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금융 위기를 몸으로 겪는 부모 세대를 보며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하게 되고, 일과 생활이 균형 잡힌 워라밸을 꿈꾸었던 밀레니얼 세대에게 교사는 최고의 직업처럼 보였다. 정년이 보장되고, 공무원으로써 국가가 보장하는 복지 혜택도 많고, 출퇴근 시간이 사기업에 비해 잘 지켜진다고 하니까. 그런데 학교는 자기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답답한 곳이었다. 수많은 행정업무, 견고한 연공서열, 교사 개인에게 자율권을 주지 않는 환경 등이 밀레니얼 세대를 무기력증에 빠지게 했다.
『나는 87년생 초등교사입니다』의 저자 송은주 교사는 10년 차 초등교사다. 2011년 발령을 받았고, 두 번 6학년을 졸업시키고, 석사 학위를 받고, 다른 지역에서 임용시험에 한 번 더 합격했다. 그렇지만 “초등교사라는 직업을 잘 모르고 선택했다”는 그는 생각처럼 교사가 안정적인 직업인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교대생부터 임용고시 준비생, 초년생 교사부터 20년 차 교사까지 약 100여 명의 교사를 인터뷰하면서 왜 정년을 채우는 교사가 1%에 그치는지, 밀레니얼 세대로 불리는 동료 교사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어떤 의미를 찾다가 학교를 떠날 것인가, 그 이후에는 어떤 인생을 만들어갈 것인가”가 교사로서 자신의 가장 큰 고민이라는 송은주 교사는 밀레니얼 세대가 갖는 가치가 학교를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킬 것이라 믿는다고 말한다.
이 글을 쓰는 나의 개인적인 목표는 ‘변화의 시작’이다. 관례를 따르지 않는 과감한 발걸음이, 획일화를 거부하는 밀레니얼 세대 교사들의 목소리가 변화의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경력에 상관없이 교사들의 의견이 평등한 협의거리가 되고 좋은 의견은 학교교육에 적용되기를 바란다.(64-65쪽)
교장 선생님이 무단횡단 하는 걸 봤다?
교사는 “직업이 삶 자체가 되는 사람”(136쪽)이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교사 개인이 갖는 고됨도 엿보이고요.
책무성이 많은 직업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교사는 도덕적으로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잖아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가르치는 대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일 텐데요. 이것이 인간적인 솔직함과 대립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이런 거예요. 많이 들어온 얘기가 “교장 선생님이 무단횡단 하는 걸 봤다”(웃음) 같은 거죠. 그런 말을 워낙 많이 듣다 보니 늘 인식하게 돼요. 교사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제 경우는 선생님이 어디서 무얼 하는 것을 봤다, 같은 이야기가 나의 평판을 깎는 데 그치지 않고 나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그런 데서 오는 무게감 같은 게 있어요.
교사에게도 사생활이 있는 게 당연하잖아요. 그런데 만약 교사가 클럽에 갔다고 했을 때 말씀하신 것처럼 그 사실을 교사에 대한 신뢰도와 분리해 생각하지 못하기도 하죠.
그런 것 같아요. 타투에 대해서도 교사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끔 질문이 올라와요. ‘하고 싶은데 어떻게 보일까요’ 같은 내용인데요. 그러면 댓글에 ‘어디서 어떤 선생님이 타투를 했는데 신문고에도 올라갔다’고 달리는 식이에요.
최근에 교사의 개인 전화번호를 공개하기 때문에 평일 밤이나 주말에도 학부모의 연락을 받곤 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있었어요. 실제로 저자가 겪은 고충도 많겠죠? 책에도 다양한 황당 사례가 등장하긴 해요.
