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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조율사 조영권 “경양식집의 매력은 가성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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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 동안 피아노 조율사로 일해온 조영권에게 지역 출장은 “무척 고마운 일”이다. 어떤 곳에서 출장 연락이 와도 좋다. 일정이 잡히면 일을 마치고, 그곳에 있는 오래된 경양식집을 찾는다. 그렇게 지낸 것이 어느덧 30년 세월. 조영권은 “배달문화와 더불어 사라져가는 경양식집 이야기를 책에 담아봐야겠다” 는 생각을 했고 전국 28곳의 경양식집을 묶어 『경양식집에서』를 출간했다. 

『경양식집에서』는 『중국집』에 이은 조영권 저자의 두 번째 책이다. 『중국집』과 마찬가지로 이윤희 만화가의 만화가 곳곳에 빼어난 샐러드처럼 놓여 있고, 십수 년 경양식집을 운영해온 주인장들의 인터뷰가 진한 소스처럼 올려져 있다. 경양식집의 가장 좋은 점을 “만 원 한 장이면 코스로 먹을 수 있는 곳”이라는 조영권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경양식집에서』의 가장 좋은 점은 ‘책 한 권이면 전국의 특별한 경양식집을 탐방할 수 있는 것’일 것이다. 



제일 처음 보는 건 외관

작가님에게 경영식집 탐방은 여행을 즐기는 특별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역에서 출장 제안이 오는 게 “무척 고마운 일”(184쪽)이라고도 하시는데요. 

누가 그런 말 해요. 아무리 제안이 온다고 해도, 피아노 조율 한 대 하려고 먼 곳까지 가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고요. 그런데 저는 일정이 없는 날에는 일부러도 찾아 나서거든요. 출장으로 가면 일해서 돈도 벌고, 번 돈으로 음식도 사 먹을 수 있으니 고맙게 가요. 당연히 거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빨리 가야죠.(웃음) 

자주 가기 어려운 지역으로 출장을 가면 하루에 식당을 여러 군데 가시기도 하더라고요?

업무 중에는 아니고요. 여행으로 갔을 때 그럴 수가 있어요. 예를 들어 이틀 정도 일정이 없으면 집에 있기도, 친구 만나서 밥 먹기도 무료하니까 여행 가야겠다, 싶을 때가 있거든요. 이때 강릉에 간다고 해봐요. 가고 싶은 데가 여러 군데 있잖아요. 예전에 갔던 데도 있고, 궁금한 데도 있고요. 어차피 가는 거 가능하면 여러 곳을 경험하고 싶어서 저는 네 끼를 계획하고 가요. 대신에 다 먹지는 못하죠. 식사 간 시간 차이가 별로 없을 때도 있고요. 그러니까 식당에 일단 가면 양해를 구하고요. 음식을 적게 달라고 하거나 그냥 절반 정도만 먹어요. 그렇게 조절하는 거예요. 식탐이 많은 걸까요.(웃음) 

주로 혼자서 많이 가니까 손님이 많지 않을 때는 사장님과 본격적인 대화도 나누세요. 

어차피 그 식당을 찾아갔으니까 정보를 많이 얻고 싶잖아요. 일단 가면 정보를 많이 캐려고 하죠. 당연히 손님이 많고, 바쁘면 안 되지만 사장님이 옆에 그냥 왔다 갔다 하시면 그때부터는 말을 걸어요. 식당이 몇 년 됐는지, 요즘 장사는 어떤지, 왜 시작했는지, 이런 걸 캐물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얘기가 되는 경우가 있죠. 

『경양식집에서』에 소개된 경양식집 사장님 가운데 책에 소개된 것을 아는 분도 계신가요? 

아마 대부분 모르실 것 같은데요. 책을 쓰기 전에 다녀온 곳도 있고, 책을 위해서 갔어도 특별히 말씀을 드리지 않은 곳도 있으니까요. 직접 인터뷰를 했던 곳은 당연히 아시고요. 책도 보내드렸어요. 

인터뷰 한 곳이 세 곳 있죠. ‘라임하우스’와 ‘라르고’, ‘그릴데미그라스’인데요. 인터뷰는 어떻게 기획하시게 된 건가요? 

