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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준 “소설을 70편쯤은 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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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이후 6년 만에 소설집 『선릉 산책』을 출간한 정용준 소설가는 이번 책을 내는 마음을 “사랑하는 사람을 상견례 자리에 소개하는 기분”으로 표현했다. 좋기도, 떨리기도 했다는 그는 사실 3년 전부터 소설집 출간을 계획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번번이 한 편만 더 써보자”는 생각을 하며 끝까지 “안 묶이기를” 바랐을 정도로 소설집을 묶는 마음이 어려웠다고. 그것은 이 작품들이 “단순히 나만의 것은 아닌 것”이기 때문이었다. 

『선릉 산책』에는 젊은작가상,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한 「선릉 산책」, 문지문학상 수상작 「사라지는 것들」, 2021 김승옥문학상 우수상으로 뽑힌 「미스터 심플」을 포함해 모두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정용준 소설가는 여기에 “산책을 좋아하고 풀기 어려운 생각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고 설명한다. 왜 산책인가, 라는 질문에 그는 “기표는 산책이지만 기의는 산책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쓸 수 있는 소설과 쓸 수밖에 없는 소설. 『선릉 산책』의 이야기는 모두 쓸 수밖에 없는 소설들이었다. 



혼자만의 것은 아닌

2015년부터 2021년 사이에 발표한 단편들을 묶었어요. 소설가 분들은 소설집을 묶는 것이 한 시절을 묶는 것과 같다는 말씀을 하시던데, 작가님은 어떠셨어요? 

맞아요, 쓸 때는 매순간 정직하지만요. 써 놓은 것을 묶으면 그때 그 마음이 최선이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현재는 해석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 거예요. 당시에는 충실히 판단을 했어도 시간이 흘러 그때의 내 생각을 지금의 내가 다시 판단하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쓸 때는 자유롭지만 묶을 때는 달라요. 확실히 그냥 썼던 것을 기계적으로 묶는 단순한 의미는 아닌 것 같아요. 이번에는 그 시절에 대한 긍정이 잘 안 되기도 해서 책 한 권을 묶는 마음이 좀 어려웠고요. 그냥 계속 안 묶이기를 바랐어요.(웃음) 왜 그런지 계속 미루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막상 묶고 나니, 별것 아닌데 뭐 이렇게 고민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장편을 한 권 출간할 때와는 확실히 다른 감각이군요. 

단순히 물리적 길이로 장르를 나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작가에게 장편과 단편은 굉장히 다른 장르 같아요. 장편은 하나의 일관성을 갖고 있어서 3년의 시간에 걸쳐 쓴다고 해도 3년을 하나의 감정으로 통합하는 과정을 거치거든요. 때문에 작가와 소설이 맺는 관계를 특별히 고민하진 않아요. 그런데 단편은 적어도 저에게는 저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어요. 그동안 장편은 그저 내가 쓰고 싶은 것을 다 쓰는 느낌이었고, 나만 괜찮으면 되는 문제였는데요. 『선릉 산책』에 수록한 단편들은 사회인으로서 나, 작가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여러 이슈에 응답하는 나의 문장 등이 들어가 있거든요. 단순히 나만의 것은 아닌 것이 들어 있고, 적어도 작가인 나는 그것들을 행간에서 읽어낼 수 있기 때문에요. 좀 힘들었던 시절이었어요.

'작가의 말'에서 "여기에 묶인 소설들은 모두 산책을 좋아하고 풀기 어려운 생각에 빠져 있다"(269쪽)는 설명이 있어요. 먼저, 왜 산책이었을까요? 

풀기 어려운 상황이 감춰져 있다 올라오는 시간이 산책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별 수 없이 걷는 거죠. 산책을 하는 게 아니라 산책밖에 할 수 없는 거예요. 어떤 목적을 갖고 이동하거나 운동하는 것도 아니고요. 달리 뭘 할 수 없어서 내 몸을 이동시키는 행위인 것이죠. 기표는 산책이지만 기의는 산책이 아니고요. 그러니까 대부분은 어색하죠. 사유의 시간에 가깝고요. 그 시간에 가장 어울리는 행위가 산책이라 인물들이 자꾸 걷게 된 것 같아요.

또 『선릉 산책』 속 인물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겪거나 이별에 아파하는 등 무척 무거운 상황에 놓여 있거든요. 이런 인물들을 자꾸 쓰게 된 이유도 있었을 것 같아요. 

