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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한기 “울고 있는 인간이 억지로 만세하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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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한기 소설가가 네 번째 장편 『인간만세』로 돌아왔다. ‘오한기 소설’인 만큼 현실과 허구의 경계는 흐릿하다. 답십리 도서관에 상주 작가로 머물렀던 경험을 토대로 썼지만 이야기는 모두 허구다. 그럼에도 중간 중간 작가의 실제 경험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오한기 소설’인 까닭이다. 주인공 ‘나’는 답십리 도서관에 상주 작가로 있으면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청탁을 받는다. 소설을 구상하며 도서관에서 있었던 일화들을 떠올리던 중 강연용 마이크를 분실하게 되고, 계속 ‘똥!’이라는 외침을 듣게 된다. 이야기는 결말만을 향해 내달리지 않는다. 마치 공을 튀기듯 사건은 이곳저곳으로 종잡을 수 없이 이어지는데, 마지막 장을 덮을 즈음 치밀하게 짜여진 구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소설가 오한기는 ‘가장 실험적인 시도를 보여주는’, ‘기존 소설의 관습과 문법을 비트는’ 작가로 손꼽혀왔다. 그의 소설에는 색다른 재미, 새로운 즐거움이 있다는 뜻이다. 『인간만세』도 그러하다. 

소설가 오한기는 ‘2012년 현대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소설집 『의인법』과 장편소설 『홍학이 된 사나이』『나는 자급자족한다』『가정법』 등이 있다. ‘2016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소설을 쓸 때 욕심이 없어졌어요

답십리 도서관에는 언제 계셨던 거예요?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실제로 『나는 자급자족한다』를 쓰실 때였어요?

네, 거기에서 『나는 자급자족한다』를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썼어요. 2017년부터 2018년까지였던 것 같아요. 

이번 소설은 언제 집필하신 거예요?

작년 초부터 써서 12월에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어요. 1년 동안 매진한 건 아니고 다른 거랑 병행하면서 썼어요. 

동시에 여러 작품을 쓰세요?

네. 동시에 많이 쓰는 편이에요. 

『인간만세』의 도입부를 많이 고민하셨을 것 같아요.

맞아요. (출판사에) 소설은 드려야 되는데 잘 안 써져서 고민했었어요. 『인간만세』의 처음에 나오는 「상담」이 박완서 추모 앤솔로지 『멜랑콜리 해피엔딩』에 발표했던 소설인데, 예상과 달리 재밌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주위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고 ‘어? 진짜 재밌나?’ 하고 읽어보고 ‘여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소설이 조금 풀렸던 것 같아요. 

결말은 정해놓고 쓰셨어요?

보통 안 정해놓고 쓰죠. 저는 중후반부 쓸 때쯤 정해지는 것 같아요. 그때 결말이 떠오르면 결말부터 쓰고 가운데를 메우는데, 이번 소설도 그랬어요.

쓰시는 동안 결말이 바뀌겠네요?

그렇죠. 특히 이번 소설은 뭔가 촘촘하게 계획해놓고 쓴 소설은 아니다 보니까 가볍게 썼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주인공 ‘나’의 에세이처럼 보이기도 해요.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죠. 

쓰실 때는 어떤 느낌이셨어요?

다른 사람들이 제 소설을 읽었을 때는 (등장인물이) 저라고 상상되는 부분이 많을 거예요. 그런데, 뭐라고 할까요, 이제는 소설을 쓸 때 욕심 같은 게 약간 없어졌어요. 소설을 통해서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게 없어져서... 예전에 데뷔하고 나서 처음 인터뷰하고 그랬을 때는 소설을 써서 이 세상에 균열을 내겠다고 이야기한 적도 있는데(웃음),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싶기도 하고(웃음), 그런 느낌은 사라진 것 같아요. 시도는 해봤는데 제 소설이 그런 것 같지도 않고요. 이거는 자학하는 게 아니고, 생각 자체가 ‘조금 편하게 쓰자’고 바뀐 것 같아요. 내가 편하게 쓰자. 

부담감을 떨친다는 의미인가요?

그건 아니고요. 항상 독자를 상정해서 쓰잖아요. 저는 그런 게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아요. 요새는 거의 읽는 사람을 상상하지 않고 쓰고 있어요. 예전에는 무조건 읽는 사람을 상정하고 ‘사람들이 내 소설을 읽을 때 메시지가 무엇일지, 주제는 무엇일지’ 혹은 ‘이걸 오해하면 어쩌지?’, ‘이 캐릭터는 이렇게 읽혔으면 좋겠다’ 하는 식으로 생각했는데, 요새는 그런 건 생각 안 하고 쓰고 있어요. 