출판사 대표님이 제안을 주셨어요. 식당의 더 깊은 내용을 정확하게 알 필요도 있다고, 인터뷰를 진행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하시더라고요. 저도 공감했어요. 리얼 스토리를 제가 정확하게 아는 건 아니니까요. 그런 부분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고요. 섭외를 위해서 출판사 대표님이 애를 많이 쓰셨어요. 인터뷰를 거절한 경우가 많거든요. 일단은 식당 쪽에서 수락한 곳만 진행을 했어요. 사전에 양해를 구하고요. 덕분에 현장감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경양식집에 가면 꼭 하는 루틴이 있는지 궁금했어요. 가보고 싶었던 곳에 갔을 때 제일 먼저 체크하는 건 뭔가요? 

대부분은 가본 곳이라 해당 안 되는 이야기인데요. 처음 가는 곳은 정보가 별로 없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제일 처음 보는 건 외관이에요. 외부를 살피면서 이 식당이 여기서 얼마나 오래 했는지 상상해봐요. 만약 한 장소에서 오랫동안 영업을 한 곳이라면 최소한 지역 주민들한테는 맛 평가가 끝났다는 의미잖아요. 그렇게 첫인상을 살피죠. 그 다음 내부 분위기도 많이 살피는데요. 가구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인테리어가 어떤 스타일인지, 처음 가는 곳은 아무래도 분위기를 많이 살피는 것 같아요. 

역시 경양식집은 음식만큼이나 분위기죠. 

맞아요, 저도 분위기를 살피고요. 또 요리하시는 분을 가능한 보려고 노력해요. 경양식집은 대부분 연세가 많은 남자 분이 요리하는 경우가 많긴 해요. 서양 음식의 경우 주로 남자가 요리를 많이 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돈가스도 한국 음식이다

조율사로 오래 일하셨잖아요. 식당의 배경음악에도 신경을 쓰는 편이세요? 

다른 식당과는 다르게 경양식집은 음악을 많이 틀어줘요. 주로 올드팝을 많이 틀고요. 주인장들의 성향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요. 30대 요리사가 70년대 올드팝 좋아하지는 않겠죠.(웃음) 아까 말씀드린 대로 대부분의 요리사가 연세 많은 분들이 많아서 올드팝을 많이 트는 것 같은데요. 왠지 그런 음악이 경양식과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작가님은 경양식집이 좋아서 부러 찾아 다니고 계신데요. 지금은 워낙 맛집도 많고, 메뉴도 다양해서 경양식집을 찾아간다는 생각을 잘 안 하는 것 같거든요. 계속해서 찾아가게 되는 경양식집만의 매력은 뭔가요? 

가성비가 좋죠. 만 원 한 장이면 코스로 먹을 수가 있잖아요. 스프가 나오고, 샐러드 한 접시가 딱 나오고요. 그걸 먹고 있으면 커다란 접시에 돈가스나 함박 스테이크 같은 게 나오는데 옆에는 또 다양한 가니쉬가 곁들여서 나와요. 얼마나 좋나요. 나중에 커피나 음료수, 아이스크림 같은 후식까지 나오잖아요. 요즘 만 원 주고 그렇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몇 안 돼요. 오늘 인터뷰 오기 전에 출판사 대표님과 점심을 먹었는데요. 그냥 반찬 몇 개, 고기 몇 개 해서 거의 2만원씩 받더라고요. 그런 거 생각하면 경양식집이 정말 좋아요. 경양식집에서 외식하곤 했던 어렸을 때의 추억도 있지만, 간혹 시간 여유가 생기면 저는 경양식집 가서 혼자 밥 먹을 때가 많아요.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소주를 시키는 모습이었습니다.(웃음) 

소주는 우리나라 술이고, 경양식은 일본을 거쳐 온 서양 음식이라 둘의 조합이 어색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경양식은 이제 한국 음식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슈니첼이라는 독일 음식과도 다르고 일본의 돈카츠와도 다르죠. 돈카츠가 한국에 들어올 때 한국이 좀 어려웠잖아요. 고기가 커 보여야 하니까 고기를 얇게 두드렸죠. 그러면 200g, 150g 정도의 고기만 갖고도 접시 하나만큼 크게 만들 수 있었어요. 그렇게 한식으로 바뀌면서 반찬으로 깍두기도 주고, 밥도 주는 형태가 됐는데요. 그러니까 소주를 안 팔 이유가 없어요. 사실 경양식집 대부분은 소주를 다 팝니다. 당연히 근무하기 전에 마실 수 있는 건 아니고요. 업무가 다 끝났을 경우에는 식사를 하면서 마시는 거예요. 물론 운전을 안 할 경우를 말씀드리는 거고요. 그럴 때 반주로 소주만큼 좋은 게 없어요. 

