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여자들에게 빚지고 산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현실이 막막하고 두려우면 으레 여성작가의 책을 파고들었고, 그 안에서 나를 설명할 언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여성의 주체적인 사유는 ‘금기’이거나 ‘사사로운 것’으로 치부된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목소리를 낸 이들의 용기는 2021년을 사는 현대 여성에게도 중요한 의미가 되고 있다.
『지성이 금지된 곳에서 깨어날 때』를 쓴 이유진 기자는 한겨레 신문사에서 책지성팀장을 지냈고, 현재 토요판부 ESC팀 기자로 일하고 있다. “저널리스트로서, 사회학과 여성학 공부를 이어가려는 ‘주말의 연구자’로서” 탐독한 책과 역사의 기록이 『지성이 금지된 곳에서 깨어날 때』에 모였다. 이유진 기자는 읽고 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이들을 일컬어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가 이끄는 대로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나를 다시 일으킬 책의 목록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금지된 곳에서 읽고 쓴 여자들의 역사
첫 단독 저서입니다. ‘읽고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예요.
처음에는 책과 독서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는 데서 출발했는데 ‘읽고 쓰는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주제가 좁혀졌어요. 그 과정에서 방대한 인물과 책의 목록이 나왔고, 편집자님과 상의해서 적합한 이야기들을 추려나갔죠. 1부는 여성 인물에 대해 썼고, 2부는 ‘몸’ ‘말’ ‘피’ ‘신’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여성의 삶에 길잡이가 될 만한 책들을 모았어요.
주석의 양을 보고 굉장히 놀랐어요.
연구서의 성격도 가진 책이라 인물에 대한 취재와 공부, 탐색이 필요했어요. 알고 있는 인물과 내용이라 할지라도 공부를 새로이 해야 했고, 그만큼 주석의 양도 상당할 수밖에 없었어요. 편집자님과 의견을 나누면서 주석을 예민하게 표시하는 게 좋겠다는 쪽으로 뜻이 모여서, 아주 짧게 언급된 내용이라 할지라도 책의 구체적인 쪽수까지 표기했어요. 원고를 다 썼는데 내용에 언급된 책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그 책을 다시 구입해서 정확한 쪽수를 확인하는 등 주석을 정리하는 데만 시간이 한참 걸리더라고요(웃음). 논문이나 기사는 써봤지만, 책을 쓰는 건 처음이라 당황스러웠죠.
1년 전까지 한겨레 책지성팀장으로 일하셨어요. 좋은 책을 소개하던 입장에서 책을 쓴 저자가 되어보니 어떠세요.
저자에게는 책에 실린 문장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웃음). 독자의 입장에서는 흘려 읽던 문장들도 작가가 얼마나 고심해서 썼던 것인지 알겠더라고요. 특히 편집자의 역할에 감탄했어요. 신문을 편집하는 것과 글을 책으로 묶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더라고요. 한겨레 책지성팀장으로 일하며 2016년 7월, ‘성과 문화’라는 고정면을 신설해서 여성 작가, 젠더 문제에 대한 책들을 다뤘는데요. 신문에서 서평을 썼던 인물도 일부 실렸지만, 원고는 모두 처음부터 다시 쓸 수밖에 없었어요. 책 만드는 일이 얼마나 섬세한 작업인지 실감했죠.
자기 삶을 포기하지 않은 여자들이었어요
인물의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서 좋았어요. 각 인물의 주목할 지점과 함께, 아쉬움까지 말씀해주신 것도 기억에 남고요.
독자들이 인물의 다층적인 모습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예컨대 미국의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한계가 있는 여성 지식인이죠. 미국의 자유주의적 개인주의 전통을 중시하면서 서구 백인 남성 철학의 전통을 뚜렷하게 따르고 있고, 본인이 여성이라서 차별을 당했다고 하지만, 페미니스트로 볼 수는 없어요. 여성 지식인이자 영화감독, 비평가, 작가였던 ‘수전 손택’은 명예와 명성을 추구하던 야망가였고, 페미니스트들과 반목했죠. 『죽음과 죽어감』의 저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한국 사회에서 인류의 구루처럼 알려져 있으나, 결코 성자는 아니었어요. “모든 것을 용서하지 못하고 죽더라도 상관없다”고 말해서 더 멋진 인물이었죠. 책에 실린 이들이 모두 선하거나 정치적으로 반드시 옳은 길을 선택했던 사람은 아니에요. 독자분들께서도 다채로운 인물의 이야기로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쓰기 어려웠던 꼭지가 있을까요?