그 변화로 인해서 조금 더 편해지셨나요?

네, 지금은 되게 편한 것 같아요. 자연스럽고 편한 느낌이에요. 예를 들면, 제가 소설을 쓸 때 조금 과장되게 쓰는 부분이 있어요. 어떤 사람은 읽었을 때 작위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고 ‘이런 게 어딨어? 황당한 상황이네’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요새는 ‘그렇게 느껴도 어쩔 수 없지, 뭐’ 이런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고 할까요. 

문청 시절에는 어떠셨어요? 독자를 상정하고 쓰셨나요?

대학교 때부터 정지돈 작가와 소설을 주고받았고, 그가 독자였어요. 아니면, 등단하려고 썼죠. 심사위원들한테 어떻게 읽히면 등단할 수 있을까(웃음). 데뷔하고 나서는 독자들한테 어떻게 읽힐까 생각하면서 썼고요. 그런데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요. 

그때보다도 지금 더 편안해지신 거네요.

네, 소설을 쓰는 데 스트레스가 조금 줄어든 것 같아요. 



소설에 목숨을 거는 소설

작가님 소설에는 글 쓰는 사람이 등장할 때가 많고, 소설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기도 해요. 작품과 작가를 겹쳐서 보는 경우도 있을 텐데, 작가로서는 달갑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런 부분이 조금 있었는데요. 제가 어느 정도 헷갈리게 쓰고 있잖아요. 저는 그런 작업이 재밌어요. 주인공이 다른 직업이라면 제가 하는 일이 아니니까 조사도 해야 되고 감정 이입도 잘 안 되는 부분도 있는데, 제가 잘할 수 없는 부분이고 재미도 없는 부분을 굳이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이 들어요. 

『인간만세』의 ‘나’는 소설가인데요. 주변에서 리얼리즘에 대한 압박, 요구를 받는 듯 보입니다. 

제가 진짜 많이 듣는 말이거든요. 지인이나 친구들, 부모님이 ‘조금 현실적인 걸 써라, 붕 뜨지 않는 소설을 써봐라’라는 말을 해요. 아, ‘이게 말이 되냐’는 말을 많이 듣는 것 같아요. 조금 황당무계하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고요. 그것에 대한 저의 마음이랄까요, 그런 게 이 소설에 조금 녹아난 것 같아요. 저는 이게 내가 겪고 있는 세계이고 리얼리즘이라고 생각하고 쓰는데 사람들은 그냥 황당무계하다고만 읽는 상황이 재밌어요. 예전에는 조금 불만을 가진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냥 재밌어요. 

『가정법』에도 ‘진진’이라는 인물이 나왔었는데, 이번 작품에도 등장합니다. ‘진진’을 왜 이렇게 좋아하세요? (웃음)

모르겠어요(웃음). 제 와이프 이름이 ‘진’으로 끝나는데 그래서 그렇게 지었는지, 아니면 다른 소설에서 따왔는지, 지금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둘 중 하나일 거예요. ‘진’이라고 하면 재미없으니까 ‘진진’이라고 했는데 마음에 들었어요. 

왜 계속 같은 이름을 쓰세요?

다른 소설에 ‘진진’이 나오면, 아예 다른 소설인데 이 소설에도 ‘진진’이 나오면, 둘이 같은 인물처럼 느껴질 수도 있잖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게 재밌어요. 

‘진진’과 ‘나’의 관계가 흥미로웠어요. ‘진진’이 재능보다 열정이 더 큰 사람이라면 ‘나’는 그 반대인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죠. 제가 볼라뇨의 『야만스런 탐정들』을 좋아하는데, 진진은 약간 그 소설에 나오는 문청들 같죠. 거기에서도 문청들이 비평가랑 결투를 벌이고 그러거든요. 그리고 『야만스런 탐정들』의 주인공이 샤워하면서 책을 읽는 장면이 있어요. 문학을 너무 좋아해서 샤워하면서도 놓지 못하고 물 맞으면서 책을 읽는 거예요. 그런 장면들을 되게 좋아하는데, 진진은 그런 쪽의 캐릭터죠. 주인공은 거기에서 한 단계 벗어나 있죠. 쉬운 말로 철이 들었다고 하나요, 현실적으로 뭔가 깨달은 인물이죠. 저의 입장에서 보면 정상인의 범주에서의 작가라고 할까요(웃음). 뭔가 소설에 최선을 다하고 목숨을 거는 소설을 읽으면 되게 좋아요. 물론 현실에서는 만나고 싶지 않겠지만(웃음), 텍스트를 통해서 접하면 되게 좋고 가슴이 뛰는 부분이 있어요. 

