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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봉 “누구나 아플 수 있듯이 누구나 나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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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는 말이 있다. 불가피한 첫 번째 화살을 맞았을지라도, 스스로 만들어 쏘는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은 피할 수 있다는 의미다. 『치유 일기』에는 두 번째 화살이 자신을 관통하도록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던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는 9년 전 ‘그날’의 사건을 떠올리며 “철저히 박살이 났다”고 썼다. 첫 번째 화살이었고,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쏘아진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날’의 일보다 ‘그날’ 이후에도 이어지는 삶이었고, 그 시간 동안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 일이었다. 빛 속으로 나가고 싶었다. 그 간절함으로 긴 터널을 지나왔다. 곁에서 힘이 되어준 것은, 자신처럼 마음의 고통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덕분에 무너진 삶을 다시 세울 수 있었고,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기로 결심했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 위안과 희망을 되기를, 바라는 까닭이다. 



박은봉 저자는 “역사를 알면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세상을 이해하게 된다”는 생각으로 글을 써왔다. 『한국사 편지』로 제45회 백상출판문화상을 수상했고 『엄마의 역사 편지』『한국사 100장면』『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세계사』 등을 발표했다. 쉰 살의 어느 날 ‘한순간에 삶 전체가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됐고, 그것을 재건하는 이야기를 담아 심리치유 에세이 『치유 일기』를 썼다. 



간절한 마음을 붙들고

10년 만에 출간된 신작입니다. 기분이 어떠세요?

생각보다는 담담하고요. 조금 걱정된다고 할까요(웃음). 제가 써왔던 책들과는 다르니까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되기도 하고. 책을 못 쓰게 된지 너무 오래됐고 힘든 시간을 보내다가 드디어 쓰게 된 것이니까,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어요. 그런데 의외로 담담해서 저도 놀랐어요(웃음). 막 좋거나 그래야 되는데 그냥 잔잔한 수면 같아요. 

그동안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처음으로 내밀한 개인의 이야기를 쓰셨어요. 긴장되실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주제로 글을 쓰는 것도 에세이를 쓰는 것도 처음이라서 저로서는 새로운 글쓰기를 해본 건데요. 이 책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던 이유는, 저와 비슷한 마음의 고통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사람들한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저의 경험 이야기를 통해서. 그래서 가능한 한 솔직하게 쓰자고 생각했어요. 치유 과정에서 겪은 여러 가지 일들, 제 마음이 변해가는 과정이나 부침을 겪은 과정들을 자세히 쓰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고요. 담담하고 솔직하게 쓰되 많은 정보를 담아내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심리상담, 정신과 치료, 자기치유의 과정을 가감 없이 들려주셨어요. 

정신과 약도 그렇고 심리상담도 그렇고 상승했다가 서서히 종결로 가거든요. 그런데 보통은 그런 이야기 잘 안 하고 그냥 약 다 먹었다, 상담이 다 끝났다, 이렇게 이야기하잖아요. 그리고 대체로 거기에서 이야기들이 끝나요. 그런데 제가 해보니까 그게 끝이 아니더라고요. 언제든지 다시 재발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 주변에서 보면 그런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우울증 약 같은 경우는 먹다가 중단했다가 또 먹는 걸 반복하는 사람이 많고, 심리상담도 종결했다가 다시 찾아가는 경우를 많이 보거든요. 저도 자기치유의 과정을 겪지 않았다면 그랬을 거예요. 사실 제 책의 절반은 그 앞부분(심리상담, 정신과 치료)의 이야기이고, 절반은 그 뒤에 제가 스스로를 치유해나가는 이야기예요. 그런 의도와 마음이 독자들에게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어요. 

“때로는 한순간에 삶 전체가 무너지기도 한다. 내가 그랬다”라는 구절로 시작돼요. ‘그날’ 이후 많은 것들이 없어지고 깨어진 것 같은데, 어땠나요?

