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를 짓고 싶었다”고 시인은 말했다. 말하자면, 등단 시집 『연애의 책』에서 출발해 지금의 『작가의 탄생』에 이른 하나의 시기를.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첫 시집 『강릉 하슬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된 하나의 챕터를. 마무리 짓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와 나눈 대화는 『연애의 책』과 『작가의 탄생』 사이를 더듬거렸다. ‘연애(사랑)’와 ‘작가’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신중하고 적확하고 담백한 말들 속에서 그의 ‘명징한’ 시어를 떠올렸다.
2016년 시집 『연애의 책』의 출간과 함께 등단한 유진목 시인은 시집 『식물원』과 산문집 『디스옥타비아』, 『산책과 연애』 등을 썼다. 영화 현장에서 일하며 장편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에 참여했고, 1인 프로덕션 ‘목년사’에서 단편 극영화와 뮤직비디오를 연출하고 있다. 부산 영도에서 서점 ‘손목서가’를 운영하고 있다.
마무리 짓고 싶었어요
시인의 말에 한 문장만 쓰셨어요. “나는 내가 살았으면 좋겠다.”이번 시집에 실린 시들을 쓰시면서 어떤 시간을 지나오신 걸까, 궁금했어요.
어떤 시간들을 지나온 것에 대해서 표현하고 싶었다기보다는, 제가 등단을 하기 전에 독립출판물로 시집을 낸 적이 있어요(『강릉 하슬라 블라디보스토크』). 그 시집 뒷면에 “나는 너가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구절을 썼었거든요. 그걸 반영시킨 거예요. 약간 대조를 이루는 식으로. 『강릉 하슬라 블라디보스토크』가 나오고, 그 다음에 『연애의 책』, 『식물원』이 나오고, 이번 『작가의 탄생』으로 한 번 마무리를 짓고 싶었어요.
지금까지의 작업들 사이에 무언가 연결되는 것이 있었고, 이제는 또 다른 장으로 넘어간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네. 그리고 사실, 다음에 또 시집을 낼 수 있다는 미래의 일은... 제가 내고 싶으면 또 독립출판물의 형태로 낼 수도 있겠지만, 지금 드는 생각으로는 ‘다음에 또 시집을 내게 될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미래의 알 수 없음..?. 그래서 그냥 마무리를 한 번 짓고 싶었어요.
‘다음 시집이 있을까?’라는 생각은, 시집을 낼 때마다 드셨어요? 아니면 요즘 들어 갑자기 든 생각인가요?
음... 『연애의 책』이 나왔을 때는 다음 시집 같은 건 아예 생각을 안 했었고요. 『식물원』을 냈을 때는 계약이 되어있는 상태여서(웃음), 다음 시들을 모아서 시집의 형태로 묶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죠. 저의 의지라든가 그런 게 아니라 외부로부터 들어오는(웃음). 그런데 제가 미래를 계획하고 이런 성격이 아니에요.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라고 늘 생각을 하고 있고. 그걸 향해서 차근차근 단계를 만들어서 준비를 해나가는 타입이 전혀 아니에요. 그때그때 가능한 것을 하는 편이어서... 이미 계약서에 사인을 한 상태이고 책임을 지고 마무리를 지어야 되는 일이어서 시집을 묶는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었어요.
이제 새로운 장으로 넘어가게 된다면, 그 장은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 보셨어요?
『작가의 탄생』이 나오고 나서 연작시들을 계속 쓰고 있는데요. 『작가의 탄생』에도 같은 제목의 시들의 연작시의 형태로 나오는데, 지금은 40~60편 정도의 연작시를 쓰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냥 혼자 쓰고 있어요.
연작시를 쓰시는 이유가 있나요?
한 편으로 이야기가 끝나지 않기 때문이에요. 제가 어떤 소재들을 가지고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야기가 한 편의 형식 안에서 마무리가 되면 하나의 시로 끝나고 그 다음 시로 넘어가는데, 그것도 같은 이야기 안에 있기 때문에 제목이 같은 걸로 계속되는 거거든요. 이번 시집에 실린 「작가의 탄생」이 다섯 편짜리의 호흡이었다면, 지금 쓰고 있는 시는 40~60편 정도의 호흡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시집 한 권 분량의 호흡이 되지 않을까.