작가님은 전통적인 소설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 작품, 이를테면 실험적인 작품을 읽을 때 어디에서 즐거움을 느끼세요? 

약간 ‘아, 이렇게 비틀었네?’ 싶은 부분인 것 같아요. ‘전통적인 소설을 이렇게 비틀었네?’ 혹은 ‘체질적으로 이 사람은 전통적인 소설을 못 쓰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사실 『나는 자급자족한다』를 그렇게 쓴 거거든요. 전통적인 내러티브를 쓰자, 독자들한테 읽는 재미를 주자, 라는 생각으로 쓴 건데 친구들한테 물어보니까 무슨 소리냐고, 이게 무슨 전통적인 서사냐고 그러더라고요(웃음). 그렇게 말하는 걸 봐서 현재로서는 사실 그런 부분은 포기했고, 그냥 내가 즐거운 소설을 쓰자고 마음먹고 있어요.


 

나는 왜 쓰고 있지?

『인간만세』의 주인공은 “도무지 행복은 글로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포기했다”고 말해요. 아름답고 서정적인 이야기를 쓰고 싶지만 자신은 그게 안 된다고요. 작가님은 어떠세요?

정확한 제 마음입니다. 저도 진짜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많이 쓰고 싶은데, 진짜 안 써지더라고요. 쓰려고 시도도 해봤는데 시니컬해지고, 자기 비하를 하거나 우스꽝스럽게 상황을 만들어 극한으로 몰아가거나 그래야만 저도 쓰는 게 재밌더라고요. 행복한 것, 아름다운 것을 쓰려고 하면 제 자신이 못 견디는 측면이 있어요. 

‘어떤 것이 아름다운 것인가’에 대한 정의는 다 다르겠지만,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이 “평범한 심미안을 갖춘 사람에 불과하다”고 말하죠. 

저도 마찬가지예요. 사실 제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경우는 되게 평범해요. 되게 도덕적이고 휴머니즘적인 아름다움, 일드 속의 아름다움 있잖아요. 정석적인 아름다움이라고 할까요. 그런 걸 되게 좋아해서 마음이 어지러울 때 일드를 찾아봐요. ‘인간이라면 이래야 돼’ 이런 거 있잖아요. 저는 그런 걸 쓰고 싶은데 잘 안 되더라고요. 

이런 문장도 있습니다. “『홍학이 된 사나이』를 쓴 건 일생일대 실수였다!” 혹시, 이 문장을 쓰면서 통쾌하셨을까요(웃음).

쾌감이 있죠(웃음). 왜냐하면, 솔직히 저는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내가 왜 그렇게 괴짜처럼 보였을까. 그 소설을 보면 되게 괴짜 같잖아요. 물론 주위에서는 괴짜가 맞다고 하지만... 왜 그렇게 독자들과 멀어지는 소설을 썼을까, 이런 생각에 조금 후회는 돼요(웃음).

이 문장을 쓰실 때도 쾌감이 있으셨을까요? ‘나’가 하는 말인데 “솔직히 저 역시 문학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문학의 의미, 소설의 가치 따위는 당연히 모르죠. 그러니 저에게 묻지 마세요”라고 하잖아요.

그런 부분은 다 쾌감이죠. 소설이니까 다른 데서 보고 읽고 인용할 수도 있는데 (사실은) 아무리 읽어도 모르겠는데 어떡하겠어요(웃음). 화자의 입을 빌려서 제 속마음을 솔직하게 밝힌 거니까 쾌감이 느껴졌죠. 

실제로 이런 질문을 받으시죠? 문학과 소설의 의미, 가치를 묻는 질문이요.

저는 그럴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독자들과도 만날 기회는 별로 없어서 많이 안 받았던 것 같아요. 받아도 답할 자신도 없고요(웃음).

질문을 받는다면 ‘나’처럼 답할 수는 없겠죠?

저는 그렇게 말할 것 같은데요. 물어보면 ‘모르겠습니다’라고 할 것 같아요. 

