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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준 시인 “읽는 사람이 잘 따라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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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의 산문집을 동시 출간했다. 『모월모일』 은 신작, 『소란』은 6년만의 개정판. “다소 바쁜 시간을 보냈겠다”고 물으니, 박연준 시인은 책을 만든 편집자에게 공을 돌렸다. 시인은 산문을 쓸 때 독자를 의식한다. “잘 보이고 싶은, 모르는 사람”을 독자로 상정하고 글을 쓴다. 잘 보이고 싶기에 가능한 이야기를 매력적으로 풀고, 모르는 사람이기에 이야기를 비약하거나 넘겨짚는 실수를 덜한다. 작가 인터뷰를 하면서 이렇게 ‘독자’가 많이 언급된 건, 박연준 시인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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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들어있는 평범한 이야기

 

『소란』 이야기부터 여쭐게요. 굉장히 오랫동안 사랑받은 책이잖아요. 계약 기간이 끝나고 잠시 절판된 후 새 표지로 나왔어요. 오래 전 쓴 글을 다시 읽은 기분이 어땠나요?

 

햇수로는 7년 전, 아니 더 오래된 글들도 많아서 다시 들여다보니 부끄럽더라고요. 미숙한 생각들도 보이고, 문장도 마음에 안 들고. ‘왜 이런 얘기까지 했을까!’ 혼자 진땀을 흘리기도 했어요. ‘난다’의 김민정 시인, 유성원 편집자와 상의해서 제가 빼고 싶은 글들은 빼고, 다듬어서 내놓았어요. 오래 전에 낸 책을 다시 보는 건 늘 곤혹스러워요. 작가도 계속 자라거든요. 꾸준히 성장해요. 이전에 썼던 말을 부정하려는 게 아니라 말하는 방식이나 세상을 보는 태도 등이 계속 달라지는 거죠. 결과적으로 두 권 다 마음에 들게 잘 나왔어요.

 

『모월모일』 은 근 2년간 연재하며 써온 산문이에요.

 

문학동네 강윤정 편집자가 워낙 꼼꼼하게 일하는 분이라 저는 시키는 대로 착착 일을 하면 됐어요.

 

새 책이 나면 꼭 하는 의식 같은 건 없나요? 좋아하는 사람과 밥을 먹는 일 같은.

 

딱히 그런 건 없어요. 그냥 새 책이 왔으니 만져보고 냄새 맡고, 살펴보죠. 예쁘게 나왔는지, 잘못 된 건 없는지. 출간 파티 같은 것도 안 해요. 쓴 책은 다시 읽어보지 않기 때문에 처음 받은 날은 표1부터 표4까지 꼼꼼히 살펴보고 만져본 후, 일독을 해요. 그 다음 SNS에 올려 독자들에게 선보이죠.  

 

『소란』 개정판의 ‘작가의 말’을 읽다가 밑줄을 굵게 그은 문장이 있어요. “당시 겨우 시집 두 권을 낸, 무지렁이가 쓴 글을 사랑해준 독자들이 많습니다. 그분들께 코가 무릎에 닿도록 허리를 구부려 인사드립니다. 당신들의 우정, 조건 없는 지지와 응원이 저를 쓰는 사람으로 살게 합니다.” “코가 무릎에 닿도록”이라니요! 시인님의 진심을 알기에, 무척 감동했어요.

 

정말이에요. “코가 무릎에 닿도록” 공손히, 마음을 다해 인사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스트레칭을 열심히 해야겠네요? (웃음) 『소란』은 제가 시집 두 권을 낸 신인 때 처음 낸 책이에요. 그때까지 저는 등단한 지 10년이 되었는데 낭독회 한 번 한 적이 없는,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신인이었어요. 친하게 지내는 시인도 많지 않았고요. 물론 작품 발표는 활발히 했기 때문에, 소수의 독자들이 제 시를 좋아한다고 말해주는 경우가 왕왕 있었지만 대중에게 알려진 시인은 아니였죠. 2007년에 첫 시집이 나오고 <중앙일보>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했는데, 그것도 거절했을 정도로 활동을 안 했어요.

 

정말요? 대개 거절하는 경우가 없을 텐데요. (웃음)

 

부끄러움이 많았고 저를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2014년에 『소란』이 나왔을 때 그냥 조용히 지나갈 줄 알았는데, 아주 느린 속도로 독자들의 반응이 있었어요. 책이 조용히, 5년 동안 꾸준히 팔렸어요. 어떤 홍보도 안 했는데, 독자들이 다른 독자에게 소문을 내주더라고요. 많은 분들이『소란』을 좋아해주셨어요. 제게 만약 인지도가 있다면, ‘테트리스’처럼 쌓아온 인지도라고 생각해요. 순전히 독자들이 만들어준 거고, 그들이 저를 호명했다고 생각해요. 저는 독자들에게 깊은 우정을 느끼는데, 특히 『소란』 독자들은 제게 (실제로) 특별한 이야기를 많이 해준 분들이에요.

