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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영 “여행을 못 가면, 여행 준비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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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아니라 ‘여행 준비’의 기술이라니. 제목에서 궁금증이 생겼다가, 프롤로그를 보고 단숨에 책을 다 읽었다. 그동안 여행 준비를 취미로 삼을 생각은 왜 한 번도 하지 못했던 걸까? 의사이자 작가이고, 책 이야기를 하는 팟캐스트 ‘YG와 JYP의 책걸상’ 진행자인 저자 박재영은 “무언가를 준비하는 데 즐거운 게 있었던가?”라고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시험, 회의, 대회 등 어떤 일을 준비하는 과정은 대체로 괴롭지만, 여행 준비만큼은 설레고 즐겁다는 의미다. 그래서 여행이 신기루처럼 느껴지는 코로나 시대에 이 책을 썼다. 여행을 가는 건 어려워도, 여행 준비는 언제든지 할 수 있기 때문. 올해 한 번도 여행을 가지 못해 우울한 기분이 든다면, 저자의 여행 준비 기행문을 읽어 보시길. 떠나지 않은 일상에서도 충분히 여행의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취미는 ‘여행 준비’입니다 

여행 가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어요. “이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지는 10년도 넘었다.(6쪽)”고요.

서른 살 쯤까지는 “취미가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마땅히 할 말이 없었어요. ‘나는 취미도 없는 인간인가’ 싶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걸 취미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건 여행 준비더라고요.(웃음) 실제로 여행 준비를 하는데 시간을 많이 쓰고 있고요. 가고 싶은 장소를 찾아보고, 여행에 관련된 자료들을 자주 보다 보니 이야깃거리가 많아졌어요. 준비를 많이 하고 가니 여행지에서도 훨씬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됐죠. 자연스레 지인들과 술 마시고 놀 때, 여행 얘기를 많이 했는데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여행 준비를 키워드로 책을 써도 좋겠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어요. 

그렇게 묵혀 두었던 이야기가 코로나 시대에 책으로 출간되었네요. 

갑자기 여행을 못 가는 순간이 오니까 우울하더라고요.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사실 더 좋아하는 건 여행 준비인데 이건 코로나가 끝나지 않아도 할 수 있잖아?’ 그래서 10년 전부터 쓰려고 했던 책을 지금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죠. 여행 준비에 관한 책을 쓰겠다고 했더니 주변에서 “네가 술집에서 매일 하던 얘기 쓰면 되겠다”고 바람을 넣었어요.(웃음) 어차피 코로나로 약속이나 출장도 다 취소돼서 원고 쓰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어요. 

제목도 10년 전에 지으신 거라고요. 다른 후보는 없었나요? 

코로나가 들어가는 제목이 몇 가지 있었어요. 거의 다 잊어버렸는데, 어쨌든 여러 후보를 놓고 출판사에서 고심하다가 다시 처음 제목으로 돌아갔죠.(웃음) 이 제목이 별로라는 반응도 있었지만, 반대로 매우 좋다는 의견도 있었거든요. 

팟캐스트 ‘YG와 JYP의 책걸상’에서 장강명 작가님이 “제목 좋다”고 말씀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맞아요. 최고의 제목인데 왜 고민하냐고 하더라고요.(웃음) 

8명의 추천사가 실렸어요. 팟캐스트에서 만난 인연인가요? 

장강명, 김혼비 작가는 그렇고요. 떠오르는 분들께 원고를 보내면서 “읽고 별로면 그냥 버리시고, 재미있으면 원고지 한 장만 써주세요”라고 했더니 다들 흔쾌히 응해주셨어요. 추천사로 맺어진 재미있는 인연이 있는데요. SBS <최영아의 책하고 놀자> PD가 책걸상 애청자여서 밥 한번 먹자는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약속을 못 잡고 있던 차에 책이 출간돼서 “추천사도 쓰고 밥도 먹자”고 연락했더니 그 사이에 PD가 바뀌었다는 거예요.(웃음) ‘전 PD의 추천사’라고 싣기는 좀 이상할 것 같아서 현재 PD한테 연락을 해봤는데, 마침 책걸상을 들어본 적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이인데 흔쾌히 써주셨어요. 조만간 전 PD, 현 PD와 같이 만나려고요.(웃음)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여행 좋아하는 선배에게 술자리에서 여행 얘기 듣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쉽고 재미있게 쓰기 위해서 신경을 많이 쓰셨을 것 같아요. 