다 어려웠는데, 특히 ‘몸’ 부분을 쓸 때 고민이 많았어요. 20~30대 여성들이 열광적으로 독서에 몰두하고, 생존을 위해 지식을 쌓기 시작한 ‘페미니즘 대중화’의 흐름 가운데서, 페미니즘 관련 서적들이 굉장히 많이 출간됐는데요. 그 책들을 일별하며 깨달은 사실이 있어요. 우리가 몰랐던 ‘여성 인물’에 대해 다시 공부하자는 움직임이 있었고, 특히 여성 개개인이 자신의 ‘몸’에 대해 굉장히 주목하고 있다는 거였죠. 그래서 제가 배운 여성학 지식을 활용해 ‘사회가 어떻게 여성의 몸을 유순한 신체로 만드는가’에 대해 한 챕터에 담아내고 싶었는데요. 서구 철학의 스승들이 여성을 결핍된 몸으로 환원시켰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최근 한국 사회에 벌어지는 여성들의 몸에 대한 실천까지 짧은 글 안에 담는 일이 쉽지 않았어요.
불교와 페미니즘 사상을 연결한 『불교 페미니즘』에 대한 내용도 인상적이었어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주제였거든요.
『불교 페미니즘』을 쓴 미국의 페미니스트 종교학자 ‘리타 그로스’가 2004년 김포 중앙승가대학에서 열린 ‘세계여성불자대회’에 참석해 강연을 하신 적이 있어요. 그때 이분을 인터뷰했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거든요. 그래서 자료를 찾아보다가 2015년 작고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가장 중요한 저서가 지난해에 번역되어 출간된 것을 발견했어요. 그게 『불교 페미니즘』이었죠. 리타 그로스는 “여성은 수행을 해도 깨달을 수 없다”는 불교의 관념에 이의를 제기했고 깨달음에는 성별이 따로 없다고 믿었어요. 너무 좋은 책이었기 때문에 꼭 소개하고 싶었어요.
아쉽게 넣지 못한 이야기도 있나요?
과학과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쓰다가 실패했어요. 제 인생 책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거든요. 그래서 칼 세이건의 배우자 ‘앤 드루얀’이 펴낸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과 작가가 된 칼 세이건의 딸 ‘사샤 세이건’을 관통하는 코스모스적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아직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포생물학자이자 고지리학의 대가인 ‘린 마굴리스’와 생물학자이자 페미니즘 사상가 ‘도나 해러웨이’의 저작들도 담고 싶었는데 마찬가지로 공부를 더 해야 할 것 같아 아쉽게 제외했죠. 최근 도나 해러웨이가 쓴 『트러블과 함께하기』라는 책이 번역돼 나왔는데요. 페미니즘 계간지 『여/성이론』에 서평을 청탁받아서 지금 그 원고를 쓰고 있어요. ‘결국 이렇게 공부할 거였다면 진작 해서 책에 실을 걸’ 하고 후회하고 있어요(웃음).
지성이 금지된 곳에서 읽고 쓰는 걸 멈추지 않았다는 것 외에, 책에 실린 인물들의 공통점이 있을까요?
열정적이었고, 자기 삶을 포기하지 않는 여자들이었어요. 책에 실린 인물들이 모두 자기 자신을 사랑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기를 포기하지 않은 건 틀림없죠. 주어진 현실에 머물지 않고, 조금이나마 진전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 인물들이었어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변화는 계속된다
특히 기억에 남는 리뷰가 무엇인가요?