 

박연준 시인의 산문을 읽으면 마치 잘 깎인 연필로 쓴 글 같거든요? 날카로운 펜촉은 아니죠. 하지만 뭉툭한 연필은 아니고요. 산문을 쓸 때 어떤 문장을 쓰려고 노력하나요?

 

하나마나한 이야기, 피상적인 이야기는 쓰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산문을 쓸 땐 생각을 많이 해요. 저쪽에 있는 사람에게 무엇을 건네 줄까, 고민하죠. 무엇이든 줘야하는데 평범한 이야기라도 뭐가 들어있는 걸 주고 싶다고 생각하죠. 문장을 아주 많이 고치는데, 그건 독자들을 피로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예요. 빛나는 문장을 써야한다는 욕심보다 더 중요한 건 정확한 표현, 견고한 문장을 쓰는 일이라고 생각하죠. 아무튼 계속 밖을 주시해요. 읽는 사람이 잘 따라오는지. 시 쓰기와는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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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을 밖에 두는 글쓰기


『모월모일』 은 직접 제목을 지으셨다고요.

 

이 원고를 기획할 때 가능한 작은 이야기, 누구나 겪는 이야기, 가장 평범한 이야기를 쓰려고 작정을 했었어요. 그때 노트를 찾아보니 이렇게 적혀있네요. 저는 책을 쓰기 전에 늘 혼자 이미지를 생각하고 기획해요. “작고, 깊고, 따뜻한 일상을 쓸 것. 단단하게 쓸 것. 동시에 말랑하며 가볍고, 머무르게 할 것. 평범할 것! 특별할 것!” 노트에 쓰고 싶은 소재를 가득 적어 놓았죠. 겨울밤, 식물과의 대화, 시 창작 수업에서 우리가 나누는 것, 두통과 명상, 싸운 친구에게 문자하기 등등… 저는 언제나 쓸 수 없을 것처럼 보일 정도로 ‘작은 일’로 글을 쓰는 걸 좋아해요. 『모월모일』 은 어떤 날들, 평범한 나날에 우리가 겪는 일들의 귀함을 생각하며 쓴 글이에요. 남편과 책 제목을 상의하다 『모월모일』 이 좋겠다고 같이 결정했어요.

 

『월간 채널예스』에서 ‘박연준의 특별한 평범함’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들이 많이 들어갔어요. 이 코너가 첫 연재셨다고요. 

 

이따금 산문 청탁은 있었지만, ‘연재’는 정말 처음이었어요. 『월간 채널예스』에서 첫 연재를 하게 되어 얼마나 떨리는 마음으로 행복해하며 썼는지! 1년 반 동안 격주로 연재하며, 후반부엔 조금 지칠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행복했어요. 첫 연재라서 잘하고 싶었고, 또 제가 팟캐스트 <책읽아웃> 열혈 팬인데 『월간 채널예스』도 같은 회사에서 나오는 잡지잖아요. 잡지와 팟캐스트를 만드시는 분들도 같고. 연재 목록 쌓일 때마다 애정을 갖고 사이트 들어가서 보고 또 보고 했어요. 신기한 게 『월간 채널예스』에 연재한 뒤로, 산문 연재를 제안하는 연락을 많이 받았어요. 이게 다 『월간 채널예스』로 스타트를 잘 끊어서라고 생각해요. 글쓰기를 전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잘 알거든요. 잘 써야 ‘다음’이 있다는 걸요. 그걸 알기에 늘 노력해요.

 

두 산문집을 함께 읽으면, 『모월모일』 이 조금 명랑한 느낌이 들어요.

 

아마 자라서일 거예요. 성장해서요. 성장은 어떤 식으로든 ‘여유’를 갖게 하잖아요. 저는 원래 명랑한 기운을 가진 사람인데, 20대 때는 여러 가지로 여유가 없어서 ‘명랑’을 사용할 기회가 없었어요. 특히 글에서는요. 제가 ‘소란’의 개정판 서문에도 썼는데, 『소란』을 쓰고 난 이후에 삶을 더 긍정할 수 있게 되었어요. 많이 바뀌었죠.

