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이하 『미괴오똑』)에는 우울증을 앓는 한 명의 인터뷰어와 서른한 명의 인터뷰이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그들은 “솔직하게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그것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고통의 목격자”다. 진료실의 안과 밖에서 분석과 이해의 대상으로 머무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파고들고, 공부하고, 소통하고, 연대한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모두 이삽십 대 여성이라는 것. 하미나 작가는 말했다.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을 다 포함하는 방식으로 보편을 말할 수도 있지만, 아주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보편에 가닿는 방법도 있다고 생각해요.” 고유한 개인으로서 그들이 갖고 있는 서사 안에는 공동의 그것 또한 존재한다. “우리가 질병을 서사화할 때, 살기 위해 마주해야 했던 각자의 배경들이 유사하다면, 그것은 더 큰 공간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쓴 이유다.
하미나 작가는 대학에서 과학과 철학을, 대학원에서 과학사를 공부했다. 강남역 여성 표적 살인사건 이후 여성 운동 단체 ‘페미당당’에서 활동가로 지냈고 칼럼니스트, 과학 기자, 글쓰기 교사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다. 작가로 살기로 결심한 뒤부터 《시사IN》, 《한겨레21》, 《한국일보》 등 다양한 매체에 짧은 글을 기고하고 있다.
공통의 경험을 발견하기 위해서
『미괴오똑』은 에세이가 아닌 르포입니다.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와 작가님 자신의 이야기를 함께 쓰셨는데, 이유가 있었나요?
일단 저는 저를 잘 못 믿고요. 저뿐만 아니라 아픈 여자들이 그런 것 같아요. 내 고통에 대해서 적절한 언어를 찾지 못하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타당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은 세월이 너무 길기 때문에, 저의 경험 하나만으로는 쓸 가치가 있는 이야기라고 확신하기 어려웠어요. 나와 비슷한 여자를 찾아다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씩 ‘들을 만한 이야기일 수 있겠다’는 믿음을 쌓아간 것 같아요. 두 번째 이유는, 많은 질병 관련 수기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게 각각의 개별적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분명히 어떤 집단의 경험이 있는데 그게 잘 드러나지 않고 이야기가 안 되고 있다고 느꼈어요. 병명으로 다 환원되지 않는 이야기들을 담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공통의 경험을 발견하기 위해서 많이 만나고 다녔죠.
‘단순히 개별적인 서사만이 아니다, 그 안에 집단의 경험이 있다’라는 생각은 언제부터 하셨어요?
제가 처음 병원에 간 게 2016년이니까, 그때 즈음인 것 같아요. 2016년에 ‘페미당당’ 활동을 하면서 여러 활동을 했는데, 그때 ‘OO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나 페미니즘 관련 사건이 많이 터졌고, 그걸 대응하는 과정에서 친구들이 너무 힘들어하고 우울증을 깊게 앓았어요. 서로 병원에 가라고 제안하기도 했는데, 진료실에서는 그 맥락이 다 삭제가 되는 거예요. 그게 불편했어요. 우리는 우리 고통의 맥락이 뭔지 알고 있었으니까. 병원에서의 경험이 뭔가 불충분하다고 계속 느끼던 중이었는데 마침 제가 석사 논문을 써야 하는 타이밍이었어요. 과학사를 공부하다 보니까 궁금한 게 생기면 책을 통해서 공부를 시작하는 게 저에게 익숙한 방식이었고, 그래서 교과서나 정신의학 서적들을 보기 시작했는데, 역사적으로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여자들이 있는 거예요.
어떤 경험들이요?
시대도 굉장히 멀고 국적도 다르지만, 여자들이 공유하는 ‘내가 정말 미친 사람인 걸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던 거죠. 그리고 미친 사람으로 치부되는 건,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는 상황인 거잖아요. 그 사람의 판단, 인지를 믿지 않잖아요. 그 역사가 유구하다는 게 좀 충격이었죠. 저랑 비슷한 사람들이랑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었어요. 이건 되게 역사적이고 유구한 문제이고 우리에게는 선배들이 있다는 것. (웃음)
서른한 명의 인터뷰이와는 어떻게 만나셨어요?