워낙 많아요. 많으니까 점점 더 지치죠. 심지어 몇 년 전에 가르쳤던 학생의 부모님이 전화를 하셔서 지금 담임선생님과의 관계 같은 것을 상담할 때가 있거든요. 인간적으로 감사했던 기억과, 한 번 학생은 끝까지 내 학생이라는 마음 때문에 그 관계를 쉽게 정리할 수도 없어요. 충분히 그 입장이 이해도 되고요. 그러다 보면 밤 10시-12시까지 몇 시간씩 통화를 하는 거죠. 이건 누가 봐도 워라밸과는 동떨어진 일이잖아요. 자신이 포기한 것, 애쓰는 것이 많은데 학교 외부에서는 교사를 많이 믿지 않는 것 같으니 더 지치는 거죠. 특히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 개학을 하면서 힘들어하는 분들도 많아요. 학부모님 입장에서는 선생님들이 하는 게 없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온라인은 대면 교육일 때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차단되거든요. 외부에서는 이해하지 못하죠. 그런 데서 오는 심리적인 박탈감이 교사들에게 많은 것 같아요.
대면으로 가능한 교육이란 어떤 것일까요? 조금 더 설명해주세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즉각성이죠. 같은 말이라도 영상은 학생한테 전달이 되고 끝이에요. 학생의 반응, 눈빛에서 느껴지는 피드백을 교사는 받아볼 수 없잖아요. 피드백이 오고 가면서 발전하는 교육적 효과라는 게 있는데 그게 원천 차단 되니까 선생님이 의도한 게 제대로 가지 않아요. 인터뷰 오기 전에 동료 교사들에게 요즘 뭐가 가장 힘든지 물었어요. 한 분이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교사로서의 생존을 많이 생각한다고 하더라고요. 만약 사람들이 원하는 게 학습이라면 온라인으로 훌륭하신 선생님 몇 분이 수업 영상을 찍어서 올리면 되겠죠. 하지만 대면 교육에서 가능한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만남이 있잖아요. 선생님들이 진짜로 할 일은 학생 개개인의 특성에 따른 수업이에요. 학생 특성에 따라 교육 방식이나 하다 못해 언어의 표현도 다르게 해야 하거든요. 그만큼 인간에 대한 애정을 분명히 가지고 학생을 만나야 하고요. 학생들도 그런 교사에게 교육을 받아야 해요.
그렇다면 교사가 되는 과정에 대한 저자의 문제 의식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어요. 저자의 경우 임용고시에 두 번 합격한 비결이 역설적으로 ‘통암기’ 방식의 시험 준비가 5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라고 했잖아요. 아직도 너무나 과거의 방식인 거죠.
인터뷰 했던 20년 차 선생님 한 분은 요즘 젊은 선생님들이 이런 과정을 거쳐 학교에 왔기 때문에 더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고 하셨어요. 사실 학생과 만나는 과정에서는 임용고시를 준비하면서 학습한 것이 중요하지 않잖아요. 그렇게 보면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예비 교사가 길러야 하는 것과 현장에서 인간을 만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게 완전히 다른 거죠.
정년이 안 보인다
밀레니얼 세대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나’잖아요. 직장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세대 교사들이라면 지금 학교의 분위기와 부딪치는 부분이 더 많을 것 같아요.
그렇죠. 제 또래 교사들은 어떤 게 내게 좋은 선택인지 더 많이 고민하는 것 같거든요. 무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선택인가를 많이 고민해요. 교직을 유지할 것인지 다른 진로를 찾을 것인지부터 대학원을 갈 것인지 휴직을 할 것인지까지 말이죠. 특히 10년 차에서 15년 정도의 교사들은 이제 승진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하니까요. 승진을 하겠다고 선택할 경우 인간적인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많거든요. 승진 점수를 받는 것들은 알아서 찾아 가야 하고, 지역마다 다르지만 지역 점수를 받을 수 있는 학교들은 경쟁도 있어요. 경쟁 방식 중에는 관리자와의 관계라는 것도 있으니까 진짜 워라밸은 완전히 포기해야 하는 거예요. 물론 지금 승진한 분들이 이런 걸 다 포기했다는 것은 아니지만요.
특히 밀레니얼 세대라면 워라밸을 포기하면서까지 꼭 승진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경우가 많다는 말씀이시죠.