 

『모월모일』  177쪽에 ‘새로 갖고 싶은 취미’가 나오는데,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을 추려서 인물 사진을 찍고 싶으시다고요. 왜 일까요? 싫어하는 사람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아시면서!

 

알죠. (웃음)

 

우리가 정과 사랑이 많은 만큼 까칠함도 꽤나 지니지 않았습니까? (웃음) 싫어하는 타입, 싫어하는 사람 많아요. 좋은데 이유가 없는 것처럼 싫은 데도 이유가 없죠. 언제 인물 사진만, 한 몇 달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군가의 얼굴을 찍고 바라보면, 내가 이 사람을 왜 좋아하고 왜 싫어하는지 보일 것 같기도 하고요. 사진을 찍고 나서, 마음이 이리저리 바뀔 것도 같고요.

 

저도 그 취미를 언젠가 따라해보고 싶네요. 또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어요. 스승님께서 “시를 빤스처럼 항상 입고 있어야 돼”라고 말씀하셨다고요. 아, 생각만 해도 너무 힘들 것 같은데요. (웃음)

 

김사인 시인께서 10여 년 전 불쑥 전화해서 한 말씀이었는데요. 사실 속으로는 “자꾸 노팬티가 되는 걸 어떡해요!” 투덜거리기도 했어요. 시가 미치도록 좋다가, 또 꼴도 보기 싫을 때가 있거든요. 꼭 부부 같아요. 다른 시인들도 대체로 그렇게 느끼지 않을까 싶어요. 시적 자아라…. 글쎄요, 시는 제 성격인 것 같아요. 저랑 잘 맞아요. 다르게 보고 다르게 말하고 싶어 하는 심리, 비유 속으로 숨기, 설명하지 않으면서 표현하기, 이런 방식이 즐거워요. 좋은 시를 한 편 썼을 때, ‘그와 비슷한 정도의 황홀감’은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것 같아요. 그 자체로 충만해서, 정말 부자가 된 것 같아요. 기도가 이루어졌을 때 기분 같달까. 뭔가 약장수 같은 표현이네요? (웃음) 산문을 아무리 멋지게 쓴다 해도 느낄 수 없는 기분이에요. 

 

『소란』  61쪽에 “실제로 내가 시를 쓰는 이유는 불안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인가요?

 

그럼요, 시시때때로 불안하죠. 어떤 균열, 틈, 메울 수 없는 허기 같은 걸 수시로 느끼는데 그걸 표현하기엔 ‘시’라는 장르가 알맞죠. 시를 쓰고 나면, 그 불안이 가라앉아요. 메꿔지진 않는데 고요해지죠.

 

독자들의 리뷰를 찾아 보시나요?

 

부러 검색해서 찾아 읽어요. 제 책을 누가 읽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거든요. 리뷰 내용에 일희일비하는 성격은 아니라서 담담히 읽어내요. 그런데 얼마 전 어떤 리뷰를 읽는데, ‘소란’에서 파닥이고 슬퍼했던 작가가 성장해서 『모월모일』 처럼 단단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됐다고 생각하니 뭉클했다는 내용을 보았어요. 그때 저도 새삼 울컥하더라고요. 독자들과 같이 성장하고, 나이 든다고 생각해요.

 

시인님은 내향형 인간인가요?

 

맞아요. 사람을 만나고 나면 피로해서 쉬어야 하고, 낯선 사람과 만나야 할 일이 있을 땐 긴장해요. 나서거나 주목받는 일을 싫어하고, 단체 활동을 안 좋아해요. 먼저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일도 거의 없고요. 북 토크나 강연 자리에 설 때면 몸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걸 느껴요. 그런데 또 친한 사람들 앞에선 까불고, 장난치고, 명랑하거든요? 어떤 일을 곱씹어 생각하거나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쌓아두며 기억하는 성격은 또 아니예요. 화가 나면 불 같이 화를 내고, 그 다음날 쉽게 잊어요. 몇 년 지나면 잘 기억도 못하고요. 그럴 땐 단순한 바보인가 생각도 하죠. 저도 저를 모르겠네요. (웃음) 분명한 건 부끄러움이 많다는 거예요.

