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쫓는 모험』이라. 책 제목에 꽂혔고 프로필 문구를 읽다가 물음표가 생겼다. 6억을 손해 봤다고? 더욱이 프롤로그 제목은 ‘가련하게 산다’라니. 이 작가는 괴짜인가? 회의주의자인가? 낙관주의자인가? 궁금해졌다. 저자 정성갑은 월간지 <럭셔리>, <도베 DOVE> 등에서 피처 에디터로 20년간 일했고 작년 11월부터 한점 갤러리 ‘클립’의 대표이자 프리랜서로 살고 있다. 『집을 쫓는 모험』은 아파트, 빌라, 한옥으로 즐겁게 이사를 다니다 서울 서촌에 3층짜리 작은 집을 지은 모험기다. “성격이 급해서 안 행복한 것을 못 견딘다”는 사람. 3분마다 “껄껄껄”웃음을 아끼지 않으며 대화하는 사람. 이것이 진정한 ‘갑’의 인생이 아닐까? 싶었다.
“이 일을 겪으면서 나는 똑똑한 것이 똑똑한 것이 아니고,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고, 빨리 가는 것이 빨리 가는 것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꼈다. 지금의 미소가 훗날 눈물이 씨앗이 될 수도 있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집을 쫓는 모험』, 150쪽)
슬쩍 옆구리를 찌르는 책
프로필을 읽는 순간, ‘아, 이 책 재밌겠다’ 생각했어요. 특히 첫 문장에 확 끌렸습니다. “어렵게 장만한 아파트를 잘못 팔아 6억을 손해 봤다.” 아무리 솔직한 소개글이어도 액수를 언급하면서 자신을 표현하는 문장은 무척 드물어요.
하하, 아무래도 오랫동안 에디터 생활을 했으니까요. 강렬한 첫 문장의 효과를 생각했어요. 하지만 틀린 말도 아니에요. 제가 15년간 이사를 여섯 번 했는데, 이렇게 여러 집에 살게 된 가장 큰 동기 중 하나가 아파트를 잘못 팔아 손해를 봤기 때문이니까요. 팔고 나서 치솟은 아파트 시세를 보면서 잠도 제대로 못 잤지만, 돌아보면 웃음도 나고 아찔해지기도 해요.
책은 어떤 계기로 쓰게 됐나요?
서촌에 3층집을 짓고 나서 이 이야기를 정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에디터를 이렇게 오래 했는데도 물꼬가 안 터지는 거예요. 그러다가 ‘b.read’ 대표님을 만났죠. 프롤로그를 보내 드리고, 주제랑 방향성을 좁혀 나갔어요. 확실히 속도가 나더라고요.
4월에 계약하고 7월까지 최종 원고를 주는 일정이었다고요. 굉장히 빨리 쓰셨습니다.
원래 성격이 급한 편이에요. 원고를 보내 드리면 빨리 피드백 받고 싶어 하고. 잡지사 기자들은 원고 마감을 잘 지켜야 하잖아요. 계약서에 쓴 날짜가 아마 주말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래서 금요일 저녁에 원고를 드렸죠.
신혼 시절부터 2년 반마다 짐을 싸셨어요. 전세로, 자가로. 전세로 한옥집에 살 적에도 인테리어를 하셨고요. 솔직히 웬만한 열정 아니고서는 굉장히 힘든 과정이에요. 두 딸의 아빠이시기도 한데요.
어떨 때는 돈을 좇아, 어떨 때는 낭만을 좇았죠. 아파트 분양권을 샀을 때는 엄마 집에 얹혀살기도 했고, 처음 빌라로 이사 갈 때는 2천 만원을 들여 공사를 하기도 했고, 그러다 한옥 한 채가 다시 레이더망에 걸려서 이사를 하고. 화장실이 밖에 있는 한옥이었는데도 이상하게 주저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어요.
그러다 마침내 협소주택을 지었고요.