작가에게는 쓸 수밖에 없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문제는 그것이 무엇인지 작가 자신은 알지 못한다는 거예요. 하지만 독자들은 알죠. 저도 묶인 소설을 보고 후에 알게 되곤 하는데요. 저는 누구나 조금만 깊이 이야기하면 다 비극이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비극적으로 살지 않을 뿐 누구에게나, 심지어 5살 어린 아이에게도 다 비극이 있어요. 그런데 사회는 우울감이라고 하는 것에 지지 않아야 한다고 압박하죠. 애도의 기간이 정해져 있고요. 슬픔이라는 감정을 오래 응시하기 어려운 시절이에요. 제 궁금증은 이거예요. 슬픔이 여전히 남아 있는데 슬픔의 태도를 취할 수 없을 경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나. 이것이 최근 몇 년 저의 가장 큰 화두였어요. 어떤 상실 이후의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조금만 상상하면 먹먹해지고, 그 질문이 해소가 안 되니까 상상하고, 그러면 쓰고 싶고 그랬어요. 『선릉 산책』의 소설들은 그래서 다 누군가한테 선물하는 마음으로 쓴 거예요.

확실히 작가님이 상실을 겪은 인물들의 ‘다음’을 궁금해한다는 게 느껴졌어요. 『선릉 산책』 속 작품들이 대부분 ‘그 일이 있고 난 다음에 그는 어떤 삶을 사는가’에 대한 이야기로도 읽혔고요. 

맞아요, 사실 장례식장에 가면 눈물이 쏟아지는 건 남아 있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롤랑 바르트는 죽음의 경험을 ‘주름’이라고 표현하더라고요. 그런 경험이 주름으로 남고, 작가는 그 주름을 바라보면서 계속 애도하는 글을 쓰는 자라고 했는데요. 그 문장은 저도 무척 동의해요. 『선릉 산책』에 실린 소설은 그런 마음으로 쓴 것들이에요. 그런데 저는 이 소설들이 결코 슬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슬픔보다는 쓸쓸함이라고 할까요. 그게 나쁜 게 아니라 의젓해 보이고요. 그것이야말로 진짜 파이팅 같아요. ‘그렇지, 그렇게 됐구나’ 하고 사는 게 좋아 보여서요. 그런 마음이 소설 안에 들어간 것 같아요. 저는 「사라지는 것들」에 쓴 것처럼 큰 슬픔 이후의 날들에 만만한 사람 한 명 옆에 두고 푸념하면서, “죽을 거야”라고 말해도 “일단 오늘은 말고” 하면서 사는 게 좋아요. 



나는 입장이 있고 나는 막을 거다

방금 “만만한 사람 한 명 옆에 두고”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저는 『선릉 산책』의 힘겨운 화자들 곁에 그가 더 바닥으로 내려가지는 않게 손을 잡아주는 존재들이 계속 등장해서 정말 좋았어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우리는 그런 사람을 노력해서 찾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미스터 심플」에서 ‘미스터 심플’이 화자에게 고민 끝에 글을 좀 봐달라고 말을 걸죠. 화자 역시 마지막에는 이 사람이 너무 걱정된 나머지 글을 한 번 더 봐주겠다고 더 써보라고 해요. 살리려고 애를 쓰는 거예요. 그러한 작은 도움이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것도 아니고 운명처럼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런 사람을 찾으려면 일단 자기가 누군지 알아야 하고요. 내가 어떤 결핍을 갖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뒤에 곁에 둘 만만한 사람을 찾아야죠. 이때 만만한 사람은 감정이 쓰레기통처럼 여길 사람이 아니라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고요.

그 중 특히 작가님이 깊이 연대감을 느끼는 인물이 있다면요? 

거의 제 마음에서 출발해서, 전부인데요.(웃음) 굳이 꼽자면 지금 저에게는 「사라지는 것들」의 ‘성수’ 같아요. 뭔가 마음은 있는데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갖고 있는 그 답답함 때문에요. 성수는 솔직하게 말하더라도 너무 늦거나 괜히 투덜거리고 짜증만 내는 사람인데요. 성수의 엄마가 죽겠다는 결심을 말하잖아요. 이에 대해 성수는 결국 ‘그런 마음이 든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입장이 있고, 나는 막을 거다’라는 태도를 갖게 돼요. 이런 마음이 돕고 싶거나 다가가고 싶은 사람에게 제가 갖는 정확한 마음 같아요. 방법은 모르겠으나 내가 귀찮게 할 거다, 정도의 마음이 가장 솔직한 마음이에요.

