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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짓는 사람] 정소영 창비 편집자 “잘 넣고 샥 비벼주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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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세계가 궁금했다

편집자로 일한 지 올해로 15년, ‘창비’에서만 15년이다. 정소영 창비 편집자는 지금까지 한 번도 퇴사나 이직을 생각해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얼마 전 집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입사지원서에는 “이사를 아무리 많이 다녀도 늘 갖고 다니게 되는 책을 만들겠다”고 써있었다. 아마도 이 야심찬 포부가 15년간 실현됐기 때문이 아닐까. 청소년소설 『아몬드』『스노볼』 등을 편집하고 지금은 청소년출판부에서 청소년문학, 청소년교양팀을 이끌고 있는 정소영 편집자는 책의 세계가 궁금했던 대학 4년차에 출판사에 입사했다.

“인문학부로 입학해서 이후 전공은 철학을 골랐어요. 학부 때 배운 특정한 방법론이 유용했다기보다는, 다양한 책을 편집해야 할 때 여러 분야의 책을 읽었던 게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졸업을 앞두고 책 만드는 일이 뭔지 궁금한 마음에 한번쯤 그 세계에 들어가보고 싶다고 생각해서 입사지원서를 냈어요. 입사 후에 반차를 쓰면서 졸업했고요. 그렇게 15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네요.”

파주출판단지로 첫 출근을 한 날, “얼마나 더 이 통근버스를 타겠어?” 생각했는데 인생에서 가장 오래 속한 조직이 ‘출판사’가 됐다. 문학팀으로 입사해 3년간 편집 일을 배웠고 이후 3년간 『창작과 비평』을 만들었다. 문학팀에서 처음으로 만든 책은 시인 김승희의 시집이었다. 형식 면에서 많은 것이 정해져 있는 시집을 제외하면, 그다음 책은 소설가 권여선의 소설집 『분홍 리본의 시절』이다.

“권여선 작가님을 처음 만났을 때가 아직도 또렷하게 생각나요. 작가님의 분위기나 에너지가 정말 신기하고 좋았던 기억이 나요. 가족에게 상처받은 20대로서 교정보면서 위로도 받았고요. 설레면서 만들긴 했는데 너무 잘 몰랐던 때라서,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만든다면 더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청소년출판부에서 책을 만들기 시작한 건 2011년. 막연하게 어떤 텍스트를 쉽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청소년출판부 소속으로 처음 만든 책은 제4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내 이름의 망고』. 이후 이후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들을 쭉 편집했다. 

“가장 최근에 후배들과 함께 만든 책은 『두 번째 엔딩』이라는 소설집이에요. 그동안 각별하게 사랑받은 『우아한 거짓말』『아몬드』『페인트』 같은 책들의 스핀오프, 외전을 청탁해서 받아 본 경우였어요. 작가님들이 독자와의 만남 같은 행사를 가면 ‘그래서 그 주인공은 어떻게 됐나?’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으신대요. 이미 발표한 작품이기 때문에 완결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거절하더라도 여쭤보자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흔쾌하게 수락하셨고요. 이 책은 창비청소년문학 시리즈의 100권째 책이에요. 제가 이 시리즈의 1권이 출간될 때부터 이 회사에 있었으니까, 이런 경험을 하는 편집자는 드물 거예요.”

올해 초 100쇄를 찍은 손원평의 『아몬드』는 정소영 편집자가 만든 책 중에 가장 많이 사랑 받은 책이다. 판권이 계약된 나라만 16개국. 요즘도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전세계의 독자 리뷰와 인증들을 번역기를 돌려가면서 보고 있다.

『아몬드』가 2017년 3월에 출간됐으니까 벌써 4년이 지났네요. 이 소설이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데 앞서 성공한 작품도 있었지만 가능성을 크게 본 작품이었어요. 물론 이렇게까지 성공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지만요. 문학상은 공모를 통해서 신인 작가를 발굴하는 일이 목표라서 더 큰 의미가 생기는 것 같아요. 발견의 기쁨이 큰 작업이라고 할까요?”

정소영 편집자는 청소년출판부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청소년기란 무엇인지’에 대해 잘 감각하고 있는 저자들에 주목하고 있다. 미숙함, 정체성에 대한 고민, 성장 등에 관한 답을 주는 작가들을 만날 때, 각별하게 반갑다. “10대 시절의 나에게 위로를 건네는 마음으로 책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최애’에 대한 사랑을 많이 드러내주세요

편집자들은 대개 MBTI 유형 ‘INFP’라는 이야기가 있다. 열정적인 중재자. 정소영 편집자는 스스로를 ‘금사빠’라고 말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동시에 쑥스러움도 감추지 못하는 사람.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하는 인간이면서 또 임기응변형이라고. 

“기자 같은 직업은 어떤 사람을 만나도 거리를 둬야 하잖아요. 의심을 갖고 상대를 대해야 하기도 하고요. 반면 편집자는 저자와 함께 책을 만들어가는 사람이라서 저자에게 애정을 표현해도 되죠. 물론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선에서요. 작가의 시선과 동일하진 않더라도 책의 전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편집의 매력인 것 같아요.”

편집을 하면서 가장 좋아하는 과정은 텍스트를 이미지로 구현해볼 때다. 표지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잡으며 미지의 독자들을 상상할 때, 여전히 설렌다. 