사람들이 저희 집에 와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아, 귀여워”예요. (웃음) 실제로 정말 작죠. 1층이 8평, 2층이 6평, 3층이 8평이니까요. 하지만 작은 집인데도 풍경이 좋아서 답답하지 않아요. 3층 창문으로는 저 멀리 청와대도 보이고요. 두 아이들의 방을 만들어주지 못해 미안하지만, 내 집이니까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한옥에 살 때는 제 집이 아니니까 제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 때문에 불안했거든요. 그리고 주택을 지어 보니까, 집에 대한 새로운 꿈을 꾸게 돼요. 옆집이 만약 매물로 나오면, 1층을 뚫어서 에어비앤비로 돌리면 어떨까? 하는. 사람이 건강해지는 것 같아요.
보통 집에 관한 책은 사진을 많이 넣잖아요. 집짓기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요. 그런데 『집을 쫓는 모험』은 표지에 나온 3층집 일러스트를 제외하고는 사진이나 그림이 없어요. 글로만 승부한 느낌이 들어요.
사진을 넣어 버리면 상상력의 지평이 줄어들 것 같았어요. 왜냐면 제가 살았던 집은 제 삶에서 매우 특정적인 순간이라서요. 집은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서 달라지니까요. 고정적인 답을 심어주고 싶지 않았어요. 대신 ‘집 짓기를 위한 가이드’를 넣었어요. 설계 전에 좋은 건축가를 알아보는 법도 썼고요. 저는 투자할 수 있다면 설계비를 많이 쓰라고 해요. 좋은 건축가를 알아보는 노하우 중 하나는 남의 이야기에 얼마나 귀 기울이는지 유심히 살피는 거예요. 중간에 말을 끊거나 자기 이야기를 더 많이 하는 사람은 자기중심적이거나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일 확률이 높아요.
작은 모험을 계속하는 삶
“단숨에 읽힌다”는 리뷰가 많더라고요. 실제로 저도 그렇게 읽었고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리뷰가 있나요?
“에디터 갑의 모험기” 같다는 리뷰도 기억에 남고요. 가장 의미가 있었던 건, “집이라는 문제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갈등했는데 이렇게 집이 중요한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는 리뷰였어요. 이 책은 단독주택 예찬론이 아니에요. 그저 집은 충분히 ‘모험할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시세 때문에 아파트에 살지만 ‘아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슬쩍 옆구리를 찌르고 귀에 바람을 넣고 싶었어요.
만약에 지금 5억 정도의 돈이 생긴다면, 무얼 하고 싶으세요?
아직 한옥에 대한 미련이 있어서 마당이 넓은 집에 살고 싶어요. 지금 사는 집은 정원이 작아서 네 식구는 못 앉거든요. 한옥에서 살 때는 여름만 되면 아이들이 마당에서 수영을 했어요. 마당이 주는 즐거움을 세포들이 기억하는 것 같아요. 아파트에 살 때도 저는 베란다를 좋아했는데요. 왜냐면 마루랑 타일을 밟을 때의 느낌은 확연히 다르거든요. 그래서 아파트를 사는 사람들에게 거실을 확장하지 말고 베란다를 살리라고 말해요.
가장 중요한 건, 나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집인 것 같아요. 시세를 떠나, 아파트의 삶이 더 맞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렇죠. 단독주택이냐? 아파트냐? 고민하는 분들께는 “내가 몸을 쓸 때 얼마나 개운하고 상쾌한 기분이 드는지”를 판단 기준으로 삼았으면 좋겠어요. 단독주택은 살면서 계속 신경을 써야 하거든요. 저는 이게 맞고요. 한옥에 살 때도 마당을 쓸고 움직이고 있으면 참 좋았어요. 하지만 이런 일들이 스트레스로 오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조차 단독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아파트에 살긴 사는데, 값이 오르는 것 말고는 좋은 걸 전혀 모르겠다고 하는 분들이라면 다른 대안도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요.
에디터 생활을 오랫동안 하면서 건축가, 예술가 등을 많이 만나셨어요.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 같아요.