오랫동안 칼럼을 쓴 경험이 크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칼럼 쓸 때 중요한 건 리듬감이잖아요. 긴 글에서도 그 리듬감을 살리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요. 이건 저의 글 쓰는 습관인데, 꼭지의 분량을 다 비슷하게 맞추는 걸 좋아해요. 설계도를 미리 그려 놓고 책을 써서 23꼭지의 분량을 거의 다 비슷하게 맞췄어요. 제일 신경 쓴 건 ‘웃겨야 한다’는 거였어요. 여행은 즐겁자고 하는 거고, 여행 준비도 즐거울 수 있다고 주장하는 책이니까요. ‘코로나 우울증 극복을 위한 최고의 명약’이라고 해놓고 지루하면 안 되니까 유머코드를 다양하게 넣었죠. 그런데 쓰다 보니 ‘아, 너무 재수 없어 보이는 거 아닐까?’하는 걱정이 되더라고요.

“허세 고백서가 되어 가서 걱정(38쪽)”이라고 하셨죠.(웃음)

결국 먹고 놀았다는 이야기잖아요. 물론 많은 사람이 여행을 가지만, 어느 누구나 여행을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건 아니고 누구나 비싼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혹시 읽으면서 불편한 사람이 있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책 쓰라고 바람 넣은 지인들이 “요즘은 플렉스(FLEX)의 시대이고, 책에서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 너 돈 없는 거 우리가 다 안다. 괜찮다.”고 하더라고요.(웃음)


 

태도를 바꾸면 여행이 훨씬 즐겁다 

“여행 준비는 사실 유전자에 새겨져 있었던 취미.(26쪽)”라고요. 여행을 좋아하는 아버지 덕분에 어릴 때부터 여행을 많이 다니셨다고 했는데, 기억에 남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나요? 

지금 막 떠오르는 건 용인 민속촌에 갔던 날이에요. 추운 겨울이었는데, 민속촌에 얼음판 같은 게 있어서 스케이트 타고 그랬던 게 즐거웠어요.(웃음) 울진 성류굴에 갔을 때는 너무 추워서 ‘왜 이렇게 추운 날, 여기를 왔나’하고 아버지를 원망했던 기억도 나고요. 밀양 표충사에 갔을 땐 계곡에서 장난치며 돌다리를 건너다가 물에 빠졌어요. 그래서 온몸이 흠뻑 젖었던 일들… 이런 소소한 추억들이 기억나네요. 

아버지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셨나 봐요.

어려웠던 시절이라 지금처럼 자주 여행을 다닌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시장만 따라가도 즐거웠어요.(웃음) 책에도 썼듯이 『월간 시각표』라는 잡지가 있는 집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땐 차가 없었던 때라, 아버지가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서 가족들을 데리고 여행을 다니셨어요.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몇 시에 버스를 타고, 어디서 갈아타서 절에 가고 이런 계획을 잡지에 적힌 대중교통 출도착 시간을 보고 세우셨던 거예요. 요즘은 다 차를 몰고 다니니까, 이제 외국 여행을 준비할 때만 할 수 있는 경험이죠. 

가고 싶은 장소를 찾고, 구체적인 일정을 짜고, 짐을 싸는 등 여행 준비에도 여러 단계가 있잖아요. 어떤 순간이 제일 즐겁나요? 

우연히 멋진 곳을 발견했을 때가 제일 좋아요. 적극적으로 여행을 준비하고 있을 땐 상대적으로 정보가 너무 많이 들어오는데, 그게 아니라 평범한 일상 중 책을 읽다가 멋있는 장소를 발견하거나 친구에게 여행 이야기를 듣다가 내가 몰랐던 곳을 알게 된다거나 할 때요. “어? 그런 데가 있었어?”하고 찾아봤는데, 정말 멋있는 공간일 때 제일 즐거워요. 그 순간에는 거길 정말 갈 수 있는지, 없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이런 곳을 발견했다는 기쁨이 크니까요. 구글 지도에 별 찍어 두는 재미도 있고요.(웃음) 

그리고 해외에서 렌터카로 여행을 할 예정일 때, 동선 짜는 게 괴로우면서도 제일 재밌어요. 여기도 가고 싶고, 저기도 가고 싶은데 이동시간이 너무 길면 고민하게 되는 거죠. 여길 갈까 말까, 중간에 들를 곳은 없을까? 하는 걸 고민하는 과정이 즐거워요. 