그렇다면, 스스로한테도 질문하실 것 같아요. ‘나는 이것의 의미와 가치를 모르는데, 이 일을 왜 할까?’라고요.

글 쓸 때마다 끊임없이 질문해요. ‘나는 지금 왜 쓰고 있지?’ 그러다가 ‘때려 치자’라는 생각도 하는데, 그런데 어느 순간 또 쓰고 있더라고요. 질문은 끊임없이 하는 편인데 답은 아직 못 구했어요. 

답은 모르는데 어느새 다시 글을 쓰고 있고, 그러는 이유를 설명하기는 힘들죠?

네. 저한테 와이프도 맨날 왜 그렇게 해서 건강을 해치냐고 그래요. 글 쓸 때 스트레스 받고 힘들어 하고 날이 서 있으니까요. 편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곁에서 보기엔 여전히 그런가 봐요. 왜 그만 못 두냐고 하는데, 할 말이 없어요. 설명하기 힘들어요.

 


울고 있는 인간이 만세하는 느낌

‘인간만세’라는 제목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모르겠어요. 처음부터 제목을 떠올리고 썼으면 모르겠는데, 예를 들어 『나는 자급자족한다』 같은 경우는 제목을 먼저 떠올리고 거기에 맞춰서 썼거든요. 그런데 이 소설은 거의 다 쓰고 나서 제목을 정한 거라, 저한테는 어떤 느낌만 있어요. 울고 있는 인간이 억지로 만세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억지로 살아가고 있는, 살아가야 한다면 만세하는... 만세가 긍정적인 포즈잖아요. 하지만 손을 들어야 되니까 힘들기도 하고(웃음). 그런 느낌, 이미지만 가지고 지었던 것 같아요. 

‘작가의 말’이 소설의 형식과 비슷해서 놀랐는데요. 『마름모 브라우니』라는 소설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현재 집필 중이세요?

네. 『인간만세』를 쓰다가 ‘다른 거 쓸까?’ 해서 『마름모 브라우니』를 쓰다가 다시 『인간만세』로 돌아간 거예요. 그 정도까지 완성이 된 거고, 나중에 더 쓸 일이 있으면 써야죠. 

동시에 여러 작품을 쓴다고 하셨는데 『마름모 브라우니』도 마찬가지네요.

그 작품도 그렇고 <현대문학> 5월호에 실린 「산책하기 좋은 날」도 동시에 썼어요.

“『마름모 브라우니』를 쓰고 나자 『인간만세』가 비로소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고 쓰셨는데, 이러실 때가 많은가요?

되게 많죠. 항상 그런 것 같아요. 처음에는 ‘이거 별로인 것 같은데, 어떻게 하지?’라는 괜한 걱정일 경우가 많고요. 그래서 딴 걸 쓰다가 이게 더 별로니까, (먼저 쓰던 작품으로) 돌아왔을 때 객관적으로 보면 ‘아, 그래도 이것보다는 낫다, 나한테는 선택이 없다, 여기에 집중하자’ 이렇게 되는 것 같아요. 

해설을 쓴 강보원 평론가는 “오한기가 바로 뒷걸음질의 전문가”라고 했는데요. 오히려 치밀하게 계산을 해서 소설을 쓰시는 것 같아요. 

맞아요. 제가 예전에는 되게 치밀하게 썼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눈치를 못 챘고 제가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친구들이 비웃었는데요(웃음). 요새는 안 그래요. 조금 자유롭게 쓰는 부분이 있어요.

이번 소설에서도 치밀함이 엿보이던데요?

그건 조금 체화된 것 같아요. 예전에 훈련된 방법이 체화돼서 그렇게 나오는 것 같아요. 

『홍학이 된 사나이』부터 『나는 자급자족한다』『가정법』『인간만세』까지 네 권의 장편 소설이 출간되는 동안 소설집은 나오지 않았는데요.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요?

‘현대문학 핀 시리즈’가 겨울에 출판될 예정이고, 아마 소설집도 (단편) 한 편 정도만 더 발표하면 나올 거예요. 단편집을 2015년에 내고 6년 만에 내네요. 벌써 6년이 지났네요. 




*오한기

1985년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나 동국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12년 [현대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파라솔이 접힌 오후」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의인법』(2015, 현대문학)과 장편소설 『홍학이 된 사나이』, 『나는 자급자족한다』 『가정법』 그리고 『인간만세』 등이 있다. 2016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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