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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미 “코로나 시대, 아이와 함께 고립된 여성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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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역할을 제대로 하려고 노력할수록 딸의 세계를 좁게 만드는 현실. 이런 모순이 힘들어 자주 답답함을 느꼈다는 최은미 작가. 이 답답함을 소설로 쓰고 싶었지만, 잘 진행되지 않았다는 그는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사회적 맥락을 만난 후 다시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20년 봄, 코로나 팬데믹이 극강으로 치닫던 시기.  『여기 우리 마주』는 격리와 배제가 일상이 된 이때를 통과하는 40대 기혼 여성 ‘나리’와 ‘수미’의 이야기이자 여전히 진행 중인 우리의 현실이다. 

물줄기가 터져나오려는 호스의 입구를 한 손으로 틀어막고 한 여자가 서 있다. 다른 한 손으론 아이의 손을 잡고 있다. 여자는 휘청거린다. 호스에 장전된 것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호스가 튕겨져 나가버릴 테니까. 물줄기가 요동을 치면서 가장 가까운 곳을, 가장 약한 것을, 가장 사랑하는 것을 찌를 테니까. 머리 위에 찬물을 끼얹고 자신의 뺨을 내리치면서라도 이 분노를, 이것을, 정확한 곳으로 겨냥하려고, 제대로 가누려고, 겨누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어느 날은 그냥 호스를 놓쳐버린다. (39쪽)



최은미 작가의  『여기 우리 마주』는 2021년 제66회 현대문학상 수상작이다. 2019년 겨울호부터 2020년 가을호 계간지에 실린 작품을 대상으로 심사가 진행됐다. 수상 소설집에는 수상작 <여기 우리 마주> 외에 김병운 <한밤에 두고 온 것>, 임솔아 <단영>, 천희란 <카밀라 수녀원의 유산> 등 후보작이 실렸다. 



답답함과 절실함이 쓰게 한 소설 

소설과 분위기가 달라서 의외예요. 무겁고 어두운 글을 주로 쓰는데 다정하게 말씀하셔서요. 이런 이야기 들어본 적 있나요? 

종종 들어요. “그렇게 독한 글 안 쓸 것 같다”고요. 

그런 이야기 들으면 어떤가요?

소설하고 똑같다는 말보다는 좋아요. (웃음) 사실 어떤 이야기를 듣던 다 좋은데요. 가끔 지인들과 그런 이야기를 하기는 해요. 현실 자아일 때 표출되지 않는 것들이 글에 더 반영되지 않느냐고요. 누구나 사회적 얼굴이 있잖아요.  

제66회 현대문학상을 받았어요. 수상이 처음은 아니지만, 매번 새로울 것 같은데 소식 듣고 어땠나요?

올여름에  『여기 우리 마주』를 마감하고 나서 이 인물들 이야기를 계속 더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 중에 수상 소식을 듣고는 정말 더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단편소설은 발표하고 책으로 묶여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려서 크고 작은 피드백들이 소중하게 느껴지는데요. 작가에게 상은 큰 호응이기 때문에 글을 쓰는 데 확실히 동력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여자아이를 양육하는 40대 기혼 여성 ‘수미’와 ‘나리’의 이야기예요. 어떻게 시작됐나요?

기혼 여성이 느끼는 고립감에 대해서 다뤄보고 싶은 생각이 계속 있었는데요, 팬데믹이 그 상황을 더 증폭시키는 걸 겪으면서 이 인물들의 시간을 2020년으로 가져오게 됐어요. 저도 초등학생 아이가 있고 일을 하고 있어서  『여기 우리 마주』에 제가 실감하는 현실이 많이 반영됐어요. 아이와의 고립감뿐 아니라 여성들끼리의 고립감에 대해서도 다뤄보고 싶었어요. 분명히 함께 마주 앉아 있는데도 각자 고립돼 있는 것 같은 그 이상한 느낌에 대해서요. 

마주하고 있어도 느껴지는 고립감이라니, 자세히 듣고 싶어요. 