영화를 하셨잖아요. 산문집도 내셨고요. 시인님은 ‘서사’를 중요하게 생각하실 것 같은데, 그 점이 연작시 작업과도 관련이 있을까요?
제가 시집 한 권을 내면서 등단을 했잖아요. 그 후에 청탁을 받고 시를 써서 내는 것을 처음 경험하게 됐는데, 예를 들어서 두 편을 청탁 받으면 제가 그 편수에 맞춰서 쓰고 멈추는 거예요. 만약에 한 달이라는 시간이 주어지고 다섯 편을 마감해야 한다면 한 달 동안 다섯 편의 시를 쓸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같은 시기에 쓴 시들은 주제가 연결이 되기도 하고, 이게 점점 더 밀접하게 연결이 되기 시작해서 하나의 주제가 여러 시로 나뉘기도 하더라고요. 청탁 받은 편수에 맞추지 말고 더 써야 했는데 멈춰버렸구나 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때부터 청탁과 상관없이 혼자서 작업을 했어요.
최근에 쓰신 시들도 그런가요?
요새는 청탁이 들어왔을 때 쓰는 시들이 다 같은 제목을 가지고 있어요. 하나의 문예지는 봤는데 또 다른 문예지는 보지 못한 독자 분들도 계실 텐데, 그러면 이야기에 구멍이 생기는 거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재미를 느끼는 거죠. 최근 (문예지)겨울호에 마감한 시들도 하나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데 세 편으로 나뉘어서 쓰여져 있어요.
『시인, 목소리』에서 ‘매일 규칙적으로 산문을 쓰고, 시는 매일 쓰지 않으려고 한다’고 하셨어요. 연작시는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쓰시나요?
아니요, 전혀 규칙적으로 쓸 수 없고요. 그냥 시는... 아무 때나 쓰는 것 같아요. 자다 일어나서 쓰기도 하고, 시간을 정해놓고 쓰지는 않아요. 산문의 경우에는 시간을 정해놓고 규칙적으로 써야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 같고요. 저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산문은 쓸 수가 없어요. 산문 쓰는 것을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들어하고요. 제가 무계획적인 인간인데, 계획적으로 그날그날 분량을 정해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마지막에 가서 저한테 엄청난 부담이 되는 일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산문을 생각하면 마음이 힘들어요.
시를 ‘입다’
명징한 시어를 쓰시잖아요. 시를 쓴 후에 오랫동안 다듬으실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아니요, 저는 한 번에 쭉 쓰고요. 퇴고 같은 경우는 아주 조금만 해요. 만약에 쭉 써지지 않으면, 그냥 그 시는 안 써지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저에게 한두 문장 정도가 있는데 결국에는 못 쓰는 시들이 있어요. 딱히 생각하지 않고 시작했는데 한 번에 쭉 써졌다면, 그건 완성이 되더라고요. 이것도 계획을 해서는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제가 계획한 시들이 몇 개가 있거든요. 이 제목으로 이 시는 꼭 쓰고 싶다, 하고. 그런데 결국 그건 쓰지를 못해서 『작가의 탄생』 묶을 때 들어가지 못했어요.
「작가의 탄생」은 주제를 정해놓고 계획해서 쓰시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아니에요. 「작가의 탄생」 중에서 제일 먼저 쓴 시가, 아버지가 신문을 보는 이야기가 나오는 시예요(23쪽). 그러고 나서 (같은 제목으로) 여러 편을 쓸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 뒤에 쓴 게 도시에서 새를 구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인데(35쪽), 집을 나와서 도시에서 혼자 살다가 그 도시를 떠나는 이야기를 쓰게 됐어요. ‘그러면 제목은 뭘로 하지?’ 하다가 ‘작가의 탄생’을 붙이게 됐고요. 그렇다면 작가의 탄생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시집의 맨 처음에 실린 「작가의 탄생」을 읽으면 ‘작가란 무엇인가, 작가란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돼요.