그렇죠. 책에도 실려 있듯이, 당시에 쓴 일기에 “박살이 났다”고 표현을 했어요. 실제로 그렇게 느끼고 생각한 거예요. 박살이 났구나. 누구나 그렇듯이, 쉰이 될 때까지 나름대로 이루어왔던 게 있지 않겠어요? 그것이 하루아침에 다 날아갔다는 생각이 드니까, 뭐랄까요, 처음에는 멍하고요. 그 다음엔 ‘진짜 박살이 났구나,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드는데, 그때 그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죠. 어떻게 그렇게 순간적으로 무너질 수가 있는지, 저도 신기해요. 살면서 힘든 일 어려운 일 많이 겪었지만 멘탈이 붕괴되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하루아침에 붕괴되더라고요. 스스로도 놀랐죠. 사실 사건사고라는 건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멘탈이 붕괴되는 건 아니고, 저도 여태까지 그렇지 않았어요. 

그때는 왜 멘탈이 무너졌을까요?

그게 저의 화두였어요. 거기에서는 왜 그랬을까. 그걸 계속 찾아가는 거예요. ‘어떤 일이 일어났든 내가 이겨내면 되는데, 왜 무너지나’, ‘여태까지 더 힘든 일도 이겨내 왔는데 왜 여기서는 이렇게 무너지나’ 하는 의문이 컸어요, 그러니까 이건 나의 문제라고 생각한 거죠. 결국엔 내 안의 무엇이 그렇게 만든 것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던 거죠. 

무너진 ‘나’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셨어요. 어떻게든 일으켜서 병원으로 이끌고, 상담을 받고, 심리학 공부를 하셨죠. 내면에 강인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아닐까요?

그렇게 볼 수도 있는데요. 제가 특별하게 강한 사람이라고는 생각 안 하고요. 당시에 제가 갖고 있던 간절함, 저 빛 속으로 나가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하나를 붙들고 간 거죠. 그 간절함이 계속 뭔가를 찾아다니게 하고 집 밖으로 끌어냈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라도 그런 상황에 처해있으면 저처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절박한 상황에 처하면 살려고 발버둥 치잖아요. 저도 처음에는 ‘내가 과연 이겨낼 수 있을까? 이 어두운 터널을 벗어날 수 있을까?’ 싶었어요. 정말 한치 앞이 안 보였거든요. 자신이 없어서 포기할까 하는 생각 생각도 굉장히 여러 번 했어요. 

그럴 때 힘이 되어준 것은 무엇이었나요?

다른 사람들이 나은 이야기였어요. 그런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나도 이 사람처럼 나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누군가가 한 일이라면 또 다른 누군가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내가 그 또 다른 누군가가 될 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하게 되었던 거죠. 저는 극복할 수 있는 특별한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죠. 누구나 아플 수 있듯이 누구나 나을 수 있어요. 희망만 잃지 않으면. 

매일 밤 죽음을 생각할 때 “나를 붙잡아 준 내 안의 무엇”이 있었다고 하셨어요. 희망이었나요?

간절함이었어요. 여기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간절함을 조금 더 분석해보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죠. 여기에서 그만둘 수 없다는 생각, 여기에서 그만두기에는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고지가 저기인데 여기서 죽으면 억울하지 않냐고. 사실 그때 매일 밤 내일 아침에 눈뜨지 않기를 소망했어요. 너무 아프니까. 내일 아침에 눈뜨면 다시 아플 거잖아요. 그게 너무 싫으니까 아침에 눈 안 떴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매번 잠이 들었어요. 잠도 잘 못 자지만. 의사 선생님이 그 말씀을 하셨을 때 저도 그 자리에서 웃었어요. ‘맞아요, 억울하죠’ 하면서. 그런 마음도 있었고요. 그 순간에도 여러 얼굴들이 떠오르죠.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 떠오르니까 뒷걸음질 치는 거죠.



근본 원인은 내 안에 있어요

‘그날’의 일이 있기 전부터 일기를 써오셨던 것 같아요. 

맞아요. 매일은 아니고 간간이, 속상하고 화날 때마다 썼어요. 일기에는 그냥 하고 싶은 말 막 쓰잖아요. 아무한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도 써도 되고. 제 속에 담긴 것들을 토로하는 거니까 좋을 때는 별로 안 쓰게 되고 화날 때, 속상할 때, 안 좋을 때 주로 쓰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간간이 썼었는데, 마음이 아프고 나서는 매일 들고 다니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쓴 거죠. 

처음 7개월 정도는 전혀 못 쓰셨다고요.

아무것도 없죠.

그때는 읽는 것도 쓰는 것도 너무 힘드셨죠?

