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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선 시인 “이렇게 솔직해도 되냐는 물음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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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감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시인 백은선의 산문을 읽는 재미. 솔직하지 않은 글은 쓸 수 없다는 태세를 갖추고 쓴 듯한 이야기. 처음부터 끝까지 시인은 갈팡질팡한 마음을 수시로 드러내며, 무엇도 단언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는 전 남편의 카드 빚을 갚기 위해 (이혼하기 전) 계약한 책이다. 이 사실을 굳이 밝힌 이유는 감춰야 할 이야기도, 못할 말도 아니기 때문이다. 백은선 시인은 스스로를 두고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는 법이 없다”고 말했지만, 적어도 글에서만큼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서 마음을 내보이며 손짓하고 있다. 시인은 이 책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산문집”이라고 했다. 




나를 좀더 드러내도 되는구나

작년에 <주간 문학동네>에서 연재했던 산문들을 묶었어요. 당시 반응이 꽤 특별했던 걸로 기억해요. 

원래 산문집을 먼저 계약했는데 제가 원고를 계속 안 드렸어요. 한 1년 정도 가만히 있었거든요. 아마 저를 그냥 놔두면 원고를 받기 힘들겠다고 생각하셔서 연재를 제안하신 게 아닐까 (웃음) 싶어요. 반응은 글쎄요. <주간 문학동네>는 조회 수를 볼 수도 댓글을 쓸 수 있는 형태도 아니다 보니까 얼마만큼 읽으셨는지 알 수가 없잖아요. 간혹 시차가 거의 없는 리뷰를 보게 되면 많이 신기했죠. 눈치도 약간 보이고요. 

좋은 리뷰가 많았는데 다시는 산문집을 “절대 안 쓸 것”이라고 책에 밝히셨어요.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까? 생각하면서, 말하는데요. (웃음) 이 책의 반응이 엄청 좋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리고 다시는 산문을 쓰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백퍼센트 진심이었어요. 왜냐면 연재하는 동안에 시를 한 편도 못 썼어요. 아무래도 시를 쓸 때는 내 안에 언어가 생겼을 때 천천히 두고 보면서 사유가 성장할 때까지 지켜보고 글을 쓰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산문을 써야 하니까 뭐가 조금이라도 생기면 바로 글로 옮길 수밖에 없는 거예요. 시로 썼으면 좋을 것 같은 이야기들이 휘발되니까, 그게 좀 힘들었어요. 또 시 청탁은 안 오고 산문 청탁만 오는 거예요. 내가 이러다 시를 못 쓰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이 커서 이제 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연재 제목은 ‘우울한 나는 사람이에요’였는데 산문집은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로 바뀌었습니다.

편집부에서 정해주신 제목인데요. 편집자님이 너무 신이 나셔서 “이 제목 너무 좋지 않냐?”고 연락을 주셨어요. (웃음) 처음엔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생각나긴 했는데, 계속 두고 보다보니 마음에 들더라고요. 저는 양보하지 않는 영역을 제외하고서는 대부분 수용하는 편이에요. 

프로필이 실린 책 앞날개에 “파편이 내 삶의 숙명 같아요. 엄마로 시인으로 작가로 가사노동자로 선생으로 살면서 매일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습니다. 그래, 그게 숙명이라면 파편의 대마왕이 되고 말 거야.”라는 글귀가 적혀 있어요. 책의 정체성이 응축된 문장으로 읽혔어요.

이 문장도 편집자님이 뽑아주셨어요. 사실 이 책은 편집자님의 책이죠. (웃음) 



‘이렇게 솔직해도 되나, 이렇게까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었습니다. 서문에는 이런 문장도 나오죠. “이 책을 쓰게 만든 전남편 예정자가 너무나도 싫다.(13쪽)” 

당시 전남편이 카드빚이 많아서 제가 그걸 막아주려고 책을 서너 권 계약했어요. 전남편한테 말했죠. “네 이야기가 책에 들어갈 수 있고 너는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주간 문학동네>에 이 글을 연재할 때, 누가 전남편한테 링크를 보내줬대요. “야, 네 이야기 나온다”고. 그런데 읽고 나서 “재밌게 잘 읽었다”고 연락이 왔었어요. 책을 만들 때 편집자님도 조금 우려하셨는데요. 전남편은 제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알았던 사람 중에 가장 오래 알기도 했고, 친한 사람이기도 하거든요.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래서 특별히 그런 걸로 문제 삼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연재와 단행본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염려는 없었나요?

일단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이 책을 볼까?’라는 생각이 있고요. 제 사생활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히는 동시에 <전국노래자랑> 같은 데서도 말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안녕하세요~ 저는 누구누구입니다”라고요. 

산문을 쓰다 보면 나라는 사람이 정리되기도 하잖아요. 어땠나요?

글이라는 게 아무리 솔직하게 써도 내가 나를 편집하잖아요. 비밀일기장을 쓰는 느낌을 갖고 글을 썼지만, 실제로는 많은 사람이 읽는 글이니까요. 과연 이 글이 받아들여질까? 싶었는데 받아들여주시는 거죠. 그래서 ‘나를 좀더 드러내도 되는구나’ 생각했어요. 저는 시를 쓸 때 레이어를 많이 쌓는 편이거든요. 날것을 보여주는 일에 공포가 있었는데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최고 좋았던 건 내 글 읽고 뭔가 쓰고 싶어져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혹은 글을 쓰게 되었다는 리뷰들이었다.(151쪽)”고요. 왜 그럴까요? 

