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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호 “시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 유일한 의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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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고자 한 뒤 오직 첫 시집만 생각했었다”는 이소호 시인은 다음에 무엇을 써야 할지 아득한 마음으로 1년을 쓰지 못하고 시를 쓰는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마침내 시인의 시선이 닿은 곳은 자신이 처음 시를 쓰고자 했던 시절, 뉴욕에서 지내던 그때였다. 그곳에서 많은 미술관에 다녔던 그는 전시를 하고 싶다는 자신의 꿈을 떠올리며 두 번째 시집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캣콜링』으로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이소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는 ‘인스톨레이션’, ‘데페이즈망’과 같은 미술용어들이 시 안으로 들어와 시와 절묘한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장면을 독자가 ‘보게’ 하는 시집이다. 사진 한 장으로도, 흰 글씨로도 시가 되었으므로 이는 읽는 시가 아니라 경험하는 시. 이소호 시인은 “이 시집은 경험 그 자체”라고 말했다. 



이소호의 첫 번째 전시 도록

‘NEW MUSEUM’이라는 전시회의 전시 작품을 실은 한 권의 도록처럼 구성한, 콘셉트가 아주 명확한 시집이에요. 그리고 첫 부분에 '관람 시 유의사항'을 적었죠. 이렇게 지침을 내리는 시집이라니, 놀랐어요. 의도대로 읽힐 가능성과 오독의 우려가 동시에 있었을 텐데 어떤 마음이었나요? 

일단 저는 욕심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독자가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작품을 대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큐레이터이자 도슨트로서 최소한의 안내는 하려고 한 거고요. 나머지는 오독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시를 ‘경험’하게 하고 싶었거든요. 이 시들이 읽히는 것이라면 두려웠겠지만, 경험하게 하고 싶었던 시집이라는 점이 유일한 저의 의도였기 때문에 그 의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어떠한 오독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읽어보시면 아실 거예요. 앞에 밝힌 유의사항도 경험의 지침이지 읽기의 지침은 아니에요. 시를 촬영하지 말아 달라고 한 것도 같은 이유였어요. 미술 작품을 사진 찍으면 안 되는 것처럼 여기 담긴 시집도 마찬가지예요. 경험을 위해서 촬영을 자제해주셨으면 했어요. 

수록된 시에는 각주가 아주 많잖아요. 각주라는 것은 작가가 텍스트에 의미를 더하는 장치인데, 이 양식을 마음껏 활용한 한편으로 어떠한 오독도 상관없다고 하시는 말씀이 재미있게 들려요. 

각주 역시 대부분은 시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이야기 정도만 담고 있을 뿐이에요. 그래서 ‘관람 시 유의사항’에 “각주 따위 무시하시고 읽으셔도 무방”하다고 썼어요.(웃음) 

표제작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에 달린 각주를 보면 "첫 번째 시집이 나온 뒤 소호는 침대에 누워 매일매일 이 말을 중얼거렸다."(65쪽)고 쓰여 있어요. 그런데 ‘이 말’은 지워져 있죠. 두 번째 시집을 만들면서 어떤 고민이 있었던 건가요? 

시집 한 권을 낸 뒤에 ‘이제 뭘 쓰지?’ 싶더라고요. 아득해서 1년을 누워 쓰지 못했어요. 그런데 독자와의 만남 같은 것을 하면 제가 자꾸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 문학에 엄청난 뜻이 있고, 앞으로도 계속 문학에 정진할 것처럼 저를 소개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그게 너무 슬펐어요. 첫 책에 대한 욕구가 가득했던 그 마음으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가 두 번째 시집의 고민이었고요. 그래서 실은 계약이 먼저 된 시집을 미루고 이 시집을 두 번째 시집으로 출간한 거예요. 제일 처음 시를 쓰고자 했을 때가 뉴욕에 있을 때고, 뉴욕의 미술관에서 개념 미술을 보고 느꼈던 감정이 있으니까 그것을 해봐야지, 하고 생각했죠. 그 가운데 화두를 찾는 것도 시간이 걸렸고요. 결국 『캣콜링』이 제 속의 것을 토해내는 느낌이었다면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는 처음 시를 쓰고자 한 마음을 되짚어본 시집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말씀을 들으니 첫 번째 시집만큼이나 의미가 큰 시집 같아요. 