“진짜 재밌어서 몰입되는 경험을 줄 수 있는 책을 더 많이 만들고 싶어요. 청소년기에 책이 재밌다는 걸 알게 되어야 더 두껍고 난해한 책도 읽을 수 있는 성인 독자가 될 수 있거든요. 이번에 펴낸 『두 번째 엔딩』 독자 리뷰 중에서 ‘책 속 인물들이 다들 잘 자라주어서 고맙다고, 이제 저만 잘 크면 되겠네요’라고 말씀하신 분이 있었어요. 이 책은 그런 말씀을 해 주실 것 같은 독자에게 선물하려고 만든 건데 너무 고마웠어요. 앞으로도 ‘최애’에 대한 사랑과 애정을 많이 드러내 주시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에요.”

정소영 편집자는 2018년에 에세이 『곰돌이가 괜찮다고 그랬어』를 썼다. <한겨레>에 연재했던 칼럼을 묶었는데 스스로가 쓴 책을 알리고 브랜딩 하는 일이 얼마나 쑥스러운 일인지를 몸소 체험했다. 출간 이후 인터뷰라든지 SNS에 출간 소식을 알려주는 저자들에게 더 많이 고마워 하게 되었다고. 

“함께 일한 저자들에게는 늘 믿고 일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실 작가들은 글로 이야기하고 싶어하고, 앞에 나서는 건 쑥스러워하시는 분들이 더 많거든요. 그래서 책을 알리기 위한 다양한 종류의 일들에 선뜻 응해 주시는 작가님들께는 특별히 고마운 마음이 더 드는 게 사실이에요. 저도 책을 냈을 때 많이 망설였거든요. 그런데 유명한 작가들도 그 쑥스러움을 감수하고 책을 홍보하는데, 내가 뭐라고 못하나 싶은 거예요. (웃음) 그래서 나름 열심히 했죠. 그리고 첫 책을 내는 작가님들은 일단 이 순간을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첫 책은 신인상 같은 거니까요. 그 뒤에는, 너무 힘을 주지 말고 다음 책 다음 책으로 한발 한발 나아가시면 된다고 응원해 드리고 싶어요.”



편집자와 저자는 ‘협업하는 관계’

정소영 편집자는 지난해부터는 책임편집 일을 내려놓고 부서장으로서 후배 편집자들을 이끌고 있다. “그간 중간관리자로서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는 역할을 했는데 이제는 ‘아이스’가 되어야 한다”며 웃었다. 요즘 많이 하는 고민은 ‘취향에 갇히지 않는 일’. 주력하는 타깃 독자가 있더라도 빈 독자를 늘 염두에 둔다. 엣지 있게 표현해주지 않아서 놓치는 독자층이 없도록, 틈새를 보려고 노력한다. 후배들에게 자주 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결정 권한을 알아서 넘기지 말자’는 것. 편집자와 저자는 협업을 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각자의 의견을 듣다 보면 다 이해가 가요. 미묘한 문제일 수도 있는데, 본문의 텍스트를 완전히 바꾸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1차적으로 편집권은 편집자에게 있거든요. 꼭 수정해야 할 문장이 있을 때는 저자께 공유를 해드리되‘물어보지는 말라’고 이야기해요. 투명하게 일을 하면 되는 거라서요. 편집자가 일부러 자세를 낮추기 시작하면 더 낮아지고, 당연하게 낮아지거든요. 신입이든 경력이든 ‘협업자’라는 인식이 중요한 것 같아요.”

편집자가 꼭 갖춰야 할 덕목은 ‘균형 감각’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적인 올바름, 안목과 취향 같은 것은 점점 더 벼려지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객관화가 필수적이다. 정소영 편집자가 생각하는 좋은 편집자상은 “글과 그림을, 기획과 작가를, 제목과 카피를, 소개할 매체와 추천하는 사람을, 잘 넣고 샥 비벼 주는 존재”다.

“의외의 조합으로 만들 수도 있겠고 익숙한 맛일 수도 있겠죠. 요즘은 스스로를 잘 브랜딩 하는 편집자들이 많잖아요.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분들을 보면서 편집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게 되는 독자들도 많고요. 편집자 지망생이 있다면 새로운 콘텐츠를 많이 경험하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넷플릭스>도 많이 보고 전시회도 다니고. 영화 포스터나 앨범 커버, 그런 모든 것에 감각을 열어놓는 게 중요해요. 책은 물론이고요. 편집자는 늘 새로운 걸 다루니까요.”


정소영 편집자가 만든 책

『아몬드』 (손원평 지음 / 창비)



2017년 3월 일기에 이렇게 썼다. "멋진 장편소설을 한 권 편집해서 내놓았다. 제목은 『아몬드』. 모든 책에 애정을 쏟게 되지만, 이 책은 좀 더 그랬다. 다들 이 멋과 힘을 느껴줬으면." 그 이후 정말로 많은 독자들이 이 멋과 힘을 느껴 주셨다.

 


『청기와주유소 씨름 기담』 (정세랑 지음 / 창비)



하나의 단편소설로 한 권의 작은 책을 만들어 그림과 함께 제안하는 시리즈. 소설과 별로 안 친한 사람들에게 책을 권할 때, 나는 이 책부터 집어든다. 

 


『스노볼』 (박소영 지음 / 창비) 



‘영어덜트장르문학상’에 응모된 이 작품을 처음 읽다가, 새벽에 "대체 뭐야, 이 소설은!"하고 소리 질렀다. 그다음 날부터 팀 동료들에게 물어보고 다녔다. "그거 읽어봤어?"진짜 재미있기 때문이다. 후속권도 곧 나올 예정이다.


 

『모두 깜언』 (김중미 지음 / 창비)



글과 삶이 일치되는 작가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이 작가의 편집자로 일한 것이 내 삶에서도 커다란 배움이 될 것임을 알았다. ‘깜언’은 베트남어로 고맙습니다라는 말. 곁에 있는 모두에게 감사를 전하게 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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