그럼요. 그나마 피처기자를 해서 안 망가지고 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의 제가 대단히 괜찮은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수년간 훌륭한 사람들을 직간접적으로 지켜봤잖아요. 예술가들은 자신이 어떻게 남들과 차별화해서 잘할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이라, 진짜 열심히 사는 사람이거든요. 그런 사람이 하는 말 한 마디는 다르죠. 진정성이 있죠. 일을 하면서 꾸준히 제 마음이 물갈이가 된 것 같아요. 정신을 가다듬게 되는 거예요. ‘저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도 좋은 쪽으로 삶의 태도를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물론 오래는 못 가지만,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에요.
후배들에게 글쓰기에 관해 조언도 많이 해주셨을 텐데요. 어떤 이야기를 주로 하셨나요?
추상적이고 모호하고 분위기 잡는 글, 멋부린 느낌 나는 글을 질색했어요. 조금 문장이 서툴고 멋있지 않더라도 순박하고 진정성 있는 글이 좋죠. 인터뷰이를 과도하게 신격화 하는 글은 멀리 하라고 했어요. 한 글자를 쓰더라도 솔직하고 진실되게 쓰라는 말을 많이 한 것 같아요. 또 하나는 글에도 숨구멍이 있어야 한다는 점인데요. 글에도 중간중간 여유가 있어야지 끝까지 읽을 수 있어요. 2,3일 발효시키면 더 좋죠.
마흔 중반에 독립을 하셨죠?
독립을 한지 이제 딱 일 년이 됐어요. 잡지사에서 퇴사하고 나서 바로 콘텐츠 기획사를 차렸는데요. 퇴사하면서 목표로 한 건 딱 하나였어요. “잡지사 원고 청탁만 기다리면 안 된다.” 그래서 한점 갤러리 ‘클립’도 오픈했고요. 매월 한 명의 아티스트의 작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고요. 3층집의 1층이 갤러리인데, 집이 작지만 그래도 쪼개니까 만들어지더라고요.
만약 두 번째 인생이 있어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나요?
건축가를 해도 좋겠고, 뭔가를 만드는 크리에이터를 해도 좋을 것 같아요. 건축은 사실상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프로젝트라고 볼 수 있잖아요. 비율, 각도 모든 게 너무 중요한. 건축물을 볼 때 느끼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월간지 <럭셔리> 기자로 일할 때, 모든 인터뷰이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럭셔리하게 사는 걸까요?”라는 질문을 하셨고, 이어령 선생은 “이야기 속에 살아라”라는 답을 해주셨다고요. 작가님께도 같은 질문을 드려 보고 싶어요.
크든 작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작은 모험을 계속하는 것, 이게 럭셔리한 삶이 아닐까요? 집은 정말 살아보지 않으면, 이 집이 얼마나 재미있는 공간이 될지 다이나믹한 공간이 될지 모르거든요. 나이가 들어 내 삶을 되돌아 봤을 때, 아파트에서만 살아서 집에 대한 이야깃거리가 없으면 헛헛할 것 같기도 해요.
*정성갑 어렵게 장만한 아파트를 잘못 팔아 6억을 손해 봤다. 팔고 나서 치솟은 아파트 시세를 보며 1~2년간 얼굴에 열꽃이 피어 잠도 제대로 못 잤다. 하지만 그 덕분에 빌라, 한옥으로 즐겁게 이사를 다녔고, 서울 서촌에 3층짜리 작은 집을 지을 수 있었으니 인생은 좋은 게 좋은 게 아니고 나쁜 게 나쁜 게 아니라고 믿는다. 월간지 [럭셔리]와 네이버 디자인판을 운영하는 [디자인프레스]에서 에디터와 편집장으로 일하며 수많은 건축가를 인터뷰했고, 집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았다. 여러 번 이사를 하며 각각의 집에는 저마다의 즐거움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아파트에서만 살았다면 억울할 뻔했다. 갤러리로얄에서 [건축가의 집] 토크를 진행했고, CGV에서는 [정성갑의 하우스토크]를 열었으며, [한 점 갤러리 클립]을 운영하고 있다. 인스타그램(@editor_kab)에서 일과 일상의 흔적을 볼 수 있다. |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