초반에는 제가 직접 컨택한 사람들과 만났어요. 주변부터 시작해서 가까운 친구들, 글방에서 글쓰기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 그러다가 좀 한계가 있다고 느꼈고, 무엇보다 수도권 외 지역의 사람들을 만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겨레21》에 기사를 쓰면서 ‘이런 이야기를 쓰고 있으니, 인터뷰하시고 싶으신 분들은 연락 달라’고 썼는데, 기사가 나가고 나서 진짜 많은 이메일이 왔어요. 정말 다양한 곳에서 자기 이야기를 담아서 보내주셨는데, 이메일이 쌓여가는 걸 보면서 답장을 할 엄두를 못 냈어요. 한 달 정도 지난 뒤에야 제가 평소에 만나기 어려웠던 분들이나 조금 다른 맥락이 있다고 생각되는 분들에게 연락을 드리고 진행하게 됐죠.
‘《한겨레21》 르포작가 지원 공모제’에 당선된 뒤였나요?
그렇죠. 공모전에 당선이 돼서 하게 된 일이었어요.
책의 부제가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 여성 우울증’입니다. 첫 장에서 ‘남성 우울증과 달리 여성 우울증은 어떤 시선과 평가를 받아왔는지’ 살펴볼 수 있었는데요. 작가님이 진료실에서 받은 느낌은 어땠나요?
처음 병원에 갔을 때 되게 세련돼 보이는 젊은 남자 선생님을 만났어요. 저의 오해일 수 있지만, 너무나 안쓰러운 표정으로 하지만 영혼 없는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셨어요. ‘정말 안 되셨군요, 안쓰럽군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은 동정어린 시선으로. 그런데 ‘이 사람과 내가 닿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어요. 도와주시려고 하는 거지만 ‘이 사람과 내가 굉장히 구분된 세계에서 살고 있고, 지금 이 사람은 나를 완전한 타자로서 평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리고 저는 환자의 입장이고 그 사람은 저보다 압도적으로 지식이 많으니까 그 사람 말이 다 맞는 것 같고, 그 사람의 한마디 한 마디에 내 인생이 순식간에 정리되는 경험을 하는데, 그게 너무 싫고 불편했어요.
정서적으로 같은 문제를 겪는다고 해도, 여성의 경우는 남성과 다르게 해석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리타’라는 분의 강의를 듣는데요. ‘여성적 공격성의 형상들’이라는 수업을 듣고 있어요. 어제의 주제는 수치였는데 ‘여성이 갖는 수치는 굉장히 인바디드 되어 있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여성의 수치는 여성과 구분되지 않고 즉각적으로 몸으로 나타나는 감정인데, 남성의 수치는 수치라기보다는 오히려 불명예로 여겨진다는 거예요. 디스인바디드 되어 있어서 불명예스러운 일을 겪어도 극복 가능하고 그걸로 성장할 수 있어요. 그 사람의 몸과 불명예스러운 일이 분리되는 거예요. 그런데 여성은 몸과 딱 붙어 있어서 성장하는 동력이 잘 되지 않고, 부끄럽고 감춰야 되는 일들이 되는 거죠. 그래서 존재 자체로 사라져야만 할 것 같다는 메시지를 계속 준다는 거예요.
우울증과도 비슷한 면이 있을까요?
