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른이 될까?” 과도기를 살아가는 청춘들이 한 번쯤 해보는 질문이다. 해답을 가르치는 말들 대신, 권성민 PD는 자신의 생활을 담담히 전한다. 그는 세월호 보도를 비판하는 웹툰을 올리다 해직 언론인이 됐고, 복직 후 문해학교 할머니들이 한글을 배우는 MBC 예능 프로그램 <가시나들>을 연출했다. 그 시간만큼 밥을 먹고 세탁기를 돌리고 월세를 냈다. 담백한 일상이지만, 책을 덮은 뒤 인정하게 된다. 그런 순간들이 모여 단단한 중심이 됐고, ‘마음이 가난하지 않은 세상’을 위한 일들을 할 수 있었다고.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날들
오랫동안 몸담았던 MBC를 떠나 작년에 카카오M으로 옮기셨어요.
MBC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이미지였는데 그렇게 됐어요.(웃음) 기존의 지상파 예능 포맷이 아닌, 자유로운 형태의 짧은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어요.
2016년 『살아갑니다』 이후, 두 번째 에세이입니다. 기분이 남달랐을 것 같은데요.
온전히 기획해서 내놓은 창작물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첫 책은 기존에 썼던 글을 묶은 거라 확신이 없었거든요. 이번 책은 기획 단계부터 출판사와 함께했죠. 예전에는 책이 나왔다고 말하는 게 쑥스러웠는데, 이제는 열심히 알리려고요.
홍보의 필요성을 느꼈군요.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공동 창작물이니까요. PD로서도 함께 제작한 식구들의 밥그릇이 걸려 있으니, 임시 프로그램을 정규 편성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거든요. 마찬가지로 책도 여러 사람이 고민하며 만들어가는 콘텐츠더라고요. 저자가 너무 소극적이면, 함께 만든 사람들의 노고를 소외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예능 PD와 에세이, 신선한 조합 같은데요.
저는 예능과 에세이가 비슷하게 느껴져요. 둘 다 선명한 것을 빼고 나머지를 담는 여집합이거든요. TV 프로그램 중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는 특징이 비교적 명확해요. 그 외에 분류하기 어려운 건 다 예능이에요. 순간을 포착해서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는 게 제가 하는 일이죠. 에세이도 정해진 형식 없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되는 장르잖아요. 특별하지 않더라도 일상을 쓰면, 저만의 생각이었던 것이 누군가에게 전해지죠.
PD 일을 하시느라 글 쓸 시간이 모자랄 것 같은데, 주로 언제 글을 쓰시나요?
주로 밤에 안 자고 써요. 제가 글 쓰는 공간이 SNS나 블로그인데, 올린 시간을 보면 주로 새벽이에요.(웃음) 늦게 퇴근해서 자려고 했는데, 문득 생각이 떠오르면 그때부터 쓰기 시작하는 거죠.
어떻게 ‘자립’을 주제로 삼게 됐나요?
처음 출판사에서 주셨던 기획안은 ‘꼰대’였어요.(웃음) 재밌지만 부담스러워서 ‘좋은 어른’에 대해 써보기로 했어요. 당시 30대 초반이었는데, 이 나이가 학생도 어른도 아닌 애매한 시기잖아요. 사회적으로 어른이 되는 시점이 유예되고 있기도 하고요. 이 과도기에 자립하고 온전한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고민하고 싶었어요.
직접 만드신 북 트레일러 영상을 봤어요. PD님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서울에서 혼자 사는 여러 사람들의 인터뷰를 담으셨더라고요.
우선 제가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익숙하지 않아요.(웃음) 인터뷰 형식을 택한 건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과연 제가 책에 쓴 내용이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궁금했거든요. 실제로 인터뷰해보니 다들 비슷한 경험과 고민을 갖고 있더라고요. 혼자 살면 치킨을 못 시켜 먹는다는 사소한 이야기까지요.
서울에서 집을 구하는 일부터 시작해 어른이 되어가는 날들이 세세히 기록되어 있어요. 처음 나만의 공간을 갖게 된 게 서울 신촌의 하숙방이었다고요.
대학생이 되면서 천안에서 서울로 올라왔어요. 낡은 기숙사에서 살다가 하숙방에서 혼자 살게 된 거죠. 처음으로 나만의 공간을 갖는 게 좋으면서도 어색하게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많은 대학생들처럼 방이 좁으니까 밖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곤 했어요. 생활비와 등록금을 버느라 하루 서너 시간씩 자면서 일했는데, 몸은 고단했지만 불행하지는 않았어요.
“어른은 언제 돼”라는 말이 공감됐어요. 나이만 먹으면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잖아요. 그럼에도 어른이 된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요?
처음으로 제 방을 계약할 때요. 하숙방은 돈만 내면 모두 관리해주지만, 원룸을 계약할 때는 법적인 주체로서 모든 걸 책임져야 하더라고요. 은행의 대출 창구에서 돈이 없다고 무시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사인하고, 세대주에 이름을 쓰고 나서 비로소 제 공간을 갖게 됐어요. 그동안 누군가의 보호를 받고 있었는데 이제 스스로의 권리를 지킬 사람은 나뿐이더라고요. 그때 사회에서 한 사람 몫을 하는 어른이 됐구나 싶었어요.
최근 결혼하셨다고요. 혼자에서 두 사람의 생활이 된 건데요. 실제로 살아보니 어떠신가요?