네, 그래서 이번 시집에 대해 얘기할 때 꼭 ‘첫 번째 전시 도록’이라고 말해달라고 부탁하고 있어요. 저한테는 이것이 또 다른 첫 시집이기도 하기 때문이에요.


 

종이가 비좁다는 생각

보도자료에 “‘읽는’ 시에서 나아가, 심리적인 이미지 등을 차용한 ‘보는’ 시로의 변화를 꾀하며 여러 실험적 기법들을 선보인다”는 문장이 있어요. 이 시들을 만나는 독자도 무척 놀라겠지만요. 시를 쓴 시인에게도 이것은 아주 도전적인 작업이었을 것 같거든요. 

처음 뉴욕의 미술관에 갔을 때, 충격이었어요. 글씨가 적힌 종이를 액자에 넣어 전시하고 있는 미술 작품들을 보고서요. 현대미술의 이상함을 느꼈던 거죠. 그러면서 ‘나도 미술 할 수 있겠어’라는 생각을 했어요. 언젠가 전시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요. 전시가 제 꿈이었거든요. 그러다 뒤샹(Marcel Duchamp) 전시관을 갔어요. 뒤샹이 2차대전 터진 후에 자신의 작품이 다 사라질 것을 걱정해서 작품의 미니어처를 만들어 ‘여행가방 속 상자’라는 작품 시리즈를 만들었거든요. 그걸 본 거죠. 두 번째 시집을 작업할 때 그것을 떠올리고, 전시관의 미니어처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만든 것이 이 시집이었어요.  

전시가 꿈이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 꿈은 왜, 언제 시작된 거예요? 

2008년일까요, 처음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저는 종이가 항상 비좁다고 생각했어요. 늘 시를 경험하게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전시를 하고 싶었던 건데요. 설치미술이 부러웠던 것은 그것을 관람하고 나면 여행하고 온 것 같은 기분을 주기 때문이었어요. 그런 미술 작품을 관람할 때 사람들은 어떤 세계를 체험하고 오잖아요. 그러니까 시가 체험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거예요. 

체험하는 시, 보는 시의 대표적인 작품이 「판의 공식」이나 「존경하는 판사님께」가 아닐까 싶어요. 

「존경하는 판사님께」는 편집자 님이 두 페이지에 걸쳐 수록해주신 거예요. 저도 이것을 한 페이지에만 채우는 게 아쉬웠거든요. 빽빽하고, 무섭고, 끔찍했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드렸었는데 이렇게 표현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존경하는 판사님께」는 일부러 ‘깜지’처럼 썼어요. 쓰면서 오히려 하나도 안 죄송하다는 느낌을 저 스스로 체험하게 됐죠. 그러니 어째서 이 방법으로 감형이 될까, 싶더라고요. 그 바로 앞에 수록된 시가 「판의 공식」이잖아요. 거기에 루트를 씌웠거든요. 감형을 간단하게 할 수 있다는 지점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수학공식을 응용하면 될 것 같았고요. 그래서 앞의 시에는 공식을 쓰고, 다음 페이지에 진짜 깜지를 써서 실은 거예요. 

이 두 편의 시가 연결이 되어 있는 거군요. 

그 두 편은 한 번에 쓰였어요. 그리고 저는 항상 시를 쌍으로 써요. 

그렇다면 이 시집이야말로 수록된 순서대로 읽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맞아요, 그래서 도슨트이자 큐레이터의 역할을 자처한 거예요. 큐레이터가 전시의 순서를 정하잖아요. 이 시집은 시를 순서대로 읽어야 시의 경험이 훨씬 배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말씀을 듣고 보니 첫 번째 시가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데요. 「하양 위의 하양」은 오직 각주로만 이루어진 시예요. 

충격적이죠?(웃음) 그래서 출판사에 절대로 온라인서점에 ‘미리보기’를 못하게 해달라고 부탁드렸어요. 「하양 위의 하양」이 이 시집을 다 설명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첫 번째로 수록되어야 하지만 이것을 미리보기 하는 순간 별점 테러를 당할 것이고, 또한 제가 이렇게 쓴 이유를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죠. 이 시를 보면 제 작품 전체를 들킨 것이나 마찬가지일 테고요. 