음... 저는 굉장히 이성적이지 못하고 논리적이지 못하고 비약이 강한 편이에요. 감정적으로 모든 걸 받아들이고 감정으로 세상을 살아간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머리를 굴려서 세상을 살아야 잘 살아갈 수 있는데 그쪽으로는 뇌가 작동하지 않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감정을 사용하게 되고, 감정을 사용하다 보니까 그게 점점 더 활성화되는 거죠. 그런데 저한테 없는 것이 시를 쓸 때 많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세상을 사는 데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데(웃음). 예를 들면, 제가 1981년 3월생이거든요. 말씀하신 시에서 태어나서 글을 쓰게 될 아이는 저인 거예요. 제가 화자가 아니라 저의 탄생 이야기를 쓴 건데, 태어난 것 같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은 것 같기도 한 저의 이야기를 논리에 맞게 쓰려고 하자면 말이 안 되는 부분들이 많이 있거든요.
그것이 시를 쓰는 데 제약이 되지 않고요.
저는 이렇게 살다 보니까 시를 쓰는 데도 그게 그렇게 거슬리지 않는 거예요. 만약에 어떤 부분이 굉장히 거슬리면 그걸 교정하려고 하거나 더 낫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고치려고 할 텐데, 저는 평소에도 되게 비논리적이고 비약이 강하고 그냥 제멋대로 생각하기를 좋아하다 보니까 시를 쓸 때 전혀 거슬리지 않는 거죠. 그런데 읽으시는 분들은 그 안에서 뭔가 아귀를 맞추려고 하시고 그 부분에서 되게 어렵다고 여기시는 것 같아요. 그 비약을 저도 설명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논리 자체가 없기 때문에.
독자들이 ‘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도 비슷한 것 같아요. 읽으면서 분명히 어떤 느낌은 받았는데, 그걸 일목요연하게 말로 설명하기는 힘든 거죠. 시인님도 자신이 쓴 시에 대해 설명하기가 힘들다고 느끼시나요?
설명을 할 수 없지만 ‘어떤 한 편의 시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싶은지’ 그건 정확하게 있어요. 양가감정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동시다발적으로 느끼는 감정이 있는데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다는 거죠.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감정은 그다지 매혹적이지 않죠. 사람을 사로잡지 않죠. 여러 가지 감정을 동시다발적으로 느끼는데 그 중에서 어떤 감정은 여기에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슬프고 기쁜데, 웃기지는 않아’라든가. 이런 식으로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할 것인지를 계획하는 편이죠.
‘작가의 탄생’이라는 제목을 봤을 때, 일단 사람들은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인가?’ 하고 생각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 반응이 작가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음... 일단 산문의 경우에는 저의 이야기로 읽히는 것에 대해서 조금 꺼려지는 게 있어요. 그래서 어떤 형식을 빌려서 조금 더 보편적으로 읽히게 하려는 게 있는데요. 시는 굉장히 노골적으로 저의 이야기로 읽히더라도 그다지 개의치 않는 것 같아요.
왜 그럴까요? 여백이 많아서, 해석의 여지가 있어서 그럴까요?
그게 아니라 시라는 장르랑 저랑 잘 맞아요. 어떤 사람은 비키니를 입어도 괜찮으니까 바닷가에서 입는 거잖아요. 내가 비키니를 입었는데 배가 너무 신경 쓰이고 끈도 풀릴 것 같고 이러면 못 입는 거거든요. 그런데 시라는 장르는 입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아요. 산문이라는 장르는 입었을 때 계속 신경이 쓰여요. 스타킹을 신었는데 스타킹 올이 나간 건 아닌가 하는 식으로 계속 신경이 쓰이는 것 같아요. 약간, 장르를 신체의 일부로 느끼는 것 같아요.
어떤 의미인가요?
머리가 길어서 불편하다면 자르겠죠. 그런데 불편하지 않으니까 나한테 편하고 좋다고 느끼는 스타일의 머리를 할 거 아니에요. 그런 거랑 비슷하게 느껴요.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했는데 ‘조금 마음에 안 들게 나왔어’ 이런 느낌을 받는 게 저한테는 산문이고요. ‘오늘 딱 좋아, 다음에도 이렇게 잘랐으면 좋겠어’ 하는 느낌은 시라고 할 수 있어요. 그만큼 저한테 잘 맞는 형태여서 그게 제 이야기로 읽히든 아니든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아요. 자유로운 것 같아요.
지금 물속에 있어요
『작가의 탄생』에서 떠나거나, 기다리거나,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데 만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많이 보여요.