기억도 잘 안 나요.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도 너무 힘이 들고...

그때는 거의 집에만 있었어요.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할 수가 없어요. 한 30분 이야기하면 ‘가주세요, 저 드러누워야 돼요’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다 느닷없이 ‘적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어요.

그만큼 상태가 좋아진 거죠. 아마도 정신과 약을 거의 끊을 무렵이었을 거예요. 정신과 약이라는 게 처음에 약하게 시작했다가 점차 최고 강도로 높이다가, 의사가 판단해서 끊어야겠다 싶으면 서서히 줄여나가거든요. 그때는 약을 점점 줄이던 시점의 어느 지점이었던 것 같아요. 문득 적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9년 동안 명상, 심리상담, 걷기 등 치유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는데요. 일기 쓰기는 어떤 점에서 도움이 되었나요?

감정과 생각이 내 안에 있을 때는 계속 맴돌면서 자신을 괴롭히거든요. 객관화가 안 되는 거죠. 그런데 밖으로 끄집어내는 순간 치유가 일어나요. 일기는 글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밖으로 끄집어내놓는 거예요. 매체가 무엇이든, 글이든 말이든 그림이든 음악이든 춤이든, 그걸 통해서 자기 안에서 휘몰아치고 있는 감정이나 생각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거리두기가 되고 ‘아, 내 감정/생각이 이렇구나’ 하고 바라보게 돼요. 그 순간부터 객관화가 이루어지고, 그게 치유의 첫걸음인 거죠. 

책 속에 당시의 일기가 실려 있는데요. 힘들었던 시기에 쓰신 글이잖아요. 다시 읽는 게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그렇죠. 이 책을 쓸 때 제일 힘들었던 부분이 옛날 일기를 다시 보는 거였어요. 물론 지금 저한테는 거의 객관화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예전처럼 힘들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기억이 떠오르죠. ‘그때 내가 이랬구나, 이렇게 힘들었구나’ 하면서 눈이 조금 촉촉해지죠. 그러면서 나의 상태를 다시 보게 되고요. 또 하나는, 그 시절을 다시 보게 돼요. 재해석 내지 재조명한다고 할까요. 그때 알지 못했던 것을 다시 보면서 ‘사실은 이런 거였구나’ 하고 깨닫는 것도 많고요. 마치 역사책을 쓸 때 사료를 보면서 어떻게든 재해석을 하게 되는 것과 같아요. 그 시절의 모습을 하나의 텍스트로 보면서 다시 이해하고 계속 재해석하는 시간을 갖게 돼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심리학 공부도 시작하셨는데요. 이전과 달리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된 것, 사건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 측면이 있었나요?

상당히 많은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제가 쉰이 넘은 나이에 대학원을 새로 들어가서 심리학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동기는 ‘도대체 마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어요. 인간의 마음이란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 사람을 힘들게 하는지, 마음은 어떤 원리로 작동하고 발현되는지, 내 마음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그런 구체적인 질문이 있었어요. 그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게 저의 공부였고요. 그래서 많은 도움이 되었죠. 

그 결과 “내게 일어난 사건은 ‘방아쇠’였을 뿐 무너진 근본 이유는 내 안에 있었음을” 깨닫게 되셨죠.

심리학적으로 보면,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는 심리적인 문제나 상처는 사실 내 안에 근본 원인이 있어요. 내가 피해자라고 한다면 가해 행위를 한 누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 그의 행위는 방아쇠인 것이지 그로 인해 무너지고 안 무너지고는 나의 문제인 거예요. 그러면 상대방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냐? 아뇨,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거예요. 그건 차원이 다른 이야기예요. 나쁜 짓을 했으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죠. 그런데 그로 인해서 내가 상처를 받지 않아야 되는 거예요. 상처를 받더라도 삶이 무너지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주저앉아 버렸다면, 어떻게 보면 스스로에게 두 번째 화살을 왕창 쏜 거예요. 

