거인이 씹어먹는 거랑 뭐가 달라요. 어쩌면 더 잔혹하죠. 보이지 않는 시스템을 이용해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다고 욕만 할 수는 없잖아요. 이겨내는 힘을 길러야죠. 그래서 그리스인들이 오뒷세우스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싶어요.


누구의 인생도 줄곧 평탄하지는 않습니다. 저에게도 때때로 견디기 힘든 고비가 찾아왔어요. 장밋빛 미래를 꿈꾸면서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아무리 나아가도 빛 한 줄기 보이지 않을 때면 마음이 무너지고는 했습니다. 나의 노력과 가족들의 고생마저 물거품이 되면 어떡하나 덜컥 겁이 났지요. 그럴 때면 저는 『오뒷세이아』를 꺼내들었습니다. 오뒷세우스는 영원하고 평탄한 삶을 포기하고, 아프면서 고통스럽고 시시각각 고민에 휩싸이는 인간의 삶을 향해 스스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인간이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죽음마저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입니다. 언젠가는 죽을 것이기 때문에 살아 있는 지금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더욱 더 가치 있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지요.(132쪽)

 

햄릿의 명대사 죽느냐 사느냐(to be or not to be)를 ‘있느냐 없느냐’로 재해석한 대목도 좋았어요. tvN <책 읽어드립니다>에서도 언급하셨는데 결국 ‘있음’과 ‘없음’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닌가 싶더라고요.


일단 진위를 살펴봐야 해요. 햄릿의 고민은 이거였어요. 아버지의 명령을 따라서 삼촌 클로우디스에게 복수하고 싶은데 삼촌이 지금 회개 기도를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 죽이면 천당 갈 것 같은 거예요. 자기 아버지는 죄가 많은 상태로 독살당해서 혼령이 되어 지옥 부근을 돌고 있는데 삼촌이 천국 가면 그건 복수가 아니잖아요. 삼촌이 죄를 짓고 그 죄를 씻을 수 없는 순간에 죽여야 한다고 결심해요. 이런 고민을 하면서 던지는 질문이 ‘있음이냐 없음이냐(to be or not to be)’예요. 햄릿의 아버지는 혼령이잖아요. 죽었으나 어떤 상태로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죽으면 정말 없어지는 건가?’ ‘그게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있다면 복수가 달라져야 하는데?’ 하고 고민한 거죠. 여기서 우리는 선택하기 전에 존재하는 게 무엇이고, 산다는 게 무엇인지, 죽으면 정말 없어지는 건지 등을 질문하게 되고요.

 

오이디푸스 이야기와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선택의 문제로 학생들과 수업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게 오이디푸스 이야기였어요. 오이디푸스가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범할 거라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잖아요. 학생들에게 오이디푸스를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운명을 선택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했어요. 한 마디로 우리가 정말 자유로운지, 아니면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건지 물은 거죠. 한 학생이 오이디푸스는 결국 운명에 따라 살았지만 피하려고 노력했다는 거예요.

 

운명을 대하는 태도, 방식을 선택했다는 거죠?


그렇죠. 그 친구의 결론은 ‘운명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운명을 대하는 방식은 선택할 수 있다’는 거였어요. 그리고 그 운명을 대하는 방식에서 인간은 한없이 자유롭다. 멋있죠? 제자한테 한 수 배웠어요.

 

흔히 ‘이성’이나 ‘사유’를 인간의 조건이라고 하는데 이게 불가능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이 지점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생각하게 돼요. 이런 질문에 대한 힌트도 고전에서 얻을 수 있을까요?


맞아요.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두고 우리는 ‘인간답다’라고 하죠.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도 마찬가지였어요. 이 지점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생각해볼 문제예요. 심각한 지적 장애가 있거나 식물인간이 된 사람은 인간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는데… 답을 가진 고전을 찾는 게 아니라 인간다움을 물었던 책을 찾아야겠죠. 고전이 고전이라 불리는 이유도 질문 때문이에요. 중요한 건 ‘우리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방식으로 답을 찾아가는가’이고요. 답은 틀릴 수 있지만, 질문은 틀리지 않거든요.
 

 

 

 


 

 

천년의 수업김헌 저 | 다산초당
‘나는 누구인가’ ‘인간답게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토록 치열하게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만족스럽고 행복할 수 있을까’ 등 9가지 거대한 문을 통과하여 일상의 새로운 발견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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