일단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를 쓸 때는 만나지 못하는 면이 있고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는 굉장히 근접돼 있는, 한 시공간에 있는 면이 있어요. 예를 들어 「미시령」에서도 아버지와 어머니랑 내가 같은 시공간에 있지는 못 하잖아요.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하고는 같이 있어요. 「로스빙」이라는 시에서 개가 구슬을 묻고 나서 ‘그게 뭐야?’라고 물으니까 이번 생에서 얻은 거라고 얘기하거든요. 저는 이번 생에서 얻은 것이 가족과 함께 있지 못하고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에요. 시도 그 이야기를 쓴 거고요.
『연애의 책』은 “한국 최고의 연애시집”(황현산)이라는 찬사를 받았어요. 『산책과 연애』에서는 연애에 대해 이야기하셨고요. 연애와 사랑에 대한 생각은 결혼 전후에, 혹은 결혼생활 중에 달라졌나요?
지금은 제가 완전히 사랑 안에 있어서 그걸 느끼는 단계는 지난 것 같아요. 점점 바닷물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고 생각했을 때, 처음 물에 닿으면 신기하잖아요. 그러다가 무릎까지 차고 가슴까지 차고 완전히 깊은 데까지 들어가 버리는 단계가 있다면, 지금 저는 완전히 물속에 있어서 ‘이걸 어떻게 표현할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작가니까. 어떤 사람이 태어나고 죽을 때까지 느끼고 경험하는 것들을 글로 써서 남기고 싶은 욕망이 굉장히 강하기 때문에 작가가 된 것인데, 사랑을 막 체험하는 건 지나온 것 같아요. 지금은 체험했던 것들을 어떻게 잘 구성하고 조합하고 재가공해서 사람들한테 보여줄까를 생각하는 시기인 것 같아요.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다는 게 부러운데요(웃음). ‘나는 완전히 잠겨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가끔씩 ‘내가 잠겨있는 게 맞나?’, ‘조금 물 밖으로 나와 있는 것 같은데?’라는 의문이 들지 않을까요?
그럴 수 있죠. 연애를 할 때는 항상 의심했기 때문에 지금 그 사람하고 같이 안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걸 의심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결혼을 한 것 같은데, 저희 부모님이 제가 결혼했다는 사실을 동사무소 직원한테 듣고 아셨어요. 저는 굉장히 제멋대로 살아온 사람이거든요. 부모님께 제 결혼 사실을 알린다거나 상의한다거나... 그게 한국사회가 말하는 정상가족이라면 저는 그런 정상가족을 만들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에요. 결혼이라는 것을 한 것은, 저랑 같이 사는 사람이 아프거나 할 때 법적 보호자가 되어야 할 수 있기 때문에 혼인신고를 한 것뿐이고요. 한국사회에서 살면서 모두가 그러하듯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부모님께 소개를 시키고 결혼을 하고 저희는 부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에는 전혀 동참할 생각이 없어요.
‘정상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는 많은 사람들을 배제시키죠.
제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걸 밝히는 이유도, 이 사회에는 정상가족을 이룰 수 없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는데 그들은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하나의 모델이랄까 어떤 방향이랄까, 저런 방법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곁길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교실의 시』에도 그런 이야기를 쓴 거예요. 사실 제 사생활 얘기 하고 싶지 않거든요. 왜냐하면 저는 책이라는 게 소통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책 리뷰도 찾아보지 않는 거거든요.
책을 통해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던지거나 받는다고 생각하세요?
(책을 쓰고 나면) 이제부터는 독자의 것이라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이 책은 제 거예요(웃음). 전혀 독자의 것이 되지 않아요. 그들이 잠시 볼 수 있을 뿐이죠. 제가 이것을 볼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런데 리뷰를 찾아보면 저의 사생활에 대한 엉뚱한 이야기들도 있고, 예를 들면 ‘되게 독특한 방식으로 결혼을 했더라’라는 이야기라든가, 그런 말들이 있을 때 제가 거기에 대해서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라고 반박할 수 없거든요. 굉장히 일방적인 거죠. 독자도 자신의 마음대로 생각하고 저도 거기에 맞장구를 친다거나 항변할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책을 쓰면서 소통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면 『교실의 시』를 쓸 때는 어떠셨어요? 독자에 대해 생각하셨나요?