관계에서 상처를 받으면 양가감정이 들고는 하잖아요. ‘내 잘못인가?’ 싶으면서도 ‘그래도 저 사람이 방아쇠를 당기면 안 되는 거지’ 싶고요.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죄책감을 느끼라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내 마음의 어떤 요소가 작동을 해서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인지 알아야 한다는 거죠. 어떤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나면 많은 사람들이 죄책감과 죄의식을 가져요. 그것 자체가 두 번째 화살이에요. 아주 심각한. 상대가 나한테 잘못한 건데 나는 왜 그 사건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되는 거예요. 그건 내 안의 어떤 요소가 죄책감을 느끼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게 뭔지를 알아내서 치유해주어야 해요. 옆에 있는 사람들은 ‘네가 착해서 그래’라고 말하죠. 착해서 그런 게 아니라, 내 마음에 어떤 요소가 있는 거예요. 그걸 알아내야 돼요. 그것이 치유의 중요한 과정이예요. 

방아쇠를 당긴 사람에 대한 분노를 억누르기란 너무 힘든 일인데요. 어떻게 떨쳐내셨어요? 

정말 힘들었죠. 제일 힘든 게 분노였어요. 그 분노가 한 번 몸을 휘몰아치기 시작하면 온 몸이 활활 타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활활 타요. 시쳇말로 뚜껑이 열린다고 하죠? 그 정도가 아니라 정말 활화산이 된 것 같아요. 한 번씩 그러고 나면 완전히 지쳐요. 태우느라 모든 에너지를 다 소진했으니까. 분노가 가장 강렬한 감정 중에 하나일 거예요. 그러니까 몸을 힘들게 하는 거죠. 그런데 감정은 밖에 내놓으면 사라져요. 내 안에 있으면 나를 태워요. 바이러스가 숙주를 떠나면 오래 못 가서 죽듯이 마찬가지예요. 그러면 어떻게 밖으로 내놓을 수 있을까요. 그걸 훈련하고 연습하는 게 필요한 거예요. 

책에서 말씀하신 ‘감정 바라보기’, ‘일기 쓰기’도 그런 연습 중에 하나겠네요.

그렇죠. 밖으로 꺼내놓는 방법은 각자한테 맞는 걸 찾아내면 된다고 생각해요. 노래를 부르거나 걷거나,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죠. 자기한테 잘 맞는 게 있어요. 그걸 찾아가는 것도 하나의 치유 과정이에요. 찾아서 자꾸 바깥으로 내놓는 거예요. 밖으로 내놓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한테 막 쏟아내는 게 아니고요. 바깥으로 내놓으면서 객관화시키는 연습을 해야 돼요. 

감정을 꽁꽁 싸매는 게 가장 안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불길이 잦아들지 않는다고 할까요.

그럼요. 그리고 안에 쌓아놓은 감정은 언젠가 터져요. 반드시. 오래되면 될수록 나중에 크게 터지죠.



하루씩 살기

“오래전부터 뱃속 한가운데가 뻥 뚫려 있는 것 같았다”고 하셨는데요. 외로움, 혼자가 될까 두려운 마음 때문이었을까요? 

그게 근본적인 문제였죠. 내 안이 뻥 뚫려 있었기 때문에 어떤 사고가 일어났을 때 그냥 무너져버린 거죠. 그 뻥 뚫림이 치유가 돼야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에 치유가 됐어요. 놀랍게도. 그것도 정말 순간적인 일이었는데,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도 뻥 뚫림을 전혀 느끼지 않아요. 그 이야기를 하면 무슨 신비체험처럼 받아들이는 분들도 있던데 그건 아니고요(웃음). 어떤 것을 계속 추구해나가다 보면 얻게 되는 하나의 과정인 것 같아요. 그 뻥 뚫려있음이 물리적으로도 느껴지고, 심리적으로는 외로움이라는 것으로 다가오고, 아주 심해졌을 때는 공포가 됐었어요. 그 공포는 정말, 뭐라고 할까요, 세포 하나하나가 떨리는 거예요. 그래서 불안증이 온 게 아닐까 생각이 되는데, 달리 표현할 수가 없어요.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떨리는데 진짜... 괴로웠죠. 

“외로움이 두려워 스스로 저지른 우(愚)의 결과”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낯설지 않은 이야기예요. 혼자되는 게 겁나서 관계에서 실수를 하게 될 때가 있잖아요. 

