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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나 “저에게 소설은 ‘요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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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던 남자와의 관계가 끝나고 무작정 인도로 요가 수행을 간 ‘메이’. 고통의 흔적이 남은 자리를 떠나면 행복할 줄 알았던 그녀는 인도에서 여러 모순을 맞닥뜨리며 도리에 혼란에 빠진다. 뒤이어 새로운 사랑이라 믿었던 ‘케이’의 비밀을 알게 된 후, 메이는 무작정 차문디 언덕을 오른다. 언덕의 정상에서 찬란한 태양을 바라보던 메이를 구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요가를 할수록 글쓰는 자아를 발견했다는 김혜나 소설가. 그의 장편소설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이 출간됐다. 살기 위해 요가를 하고, 편지를 쓰는 메이는 “이유도 목적도 알지 못하지만, 요가를 할수록 글을 써나갈 수밖에 없었다”는 작가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5년간 마음에 품었던 이야기 

단편집 『청귤』에 실린 「차문디 언덕을 오르며」가 확장되어 장편소설로 출간됐어요.

사실 처음부터 장편으로 구상했던 이야기인데, 물리적인 여건상 장편을 쓰기가 어려워서 단편을 먼저 써본 거였어요. 막상 단편을 쓰고 나니 이 이야기를 더 깊게 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해지더라고요. 쓸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생겼고요. 긴 시간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이야기를 끝마치게 되어서 기쁘고 홀가분해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탈고를 하셨다고요. 

이 소설이 원고지 550매 정도의 분량인데, 5년 가량을 붙잡고 있었어요. 1년에 100매씩 쓴 셈이죠. 청탁 받은 단편, 산문 등을 쓰고 여러 다른 작업들을 하다 보니 소설을 끝내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2019년에 해외 창작 공간인 헝가리 ‘더숲 레지던스’에 지원했죠. 선정되자마자 하던 일을 모두 그만두고 오직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헝가리로 떠났어요. 그런데 도착하고 일주일이 지나자마자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럽 전역에 퍼져서 국경이 차단되더라고요. 덕분에 오로지 방에 틀어박혀서 글만 썼어요. 해외 레지던스의 효과를 톡톡히 본 소설이에요(웃음). 

단편과 장편 모두 제목에 ‘차문디 언덕’이 들어가요. 어떤 곳인지 궁금했어요. 

인도에서 요가 수련을 할 때, 마음이 답답하거나 힘들면 차문디 언덕을 자주 올랐어요. 언덕에서 보는 일몰이 정말 아름다워서 그 풍경을 보면 저절로 삶을 긍정하게 됐거든요. 그리고 주인공 ‘메이’는 정반대의 두 남자 사이에 끼어 있는 인물이잖아요. 질병으로 외출이 어려운 ‘요한’과 여행작가로 세계 곳곳을 누비는 ‘케이’ 사이에 선 상황이 언덕처럼 느껴졌죠. 하늘과 땅 사이에서 어디로도 나아가지 못하는 언덕의 특징이 문학적 무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또 인도에서는 ‘카르마’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기독교적으로 카르마를 설명한다면, 모두 저마다의 십자가를 지고 언덕을 오르는 인간의 삶을 의미하는데요. 이처럼 하나의 메타포로 읽힐 수 있을 것 같아서 제목에 꼭 ‘차문디 언덕’을 넣고 싶었어요.



인도가 던져준 질문, 소설이 되다 

어떻게 떠올린 이야기인가요? 

요가 수련을 하기 위해서 여러 번 인도를 다녀왔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내가 본 인도의 풍경들을 소설에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인도는 문학적 영감을 주는 나라예요. 갈 때마다 질문을 던져주거든요. ‘이 세상에는 왜 계급이 존재할까? 사람들은 왜 이 삶을 그대로 수긍할까?’처럼 풀리지 않는 의문을 자주 생각했어요.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내려놓는 것을 영어로 ‘surrender’라고 하는데 ‘surrender’와 ‘give up(포기하다)’의 차이가 무엇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인도에 있으면서 깊이 한 생각들, 예컨대 ‘나에게 오는 모든 불행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인가?’ 같은 질문들이 저절로 소설까지 연결되었던 것 같아요. 

「차문디 언덕을 오르며」의 메이가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느낌이었다면, 이번 소설 속 메이는 단단하게 성장한 느낌이었어요.

단편에서는 이야기의 단면만 표현되어서 메이의 고통과 상처가 더 크게 드러났던 것 같아요.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에서는 메이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어요. 누구나 잘하고, 못하는 일이 있는 것처럼 모든 삶에는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니까요. 장편소설은 인물의 여러 측면을 복합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메이가 좀 더 입체적이고 단단하게 느껴졌을 거예요.



요한과 메이의 관계를 흥미롭게 읽었어요. 신체적으로는 약자인 요한이 정신적으로는 메이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어요. 

제가 요가를 오래 하다 보니 육체와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늘 생각하는 것 같아요. 소설 속 캐릭터를 만들 때도 그 부분을 신경 쓰며 창작을 하죠. 요한은 나약한 신체로 살기 위해서 정신을 강인하게 단련할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에요.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근력이 아닌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정신력을 키운 거죠. 반면 케이와 메이 등의 인물은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내면에 아픔이 있어요. 신체적으로는 부족함이 없지만, 속으로 곪아 있는 사람들을 그리고 싶었어요.

