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자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꽃 할머니』가 출간되고 10년이 흐른 지금, 권윤덕 작가는 『용맹호』를 통해 베트남 참전 용사에 대해 말한다. “용맹호 씨는 아침마다 자동차 정비소에 가요. 파란 하늘을 한 아름 품고요”로 시작되는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 용맹호는 평범한 소시민의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가 베트남의 정글에서 보냈던 시간과 그때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는 사이 용맹호에게는 귀가 하나 더 생기고, 눈이 하나 더 생기고, 온 몸에 분홍색 살점이 덕지덕지 들러붙는다.
『꽃 할머니』와 『용맹호』의 사이, 작가는 『나무 도장』에서 제주 4.3 사건을 『씩스틴』에서 5.18 민주화 운동을 이야기했다. 네 권의 책에 담긴 지난 10년은 ‘가해자성’에 대해 끝없이 질문하고 해답을 찾는 시간이었다. 가해자는 무엇을 해야 하고, 그들 곁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작가의 질문은 이제 우리의 것이 된다.
가해자의 자리
베트남전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처음 생각하신 건 언제였나요?
『꽃 할머니』의 마지막 장면에 베트남 여성이 나오는데요. 처음에는 이라크 여성만 그렸어요. 그런데 자료를 찾으면서 2000년에 도쿄에서 열린 시민 법정 자료를 읽었어요. 세계 여성들이 연대해서 법정을 열고 위안부에 대해서 천황도 죄가 있다고 판결을 내렸는데, 그걸 보면서 ‘우리가 베트남에 가서 했던 잘못에 대해서도 이런 게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다음에는 베트남전에 대한 작품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용맹호’는 전쟁의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입니다. 그가 겪는 죄의식이나 아픔을 어떻게 그려낼지 고민을 많이 하셨을 텐데, 결국 ‘신체 변화’를 통해 보여주기로 하신 것 같아요.
베트남전은 굉장히 잔인했고, 그런 이야기가 영화나 소설에서 많이 소개됐기 때문에 익히 알고 있었어요. 가령 귀를 잘라서 철사에 꿰어서 목걸이로 하고 다닌다든지, 눈알을 빼서 병에 담아 다닌다든지... 이런 신체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어요. 거기에 더해서 고경태 기자님이 쓴 『베트남전쟁 1968년 2월 12일』을 봤는데 그 책에 가슴이 잘린 여성의 사진이 실려 있어요. 한국군이 퐁니·퐁녓 마을에서 퇴각하고 나서 그곳에 들어간 미군이 찍은 사진인데 ‘가슴이 잘린 채 살아 있는 여자’라고 쓰여 있어요. 그걸 보고 저도 되게 충격을 받았어요. 그런데 그렇게 가슴이 잘린 걸 그림으로 그려서 고발할 수는 없잖아요. 오히려 잘린 가슴이 하나 생겼다고 생각하면, 그러면 그릴 수 있겠더라고요. 거기에서 아이디어가 나온 거예요.
『나무 도장』, 『씩스틴』을 거쳐 『용맹호』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우리 가까이에 있는 가해자가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인물에 몰입해서 이야기를 만드실 때는 기분이 어떠세요?
가해자는 끊임없이 자기를 되돌아보지 않으면 안 되는 위치인 거예요. 피해자가 용서한다고 해서 용서받는 일은 아닌 것 같거든요. 가해자 스스로가 끊임없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도, 피해자는 만 분의 일 정도나 충족될까요. 그렇게 고통스러운 자리가 가해자의 자리인 거예요. 아마 그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서 자신이 가해자라는 걸 인정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인정하는 순간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명예, 돈, 지위, 다 흔들리잖아요. 어떻게 보면, 그걸 인정하는 건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에요. 끊임없이 자기를 되돌아보는 과정이 있어야 인정할 수 있는 거고요. 그게 너무 힘든 것 같아요. 자기의 잘못임에도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더 아래에 묻어둔 것들을 다 끄집어내야 되니까. 그래서 ‘용맹호’가 더 힘든 것일 수도 있죠.
그런 이유로 그리기 힘들었던 장면이 있었다면요?