그렇죠. 저의 실수가 그거였거든요. 제 안의 뻥 뚫림이 근본적인 문제였다고 했잖아요. 그 뻥 뚫림과 외로움이 싫고 무서우니까 그냥 관계를 좋게 좋게 맺는 거예요. 관계가 잘못 될까 봐, 떨어져나가게 될까 봐, 멀어질까 봐, 그래서 혼자 남을까 봐, 잘못도 눈 감도 안 좋은 일도 눈 감고 (상대가) 잘못해도 ‘그래, 내가 참아주지’ 하면서 또 넘어가고 넘어가고... 그러다 해결이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빙산처럼 점점 커지는 거예요. 이걸 끊지 않으면 남은 인생에서 계속 반복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태까지 해온 만남에서 일종의 패턴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관계가 잘못될까 봐 걱정하는 마음 때문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나머지를 다 희생시키는 걸 반복하고 있더라고요. 나의 만남의 패턴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꿔야지, 생각한다고 하루아침에 바뀌는 건 아니죠. 내 안의 어떤 공허함이 유발하는 거니까 그 공허함이 메워지면 저절로 관계 맺는 방식이 바뀌지 않겠어요? 그래서 공허함에 초점을 맞췄던 거예요.

“우울에 빠진 이에게 손을 내밀었는데 만약 상대가 잡기를 거부한다면, 잡을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 주면 좋겠다. 아직 잡을 힘조차 없어서 그러는 것일지 모르니”라고 쓰셨어요. 아직 손잡을 힘을 내지 못하는 누군가가 이 책을 읽는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세요?

정말 힘들 때는요, 아무것도 못해요. 책을 읽을 수도 없고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숨 쉬기도 힘이 들어요. 그럴 때는 뭘 하려고 억지로 애쓰는 것보다는 그냥 할 수 있는 걸 했으면 좋겠어요. 사람마다 다를 거예요. 뭐라도 좋아요. 화분에 물을 준다든지, 뭐든지 좋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루에 한 가지는 꼭 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정말 힘들 때 한 게 ‘하루씩 살기’였어요. 오늘 하루만 사는 거예요. 내일이나 모레나 한 달, 일 년 뒤는 정말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내일 하루 잘 살기’를 하는 거죠. 

해야 할 일들을 메모하면서요?

정말 시시해요. 아침에 일어나서 병원 가기, 문구점에 가서 볼펜 사기... 그것도 일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는 굉장한 일이에요. 그걸 한다는 건. 안 하고 싶거든요. 할 기운도 없고 못 하겠고, 그런데 하는 거죠. 하고 났을 때 성취감을 느끼는 거예요. 그렇게 하루씩 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집 밖으로 나와 있더라고요. 제일 중요한 건 ‘나도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이에요. 포기하지 않는 것. 길은 여러 가지가 있어요. 그리고 누구든지 할 수 있어요. 누군가 했으면 나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렇지 않겠어요? 그러면 한 번 해봐야죠.


 

가족이나 친구가 마음의 고통을 앓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말 힘들 때는 옆에서 손을 내밀어줘도 못 잡아요. 그리고 싫어요. 귀찮게 하지 말고 내버려 두라고 짜증내고 화내죠. 그럴 때는 그냥 가만히 옆에 있어주는 게 제일 좋아요. 힘내라는 말도 되게 화나요. 지금 힘이 안 나서 죽겠는데 힘을 내라니까 짜증나요. 힘내라는 말 듣기 싫어서 사람을 안 만나요. 그러니까 옆에 있는 듯 없는 듯 가만히 같이 있어주는 게 제일 큰 도움이 돼요. 그런데 그렇게 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복장이 터지거든요(웃음). 같이 병날 것 같죠. 그걸 사랑과 관심으로 해야 돼요. 가만히 지켜봐주다가 당사자가 움직이면 그때 얼른 같이 손 잡아주고, 그러면 조금 나아져요. 그렇게 조금씩 가는 거예요. 쉽지는 않을 거예요. 그런데 그런 존재가 옆에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회복될 수 있어요. 

역사를 공부하셨는데, 그 경험이 마음을 들여다보고 치유하는 일에도 도움이 됐나요?

음... 그에 대한 답을 제 나름대로 모색하는 게 다음 책의 내용이 될 것 같아요. 제가 가진 의문이었거든요. 내 마음이 가장 고통스러울 때 역사가 나한테 도움이 되었는가. 역사는 나한테 무슨 말을 했나. 어떻게 보면 질문하신 내용이 다음 책의 주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그 다음 책은 다시 역사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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