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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선생 나카가와 히데코 "13년의 시간, 깊어지는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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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시기, 13년을 이어온 요리 교실도 휴식기에 들어갔다. 매달 150명의 수강생, 대기자도 딱 그만큼인 연희동 히데코의 요리 교실 ‘구르메 레브쿠헨’의 이야기다. 하지만 문어가 그려진 작은 간판 아래 파란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여전한 활력이 느껴졌다. 아침마다 신선한 재료를 준비하고 몇 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저장 음식을 만드는 히데코 선생님의 하루. 쌓아온 시간만큼 내공도 깊어졌다. 술안주부터 지중해 요리까지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다채로운 레시피가 가득하다.

키친 크리에이터 나카가와 히데코는 일본 태생의 귀화 한국인으로 한국 이름은 중천수자. 프랑스 요리 셰프인 아버지와 플로리스트인 어머니 아래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음식 문화를 배웠다. 동독과 서독, 스페인, 한국에서 20대와 30대를 보냈다. 13년 동안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요리 교실 ‘구르메 레브쿠헨’을 운영 중이다. 다양한 직업과 연령대의 수강생들에게 일본 음식부터 스페인, 이탈리아 요리까지 국경을 넘나들면서 동시에 채소, 도시락, 술안주, 파티 음식 등 매달 다양한 콘셉트로 재미있는 식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집에서 만나는 요리 교실

2016년 화제를 모았던 『히데코의 연희동 요리 교실』이 새로운 레시피로 돌아왔어요.

요리 교실이 벌써 13년이 됐어요. 시간 참 빠르죠? 처음에는 개정판을 내려다가 저의 성장을 담아내고 싶어서 거의 모든 레시피를 새로 썼어요. 그간의 변화도 에세이에 담아냈고요. 

1~2년에 1권꼴로 책을 내고 계시죠. 요리 에세이부터 술안주 요리책까지 벌써 14권이 나왔어요.

마흔세 살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어느덧 10년이 넘었네요. 요리 교실을 열 때만 해도 책을 낼 줄은 몰랐어요. 당시 홍대 근처에서 열린 이우일 작가 부부의 전시에 케이터링을 나갔는데요. 그때 마음산책 대표님이 저를 눈여겨보고 출간을 제안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14번째 책까지 왔네요.(웃음)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요리 교실도 변화를 겪었을 것 같아요. 

저희 요리 교실이 함께 음식을 만들고 먹는 경험을 중시하는데, 팬데믹 시기에는 그게 어려워졌죠. 수업도 몇 달째 쉴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수강생 대부분이 환불을 해준다고 해도 수업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는 거예요. 참 신기하고 감사했어요.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면서, 집밥의 중요성이 커졌잖아요. 이번 요리책의 컨셉도 ‘집에서 즐기는 비장의 레시피’예요. 

맞아요. 집에서도 요리 교실의 레시피를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그동안 레시피도 많이 쌓였거든요. 책에 담긴 모든 레시피가 실제로 요리 교실에서 수강생들과 함께 만들었던 메뉴예요.

선생님의 실제 집밥 메뉴도 궁금해지는데요.

수강생들이 선생님은 평소에 뭘 먹냐고 많이 물어봐요.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저도 집에서 요리를 많이 하게 됐는데요. 사실 매일 거창한 요리를 하지는 않아요.(웃음) 특별한 날에 가끔 햄버그스테이크를 하는 정도? 카레나 일본식 감자조림 니쿠자카처럼 한번 해놓으면 오래 먹을 수 있는 음식도 많이 하고요. 완전히 한국식으로 밥과 국을 차리기도 하죠.



지중해 요리부터 토종 쌀까지

책을 펼치자마자 ‘구르메 레브쿠헨’의 시간을 간직한 저장 음식이 눈에 들어왔어요. 수강생들과 함께한 13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요.

저장 음식은 계절마다 수강생들과 같이 담가서 몇 년은 먹곤 했어요. 처음에는 재료를 구하기가 어려워서 시작했어요. 지중해 요리에는 안초비가 많이 들어가는데, 당시만 해도 조그만 캔 하나가 정말 비쌌거든요. 유자 고쇼도 한식으로 치면 다대기 같은 건데요. 유자를 많이 사서 껍질을 깎아서 만들었어요. 직접 만들면 훨씬 자연스러운 맛이 나니까요. 

일본, 스페인, 프랑스 등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을 담은 원 플레이트 요리 레시피도 색달랐어요. 여행이 어려운 시기니까 더 반갑더라고요.

나이를 먹어서인지 이상하게 여행의 기억이 자꾸 떠오르더라고요.(웃음) 필요 없는 부분은 지워지고 마음에 담았던 이야기만 남는 것 같아요. 햄버그스테이크는 호텔 셰프였던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레시피예요. 다른 길을 가겠다던 딸이 뒤늦게 요리 교실을 한다고 하니까, 아버지가 60년 동안 쌓아온 레시피 노트를 보내주셨거든요. 그 이야기를 작년에 출간된 『아버지의 레시피』에 담았고, 이번 책에도 노하우를 넣었어요. 

술안주 요리 하면 ‘연희동 히데코 선생님’이잖아요. 이번 책에도 와인이나 맥주와 어울리는 레시피가 가득해요. 