『교실의 시』에서 염두에 뒀던 것은 정상가족의 범주에 있지 않은 청소년들이었어요. 저는 되게 막막했거든요. 항상 연애를 하게 되면 상대들이 하나같이 정상가족의 과정을 밟으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고, 그렇다면 헤어지는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러지 않고서도 서로 합의만 된다면 함께 살아갈 수 있는데. 어쨌든 저희(부부)는 하필 여자이고 남자이다 보니까 법적 혼인 제도를 이용할 수 있어서 이용한 거예요. 그런데 저희처럼 사랑해서 함께 사는데 이성이 아니어서 정상가족의 구성원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래서 빨리 ‘생활동반자법’이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기회가 되면 꼭 하고 있어요.
『산책과 연애』에서도 이야기하셨죠.
네. 이렇게 필요한 것을 왜 남자와 여자만 할 수 있는 것이냐고, 왜 그렇게 해온 것이냐고 썼죠. 인간을 너무 자본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 같아요. 언젠가는 우리나라에도 (‘생활동반자법’이) 생기겠죠. 그런 날이 오겠죠. 제가 부모님의 허락을 받지 않고 결혼을 한 게, 한국사회에서는 약간 이상한 일인 거잖아요. ‘부모님이 안 계신 것도 아닌데, 미쳤나 봐’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고요. 그런데 그걸 했고, 그러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아, 그렇게 해도 되는구나’, ‘어쩔 거야?’(웃음)라는, 하나의 가능성이라고 할까요, 그렇게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어요.
살아있어야 한다
마지막에 실린 작품 「식물원」은 시나리오 형식으로 되어 있어요. 이번 시집의 목차도 희곡처럼 ‘막’으로 되어있고요. 이런 구성은 처음부터 생각하신 건가요?
제가 독립출판물로 시집(『강릉 하슬라 블라디보스토크』)을 냈을 때도 마지막 부가 시나리오 형식이었어요. 그래서 이번에도 그 방식을 취하고 싶었는데요. 결정적으로 「식물원」이 들어가게 된 계기는, 『연애의 책』에 「리의 세계」라는 시가 있는데 그게 이번 시집에 나오는 「식물원」의 대사를 거의 그대로 발췌한 시예요. 「리의 세계」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이 희곡을 읽으시면 재밌어하시지 않을까 싶었어요. 「리의 세계」를 따로 떨어트려 놓았는데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 근원을 담아두고 싶었고요. 지금까지 낸 시집들을 한 번 마무리 짓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그런 식으로 한 거예요.
「리의 세계」는 어떻게 탄생한 작품인가요?
「식물원」은 제가 영화 일 할 때 써놓은 단편 시나리오예요. 주인공이 조선족 여성인데 연변에서 같이 있던 언니와 한국에 넘어와요. 그 둘이 소주 마시면서 하는 이야기예요.
오래 전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번 시집에도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제목처럼 ‘탄생’의 이야기도 있거든요.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도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지셨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음... 저는 태어난 것을 굉장히 오랫동안 원망했고요. 나를 태어나게 한 것이 부모이기 때문에 또 부모를 원망했죠. 왜냐하면 너무 사는 게 힘드니까. 우리 사회는 혼자서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고 불가능한 사회잖아요. 결국에는 부모가 도움을 줘야 하고, 어쨌든 자립을 해서 살아갈 수 있으려면 사회의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저는 다른 길을 택했단 말이죠. 만약에 제가 ‘내일 당장 집을 잃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면, 사실 시를 쓰는 것이 아닌 매달 월급이 나와서 다음 달에도 집을 잃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직장을 구했어야 되잖아요. 사회의 시스템 안으로, 자본주의의 구조 속으로 길이 들어가는 것을 택해야 되는데 그러지도 않았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대책이 없는 사람이 돼있는 거죠.
그렇게 선택하신 이유가 있었겠죠.
저는 그냥 갑자기 죽어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것도 논리를 가지고 있는 생각이 아니라 ‘죽기 싫어’라든지 ‘이거는 꼭 해보고 죽을 거야’ 이런 거에 대한 생각이 거의 없었고, 죽는다는 건 태어나기 전이랑 똑같은 상태가 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후(死後)를 이야기하는 종교라든가 그런 걸 극도로 거부하는 생각을 가지게 됐고(웃음), 『작가의 탄생』에서도 신에게 계속 질문을 하는데, 죽으면 다 끝난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살기가 너무 힘든 거예요.