짜장면을 한국 음식으로 봐야 하는 것처럼 돈가스 역시 한국 음식으로 봐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셨죠. 

중국에 출장 가보면 중국에는 짜장면이 없어요. 그런데요. 한국과 똑같은 짜장면을 먹을 수 있는 데가 있어요. 바로 한국 식당입니다. 한국식 식당에 가면 짜장면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짜장면은 중국에서 비롯되었을 수는 있지만 중국 음식은 아니라는 거예요. 돈가스도 마찬가지로 한국 음식이고요. 

관련해서는 이렇게 한국 음식으로 개량되는 음식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말씀도 해요.  

짜장면이 한국 음식으로 바뀔 거라고 아무 생각 안 했을 거예요. 당연히 경양식도 그렇고요. 저 어렸을 때는 경양식은 서양 음식으로 인식이 됐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다 한국 음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앞으로도 새로운 것이 개량될 가능성이 있어요. 파스타도 바뀔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요즘에 뚝배기 파스타도 많잖아요.(웃음) 

음식 문화의 매력적인 부분이 바로 그런 점 같아요. 한편 노포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곳곳에 묻어 있어요. 특히 경양식 같은 경우 후계자가 없어서 단절될 우려가 있는 곳들이 많더라고요. 

지금 경양식 하시는 요리사 분들 대부분 호텔 양식당 출신들이 많아요. 예전에는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는데 ‘88올림픽’ 이후 개방이 되고, 해외 관광객도 많이 오면서 호텔에 가야만 먹을 수 있었던 서양 음식이 동네로 퍼진 건데요. 그러면서 호텔에서 요리하셨던 분들도 호텔을 나와 직접 식당을 운영했고, 경양식이 활성화된 시기가 있었죠. 그러다 하향세를 보인 건 냉장고 보급과 관련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전에는 며칠씩 먹을 음식을 하는 게 아니라 아침마다 장을 봐와서 찬장에 넣었다가 하루에 다 소진하는 식이었단 말이에요. 냉장고가 보급되고, 냉동식품이 발달하면서 경양식집을 점점 안 가게 된 것 같아요. 물론 질은 다르지만 식품회사에서 만든 냉동돈가스가 분식집에서 1,500원~2,000원 하는데 경양식집을 가서 더 비싼 돈을 주고는 안 사 먹으니까요. 더구나 지금은 물론 후계 문제도 있고요. 이제는 외식 문화가 다양해지니까 그런 면에서 입지 조건이 너무 좁아진 것 같아요.  



차림표 맨 위에 적힌 메뉴를

‘이것만 봐도 여기는 맛있는 집이구나’ 하고 느낌이 오는 것이 있으세요? 

아주 놀라운 스프 맛을 내는 집들이 있어요. 사실 스프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들고,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지 몰라요. 그런 것을 보면, 스프를 그렇게 만드는데 생선가스를 외부에서 받아 하겠냐는 생각을 하게 되죠. 당연히 메인 음식은 직접 다 생선을 손질해서 만들 테고요. 더구나 인천 같은 경우 아직도 레스토랑에서 “밥 드릴까요, 빵 드릴까요”라고 묻는 곳들이 많이 남아 있어요. 빵을 직접 만든다는 의미거든요. 그럼 음식도 기대가 돼요. 경양식집 운영이 워낙 할 것이 많거든요. 그런데도 10년 넘는 시간 동안 매일 정성껏 직접 만들었다는 게 감동적이죠. 하지만 일일이 만들어 쓰기가 쉽지는 않아요. 나름대로 사정도 있죠. 장사가 안 돼서 직원도 없이 운영을 하는데 사장님 부부 둘이 하려면 스프 같은 것은 일일이 못 만들거든요. 그런 부분도 이해해야 해요. 시제품 스프를 쓴다고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우연히 발견한, 처음 본 경양식집에 가면 주로 어떤 메뉴를 시키세요? 역시 돈가스인가요? 