정상가족 규범이 여성과 아이에게 부과하는 틀이 있잖아요. 아이를 매개로 기혼 여성들이 사회적 관계를 맺을 때 그 틀을 벗어나서 자신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아요. 그렇다고 일로 관계를 맺을 때 상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소설에서도 다루고 있지만 실력을 어필해야 할 때 주부로서의 노동을 비가시화하는 건 기혼 여성에겐 익숙한 상황이에요. 그래서 정말로 연대가 필요한 순간, 가장 핵심적인 고난과 고통 앞에선 오히려 고립이 되죠. 그건 가부장제가 바라는 바이기도 해요. 저는 기혼 여성들이 서로 어디까지 맞닿을 수 있는지 소설 속에서 계속 타진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기혼 여성의 현실은 작가님의 현실과 아주 가까운 이야기라 더 쓰기 어려웠을 것 같기도 해요. 

맞아요. 쓰면서도 정말 쓰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다 다음 날엔 다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그렇게 양쪽 마음을 오가면서 썼던 것 같아요. 

2020년 봄에 대한 언급이 많더라고요. 당시의 마음 상태가 소설에 많이 반영된다고요. 『여기 우리 마주』를 쓸 때의 마음은 어땠나요? 

지금도 2020년 봄의 감정들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어요. 5월에 한 일간지 칼럼에서 불과 두 달간의 멈춤이 여성의 성 역할을 50년 이전으로 퇴행시켰다는 글을 본 적이 있어요. 2020년 봄은 거기에 더해 그동안 계속돼온 여성 대상 성착취 범죄가 대대적으로 세상에 드러난 때이기도 하죠. 어느 때보다도 강화된 성 역할 속에서 어느 때보다도 큰 트라우마를 불러오는 성범죄를 마주해야 했던 때였어요. 그런 현실 속에서 공적 공간이 모두 막힌 채로 딸의 양육을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여성이 있다면, 그 딸이 단순한 보호와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확고한 자아를 가지고 청소년기에 접어드는 나이라면. 저한테도 이런 현실이 매일매일의 당면한 문제였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혼란을 붙잡고 썼던 것 같아요. 2020년 봄을 지나면서 공황장애가 오고만 여성들, 삶을 놓은 여성들, 어떻게 버티는지도 모르는 채로 하루를 간신히 넘기고 있는 여성들에 대해 계속 생각해요. 드러난 것보다, 그리고 짐작하는 것보다 2020년이 여성들에게 남긴 외상은 클 거라고 생각하고요. 

코로나 팬데믹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인지 ‘시의성 있는 소설’이라는 말도 있는데요. 진행 중인 상황을 이야기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요?

부담이 많이 있었어요. 쓰면서도 어쩌면 몇 계절 후에야 완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요. 근래에는 소설을 쓰면서 '다른 걸 쓸 수 없는 상태'를 계속 만나는 것 같아요. 지금 나를 압도하고 있는 감정이 너무 커서 이걸 쓰기도 힘들지만 안 쓰기도 힘든 상태요. 어떤 작품이 시의성이 있다고 할 때 사실 작가는 그 작품을 오래전부터 써오고 있었던 경우가 많아요. 품고 있던 문제의식이 비로소 사회적 맥락을 만나 세상과 닿는 거죠. 목소리가 필요한 사람들이 맥락을 얻을 수 있다는 건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딸의 세계를 좁히는 ‘좋은 엄마’라는 모순

소설 속 화자 이름이 ‘나리’인데 이전에 <나리 이야기>라는 단편도 쓰셨더라고요. 나리라는 이름에 의미가 있나 싶었어요. 