제가 술을 좋아한다는 건 워낙 유명한 이야기죠.(웃음) 요즘에는 밖에 못 나가니까 집에서 마시게 되고 자연스럽게 음식도 함께 떠올라요. 술안주 레시피는 요리 교실의 단골 메뉴기도 하고 『히데코의 사계절 술안주』를 준비하면서 정리한 적도 있는데요. 일단 술안주는 간단한 요리여야 해요. 다 같이 술을 마시는데 집주인만 요리를 하고 있으면 진짜 화가 나거든요.(웃음) 가볍게 만들어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요리가 좋죠.



‘봄나물 페스토 파스타’처럼 제철 재료의 맛을 살리는 요리가 많더라고요. 매일 장을 보던 아버지의 영향인가요?

셰프인 아버지는 요리를 업으로 한 분이라, 자전거를 타고 장을 보러 가기는 했지만 장사를 하기 위한 재료는 늘 똑같았어요. 제철 재료를 활용하는 법은 한국에 살면서 스스로 터득한 것 같아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채소를 어떻게 먹어야 할지 아무것도 몰랐거든요. 여러 가지 채소를 나물로 만들어 보면서 한국식 조리법에 익숙해졌죠.

신혼 때는 시어머니의 고사리나물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고요.

시어머니가 경상도분이어서 고사리나물을 자주 해주셨는데요. 겉모습 때문인지 도저히 맛있게 먹을 수가 없는 거예요.(웃음) 한동안 고사리를 먹지 않았는데, 한국 요리교실 선생님이 고사리와 루콜라를 섞어서 샐러드를 만드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고사리가 이렇게 맛있는 재료였다니. 그때 이후로 고사리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알타리무로 만든 스프도 독특했어요.

알타리무가 알고 보면 굉장히 매력적인 재료거든요. 일반 무보다 아삭하고 매운 맛이 있어요. 근데 왜 한국에서는 김치만 담글까 의문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알타리무로 스프를 만들어 봤어요. 매운맛과 단맛이 살아나면서 훌륭한 요리가 됐어요.

한국 토종 쌀을 알리는 일에도 동참하고 계시죠. 이번 책에도 토종 쌀로 만든 레시피가 실려 있어요. 

예전에는 토종 씨앗의 중요성을 잘 몰랐어요. 홍대에서 ‘수카라’를 운영했던 친구 수향이 토종 쌀을 재배하는 농장을 소개하면서 관심을 갖게 됐죠. 세계적으로 농작물이 단일품종으로 생산되고 있어서, 토종 씨앗을 보존하는 게 시급한 문제가 됐어요. 저도 토종 쌀을 활용한 레시피를 개발하고 주변에 권유하면서 중요성을 알리고 있어요.



요리는 즐거운 일이에요

13년의 세월만큼 요리교실 수강생과의 인연도 깊어졌겠어요. 

오래 인연을 쌓아온 단골 수강생이 대부분이에요. 요즘 말로 ‘찐팬’이랄까요.(웃음) 다들 한번 수업을 들으면 적어도 5년 이상은 다녀요. 요리 교실에 따라왔던 아이가 벌써 초등학생이 됐고요. 책이 나오면 20권 이상 사서 지인에게 나눠주는 분도 있어요. 요리책의 사진 촬영도 늘 단골 수강생들과 함께해요. 7~8년 이상 다니면서 제 요리 스타일을 잘 아는 분들이니까 외부 스태프를 부를 필요가 없는 거죠.

요리 실습 전에 문화적 배경을 꼭 설명하신다고요.

다양한 국적의 요리를 가르치니까 배경을 알려주는 과정이 필요하더라고요. 요리 실습을 하기 전에 테이블에 앉아서 이야기를 들려줘요. 스페인의 식문화는 어떤지, 일본에서는 무슨 나물을 먹는지. 배경을 알면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아버지의 레시피’ 수업에서는 아예 제가 자료를 준비해서 왜 일본에서 서양 요리가 발달했는지 세 번에 걸쳐 설명했어요. 역사적인 이야기도 할 수 있어서 재밌었어요. 

조수나 후배를 따로 두지 않고 혼자 요리 교실을 이끈다고요.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면 모든 과정을 함께하지 않을 테니까요. 보통 요리 교실은 선생님이 시범을 보이고 수강생들이 따라 하기만 하니까 친밀한 관계를 맺기 어렵잖아요. 그런데 저희 요리 교실은 설거지부터 뒷정리까지 같이 해요. 음식을 나눠 먹기도 하고요. 사람들이 친해질 수밖에 없죠.

중년 남성분들도 요리교실을 찾는 게 신기했어요. 

참 대단하죠.(웃음) 보통 나이가 많은 남성 수강생들은 아내가 보내서 오는 경우가 많아요. 설거지부터 뒷정리까지 요리 교실에서 다 처음 해보는 거예요. 한 달 동안 접시만 닦고, 그 다음 달은 설거지만 하고. 그러면서 집안일을 익혀 나가요.



코로나19 이후 식문화 트렌드도 많이 바뀌었어요. 배달 음식과 밀키트 제품이 유행인데요. ‘집밥’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독자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바쁠 때는 어쩔 수 없지만, 간단한 것이라도 직접 만들어 봤으면 좋겠어요. 집밥은 무조건 정성껏,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그래서 더 어렵게 느끼는 것 같아요. MSG를 조금 넣더라도 제철 재료를 써서 간단히 만드는 것이 비싼 배달음식보다 낫죠. 사실 요리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거든요. 뭐든 즐기면서 해야 해요. 일단 부담을 내려 놓고 쉬운 것부터 시작해보세요.


 

히데코의 연희동 요리교실
히데코의 연희동 요리교실
나카가와 히데코 저
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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