“촘촘하게 재미있다”는 한줄평을 보고 웃었어요(웃음). 제가 포인트를 둔 지점을 정확히 알아봐 주셔서 감사하더라고요. 인물들에 대한 잔잔한 지식을 넣고 싶었거든요. 디테일에는 악마도 숨어있지만, 진실이 숨어있을 수도 있잖아요. 예를 들면 수전 손택의 ‘손택’이라는 성이 양아버지의 것이라는 내용 등이요. 또 이 여성 인물들이 끝도 없이 연결되어 있거든요. 수전 손택은 시몬 베유에 대해 비평을 했고, 에이드리언 리치는 수전 손택을 지긋지긋하게 싫어했어요(웃음). 동시대에 활동했던 여성 지식인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촘촘히 쓰고 싶었어요. 앞으로도 이 얽히고설킨 여자들의 역사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될 것 같아요. 이 순간에도 우리가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듯이 말이죠.
원고를 쓰면서 책에 실릴 또 다른 인물을 발굴하기도 했겠네요.
인물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책을 일별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한 인물에 대해 공부하고 이슈를 살피다 보면 마침 그 분야의 책이 출간될 때가 많았거든요. 여성들의 분노에 대한 글을 쓰는 와중에 ‘브래디 미카코’의 『여자들의 테러』가 출간되는 식이었죠. 그래서 새로운 책을 읽고, 다시 공부하는 작업이 반복됐어요. 결국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인물들이 저와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주목해서 보고 계신 페미니즘 이슈나 사건이 있을까요?
최근 EBS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에서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가 젠더에 관한 강연을 했어요. 강연 소식이 알려지자 시청자 게시판에 그를 비난하며 방송 중단을 요청하는 글이 쏟아졌죠. 물론 EBS는 그대로 방송을 진행했지만, 이토록 세계적인 석학의 가치있는 강연이 몇몇 혐오 댓글로 곤란을 겪게 되는 광경을 보며 안타까웠고, 충격적이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타인에 대한 혐오와 공격의 형태가 점점 강해지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무시하고 지나칠 수 있는 수준이었다면, 앞으로는 이러한 공격이 훨씬 더 강력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젠더’라는 단어를 신문에 쓸 수 없었다고요. 저널리즘계에 오래 몸 담고 계신 입장에서 어떤 변화가 느껴지세요?
젠더라는 단어가 너무 어렵다며 신문에 쓰지 못하게 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회사에 젠더팀이 생겨서 젠더 이슈를 열심히 취재하고 있죠(웃음). 제가 여성 관련 이슈에 대한 취재를 혼자 도맡아 했던 10년 전만 해도, 여성 이슈는 발제를 해도 채택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어요. 늘 마이너한 주제로 취급됐고, 데스크 승인을 받지 못할 때도 많았죠. 하지만 지금은 언론사 기자들의 인식이 바뀌었을 뿐 아니라 대중의 수준도 많이 달라진 걸 실감해요.
세월의 변화를 실감하기까지 어려움도 많으셨을 거예요.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백래시(backlash)가 굉장히 심했거든요. 제가 기자생활을 하는 동안 성매매 방지 특별법, 호주제 폐지 등 굵직한 이슈들이 법안으로 통과되는 과정을 지켜봤는데요. 그런 이슈에 대해 기사를 쓰면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이 하루에 수백 통씩 메일로 날아왔어요.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는데도 십 년의 시간이 걸렸죠. 지금도 모르는 사람에게 “이유진 기자님”이라는 제목의 메일을 받으면 심장이 쿵 내려앉을 때가 있어요. 저뿐 아니라 여성 이슈를 담당했던 기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증상이죠. 여성 기자들을 향한 악의적이고 폭력적인 메일 내용 때문에 고소, 고발까지 가는 경우도 많았지만 언론사의 대처는 거의 없다시피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기자들의 어려움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생기고 있죠. 한겨레를 필두로 다른 언론사에도 젠더 의제를 다루는 팀이 여럿 생겼다는 것 또한 큰 변화 중 하나예요.
여성의 정체성은 굉장히 모호해요
저자 소개에 “가부장적인 도시에서 태어나 ‘가시나’라고 불리면서 컸다”고 쓰셨어요. 기자님의 어린시절은 어땠나요?