지금은 생각이 달라지셨어요?
바뀐 게 있다면 살아있는 것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왜냐하면 제가 죽으면 저랑 같이 사는 사람의 인생이 너무 망가지기 때문에, 그걸 할 자신이 없어요. 그렇게까지 그 사람한테 제가 나쁘게 할 수가 없어서, 지금은 약간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있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는 예전과 달리 근심 걱정도 생기고(웃음), 내년에는 어떻게 해야 되나 내후년에는 어떻게 해야 되나 이런 장기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얼마 전에도 ‘나는 오로지 당신에 대한 책임감으로 살아있는 거니까 그 점만 조금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어요(웃음).
뭐라고 답하시던가요?(웃음)
‘정말? 정말이야? 고마워, 잊지 않을게’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순전히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죽으면 이 사람이 너무 상처받고 망가지겠구나’ 라는 걸 알게 됐고, 그럴 수 없겠더라고요. 제가 남을 위해서 살아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다니, 너무 생색을 내고 싶은 거예요(웃음). 그게 삶에 대해서 조금 바뀐 생각이에요.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너무 즐거워요(웃음).
나머지는 전쟁이에요(웃음). 그 외의 시간은 아주 전쟁이에요(웃음).
『작가의 탄생』을 가장 먼저 구비해 놓은 책방은 ‘손목서가’였겠죠?
‘위트앤시니컬’이 더 빨라요(웃음). 언제나. 제가 시집을 보기 전에 이미 ‘위트앤시니컬’의 유희경 시인이 시집을 실물로 봤어요.
직접 쓰신 책을 ‘손목서가’에 진열하실 때는 느낌이 남다르실 것 같아요. 눈앞에서 독자들 반응을 볼 수 있으니까 떨리기도 하실 것 같고요.
저는 되게 남인 척 해요. 저 아닌 척(웃음).
그래도 다들 알아보시지 않나요?
제가 아닌 척하면 말씀을 못 하시고 가시는 분들도 많아요. 계산대에 제 책을 가지고 오셨을 때 제가 조금이라도 의식을 한다든가 ‘앗’ 이러면 ‘작가님이시죠?’ 이런 이야기를 하실 텐데, 너무 태연하게 다른 책 계산하듯이 하니까 오히려 말씀을 못 하고 가시는 것 같아요. 그 상황이 조금 이상하신 거죠. ‘이 사람 뭐지?’ 이런... 그래서 말을 못 꺼내고 그냥 가세요.
겉으로는 아닌 척하시지만, 속으로는 많이 신경 쓰이지 않으세요?
전혀요. 저 되게 뻔뻔한 사람이에요(웃음). 만약에 그런 걸 의식했으면 제 책을 거기(손목서가)에 깔면 안 되죠. 자기 책을 자기 서점에 막 뻔뻔하게(웃음)... 저는 그냥 남의 책이라고 생각해요. 예전에 한 번은 ‘유진목 시인 아니신가요?’ 해서 ‘아닌데요’라고 한 적도 있고(웃음).
왜 그러시는 거예요?(웃음)
아... 모르겠어요(웃음). 그냥... 잘해주시려고 하니까, 그 점을 별로 받고 싶지 않아가지고.
그러면 ‘손목서가’에서는 낭독회를 안 하세요?
혼자서 여러 번 했어요. 트위터 라이브 같은 거 켜놓고.
오프라인으로 하실 계획은 없나요?
언제 어떻게 낭독회를 할 거라고 모객을 한다거나 그런 방식으로는 하지 않을 것 같고요. 그냥 갑자기 낭독회를 하고 싶으면 카메라 켜놓고 하는 편이에요.
*유진목 1981년 서울 동대문에서 태어났다. 2015년까지 영화 현장에 있으면서 장편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일곱 작품에 참여하였고, 1인 프로덕션 ‘목년사’에서 단편 극영화와 뮤직비디오를 연출하고 있다. 2016년 시집『연애와 책』이 출간된 뒤로는 글 쓰는 일로 원고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2017년 산문집『디스옥타비아』, 2018년 시집『식물원』을 썼다. 부산 영도에서 서점 ‘손목서가’를 운영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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