<나리 이야기>의 나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건 아니에요. 소설을 쓸 때 인물에 맞는 이름을 찾지 않으면 소설이 진행이 안되는 편인데요. 다른 이름들을 전전하다 '나리'와 '수미'가 되자 소설이 써지기 시작했어요. 저는 나리가 수미의 경직성을 어느 정도 풀어줄 수 있는 인물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평범하면서도 일정정도의 오지랖과 따뜻함과 솔직함을 가진 인물이요. 소설에서 '나리공방'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느낌, 수미가 나리를 부를 때의 느낌이 이름으로 더 잘 전달되기를 바랐어요.  

‘수미’와 ‘나리’의 모델이 있었나요?

특별히 모델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다만 '수미'와 '나리'의 상황을 설정하면서 정식으로 직장에 출퇴근하는 여성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일을 하는 여성들의 상황을 그리고 싶었어요. 수입이 불안정해서 가사와 육아 분담에 직장 여성만큼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고, 시간 운용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서 결국 내 시간을 더 쪼개는 걸로 결론을 내며 일하는 여성들이요. 무엇보다 저는 이 소설 속에서 여성들이 모이는 공간과 나리의 일터가 사회에서 흔히 비생산적이라고 여기는 것을 만드는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게는 나리가 집을 떠나 상가로 나갔다는 설정 또한 무척 중요했는데요. 소설을 다 쓰고 났을 때 저는 이 기본적인 설정이 어쩌면 이 소설이 제게 준 가장 핵심적인 의미라고 생각했어요. 

홈 공방을 운영하던 ‘나리’가 상가 건물로 진출할 때 이에 대한 남편의 미지근한 반응이 인상적이었어요. 이기호 소설가가 ‘선의를 가장한 배제’라고 표현하기도 했죠.

나리의 남편은 나름대로 애도 쓰고 나름대로 가족 걱정도 하지만 기존 질서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만 움직이는 인물이에요. 소설 속에서 나리 남편이 하는 말들은 어떻게 보면 가부장제의 설계를 대변하는 말들이죠. 

그런 식의 배제가 항상 ‘선의’로 이뤄진다는 점이 가장 답답한 지점인 것 같아요. 

기혼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울분의 원인이기도 하고요. 결혼을 하면 남성은 일단 가장이 돼요. 우리 사회에서 가장은 성범죄의 감형 사유도 될 수 있는 지위지만 가장의 배우자는 '주부취미'라는 말 앞에서도 가장 먼저 자기혐오를 만나야 되죠. 우린 사실 다 알고 있잖아요. '주부취미'라는 말 속에 깔려 있는 복잡한 혐오의 냄새에 대해서요.

엄마로서의 답답함도 느껴졌어요. 

사회가 바라는 좋은 엄마 역할을 수행하려다보면 오히려 아이를 자신의 모습으로 설 수 없게 하는 모순적인 상황과 만나게 돼요. 이 가족 체계 안에서는 각자가 애를 쓰지만 누구도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없는 거죠. 정상성의 막을 유지하기 위해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자기 자신을 속이는 상황이 펼쳐져요. 이 집단적인 거짓말이 굉장히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여기 우리 마주』  속 인물들이 느끼는 혼란과 분노는 자신 또한 그 체계 안에서 딸의 세계를 좁게 만드는 방식으로 무언가를 전가하게 된다는 것, 그러고 있지만 더 이상은 그럴 수는 없다는 안간힘 사이에서 오는 부분이 커요. 

‘나리’가 슬래시(/)를 사용해서 할 일을 정리하는 설정이 재밌어요. 반복되는 슬래시가 나리의 마음 상태나 숨 가쁜 일상을 고스란히 전달해 주더라고요.   

사실 저도 슬래시를 많이 쓰거든요. (웃음) '나리'라는 인물을 설정하면서 '슬래시'와 '느낌표'라는 두 개의 키워드를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모든 대화의 끝에 빠짐없이 느낌표를 붙이는 인물이자 머릿속으로 쉼없이 슬래시를 돌리는 인물이요.  『여기 우리 마주』에 쓰진 않았지만 나리가 이런 대사를 하기도 해요. “하루라도 느낌표와 슬래시가 없는 세상에서 쉬고 싶다.” 남편한테 “이제 넌 내 슬래시에도 안 끼워줄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도 있었어요. 그러니까 슬래시는 나리의 안중을 뜻하는 기호일 수도 있는데요. 언젠가는 나리가 슬래시 안에 해야 할 일보다 하고싶은 일을 더 많이 넣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소설에서 ‘나리’와 ‘수미’의 분노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느껴졌어요. 쓰는 사람이 느끼는 긴장은 더 클 것 같은데요. 평소에 쓰기에서 오는 긴장을 어떻게 해소하나요?