다른 작품들의 경우 상황이 전면적으로 좋아지지는 않지만 어쩌면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한 줄기의 느낌이 있는데요. 수록작 중 「두 번째 삶」은 느낌이 좀 달라요. 이 작품은 그렇지 않거든요. 

「두 번째 삶」 같은 경우 다른 모티프가 있었기 때문인데요. 지금은 가해와 피해라고 하는 것에 예민한 시대죠. 제가 그 중 여기서 묻고 싶었던 것은 그 사이에 있는 사람이었어요. 분명히 ‘준범’은 가해자가 맞아요. 그를 두둔하려고 쓴 건 결코 아닌데요. 그러나 가해와 피해 사이에서 진짜 가해를 하고, 진짜 피해를 입는 사람이 있다고도 생각하거든요. 지금은 중간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기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가해와 피해를 구분하고요. 저는 정보를 제공하고 편집하는 미디어, 중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말을 옮기는 자리에 있는 그 사람이 벌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에서도 그랬는데요. 단순히 어떤 범죄자나 악인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시험을 보고, 1등을 가리는 건 되게 공평해 보이지만 아예 처음부터 공부 자체를 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인 사람들이 있잖아요.

팟캐스트 <책읽아웃>에 출연하셨을 때 “단 한 사람의 편을 드는 것이 소설”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죠. 「두 번째 삶」을 읽으면서 그 단 한 사람에게 깊이 들어가보려는 마음이 느껴지더라고요. 

오만해 보일 수 있지만요. 작가로서 갖는 가장 큰 욕망 중 하나는 한 인물을 신처럼 파악해보는 거예요. 늘 저는 한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는데요. 그 한 사람 입장에서 생각할 때 그가 자신의 삶에서 책임져야 할 게 너무 많다, 지나치게 과중하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어떠한 사람이 너무 큰 찬사를 받기도 하고, 누군가는 너무 큰 죄책감을 갖기도 하고요. 그런 것을 질문하고 싶었어요. 



작가가 자기 윤리에 충실해야

앞서 분명히 말씀하셨지만 「두 번째 삶」의 준범은 가해자가 맞죠. 하지만 그 사람의 편을 들어보려고 계속 들어다가다 보면 억울한 부분도 발견이 되고, 이해할 부분도 생겨요. 다만 소설을 쓰면서 생기는 고민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소설이 윤리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우선 작가가 윤리적이어야 해요. 작가의 윤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도덕이나 사회 윤리와는 다른 거예요. 소설의 정신은 한 사람의 이면과 내면, 전후 사정을 살피는 일이거든요. 그게 아니었다면 『안나 카레니나』는 그냥 불륜 소설일 뿐이잖아요. 그 작품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한 사람에게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에요. 그로 인해 사회 윤리가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의 윤리로 이 사람의 사정을 해석해내는 게 저는 문학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안티고네』의 아이러니처럼 말이죠. 왕명을 거역하고, 혈육의 장례를 치른 뒤 사형을 당하잖아요. 그 안티고네의 경우가 저는 단 한 사람의 윤리라고 생각하고요. 작가는 세상의 윤리를 바꿀 수는 없지만 윤리를 스스로 고민에 빠지게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윤리와 어떤 경쟁을 할 수 있는 논리가 필요하고, 그것은 작가가 자기 윤리에 충실해야 될 때 생기는 것 같아요. 

말씀하신 작가로서의 고민이 독자에게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어떤 사안에 쉽게 판단 내리고, 평가하기 쉬운 지금 같은 때에 단 한 사람을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 아주 중요한 일 같거든요. 그래서 그런 고민을 담은 소설을 읽는 일도 의미가 커요. 

최근 오정희 선생님의 『중국인 거리』를 다시 읽었는데요. 너무 좋더라고요. 어떠한 가치 평가도 없이 오직 인물이 자기 삶의 디테일을 꾸리고 있었어요. 이게 저에게는 하나의 영원한 자연처럼 보이더라고요. 하다못해 주변의 연애만 해도 스토리만 놓고 보면 엉망진창이잖아요. 그렇다고 누가 거기에서 가해, 피해를 윤리적으로 따지나요. 그냥 나나 내 친구 속상하게 하는 사람이 나쁜 놈이죠. 우리는 실제로 그렇게 살고요. 인간은 그걸 구분할 수 있는 존재예요. 그럼에도 내면과 감정과 무의식까지 전부 정화된 윤리로만 말해야 한다는 생각은 무서운 것이죠. 저는 그것을 잠정적인 상태로 두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요. ‘행복한 집은 다 비슷하고, 불행한 집은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처럼 그것이 제가 보고 싶은 문학의 세계 같아요. 새로운 작가들의 이상한 글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이코』의 수록 인터뷰에서 "회복될 수 없는 조건을, 사라지지 않는 흉터 같은 것을 몸과 마음에 지니고 있는 인생도 있다. 운명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것. 어쩔 수 없다고 말하게 되는 것. 나는 그것을 소설로 말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작가님에게는 그런 사람들에게 어떤 서사를 주고 싶은 개인적인 욕망이 있으세요? 