그럴 땐 보통 어떤 결론이 나나요? 

한 장소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대부분 안 가요. 이제 가봐도 별 거 없다는 걸 알거든요. 차라리 근처의 뒷골목을 산책하는 걸 택하죠. 하나를 더 본다고 해서 내 삶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 같은 건 없어요. 

여행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 보통 두 부류로 나뉘더라고요. 계획을 촘촘하게 세우거나, 특별한 계획을 짜지 않거나. 작가님은 어느 쪽이세요? 

저는 섞는 쪽이요.(웃음) 일단 가기 전에 시간 단위로 일정표를 짜요. 공항 도착, 호텔 체크인, 일정 출발 시간 등을 꼼꼼히 계획하죠. 만약 일정표에 미술관 관람이 있다면 몇 시간을 머물고 밥은 몇 시에 먹을 건지 등도 다 적어요. 그런데 전체 일정표 중 비어있는 블록을 꼭 만들어요. 예를 들어 어느 날은 오후 일정을 통째로 비우는 거죠. 그 시간에는 호텔에서 책을 읽거나, 시내를 구경하거나 하는 등 자유로운 일정을 보내요. 그런데 일정표를 이렇게 꼼꼼히 세워서 가도 실제로 여행지에 도착하면 많이 바꿔요. 일정표대로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숙제하는 기분이잖아요. 도착해서 현지 지도를 보면 또 가고 싶은 곳이 생기기도 하고요. 즐겁기 위해서 간 여행이니까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움직이는 거죠. 

계획에는 없었는데 우연히 간 장소 중, 정말 좋았던 곳을 추천해주신다면요. 

책에 등장하는 스위스의 에멘탈 치즈 공장이요. 스위스 여행 중에 아내가 장모님께 전화를 해서 드시고 싶은 거 없는지 여쭤봤더니 에멘탈 치즈를 사오라고 하셨어요. 물론 근처 슈퍼마켓에서도 치즈를 살 수 있겠지만, 그동안 여행 준비한 가닥이 있으니 검색을 해봤죠. 특별한 장소가 있을 것 같아서요. 마침 ‘에멘탈러’라는 치즈 공장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동선을 살짝 수정해 거기를 갔는데 의외로 재밌었어요. 책에 썼듯이 파리를 쫓으며 식사를 했던 추억도 남고요. 이런 건 계획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늘 의외의 장소가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요즘은 SNS에 정보가 워낙 많아서, 여행을 가면 영상에서 본 걸 실제로 재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제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그거였어요. 여행은 조금만 태도를 바꿔도 좋은 추억을 많이 남길 수 있거든요. 특히 여행 준비를 여러 번 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잘 알 수 있어서 훨씬 더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죠.

예를 들어 저는 LA에 2년간 살았는데도 레이건 라이브러리가 LA에 있는 줄 몰랐어요. 그런데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는 지인이 출장을 와서 만났더니 거길 간다고 하는 거예요. 왜 가냐고 물어보니까 레이건이 역대 대통령 중, 커뮤니케이션을 가장 잘했던 사람으로 유명한데, 도서관에 쓰여있는 말들을 보면 일과 연결해서 생각할 거리가 많다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궁금해서 가봤는데 정말 괜찮았어요. 우연히 가게 된 장소 중 좋은 곳이 많아요

독서를 통해 여행 준비를 더 즐겁게 할 수 있다는 ‘독서, 최고의 여행 준비’ 파트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여행지에서 읽을 책을 고르는 기준도 있으세요? 

보통 술술 잘 읽히는 책을 가져가요. 또 팟캐스트 때문에 책 읽는 게 일이기도 해서, 일 때문에 읽어야 하는 책들을 많이 들고 가죠. 특히 여행지와 관련 있는 책 중에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제일 먼저 챙기는데요. 일본 갈 때는 일본 소설을 하나 반드시 챙기고, 노르웨이를 간다면 노르웨이 작가 소설을 하나쯤은 넣는 식이에요. 현지와 관련된 책을 가지고 가면 책으로 인해 재미있는 일이 생기기도 해요. 방금 다녀온 장소를 책 속에서 다시 만나게 되기도 하거든요.


 

일상을 여행처럼, 인생은 관광객 모드로 

여행 기록은 어떻게 하세요? 