네, 남자 교사들의 경우도 그래요. 워낙 승진은 남자 교사가 하는 거라는 분위기가 있거든요. 그런데 지금 우리 세대는 남자들 역시 꼭 승진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죠. 그럼에도 환경적으로는 계속해서 승진할 것을 요구하고, 끌어주겠다는 식으로 하잖아요. 그런 괴리가 있어요.
학교 내부에서도 밀레니얼 세대 교사들이 기존의 교사들과 다른 태도를 보인다는 공감대가 많이 있나요?
선배들을 인터뷰했을 때는 세대 차이라고 하기는 거창하다는 반응들도 물론 있었어요. 초등교사의 경우 개인 교실이 있어서 서로에 대해 그리 많이 알지 못하기도 하고요. 한편 확실히 체감하는 것은 밀레니얼 교사들이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더라, 라는 거였어요. 급작스럽게 당일에 회의를 해야 하니 야근을 하라고 하면 거기에 “싫다”고 말하는 경우 같은 거죠. 과거에 미덕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지금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게 다른 것 같아요.
문제는 교사 진로를 20살에 결정한다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진정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 진정한 나다움을 충분히 살피기는 이른 시기잖아요. 그런데 교사라는 길을 선택한 뒤부터는 진로를 바꾸기도 쉽지 않고요.
심지어 교대 입시 성적도 밀레니얼 세대가 가장 높은 축에 속하죠. 만약 학창시절부터 자신을 탐색할 기회가 많았다면 20살도 충분히 진로 결정이 가능한 나이라고 생각하긴 하는데요. 밀레니얼 세대는 공부만 했던 거예요. 탐색할 기회는 없었는데 20살부터 다른 대학생들과는 다르게 하나의 길밖에 없잖아요. 그러니까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자유인이 되었을 때 너무 큰 틀에 갇혀버리는 거예요. 그때가 돼서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이었는지 고민을 시작한다면 너무 돌아 가는 셈이고, 그렇다고 승진을 하고 싶지는 않고, 이렇게 되면 진짜 무기력증과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워요.
저자도 프롤로그에서 “무엇보다도 나를 가장 두렵게 한 것은 ‘정년이 안 보인다’는 사실이다”(7쪽)라고 했어요.
정년 보장이 안 되는 직업을 가진 분들 입장에서는 정년 있으면 좋지, 지금 충실히 살면 되지, 라고 생각하시겠지만요. 현실적으로는 진짜 이대로 있는다고 정년까지 있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마음도 있어요. 계속해서 침해를 받는 것 같고, 일에 대한 자존감과 자신감이 떨어지는 상태에서 62세까지 되는 대로 버티는 게 가능할까, 라는 의문을 갖게 되니까요.
교사도 실패할 기회가 있었으면
자료 조사도 많이 하고, 학교에 대한 비판도 많이 했는데요. 조심스러운 부분은 없었나요?
어떻게 하면 정확하게 의도를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고요. 교원 정책 등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는 걱정을 많이 안 했어요. 그간 생각해왔던 것을 말한 것이기 때문에 두렵지는 않았어요. 이렇게 말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흔히 교사는 너무 튀면 안 되고, 국가의 녹을 먹는 입장에서 국가 정책에 너무 반해도 안 된다는 압박이 있어요. 이런 걸 교대에서부터 체득하는 것 같아요. 당연히 저와 생각이 다른 분도 있겠죠. 심지어 최근에는 ‘안 그래도 교사가 욕을 많이 먹는데 굳이 이런 내용까지 말을 해서 더 말을 듣게 하느냐’는 반응도 봤거든요. 저는 오히려 안타까웠어요. 얼마나 많은 말에 시달렸으면 조용히, 변함없이 유지되는 것이 더 좋다고 느끼는 걸까요.
교대에서부터 그런 보수적인 분위기가 있나요?
‘교대에서 이런 커리큘럼은 당연히 하는 거야’, ‘어쩔 수 없어’라는 식의 체념이 있죠. 초등학생을 가르칠 거니까 이런 것을 하고, 학교가 작으니까 짜인 대로 나오는 게 당연하다는 식으로 주인 의식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아요. 4년을 이렇게 살다가 학교에 나와서 갑자기 뭔가를 바꿀 수 있을까요? 게다가 학교라는 곳은 아주 다양한 연령대의 선생님들이 있는 곳이잖아요. 오히려 더 연공서열이랄까, 하는 게 확실한 관료제인데 말이에요.