그저 그 사람이 입체적인 인간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 사람이 혼자 있을 때, 걸을 때, 웃을 때, 오해 받을 때의 표정들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고요. 가능하다면 내면도 보여주고 싶어요. 어떤 사람의 내면과 이면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서사라고 생각해요. 이미 그는 잘못된 서사에 놓여 있으니까 그의 서사를 바로잡아주는 역할만 해도 되겠죠. 사실 비판도 많이 받았어요. 장애를 도구화한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는 그런 사람들이 마음에서 떠나질 않아요. 동질감이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한데요. 저도 말을 더듬고, 말을 못할 때의 경험이 있거든요. 『내가 말하고 있잖아』에도 나오지만 사람들은 제가 옆에 있는데도 아예 나무처럼 생각했어요. 이때 그 사람에게 언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어가 있고, 감정이 있다는 두 가지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그를 재건해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정말로 안 쓰고 싶어요. 관두고 싶은데요. 거창하게 말해 소명이라고 해야 할지, 쓸 수밖에 없어서 쓰는 것도 있어요.


 

‘왜’라는 이유 없이

작품활동을 하신 지 12년이에요. 처음 소설을 쓸 때와 지금은 많이 다를 것 같은데 어떠세요?

소설가는 연차가 쌓였다고 자동적으로 거장이 되거나 하진 않아요. 어떤 작가든 매 순간 그 소설을 처음 쓰는 작가일 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매번 쓰는 소설의 첫 작가로서 그 소설을 잘 창작할 수 있는 능력과 생각을 갖고 있는 작가여야 될 텐데요. 그것을 잘하고 있는지 스스로에 대한 고민도 있어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서 더 그래요. 학생들에게 하는 말은 다 저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들인데요. 학생들에게 말하기 전에 저 스스로 할 수 있어야 되잖아요. 무엇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창작자의 가장 좋은 창작법은 스스로 그냥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처음에는 내 소설을 누가 읽을지도 몰랐고, 책으로 출간할지도 몰랐던 완전히 자의적인 산물이었다면 지금은 이게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인식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섣불리 세상에 내기 어려워진 지점도 있죠.

소설을 “칠십 편쯤은 썼으면 좋겠다”(269쪽)고 말했어요. 열심히, 꾸준히 쓰는 것이 작가님의 꿈인가요?

작가의 말에 쓰려다가 너무 길어서 뺀 내용이 있는데요. ‘왜 열심히 사는 건 물리적인 걸까’가 지금 저의 화두예요. 누군가가 그냥 열심히 사는데 왜 감동을 주는 걸까요. 나 자신에게도 그것이 왜 필요할까, 생각하거든요. ‘왜’라는 이유 없이 그냥 자신의 루틴을 성실하게 지키는 게 왜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고, 때로는 종교적으로까지 보이는지를 정말 많이 고민해요. 그건 삶의 이유하고도 연관되어 있으니까요. 그러다 무엇이든지 내가 하려던 일을 계속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윤리적이구나, 라고 하는 깨달음이 있었고요. 그렇다면 계속 소설을 열심히 쓰는 건 소설가로서 윤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더 이상 왜 쓰지, 뭐 쓰지, 이런 고민 없이 그냥 쓰는 것을 받아들이는 게 저에게는 윤리적이라고요. 그게 현실적으로 따졌을 때 칠십 편이 된 거예요.




*정용준

2009년 [현대문학]에 단편소설 『굿나잇, 오블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작품으로 『바벨』,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프롬 토니오』, 『가나』, 『세계의 호수』, 『유령』 등의 소설이 있다. 『선릉 산책』으로 황순원문학상과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로 소나기마을문학상을, 『사라지는 것들』로 문지문학상을, 『프롬 토니오』로 한무숙문학상을 받았다. 『지금은 살림력을 키울 시간입니다』에 글을 썼다.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손과 발을 움직여서 하는 일들을 좋아한다. 잘하고 싶은 것은 살림. 계속하고 싶은 것은 읽기와 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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