저는 「하양 위의 하양」을 시를 쓰는 행위에 대한 시처럼 읽었거든요. 이 시를 구상하고, 쓸 때의 생각을 들려주실 수 있나요? 

얼마 전에 이 시의 낭독회를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했어요. 녹취되지 않는 한에서 이 시를 매번 새롭게 낭독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11시 30분부터 낭독회를 하겠다고 알리고는 그때부터 시를 썼죠. 이유가 있어요. 작가라면 누구나 그러겠지만 저는 내 시가 촌스러우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을 하는데요. 그 생각 끝에 아예 쓰이지 않은 시를 발표하고, 매번 새롭게 쓰면 되겠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아무것도 쓰지 않고, 지금 내가 접한 세계를 낭독하자고요. 그러려면 적히되 적히지 않아야 했어요. 마침 말레비치(Kasimir Malevitch)의 그림들을 보면서 이해하게 됐죠. 아무것도 그리지 않는 데까지 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난이 있었을까, 하고요. 그렇게 쓰게 된 시라 각주에도 “이 시는 흰 종이 위의 흰 글씨로 쓰였다. 그러므로 이 시를 읽고자 한다면, 시인을 만나 들어야만 한다”고 적은 거예요.  




‘소호’와 ‘경진’이라는 오브제

「소호의 호소」의 초고 과정을 유튜브에 <소호의 호소 초고>라는 영상으로도 남겼잖아요. 텍스트 바깥으로 독자를 이끄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더라고요. 

이 시는 휴대폰 다다이즘 시 쓰기를 한 거예요. 휴대전화의 자동완성 기능을 활성화하면 제가 많이 쓰는 단어들이 나오거든요. 제가 많이 쓰는 단어들 안에서 나오는 것이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작업들이 재미있었는데요. 앞서 종이가 좁다는 말씀을 드렸잖아요. 종이 밖으로 나가면 얼마나 재미있는 일이 많나요. 그래서 제 유튜브에 매일 글 쓰는 것을 촬영하기도 했어요. 작가가 어떻게 작업하는지 궁금해한다면 이런 영상을 보는 것도 재미가 있겠다고 생각했죠. 그걸 찍어야 하니까 울면서 쓰게 되기도 했고요.(웃음) 

「공존 화장실」은 사진과 각주로 이루어진 시인데요. 여성 독자라면 여기 실린 공중 화장실 내부의 구멍 뚫린 모습을 보기만 해도 시인의 하고자 하는 말을 단번에 이해할 거예요. 

뜻밖에 이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게 진짜 힘들었어요. 얼마나 많은 화장실을 다녔는지 몰라요. 더 구멍이 많은 곳을 찾으려고요. 너무 힘들더라고요. 더구나 사진을 찍을 때 소리가 나잖아요. 제가 찍을 때 사람들이 오해할 것 같아서 아주 조심하면서 사진을 찍는데 나 스스로가 이 짓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피해자가 어떤 느낌인지 알리기 위해서 가해자가 되는 것 같은, 너무나 제 시와 일맥상통하는 느낌이라 힘들었죠. 무엇보다 가장 큰 충격은 이 사진을 남성들에게 보여줬을 때 아무도 이게 뭔지 모른다는 점이었어요. 그 차이를 말하고 싶었어요. 

연결해서, 「위대한 퇴폐 예술전」은 한자 단어 중 ‘女’ 자를 변으로 갖고 있는 것들을 모아 구성했고요. 「누구나의 어제 그리고 오늘 혹은 내일」은 2020년 2월 한 달 동안 일어난 여성 대상 범죄 기사를 모아 재구성한 시예요. 모두 너무 강렬한 시였어요. 

시를 쉽게 썼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는데요. 「위대한 퇴폐 예술전」을 위해서는 단어 2,000개를 넘게 찾아봤어요. 「누구나의 어제 그리고 오늘 혹은 내일」도 마찬가지예요. ‘여성 범죄’로 검색하면 기사가 500개까지밖에 안 나와요. 그 다음은 날짜를 바꿔서 찾아야 해요. 그만큼 많더라고요. 정말로 이 두 시를 쓸 때는 제 정신이 아니었어요. 이 시를 쓰기 위해서 저 스스로를 진창에 빠트려야 했던 셈이에요. 