학교 현장이 경직된 조직이라는 이미지가 있죠. 교사가 해야 하는 각종 행정업무도 문제고요. 교사나 학교에 대한 평가가 외부에 있는 것도 교사의 자율성을 많이 위축시키는 것 같아요. 이에 대해 저자는 “교사도 실패할 기회가 있었으면”(168쪽)좋겠다고 했어요.
솔직히 말씀 드리면 저도 학생들을 훈육하거나 교육하다 말 실수를 한 적이 있어요. 아찔했던 순간들도 있고요. 한 번은 수업 준비를 너무 열심히 해서 준비해 간 교구에 신경 쓰다가 내용을 완전히 반대로 가르친 거예요. 수업 도중에 그걸 깨닫고 “얘들아, 미안해. 이게 아니었어.”(웃음)라고 했더니 한 학생이 “괜찮아요, 선생님도 처음인데 그럴 수도 있죠.”라는 거예요. 지금도 그 순간이 떠오르는데요. 요즘은 그런 과정을 이해하지 않고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더 선을 긋고, 형식적으로 대하기를 바라는 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죠.
꽉 짜인 성취기준, 교과서와 학교의 교육계획 안에서, 교사가 자기답고 우리 반다운 수업을 깊이 고민하며 수업을 준비하고 실행할 여유를 찾기는 참 어렵다.(중략) 교권을 바로 세우고 싶으면 교사 한 명 한 명의 수업권과 평가권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교육청과 학교는 개별 교사의 자기다움을, 각 교사들은 서로의 자기다움을 수업과 평가에서 인정해주어야 그 땅을 밟고 교권이 바로 선다.(168쪽)
학교에서 겪는 다양한 상황을 교대에서 경험하는 정도의 실습으로는 다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한 부분도 의미가 컸어요. 실습 시간을 더 확장해야 한다는 거였죠.
교사는 현장 실무자인데 대학교에서는 그걸 글로만 배워요. 현장 경험이 있는 교수님들도 있지만 많은 교수님들이 학자고요. 심지어 학부 때 어느 교수님은“교수는 선생이 아니고 학자다. 그러니까 교사로서의 것을 내게 요구하지 말라.”라고 하더라고요. 교대에서 교사를 길러내는 사람의 마인드는 아니지 않나, 의문이 들었는데요. 임용고시생, 교대생들을 인터뷰하면서 지금도 그렇다는 걸 알았거든요. 교수님들이 가르치는 것, 학생들이 기대하는 것, 실제로 학교에서 필요한 것들이 다 다른 거죠. 교사들 각자 현장에서 부딪혀 알아야 하는 게 너무 많아요. 올해 발령을 받은 친구들도 벌써 ‘현타’가 온다고 하더라고요. 제일 뜨겁고 즐거울 시기인데 말이에요. 실습할 때는 이런 걸 알 수 없어요. 학교 생리의 10%도 경험하지 못하죠. 실습 기간을 지금보다 훨씬 늘리고, 실제로 인턴 하듯이 똑같이 해야 해요.
소위 ‘안정적인 직장’으로써 교사의 사정이 사회 평균에 비하면 나은 수준이잖아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들을 못하도록 하고, 그래서 이 목소리가 잘 안 들리기도 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건강한 사회라면 좋은 복지를 가지고 있는 직업을 깎아 내리는 게 아니고 우리도 이렇게 가자고 말을 해야 하는 건데 지금은 그렇지 않죠. 오히려 좋은 여건을 가졌다고 여겨지는 사람들한테 침묵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욕을 먹을 줄 알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쓴 이유는 일단 저희 아이 세대도 이런 침묵을 학습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고요. 제자 중에는 20살이 된 친구들도 있는데 제자들을 생각하면 할 말은 하겠다(웃음)는 마음이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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