이 장면(세 개의 눈을 갖게 된 용맹호가 퇴근길에 걸어가는 장면)을 보면, 사실 (표지판의 화살표가) 이리로 가라고 되어 있거든요. 그림 속의 여자도 그쪽으로 가잖아요. 거기가 현실이거든요. 그런데 용맹호는 반대로 가죠. 그래서 제가 이 장면을 그리면서 용맹호한테 ‘너 그쪽으로 가면 30년 넘게 가슴속 저 밑바닥에 눌러놨던 민간인 학살 부분과 마주칠 텐데, 그냥 이리로 가서 모른 체 해’라고 말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결국 용맹호는 그쪽으로 가서 자기가 숨겨놓은 부분과 마주해야, 그래야 피해자가 무엇 때문에 아팠고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공감할 수 있는 거예요.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다른 사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이야기되는 것 같아요. 4.3이나 5.18과 달리 피해자가 한국 사회 밖에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우리가 가해자라는 걸 인정하기 어려워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니어도 이렇게 직시하기 어려운데, 가해 당사자는 얼마나 그 기억을 지우고 싶을까요.
그렇죠. 끊임없이 항변하겠죠. 그래서 참전 군인 분들이 민간이 학살 이야기가 나오면 굉장히 예민하고, 자신은 전쟁에 가서 희생하고 왔는데 범죄자로 모는 걸 용납할 수 없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학살의 주체가) 본인은 아니었다고 해도, 일부가 저지른 행위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지휘하고 동참하고 묵인하고 공조했던 많은 분들이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걸 인정하는 순간 ‘자유를 위해 싸우고 돌아와 국가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자기의 모든 기반이 흔들리는 거잖아요. 그건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거예요. 그런데 제주 4.3 때도, 도민들이 가해자와 피해자로 서로 대립하고 있을 때 결국은 ‘그때 참여했던 경찰이나 이런 사람들도 다 피해자다’라고 하는 인식 속에서 다시 화합이 되거든요. 참전 군인도, 물론 (전쟁 폭력의) 당사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당사자가 갖는 자기 트라우마까지도 같이 이야기해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곳에 다녀온 사람들은 다 단죄해야 돼’라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가해자가 무서워서 입을 열지 못하겠죠. 그러면 피해자에게 용서를 빌지도 못할 테고요.
맞아요.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도 당시에 (차출에) 앞장 선 한국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 같거든요. 그 사람들이 초기에는 자기가 어떻게 했는지 이야기를 했다고 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가해자가 되니까 입을 열지 않고, 아무도 자기가 그런 일을 했다고 말하지 않는 거예요. 사회가 가해자라는 낙인을 찍어서 몰아내면 더 이상 그 사람이 가해자임을 인정할 수도 없고 반성할 수도 없는 거죠. 스스로 가해자성을 인정하는 것을 용기라고 말해주는 사회가 되지 않으면 그 사람들은 나오지 않을 거예요. 일단은 침묵하겠죠. 자살하거나. 그건 아마 모든 폭력의 가해자가 다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래서 저는, 가해자를 지목하고 고발하고 사과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이 잘못을 인정할 수 있도록 사회가 품는 게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피해자가 자기 피해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가해자가 이야기하면 되니까요. 피해자가 피해를 증명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이고, 그 과정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하고, 계속 그 늪에 빠지잖아요. 그리고 고통 속에 피해자만 있게 돼요. 가해자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래서 가해자가 입을 열 수 있도록 바뀌어야 되는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해요.
인간을 살리는 이야기
일본군 위안부, 제주 4.3 사건, 광주 5.18 민주화 운동, 베트남 전쟁까지 아픈 주제를 다뤄오셨는데요.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아무리 아프고 슬픈 이야기라 하더라도 사회의 구조를 넘어 인간의 선한 의지를 발견할 때, 그림책을 마감할 수 있게 되지요.” 어떤 절망적인 사건 속에도, 다 선함이 있었나요?
네, 저는 그렇게 발견했어요.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은 많이 소설화, 영화화 되지 않았나요? 아우슈비츠에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그렇고, 그건 4.3 때도 마찬가지이고 5.18 때도 마찬가지예요. 선한 사람들이 있어요. 『나무 도장』을 할 때도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요. 사람들을 다 죽이고 나서 꿈틀거리는 움직임이 있으면 확인 사살을 하잖아요. 그런데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면서 확인 사살을 안 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건 자기가 할 수 있는 여건에서 최대한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예요. 총을 쏘는 사람도 어쩔 수 없는 거겠죠. 그런데 이후에 아주 작은 불씨라도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 사람들 중에 생존자가 있어서 당시에 시체더미 밑에 있었다는 증언들을 하게 되잖아요. 그런 식으로, 아무리 혹독한 전쟁 상황에서도 인간을 살리는 이야기는 다 있어요.