『캣콜링』에 그랬듯 이번 시집에도 시 안에 '소호'와 '경진'이라는 시인 본인의 이름이 등장해요. 이 때문에 독자는 시적 화자를 시인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을 것 같거든요. 하지만 시의 화자가 곧 시인은 아니잖아요. 

일단 저는 구분하지 않길 바라요. 그 자체가 저의 의도예요. 화자는 시인인 저이면서 제가 아닌데요. 독자 분들의 반응을 보면 오히려 그래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하시더라고요. 그게 재미있어요. 원래 비밀이 많을수록 관계를 오래 유지할 수 있잖아요. 저는 독자와 오래 함께 하고 싶으니까 그런 식으로 비밀을 유지하고 싶은 거예요.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진짜가 아닌지는 비밀입니다. 솔직하게 말하는 그 사람을 의뭉스럽게 만들면 어떤 말도 의심스러울 것이고, 저는 그 의심이 좋아요. 텍스트가 비밀인 게 아니라 화자나 시인 자체를 비밀로 만들어버린 거죠. 

그렇다면 시의 화자를 사람 이소호라고 이해하는 독자가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하세요? 

네, 상관없어요. 저는요, 엄마랑 동생이 진짜로 이런 일이 있었다고 착각할 때가 제일 재미있어요.(웃음) 저는 가족도 속여요. 그게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들은 큰 충격을 받았었어요. 

「아무것도 없어야 하는 곳에 있는 무엇과 무언가 있어야 하는 곳에 없는 것」에는 “이소호는 끝났다. 작품 전체를 이끄는 오브제가 자기 자신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99쪽)라는 시구가 등장해요. 

작가에게는 다 ‘나’라는 오브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나를 통해서 느낀 무엇을 보는 것이잖아요. 거리가 좀 머냐 가깝냐 차이죠. 특히 시에서는 그게 더 드러난다고 봐요. 그저 저는 그것을 ‘소호’, ‘경진’이라고 쓸 뿐이에요. 그러니까 ‘소호’나 ‘경진’은 동시대 여성의 오브제 중 하나로 봐주시면 좋겠어요. 한편으로 저는 저라는 오브제가 끝났으면 좋겠거든요. 괴로워서 쓰는 거니까요. 저라는 오브제가 끝났다는 것은 제가 행복해졌다는 얘기일 테고요. 오브제로서의 제가 소비가 끝나면 진심으로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끝나지 못하겠죠. 저는 어떤 지점에서는 언제나 테러와 조롱을 당하고 있고요. 여성의 이야기로 장사를 한다는 말을 듣고 있어요.


 

끝에 실린 에세이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진짜 아름다운 시를 쓰겠다고 말하고, "완벽하게 실패했다."는 문장으로 끝이 나요. 글의 제목도 ‘완벽한 실패’거든요. 어떤 실패일까요? 

저는 미문을 쓰는 작가가 꿈이었어요. 매번 미문을 연습했어요. 2008년의 나는 그런 시를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는데 등단을 한 뒤 주목받은 것은 ‘너도 중절 수술한 적 있지’ 같은 시구였잖아요. 너무 완벽하게 실패한 거죠. 하지만 완벽했어요, 그 실패가. 그것으로 저라는 사람이 주목을 받았으니까요. 




*이소호

1988년 여의도에서 연년생 장녀로 태어났다.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적응할 때쯤만 되면 운명의 장난처럼 부산, 무주로 이주하여 학창시절을 났으며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와 미디어창작학부를 동기도 교수님도 모르게 비밀스럽게 다녔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어쩌다 동국대 일반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하여 석사를 수료했다. 석사 4학기 재학 중 이경진에서 이소호로 개명까지 한 후, 눈물겨운 투고 끝에 월간 『현대시』 신인 추천으로 등단했다. 2018년 시집 『캣콜링』으로 제37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오늘의 나는 『시키는 대로 제멋대로』의 저자로 시와 산문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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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호 저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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