 

예전에 글쓰기 수업을 가르치신 적이 있으시잖아요. 좋은 산문을 쓰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좋은 산문은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기분을 갖게 만드는 산문 같아요. 글의 내용이나 수준에 상관 없이요. 그래서 저는 독자를 ‘잘보이고 싶은, 모르는 사람’으로 상정하고 글을 써요. 잘보이고 싶기에 가능한 이야기를 매력적으로 풀어놓게 되고, 모르는 사람이기에 이야기를 비약하거나 넘겨짚는 실수를 덜 할 수 있겠죠. 매력을 유지하면서 친절해지려는 거죠. 달콤한 친절을 이야기하는 건 아녜요. 저는 습작생들에게 모호한 이야기, 겉멋이나 분위기를 피우는 문체를 지양하라고 말해요. 분위기는 쓰고 나서 (저절로) 생기는 거지, 만든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초심자들에게 권하는 산문 쓰기 방식은 구체적인 이야기를 쓸 것, 과거의 어떤 시점을 쓴다면 ‘한번 다시 살아보듯’ 생생하게 쓸 것, 중심을 내가 아니라 밖(독자)에 두고 쓰는 게 중요해요. 그래야 자의적인 글이 되지 않거든요. 매끄럽게 읽힐 때까지 문장을 여러 번 고쳐야 하고, 고칠 때 소리 내서 읽어봐야 하죠. 사실 글쓰기에 관심이 있고, 독서를 많이 한다면 저절로 습득할 수 있는 것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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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잘 듣는 일’

 

글쓰기에 관한 책을 종종 읽으시나요?

 

아주 좋아하고, 자주 읽어요.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 <파리 리뷰>, 『작가란 무엇인가』이 세 권을 추천해요.

 

올해 들어 읽은 책 중에 가장 좋았던 책은 무엇인가요?

 

미국 시인 ‘도널드 홀’의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 . ‘여든 이후에 쓴 시인의 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데, 정말 좋은 책입니다.

 

책을 안 읽는 시대라고 하지만, 읽는 사람들은 꾸준히 그리고 더 많이 읽는다고 생각해요. 확실히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사고의 폭이 넓고요.

 

저는 독서를 ‘잘 듣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책을 읽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에 관심을 갖고 들어보려는 자세를 가진 사람이잖아요. 인간은 자기 생각만으로 성장할 수 없는 존재이고,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선 타인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볼 필요가 있죠. 책을 읽는 사람은 여러 가지 면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갖게 된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재미있잖아요. 책을 읽는 즐거움은 내밀한 경험에서 오는 즐거움이에요. 특별하죠. 

 

먼 훗날, 꼭 쓰고 싶은 책이 있나요?

 

여든이 넘었을 때 ‘짧고 진한’ 연애소설을 한 권 쓰고 싶어요. 아주 야하고, 아주 슬프게 쓸 거예요.

 

취미로 발레를 하시잖아요. 발레에 관한 에세이를 써볼 생각은 없나요?

 

몇몇 편집자분이 제안을 주시기도 했는데요. 발레하는 제 모습, 소소한 생각들을 산문집에 여러 번 쓰긴 했거든요. 책 한 권 분량을 쓸 수 있을진 모르겠어요. 만약 쓴다면, 아마도 시론처럼 쓰고 싶을 것 같아요. 설명하는 글이 아닌, 시적인 글이 될 텐데 아마 팔리진 않겠죠? (웃음) 아무튼 발레는 시와 결이 같아요.

 

박연준 시인의 산문을 읽으면, “따뜻하고 여리지만 어떤 면에서는 단호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시인님은 어떤 사람을 좋아하나요? 『소란』  94쪽에 나오는 손해 보는 사람들, 좀 느린 사람일까요?

 

제가 생각해도 제게 좀 단호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화가 나면 ‘폭발’한답니다. 펑! 어리버리하고 부끄러움도 많고 허당인데, 직설적인 데가 있거든요. 호불호가 강하고, 할 말은 앞에서 하는 편이고요. 그러니 실수도 많겠죠.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패배를 아는 사람들 같아요. 어디 다쳐본 사람, 마음 기우뚱한 구석이 있는 사. 그렇지만 꼬인 사람은 싫어요. 음지에 있어본 사람… 이를 바득바득 갈며 덤비면 이기는 삶을 살 수도 있겠지만, 굳이 안 그러고 지는 사람이 좋아요. 제가 어딘가에 썼듯이 “순하게 빛나는 사람”이요. 저는 어려움을 겪고 독해지는 사람, 인색해지는 사람이 되는 걸 경계해요. 어릴 때부터 경계했어요. 순해져야 시를 쓸 수 있거든요.

 

“순해져야 시를 쓸 수 있다”는 말, 너무 좋네요. 독자 입장에서 그런 시를 읽고 싶기도 하고요. 남편인 장석주 시인님과 2015년에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를 함께 쓰셨어요. 시인으로는 굉장히 선배시죠? 두 분은 닮은 부분이 많나요?