너무 좋습니다.(웃음) 혼자여도 충분할 때 연애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외로워서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실망하는 것도 생기고 더 큰 결핍을 겪게 되기도 하니까요. 그렇게 6년 동안 연애를 안 하다가 지금의 아내를 만났죠. 예전에는 결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삶이 완전히 바뀌는 거니까요. 그런데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니까 고민들이 무의미해졌어요. 이 사람과의 구체적인 일상을 상상하니 기꺼이 제 삶을 조율하고 싶어지더라고요. 지금은 새로운 생활을 경험하는 중입니다. 원래 늘 생산적인 일을 찾는 타입이었는데, 결혼 후에는 집에 오면 아내가 있으니까 목적 없는 시간을 나누게 돼요. 한 사람이 제 일상에 스며든 거죠.
마음만은 가난하지 않도록
2011년에 썼던 ‘MBC 합격 수기’가 PD 지망생들 사이에서 반응이 뜨거웠어요.
솔직히 쑥스럽죠. 합격 직후 들뜬 마음으로 블로그에 쓴 글이었는데 이렇게 화제가 될 줄은 몰랐어요. 제 일이니 부끄럽지만, 후배가 그런 글을 썼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죠. 아무것도 모를 때, 앞으로 이루고 싶은 포부를 쓴 거니까요. 그때나 지금이나 저 자신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아요. 콘텐츠를 통해서 ‘몸과 마음이 가난하지 않은 세상’을 만들어가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거든요. 다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팔리는 콘텐츠로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늘 있어요. 회사에서 기꺼이 제작비를 내고 많은 시청자가 호응하는 영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SNS에 내부 비판 글과 웹툰을 올려 해직을 당했다가 2016년에 복직하셨죠. ‘해직 언론인’의 이름으로 보낸 시간이 궁금합니다.
당시에는 과분하다고 생각했어요. 해직 언론인 선배들은 위험을 각오하고 앞장서 싸우신 분들이 많으니까요. 고작 입사 3년 차 예능 PD였고, 이건 아니지 않나 싶어 온라인에 글을 쓴 건데 잘린 거잖아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상징’이 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저 같은 사람이 선배들과 똑같은 취급을 받았다는 건, 권력이 얼마나 선을 넘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거니까요. 그래서 해직 언론인으로 저를 불러주는 곳에는 최대한 나가서 MBC 내부 상황을 알렸어요.
긴 머리 남자로 살아가시는 중이에요. 머리를 기른 후 PD님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나요?
어딜 가든 눈에 띄는 존재가 됐어요.(웃음) 여자로 오해하는 분도 있고, 가게에서 저를 기억하기도 하고. 귀찮은 일이지만, 좋은 점도 있더라고요. 오랫동안 저는 남성 집단에 못 섞이는 편이었어요. 내부에서 당연하다고 전제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고요. 그런데 머리를 기르고부터는 “쟤는 나와 달라” 하고 인정해주더라고요. 성별 이전에 한 개인으로 보는 거죠. 의도하진 않았는데 이런 효과도 있네 했어요.
MBC 예능 프로그램 <가시나들>은 문해학교 할머니들이 연예인과 한글을 배우는 내용이었죠. 다른 세대와 소통할 때,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무엇보다 ‘존중하는 태도’예요. 세대가 달라도 나와 동등한 개인이라 생각하고 소통하는 건 중요해요. 먼저 눈높이를 맞추고 시작하면 생각보다 대화가 잘 통하거든요. <가시나들> 촬영 당시, 할머니들이 방송을 잘 모를 거라 짐작했어요. 그런데 굳이 쉬운 언어로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아들으시더라고요. 이해 못 하시겠지 생각한 게 오히려 실례인 거죠. 반대로, 우리에게 무례하다고 느껴지는 노년층의 행동을 인정해야 할 때도 있어요. 다른 감각으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에게 갑자기 우리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위험한 일이거든요. 가끔 어르신들이 제 긴 머리를 보고 대뜸 “여자예요?” 물어보실 때가 있는데 그냥 웃고 넘어가요. 제 기준과 다르다 할지라도 그 세대의 방식으로 신기함을 표현하는 거니까요.
에세이와 관찰 예능이 유행입니다. 이 트렌드에 대해 어떻게 느끼시나요?
콘텐츠 시장이 어마어마하게 커졌다고 느껴요. 예전에는 방송사만 콘텐츠를 만들 수 있었다면, 지금은 개인들도 얼마든지 자기 영상을 만들어서 온라인에 올릴 수 있는 시대가 됐잖아요. 기술이 뛰어나지 않아도, 아이디어만 좋으면 시청자들이 재밌어하고요. 출판 시장도 비슷한 것 같아요. 일반인들도 자유롭게 글을 발표할 수 있는 채널이 많아지면서, 책을 내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니게 됐죠. 저 같은 사람도 에세이를 출간하게 된 거고요. 에세이가 유행이라 해서 다른 장르가 침체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전체 파이가 커졌다고 봐야겠죠.
다른 사람의 책장에 어떤 책이 있을까 관심이 많다고 하셨어요. 작가님의 책 취향도 궁금해지는데요.
주로 사회과학 책을 많이 봐요. 불평등, 빈곤, 정의의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최근에는 『노랑의 미로』, 『갈등 도시』, 『임계장 이야기』 등이 추가됐죠. 최근에는 책장에 제 관심사 이외의 책들도 들어오고 있어요. 주변에서 지인들이 책을 쓰기도 하고, 출판사에서 신간을 보내주기도 하고요. 아내와 책장을 같이 쓰면서 ‘서재 결혼시키기’를 해보기도 했죠.(웃음) 옛날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책들을 만나게 되는 게 재밌어요.
향후 또 책을 내실 계획이 있으신가요?
계획을 세우는 편은 아니지만, 글을 꾸준히 쓰고 있으니 또 책을 내지 않을까요? 출간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다양한 통로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요.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게 좋아서 PD가 됐으니 소설을 써보고 싶기도 하고요. 여러 종류의 글쓰기에 대한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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