한편으로는, 그렇게 선한 인간도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 가해자들을 용서하기 힘들어져요. ‘같은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지 않나, 그러니 가해자는 당연히 단죄돼야 하지 않나’ 싶은 거죠.
당연히 단죄 되어야죠. 2018년에 한국에서도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 법정이 열렸는데, 그때 후지이 다케시라는 분이 참석하셨어요. 역사문제연구소에서 한국 역사에 대해 연구하셨던 분인데, 그 분이 쓴 자료집 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어요. 태평양 전쟁 말기에 만주 지역에서 잔인하게 민간인을 학살했던 일본 군인들이 나중에 잡혀서 중국에서 교화를 받게 돼요. 그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이야기가 ‘나는 가해자가 아니다, 나한테 명령을 내렸던 윗사람들이 가해자다, 내가 아닌 그 사람들을 잡아서 감옥에 가둬라’라는 거였어요. 그런데 나중에 어떻게 교화가 되냐 하면 ‘아무리 명령을 했어도, 방아쇠를 당긴 사람은 나다’라는 걸 인정하게 돼요.
어떻게 교화가 가능했나요?
인간으로서 받아야 되는 최고의 대접을 해줬어요. 생각할 시간을 주고, 쌀밥을 주고... 그러면서 그 사람들이 ‘방아쇠를 당긴 사람은 나다’라는 걸 결국 인정하게 되고, 다시 일본에 돌아와서 사람들 앞에서 그 이야기를 해요. 자신이 만주국에 있을 때 일본군이 얼마나 잔혹한 짓을 했는지. 일본 사회에서는 다 부정하는 이야기인데 하거든요. 그래서 평화활동가가 돼요. 그 사례를 보고 저는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아무리 그 사람들이 악했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존엄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다면, 살면서 그렇게 생각해 볼 기회나 환경을 접할 수 있다면, 그 사람들도 변하지 않을까.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악마인 사람은 없잖아요.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기도 모르게 가해 사실이 있을 수도 있는 거고요. 자기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구조 속에 있었을 수도 있잖아요.
자신이 존엄하게 대우받아 봐야, 다른 사람의 존엄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떤 환경에서 사람은 교화되는가’를 생각하면 ‘어떤 환경에서 사람이 악랄하게 변하는가’ 알 수도 있고요. 그러면 우리는 그 환경, 구조를 바꾸자고 이야기할 수 있겠죠.
맞아요. 어쩌면 그 구조가 용인하는 건지도 몰라요. 그 사람이 그렇게 잔인한 짓을 하도록 구조가 용인하는 거죠. 구조가 용인하지 않으면, 그렇게 할 수가 없죠. 4.3 때도 그렇고 5.18 때도 그렇고 전쟁도 마찬가지죠.
작가님은 사람이 희망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렇죠. 그리고 아이들하고 계속 수업을 해 보면 그런 생각도 들어요. 전쟁이나 폭력의 현장에도 희망이 있다는 걸 아이들이 한 번 접하는 것과, 그런 건 없다고 생각하는 건 굉장히 다를 것 같거든요. 제가 강의할 때 항상 그 질문을 해요. ‘기차가 달려오는데 두 갈래 길이 있거든. 위로 가면 10명이 죽고 밑으로 가면 한 명이 죽어. 그럼 어디로 갈래?’
아이들은 ‘한 명이 죽는 길’로 가겠다고 하겠죠?