 

아니요. (웃음) 저희 정말 하나에서 열까지 다른 성격의 사람인데요. 다른 부부들과 사는 모습은 비슷할 거예요. 그런데 저희 남편이 몇 년 전, 쓴 책의 수가 100권을 넘겼거든요. 제가 말했죠. “여보, 한 사람이 살면서 ‘좋지 않은 책’을 100권 쓰는 일도 어려워. 그런데 당신은 (내 기준에서) 좋은 책을 100권 넘게 쓴 사람이잖아. 고생 많았어요.” 이렇게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15살 때부터 50년 동안 읽고 써온 사람을 옆에서 보는 일은 좀 숙연해지는 데가 있어요. 배우죠. 그 사람은 무언가를 불평하는 법이 없어요. 농부가 씨를 뿌리듯 글을 써요. 팔리든 안 팔리든, 계산하지 않아요. 저는 그게 좋더라고요. 단단한 사람이지만, 속은 여리고 순한 사람인데 사실 저도 그걸 2,3년 전에야 안 것 같아요. 이 사람의 순함을요. 안다고 했지만 ‘이해’는 또 어려운 일이겠죠. 그냥 옆에서 같이 살면서, 서로에게 배우는 관계가 좋은 것 같아요. 사람을 오래 보고 사랑하는 일이 ‘큰 공부’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저 질문과 영 다른 대답을 한 것 같네요? (웃음) 저, 왜 이럴까요?

 

하하, 그것이 매력이죠. 박연준 시인의 매력!


(웃음)

 

시집은 베스트셀러가 되기가 참 힘들어요. 모든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필요는 없겠지만, ‘시인’의 정체성으로 사는 작가의 산문집이 시집보다 더 인기를 얻으면 조금 속상한 마음이 들 것 같기도 해요.

 

속상하다기보다 안타까울 땐 있어요. 그런데 시라는 장르가 ‘대중성’을 갖기 어렵잖아요. 소수의 스타 시인이 탄생할 순 있어도, 몇 만 부 이상 팔리는 시집을 가진 인기 시인이 한 시대에 수두룩이 존재할 순 없거든요. 오죽하면 조지 오웰이 농담조로 이렇게 썼어요. 광장에 있는 사람들을 가장 빨리 해산시키려면 시를 읽어주면 된다고요. 시는 어려운 장르거든요. 발레 공연을 보러 가는 사람 수가 적듯이, 시를 읽고 향유하는 수도 적을 수밖에 없어요. 시는 소수의 고급 독자들을 위한 장르니까요. 저도 이해해요. 그러나 독자 분들이 부디 ‘한국시’를 관심과 사랑으로 들여다 봐주면 좋겠어요.

 

지금 시에 관한 산문을 쓰고 계시죠? 어떤 글인가요?

 

시를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으므로 ‘시에 관한 우아한 실용서’를 쓰고 있어요. 반 즈음 쓴 것 같아요. 시를 전공하는 사람들을 위한 전문적인 책이 아니고, 시론서도 아니에요. 시를 모르지만 궁금증은 갖고 있는 사람들, 궁금하지만 선뜻 읽어보거나 써보는 일은 어려워하는 사람을 위한 글이 될 거예요.

 

시인님은 갖고 싶은 게 있나요? 물건 말고 기질이라든지, 능력이라든지.

 

음, 자신감이요.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두려움을 느껴요.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고요.  일단 시작을 하면, 의지를 갖고 계속 해나가는데 시작이 어려워요. 그래서 훈련해요. 내 안에 힘이 있고, 그걸 글 속에서 발휘할 수 있다, 믿어야 한다.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이죠. 오은 시인의 산문집 『다독임』 이 생각나네요? (웃음) 가질 수 있다면 자신감, 그리고 긍정하는 마음을 갖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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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질문은 이거예요. 『소란』  139쪽에 나오는 문장 “끝내 시 속에서 인생을 탕진하고 싶다”는 마음은 지금도 같나요?

 

네, 그럼요. 지금도 유효해요. 그건 제 목표이기도 해요. 언젠가 두려워져서 시 밖으로 슬그머니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제가 스스로에게 엄포를 놓듯, 주문을 걸어놓은 문장이거든요.

 

 

 

 

 


 

 

모월모일박연준 저 | 문학동네
끔찍한 날도 좋은 날도, 찬란한 날도 울적한 날도, 특별한 날도 평범한 날도 모두 ‘모월모일’이 아닐지. “빛나고 싶은 적 많았으나 빛나지 못한 순간들, 그 시간에 깃든 범상한 일들과 마음의 무늬”가 시인 특유의 깊고 섬세한 관찰을 통해 새로이 발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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