언제, 어디를 갔고 뭘 먹었다 정도만 짧게 기록해요. 일기를 여행 중에만 쓰는 거죠. 이것만 기록해도 충분해요. 종종 아내와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때 그 식당에 언제 갔지?” 이런 얘기가 나오면 한 번씩 찾아보는데요. 추억을 되새기는 재미가 있어요. 

관광지에서 가져온 소품으로 냉장고 자석을 만드는 게 꿀팁이었어요. 

냉장고 자석을 여행 기념품으로 모으는데, 기억하고 싶은 모든 장소에서 자석을 파는 건 아니라서 시작하게 됐어요. 사실 책에 자석 사진을 넣자는 의견이 있었는데 말로 설명해야 의미가 살아날 거 같아서 넣지 않았죠. 

책에 소개해주셨지만, 특히 재미있는 자석이 있다면요. 

이케아 연필로도 만들었고요. 일본 하코네의 돈가스 집 ‘리큐’의 성냥이나 캘리포니아의 ‘프렌치 론드리’에서 기념품으로 준 쿠키 상자의 뚜껑도 있죠. 중요한 건 다 책에 썼네요.(웃음) 사실 자석은 원한다면 한도 끝도 없이 늘릴 수 있어요. 스타벅스에서도 각 도시 이름이 적힌 카드를 팔잖아요. 오키나와에 갔을 때 벚꽃 시즌에만 파는 카드가 있었는데, 그것도 자석이 돼서 벽에 붙어 있어요. 국립공원 입장권 같은 것도 자석으로 만들기 좋죠.  

책의 마지막 장에는 ‘가보니 참 좋았다’ ‘가서 먹으니 참 좋았다’ ‘가보면 참 좋겠다’로 나누어 각 7개씩 장소를 소개하셨어요. 소개하고 싶은 곳이 많았을 것 같은데, 어떤 기준으로 추렸나요?

조금이라도 책에 언급된 장소는 제외했고요. 친한 친구가 여행 가는데 정보 좀 달라고 물어봤을 때 기꺼이 알려주고 싶은 곳, 그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장소를 골랐어요. 덴마크 포레스트 타워는 작년에 새로 생긴 전망대고, 일본 나오시마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지 몇 년 안 된 여행지거든요. 주변 사람들에게 평소에 가보라고 말하는 장소들이에요. 

의료 전문 주간지 ‘청년의사’의 편집주간을 맡고 계세요. 팟캐스트 ‘YG와 JYP의 책걸상’ 진행자이기도 하시고요. 의사이지만 해오신 일들은 저널리스트에 가까운데요. 원래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하셨어요?

문과형 인간인데 고등학교 때 수학을 잘하는 바람에 이과에 갔어요. 그때만 해도 남학생이 수학을 잘하면서 문과에 간다고 하면 말도 안 된다고 하던 시절이거든요. 문제는 과학을 안 좋아해요. 수학도 고등학교 학업까지는 잘 마쳤을지 모르지만, 더 깊이 들어가는 건 자신이 없었어요. 기계도 싫어하고 컴퓨터도 잘 못하고. 그러다 보니 전공할 게 없는 거예요.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는데 그나마 이과계열 중 문과에 가장 가까운 게 의대거든요. 세부전공에 따라서 예방의학, 윤리학, 정신의학 등을 전공할 수 있어서 의대에 진학했어요. 한 번도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지만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까 안 맞는 거죠. 그러다가 선배들을 따라 신문 만드는 일에 관여하게 됐고, 우연히 책도 쓰게 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왔어요. 

팟캐스트 ‘YG와 JYP의 책걸상’ 시즌3가 시작되었어요. 펀딩으로 운영자금을 마련하셨더라고요. 

지금까지 강양구 기자와 3년 반 동안 방송을 했는데, 저희 방송이 순위가 어마어마하게 높은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다른 프로그램들과 구별되는 매력이 있는지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꽤 있어요. ‘책걸상’은 대본이 하나도 없거든요. 단지 책만 다 읽었을 뿐 아무 준비 없이 녹음을 해요. 편집도 거의 안 하고요. 날 것인 방송에 매력을 느끼는 분들이 계신 것 같아요. 그런데 돈이 안 되잖아요. 제작비 후원을 일부 받긴 하지만, 사실 팟캐스트는 강양구 기자와 제가 하는 일 중에 생산성이 가장 낮은 일이에요. 솔직히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요. 막상 그만하려니 느슨한 독서공동체를 없애기 아쉬웠던 거죠. 그래서 펀딩을 시도했고, 3일 만에 목표 금액인 천만 원이 다 모였어요. 처음에는 ‘그게 되겠어?’ 했는데 금액이 쭉 올라가는 걸 보고 ‘아 더 높게 잡을 걸’ 싶었죠.(웃음) 

애청자들의 마음을 느끼셨겠네요. 