누구나 그러실 것 같은데요. 중국집을 가면 보통은 차림표 가장 위에 짜장면이 먼저 적혀 있잖아요. 그런데 간혹 우동을 맨 위에 적어 둔 집들이 있어요. 그러면 꼭 우동을 시킵니다. 경양식집도 대부분 돈가스가 제일 위에 쓰여 있잖아요. 그런데 보면 비후가스가 먼저 써 있는 곳이 있어요. 그러면 ‘오호’(웃음) 하고 비후가스를 주문하죠. 보면 예상이 틀리지 않고 항상 맛있어요. 그런 게 없다면 옆 테이블에서 뭐 드시는지 보기도 하고요. 

책에 소개한 곳이 28곳인데요. 이 가운데 너무 알려지지는 않았으면 했던 곳도 있는지 궁금해요. 

일단은 수원 ‘케냐’, 부산 ‘가미’ 두 군데가 떠오르네요. 가미는 사실 커피 맛 때문이에요. 사장님이 핸드 드립 커피의 숨은 고수예요.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이미 지역 주민들한테는 커피 맛으로 잘 알려진 분이더라고요. 제가 잠시 머물러 있는 동안에도 커피콩을 사러 오는 손님들이 여럿 있었어요. 다 직접 로스팅한 거고요. 그런데 혹시 너무 많이 알려져서 커피 맛이 변하거나 조금 다른 방향으로 가실까 걱정이 돼요. 커피라는 게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양이 있으니까요. 또 케냐는 제가 30년 가까이 다녀본 경양식집 중 가장 친절한 곳이었어요. 실례되는 질문일 수도 있는데 너무 궁금해서 생선가스 직접 만드는지 여쭤봤거든요. 그런데 정말 친절하게 직접 만든다고 설명해주셨어요. 거긴 분위기도 정말 좋아요. 올드팝이 은은하게 나오고, 아프리카 나무 인형이 전시되어 있고, 한쪽 통창에는 수원 시내도 쫙 보이거든요. 그곳도 유명해져서 친절함이나 분위기가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죠. 

『경양식집에서』의 또 다른 특별한 점은 이윤희 만화가님의 만화잖아요. 작가님의 캐릭터가 재미있는데요. 작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너무 똑같죠.(웃음) 정말 깜짝 놀랐어요. 이윤희 만화가가 얼마나 디테일한지 몰라요. 사실 저랑 직접 만난 적은 열 번도 안 되거든요. 『중국집』 때와 지금 제 헤어스타일이 좀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머리에 뭘 바르고 다녔는데 지금은 안 바르고 다니는데요. 그걸 이윤희 만화가가 포착해서 책에 묘사를 했더라고요.(웃음) 그 변화를 보고는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정말 대단한 분이구나, 생각했어요. 책에서 만화 부분이 중요한데 『중국집』때와 다른 만화가를 섭외하면 작업이 어려웠을 것 같아요. 새로 대화도 많이 나누어야 하고, 작업 방식도 맞춰야 하니까요. 다행히 이윤희 만화가가 이번에도 작업을 해주었어요. 

중국집과 경양식집을 사랑으로 탐방하는 작가님의 이야기가 영화화된다는 소식도 있던데요?

원래는 그랬는데요. 아무래도 요즘은 관객이 적다 보니까 제게 제안을 했던 영화사에서 드라마로 만들면 어떨까 하더라고요. 일단은 계약을 했고요. 아마 스토리는 피아노 조율사가 전국에 출장을 다니면서 맛있는 집을 찾는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언젠가 또 써보고 싶으신 주제가 있으신가요? 

『중국집』책을 쓴 다음에 경양식집에 대해서 써야겠다,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다음 책도 아직은 모르겠어요. 다행히 『경양식집에서』가 반응이 좋아서요. 만약 이번 책을 정말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고 다음 책을 기다리시는 분들이 많아지면 어떤 주제일지는 몰라도 혹시 ‘써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어쨌든 너무 무리하게 책 작업을 생각하고 싶진 않아요.




*조영권

28년 차 피아노 조율사. 조율 의뢰가 오면 어디든 달려간다. 조율을 마친 뒤, 그 동네 경양식집과 중국집을 찾아 식사하는 소박한 취미. 그 작은 즐거움 또한 28년이 됐다. 쓴 책으로는 『중국집』이 있다.



경양식집에서
경양식집에서
조영권 저 | 이윤희 그림
린틴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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