저는 대구 출신인데,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대구는 전국에서 가장 가부장적인 지역 중 하나였어요. 제 아명은 ‘순남’이었고, 순하게 지내면서 남동생을 두라는 의미였죠. 어린시절을 떠올릴 때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는데요. 오빠, 저, 여동생이 둘러앉아 수박을 먹는 사진이에요. 오빠는 수박 반 통을 앞에 두고 혼자 먹고, 저는 작은 스테인리스 종지에 담긴 수박을 먹으면서 오빠한테 더 달라고 하고 있어요(웃음). 아주 상징적인 장면이죠.
초등학교 때는 투표를 통해 전교회장에 뽑혔어요. 당시 우리 학교 80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회장이 될 뻔했는데, 선생님들이 우르르 오셔서 이 투표는 무효라고 하셨어요. 여학생이 회장을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못 박아서 결국 다른 남학생이 회장으로 선발됐죠. 가정과 학교에서 그런 경험을 거듭하다보면 차별은 디폴트값이 되는 거죠.
페미니즘에 눈을 뜬 건 언제인가요?
제가 대학에 다닐 땐 페미니즘 동아리도 없었고, 여성학 관련 책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시절이었어요. 그런데 여학생회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조금씩 관련 책을 찾아 읽었던 기억이 나요. 그러다 1995년경에 기자가 됐죠. 그때도 페미니즘에는 큰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서며 언론계에서 좋은 여자 선배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쯤 페미니스트 저널 『IF』가 화제가 되었고, 페미니즘 동인 ‘또 하나의 문화’의 동인지 등을 살펴보며 입문하게 되었어요. 선배들과 교류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자연스레 페미니즘을 알아가기 시작한 것 같아요.
대학원에서는 여성학을 공부하셨어요. 대학원에 진학한 계기가 있을까요?
주로 젠더/여성 분야의 글을 쓰다 보니 여성학회에 가거나 학자들을 만날 일이 많았는데요. 어느 순간, 제가 그분들의 말을 못 알아듣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성학이 굉장히 어려운 학문이거든요. 처음에는 기사를 좀 더 잘 쓰고 싶은 마음으로 대학원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그게 제 인생의 전환점이었죠. 대학원 입학 전의 이유진과 졸업 후의 이유진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나임윤경 교수님, 김현미 교수님, 조한혜정 교수님 등 기라성 같은 선생님들께 배우면서 페미니즘의 세례를 받았죠. 제 인생에서 그렇게 좋은 시간은 다시 없을 것 같아요. 지금도 그 교실로 돌아가서 다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요.
“가운데 딸로 태어나 평생 모호한 정체성을 가졌다. 책을 마무리하면서 인류가 부르짖어온 ‘인간/혈통’의 시대가 흔들린다는 감각을 갖게 되었다.(326쪽)”는 문장이 마음에 남아요.
저는 여성의 정체성이 굉장히 모호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가운데 딸’은 더욱 더 식별하기 어려운 정체성이었죠. 스스로 여성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은 모두 ‘타자의 정체성’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매순간, 본인이 언제나 타자일 수만은 없잖아요. 이도 저도 아니고, 뛰어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중간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무척 많은데, 그런 여자들과 모호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기사를 쓸 때, 늘 “야마(핵심)가 뭐냐”는 질문을 하는데요. 야마가 없는 삶도 분명 있거든요. 직장인도 아니고, 아내도 아니고, 엄마도 아니고, 혹은 동시에 그 모든 사람이기도 한 모호한 정체성에 대해 생각을 더 해보고 싶어요.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답할 수 없어서 우물쭈물하는 사람들. 애매하고 모호하며 소속 없는 자들의 이야기요.
과거에 쓰신 소개문에서 “저널리스트와 저널리스트스러움 사이, 페미니스트와 페미니스트스러움 사이에 끼어 있다”는 문장을 봤어요. 이 또한 비슷한 의미일까요?
맞아요. 이 책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작가라고 할 수 없고, 이 책도 저널리스트와 서평가 사이에서 쓴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여성으로 산다는 게 어떤 의미로 느껴지세요?
복잡한 실천이 있어야 하는 삶이요. ‘끊임없는 노동’과 ‘복잡한 생각’과 그걸 종합한 ‘실천’이 뒤따라야 하죠. 여성으로 잘 산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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