펀딩 기간도 짧고, 멋있는 굿즈도 없고, 홍보도 안 했는데 그렇게 참여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죠. 더 감동적인 건 펀딩 기간을 놓쳤는데 제작비를 보태고 싶다고 따로 연락해 주신 분들이 계셨어요. 그 중 몇 분은 해외에 계신 청취자였고요. 그래서 시즌3 제작비는 달러도 있고, 엔화도 있고, 포르투갈에서도 돈이 들어왔어요.(웃음) 무슨 매력인지는 모르겠지만, 저희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이렇게 많은 걸 보고, 앞으로 좀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코로나가 사라지면 첫 여행으로 어디를 가고 싶으세요? 

솔직히 말하면 일본을 가지 않을까 싶어요. 그동안 힘들었으니까요. 멀리 가서 고생하고 싶은 마음보다 ‘내가 드디어 여행을 갈 수 있게 됐다’는 느낌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도쿄에 친구도 있고, 맛집도 많으니까 훌쩍 다녀오고 싶어요. 사실 어디를 가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거 같아요. 

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쁠 테니까요. 

맞아요. 어딜 가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여권에 도장 찍는 행위 자체가 즐겁겠죠.(웃음) 저희 집에서 10초 거리에 공항버스 정류소가 있거든요. 저는 아침에 출근하다가 공항버스를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코로나가 시작되고 한두 달 지나니 정류소에 ‘운행을 축소한다’는 안내문이 붙었어요. 그 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서 완전히 중단한다는 안내가 다시 붙었죠. 그때 정말 가슴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어요.(웃음) 지금도 오며 가며 정류소에 붙은 안내문을 보면 슬퍼요. 그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서 이 책을 썼고, 쓰는 동안 여행을 가는 것만큼 즐거웠어요. 독자 분들께도 그런 책이었으면 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책이 출간되고 사람들에게 사인해서 드릴 일이 생겼을 때, 어떤 문구를 적어드리면 좋을지 고민을 오래 했어요. 진작 떠올랐다면 책에 썼을 만한 문장이 인쇄되는 동안 떠올랐네요.(웃음) 

‘일상을 여행처럼. 인생은 관광객 모드로’라는 문장인데요. 여행을 가면 평소와 좀 다르게 살잖아요. 부지런해지고 호기심도 많아지고, 인생에 대해서도 성찰하고요.(웃음) 여행지에서 하던 이 수많은 일들을 일상에서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여행지에서 남은 하루를 아까워하듯, 인생의 하루하루를 뜻깊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박재영

의사 출신의 21년차 저널리스트이자 ‘여행준비러’. 책 팟캐스트 의 진행자이며, 여행준비와 요리, 책 읽기가 취미다. 장편소설 『종합병원2.0』, 한국의료 해설서 『개념의료』, 평론집 『한국의료, 모든 변화는 진보다』 등 7권의 저서를 펴냈고, 『청진기가 사라진다』(공역), 『환자의 경험이 혁신이다』(공역), 『차가운 의학, 따뜻한 의사』 등 8권의 책을 번역했다. 여러 일간지 및 주간지의 고정 칼럼니스트로 활동했으며, 팟캐스트 및 유튜브 <나는의사다> 프로듀서 겸 진행자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의료법윤리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수련의 과정을 마친 후 3년 동안 공중보건의사로 일했고,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장을 지냈다. 1999년부터 2011년까지 신문 청년의사 편집국장으로, 그 후에는 편집주간으로 일하고 있다. 연세의대 의학교육학과 객원교수로, 인문사회의학 관련 내용을 강의하고 있다. 그 외에 한국의료 현안, 헬스케어의 미래, 병원 경영, 글쓰기/커뮤니케이션, 의료 인문학 등의 주제로, 병원, 기업, 학회/협회, 학교 등에서 다수의 강연을 했다. 현재 한국의료윤리학회 상임이사, 인권의학연구소 이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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