뭔가 쓰고 싶어지게 만드는 글이 제일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도 좋은 글을 읽으면 자극도 받고 공감하게 되면서, “아 나도 어서 쓰고 싶다” 하는 생각에 설레곤 하거든요. 제 글을 읽는 분들이 좀더 솔직하고 대담하게 자신의 의견을 바깥으로 꺼내도 된다는 생각을 하신 것 같아서 기뻐요. 그런 목소리들이 모이면 큰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생각병 생일병」에서 “이혼 후의 삶이 지금 내 가장 큰 화두.(135쪽)”라고 하셨어요. 이 산문집의 큰 줄기가 되는 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의 범위가 있잖아요. 예를 들면 아이 유치원에서 가족사진을 가져오라고 할 때, 당연히 엄마 아빠 아이의 구성이 있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조건들. 제가 작가이다 보니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겪고 극복하는지를 책에서 얻고 싶은데, 그런 텍스트가 별로 없어요. 흠처럼 여기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내가 이런 이야기를 크게 외치면 어떨까 생각한 거예요. 저도 이혼하면 하늘이 무너질 줄 알았는데, 막상 살아보니 또 잘 살아져요. 즐겁게요.



그렇지 않은 자신도 옳다

7살 아이의 엄마로서의 일상도 곳곳에 등장합니다. “만약 과거로 갈 수 있다면 아이를 또 낳았을까?”라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대답하셨어요. 

처음부터 아이를 가진 적이 없었다면 쭉 아이가 없이 살겠다고 했겠지만 한번 만났기 때문에 ‘돌아가면 안 만날 거야’라는 선택은 못할 거 같아요. 아이가 너무 보고 싶을 것 같아요. 아이와 저 사이에서만 가능한 사랑, 어떤 절대적인 사랑을 제가 경험했기 때문이에요. 

‘확언하는 사람’을 싫어한다고 하셨어요. 좋아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확언하지 않는 사람이요.(웃음)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 솔직하고 이면이 없는 사람이 좋아요. 의미를 감추고 있는 말들에 시달리다보면 쉽게 피로해지니까 정직하게 직진하는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들과 있을 때에 가장 행복하고 나답게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유연하면서도 자신만의 세계를 견고하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이요. 어쩐지 제가 되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스스로에게 자유롭고 싶은 사람이 이 산문집을 읽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시인님이 기대하는 독자도 혹시 있을까요?

조금 모호하지만, 인생에서 어두운 구간을 통과하고 있거나 통과했던 분들이 읽으면 어떨까 싶어요. 작지만 다정한 독서 공동체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저는 낯을 많이 가려서 사람들에게 먼저 잘 다가가지 못해요. 예전에 상담을 받을 때 선생님이 다가가는 연습을 해보라고 하셔서 시도해봤지만 여전히 어려워요. 일단 전화번호를 알아도 연락을 먼저 못해요. 친구가 “나 오늘 점심 뭐 먹었는데 맛있었어.”라고 하면, “진짜 맛있었겠다”라는 메아리 수준의 답을 해요. (웃음) 저처럼 다른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마음 안에 말을 쌓아두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산문집의 경험이, 백은선의 시 세계를 조금 다르게 확장시킬까요?

저는 아직 제 세계의 지도를 완성하지 못한 사람이에요. 어떤 경험이든 겪고 나면 그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게 되어버리니까, 그런 면에서 산문집 이전과 이후가 뚜렷하게 대비되지는 않지만 분명 달라지는 지점이 생길 거라고 예감하고 있어요. 

학생들을 가르치시죠? 시 창작 수업 때, 가장 자주 하는 말들이 있나요?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언어로 적확하게 포획하는 법에 대해 고민해보자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무엇을 가르친다는 생각보다 조금 더 멀리까지 가본 사람으로서 좋은 안내자가 되자고 스스로에게 자주 이야기 하는 것 같아요.

나의 우울을 감추고만 있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계속해서 감추고 있어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어요. 언제까지나요. 스스로 드러내고 싶다고 생각이 들 때 드러내면 되고, 그렇지 않다면 그렇지 않은 자신도 옳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요.



시집도 곧 나온다고요. 

제목은 『도움받는 기분』이에요. 첫 시집 『가능세계』이후에 쓴 시들을 묶었으니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쓴 시들이지요. 첫 시집 이후 자유롭게 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요. 최대한 스스로에게 두었던 금기를 깨며 나아가는 방식으로 쓰인 시들이 아닐까 싶어요. 아무래도 제 특성상 좀 어두운 내용이 많은 편인 것 같고요.(웃음) 여성으로 살고 견디며 계속해서 살아가야 하는 일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인생이라는 것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삶과 자신 사이의 지속적인 어긋남, 그 미세한 틈을 끝없이 노려보는 자세를 잃지 않아야지 자주 다짐했어요. 




*백은선

2012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시집 『가능세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들로 만들어진 필름』이 있다. 2017년 김준성문학상을 수상했다. 아무것도 확신하지 않고 끝없이 질문을 던지고 싶다. 나 자신의 바깥으로 가고 싶다고 늘 소망하면서도 나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슬퍼지곤 한다. 도저히 아직은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모든 일에 격렬한 동시에 의연해지고 싶다.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
백은선 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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