그렇죠. 그런데 어느 수업 시간에 어떤 애가 그랬어요. ‘그 한 명이 우리 엄마면 어떻게 해요?’ 그래서 제가 ‘그 한 명이 너희 엄마이거나 사랑하는 사람이면 어쩔래?’ 하고 아이들한테 물어보면, 아이들이 대답을 미적거리다가 ‘기차를 멈춰요, 제3의 길을 찾아요, 기차를 돌려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렇게 한번 생각해 보는 것과 안 해보는 것은 굉장히 차이가 있을 거예요. 우리는 역사 교육 속에서 끊임없이 ‘이 공동체가 유지되는 데 한 사람이 희생되는 건 어쩔 수 없어’라고 배웠어요. 그런데 ‘우리는 한 사람이 죽는 것도 싫어’라고 말할 수 있으면, 그러면 사회가 바뀔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어요. 어떻게 보면 그게 촛불혁명이겠죠. 광장에 나온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그럴 것 같아요. 결국은 그렇게 바뀔 수 있다고 생각이 들고요.
작가님이 아프고 슬픈 역사 이야기를 그림책에 담아내시는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굉장히 가슴 아픈 이야기이고 무섭고 끔찍한 이야기이지만, 이게 엄연히 우리 사회 속에 존재하는 거라면 아이들도 알아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읽히기를 조금 어려워하더라고요. 이렇게 끔찍한 이야기를 벌써 읽혀야 되나,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고학년 정도면 얼마든지 읽혀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전달할까’라는 고민을 많이 하실 텐데요. 그림을 그리실 때도 장면을 충격적으로 묘사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그렇게 그리려고 하면 제가 힘들어서 못 해요. (웃음) 끔찍한 이미지를 만드는 것 자체가... 저는 붓을 들어서 그릴 수가 없어요. 그리고 책을 통해서 사람들과 소통을 하려면, 사람들이 마음을 열어야 이야기를 받아들이잖아요. 너무 끔찍하면 그냥 덮죠. 외면하고. 그리고 저는 아름다워야 된다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아름다움이 있어야 되는데, 아름다움을 가장 많이 끌어오는 게 꽃이나 자연인 것 같아요. 그것과 인간을 대비시키는 거죠. 인간이 얼마큼 폭력적이고 많은 죄를 짓고 있는지를 아름다운 자연과 대비시키면서 이야기하니까, 사람들이 마음을 열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싶어요. 책을 다 보고 나서도 되돌아볼 여유가 조금은 생기고.
25년 동안 작가로 살아오신 이야기를 담아 에세이 『나의 작은 화판』(2020)을 쓰셨습니다. 지금까지 작품의 주제나 스타일이 바뀌어 왔듯이, 앞으로도 변화가 있을 텐데요. 어떻게 바뀔까요?
원래는 다섯 권을 만들 생각이었어요. 『꽃 할머니』, 『나무 도장』, 『씩스틴』, 『용맹호』, 그리고 한 권을 마저 하려고 했어요.
세월호 이야기... 말씀하시는 거죠?
네. 학생들이 세월호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세월호 이야기까지) 다섯 권은 하고, 그 다음에 다른 작품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세월호 이야기의 커다란 골격은 다 잡아놨거든요. 그런데 그걸 하나하나 구체화시키려면 다 봐야 돼요. 증언들이나, 아이들이 마지막에 보내온 영상이나... 그게 자신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조금은 더 내공이 쌓여야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일단은 『용맹호』로 마감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은 역류성 후두염을 치료하고 계시잖아요. 건강에 유의하셔야 할 것 같아요.
네, 건강이 이렇게 안 나빠졌으면 내친 김에 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건강이 너무 안 좋아지니까 ‘이러다가 나중에 작품을 아예 못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겁도 나고 그래서 ‘일단은 재충전이 필요하구나, 나한테 조금 쉬어가라고 하나 보다’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조금 즐거운 작품 하려고 하고, 충전이 되고 나면 세월호 이야기도 할 생각이에요.
*권윤덕 서울여자대학교 식품과학과와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광고디자인과를 졸업했다. 이후 미술을 통해 사회참여 운동을 해 오다가 1995년 첫 그림책 『만희네 집』을 출간하면서 그림책 작 가의 길에 들어섰다. 동양 재료를 바탕으로 산수화와 공필화, 불화를 공부하며, 옛 그림의 아름다움을 그림책에 재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 『만희네 글자벌레』, 『시리동동 거미동동』, 『고양이는 나만 따라해』, 『일과 도구』, 『꽃할머니』, 『피카이아』, 『나무 도장』, 『씩스틴』이 있다. 한국출판 문화상, CJ그림책상, 올해의 여성문화인상-청강문화상, 롯데출판문화대상 본상 등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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