잠을 자거나 운전을 해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스트레스나 긴장이 풀리는 편인데요, 운전할 때는 휴대폰을 볼 수도 없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더라도 사진을 찍을 수 없잖아요. 오직 운전만 해야 되기 때문에 머리를 비우기에 좋은 것 같아요.



분노라는 감정을 잘 다뤄보고 싶어요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글’이 있다고요. 가장 최근에 읽은 ‘쓰고 싶게 만드는 글’이 있다면요?

요즘에는 동시대의 한국 작가들 글에서 가장 많은 영감을 받아요. 내 작품 속 인물들이 금방이라도 건너가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소설들을 만날 때가 있는데요, 수상작품집에 함께 실려 있는 임솔아 작가의 <단영>도 그랬어요.  『여기 우리 마주』에서 나리와 수미가 딸들을 사찰로 보내는데 저는 서하와 은채가 떠나온 곳도, 가게된 곳도 <단영>의 세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해요. 어머니를 살해하는 딸의 이야기를 담은 천희란 작가의 <카밀라 수녀원의 유산>도 제 인물들이 언제든 건너갈 수 있는 세계라는 생각이 들고요. 쓰고 싶은 용기와 욕구를 주고받을 수 있는 작품들을 만나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에요.

전혀 다른 장르의 글은 아니네요.

다른 장르의 글에서도 자극을 많이 받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받는 정서적인 자극이 가장 크죠. 좋은 소설을 읽고 났을 때의 충족감만큼 나를 소설 앞으로 다시 끌어오는 건 없으니까요.  

소설가가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나요?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보다 훨씬 제 자신을 모른척하고 살았을 거예요. 적어도 지금은 모른척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글로써 원하는 방향으로 한 발 나아간다는 게 부럽기도 해요. 힘들겠지만요. 

나아갈 때도 있지만, 주저앉는 느낌이 들 때도 많아요. 그런데도 소설을 쓰는 건 그게 나를 풀어내는 장이기 때문인데요. 반대로 완전히 익명으로 숨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그 장이 저와 바깥 세계를 연결해 주니까 그런 면에서는 좋아요. 언어화할 수 있는 지면과 능력이 있다는 건 힘이 되는 자산이라고 생각하고요. 

 어떤 독자를 만날 때 유독 반가운가요?

인물에 잘 이입해 주는 독자가 반갑죠. 이를테면 리뷰에 ‘나 이 인물이 왜 이러는지 알 것 같다’고 하는 독자들이요. 그것만으로도 좋아요. 

소설을 쓰는 동안 일어났던 일들이 다음 소설에 대한 약속이 되어준다고요.  『여기 우리 마주』를 쓰면서 일어난 일들은 어떤 소설에 대한 약속이 되어줄까요?

2020년 봄을 지나면서, 그리고  『여기 우리 마주』 를 쓰고 나서 '분노'라는 감정에 대해 더 제대로 다루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내 안에 너무도 또렷하게 서 있는 이 감정에 소설가로서의 나는 어떤 형식을 줄 수 있는지, 어떤 질문을 할 수 있는지, 더 들여다보고 싶어요. 




*최은미

1978년 강원 인제에서 태어났다. 2008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에 단편소설 「울고 간다」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너무 아름다운 꿈』, 『목련정전(目連正傳)』, 중편소설 『어제는 봄』, 장편소설 『아홉번째 파도』 등이 있다. 2014년, 2015년, 2017년 젊은작가상과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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