특히 애착이 가는 인물이 있나요? 

케이에게 마음이 가요. 문학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금방 눈치채실 텐데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성』에 나오는 주인공 K를 본떠 지었거든요. 저는 그 소설을 읽을 때마다 ‘K는 도대체 누구일까?’라는 궁금증에 휩싸여요. 늦은 밤, K가 한 마을에 도착해서 마을 사람들과 다양한 논쟁을 벌이며 어떻게든 성에 들어가려고 하지만 사람들은 K를 배척하죠. 이 소설에는 과거 서사가 없어서 K가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해 알 수가 없어요. 워낙 좋아하는 소설이라서, 언젠가 한번쯤 K의 실체를 그려보고 싶은 욕구가 있었어요. 또 소설에서 메이가 케이에게 편지를 쓰듯, 저도 ‘내 옆에는 없지만, 이 세계 어딘가에 존재하는’ 케이 같은 독자들을 향해 소설을 쓰거든요. 저에게는 케이가 소설의 독자처럼 느껴져서 더 마음이 가요. 



삶이 있는 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요가 강사로 활동하던 중, 등단을 하셨어요. 요즘도 요가를 가르치세요? 

10여 년간 요가 강사와 소설가를 병행했는데 어느 순간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었어요. 요즘은 글쓰기에만 집중하고 있어요. 저는 글을 쓰는 것도 일종의 요가라고 생각해요. 소설을 쓰는 게 저의 카르마를 다하는 행위인 거죠. 

글쓰기가 요가라고요?  

국내에서는 요가가 운동이나 심신 수련법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이건 요가의 일부분일 뿐이에요. 실제로 인도의 수행자들에게 요가는 하나의 신념이죠. 매일 집 앞을 청소하는 걸 자신의 요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경전을 열심히 공부하는 걸 요가 수행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충실하게 글을 쓰는 게 나의 카르마를 다하는 요가 수련이라고 생각해요. 요가를 할수록 작가로서의 자의식이 또렷해지는 걸 느껴요. 

인도로 떠난 메이는 시종일관 혼란스러워해요. 요가를 할수록 ‘지금 이 순간을 산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진짜 나’를 찾는 게 뭔지 모르겠다며 울죠. 작가님도 이런 생각을 종종 하세요? 

저는 ‘이 순간을 살아라. 자기 자신으로 살아라’ 같은 말을 안 좋아해요. 어릴 때부터 우리는 늘 남과 비교하는 법만 배우며 살았잖아요. 나의 시선이 외부로 향할 수밖에 없도록 교육받은 세상에서 갑자기 ‘나를 사랑하라. 현재에 집중하라’고 말하는 건, 요가를 처음 하는 사람에게 물구나무 서기를 시키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해요. 그 답답함을 메이의 목소리로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여전히 ‘지금을 사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순간에 집중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죠. 저도 요가를 할 때 잡생각이 많이 나거든요. 그런데 문득 ‘요가를 하러 온 이 순간조차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야말로 이 순간을 살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요즘은 어떤 행위를 할 때 오로지 그것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해요. 밥 먹을 땐 밥만 먹고, 글을 쓸 땐 오로지 글 생각만 하죠. 매번 잘 되진 않지만 늘 인지하려고 노력해요. 

저도 아쉬탕가 수련을 하고 있는데, 초반에는 매일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게 지루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몸이 달라진 걸 발견하면서 쾌감이 생기더라고요.  

매일 변하는 몸을 발견하는 게 요가의 즐거움이에요. 그 기쁨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남과 나를 비교하는 시선이 줄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게 되죠. 요가를 하면 외부로 향하던 시선을 자꾸 내 안으로 가져오는 힘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요즘 요가를 할 때 자주 떠오르는 질문이 있나요? 

저는 외로움을 못 견디는 사람이라 늘 연인에게 감정적인 의지를 많이 했어요. 그러다 보니 연인과 헤어지면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스스로 행복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으려 노력하다 보니 어느덧 혼자 있는 게 편해졌는데요. 여기서 새로운 질문이 생겨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데 이렇게 혼자 지내는 게 옳은 건가? 싶은 거죠(웃음). 한때 ‘달라이 라마’의 책을 많이 읽었는데 그가 말하는 행복론은 ‘모든 인간 존재가 연결되어 있다’는 게 핵심이거든요. 인간은 ‘우리가 서로 다르지 않고, 연결되어 있다’는 걸 깨달을 때 행복을 느낀다는 거예요. 그래서 요즘은 ‘내가 너무 관계 맺기에 소홀하고 혼자 글쓰고 요가하는 데만 빠져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중요한 건 균형이겠죠. 자기를 지키면서 타인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 그게 제일 어려워요.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메이가 그 균형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보였어요. “내 안에 아무런 기억도 상처도 남지 않을 때까지 나는 계속 나의 이야기를 써나갈 거야(304쪽)”라고 했죠. 

희망을 말하고 싶었어요. 저는 삶이 있는 한 이야기는 계속된다고 생각해요. 천일야화 속 ‘세헤라자데’가 매일 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서 살아남잖아요. 이야기는 인간에게 생존인 것 같아요. 살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해야 하고, 그게 사람을 계속 살아가게 만들죠. 저는 이야기의 역할을 잘 이어가는 사람이고 싶어요.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
김혜나 저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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