우울증도 여성 호르몬 때문이라고 말하면 몸의 문제가 되잖아요. 그러면 여성과 분리될 수 없는 문제인 거거든요. 남성 우울증은 아빠로서 가장으로서의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말하면 우리가 그 사람을 돌봐야 되는 문제가 되거든요. 힘들지 않게 (원인과) 분리돼야 되고, 그 남성의 취약한 점은 남성의 몸과 함께 있는 건 아닌 거예요. 그래서 그걸 통해서 성장 가능하다는 거고. 그게 저는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제가 공론화나 말실수에 대한 공포가 엄청 큰데 ‘왜 나는 그렇게 산뜻하게 넘어가지지 않을까, 왜 우리에게 그런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을까, 그걸 통해서 성장하자는 결론이 아니라 그냥 조용히 입 다물고 있자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이유가 뭘까’ 이런 고민들을 하게 되죠.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1장의 마지막 문장이 “우선 자신의 고통부터 믿어야 한다”예요. 진료실에서조차 여성 환자의 이야기를 신뢰하지 않는 경우가 있고, 그러다 보면 환자도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잖아요. 작가님 본인도, 작가님이 만난 서른한 명의 여성들도, 같은 경험을 했을 것 같아요.
엄청나게 많죠. 저는 진료실뿐만이 아니라 가족 안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아프다고 할 때 그걸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거죠. 자신을 온전히 믿어주지 않고 받아주지 않는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서 우울이나 분노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생각해요. 내 고통에 대해서 적절한 해석의 언어를 찾지 못하고, 자꾸 믿어주지 않는 경험을 하고, 나는 힘들다고 하는데 ‘너는 힘들만 한 상황이 아니야’라는 식의 말이 돌아오는 거예요. 그런데 감정은 어쩔 수가 없는 거잖아요. 내가 힘들고 아픈 건 부정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 건데, 그걸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을 자꾸 마주하게 될 때 감정 시스템이 고장난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애인이 혹은 우리 엄마 아빠가 나를 이렇게 상처 입혔다는 걸 내가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도 감정을 부정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건 유년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이는 거겠죠.
그렇죠. 특히 여성들은 분노를 표현하기가 어렵잖아요. 항상 사근사근하고 친절한 여자의 모습으로 남아야 된다는 압박들이 쌓이고 쌓여서 이십 대 중반쯤에 터지는 게 아닐까 생각돼요. 비슷한 시기에 많이들 터지거든요.
이삼십 대 여성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전체 국민 집단 중에서 이삼십 대 여성이 더 특별해서 그런 건 아니에요. 다 중요하지, 더 중요한 사람들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을 다 포함하는 방식으로 보편을 말할 수도 있지만, 아주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보편에 가닿는 방법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저에게는 이삼십 대 여성 우울증이었어요. 그게 제가 잘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처음에는 중년 우울증이 관심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우리 엄마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이삼십 대의 우울증으로) 좁히는 과정에서, 제가 주변에서 인터뷰이를 찾기도 쉽고 무엇보다 인터뷰를 더 편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 상황을 제가 좀 더 이해하고 있고요. 그래서 택했어요.
세대를 초월해서 보편적으로 읽히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인터뷰이의 이야기가 되게 좋기 때문에, 굉장히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나 주변 사람들을 대입해서 볼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들이 참 신기하죠? 보세요’라는 것보다는 ‘이들이 털어놓는 이야기를 좀 들어주세요’에 가까운 것 같아요. ‘이들이 얼마나 열심히 탐구하고 공부하고 들여다봤는지, 거기에는 당신도 있기 때문에 이들의 눈을 통해서 봐 주세요’라는. 사실 모든 이야기는 특수하지 않아요. 다만 어떤 이야기는 유난히 한 집단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지금의 이삼십 대가 처한 특수한 상황도 있겠죠. 책에 나오는 것처럼 “너희처럼 편하게 자란 세대가 어디 있느냐고, 너희가 가난을, 전쟁을, 민주화운동을 아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이 세대는 생각이 성장해 있는데 사회는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그 간극 때문에 힘들기도 할 거예요.
맞아요. 그게 불안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돼요. 원론적으로는 다 가능한 거예요. 비행기 조종사가 되는 것도 가능하고 삼성전자의 임원이 되는 것도 가능하다고 세상은 말해요. 우리가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이제 여자라고 못하는 세상이 아니라고. 대학 때까지 그렇게 믿고 컸고, 심지어 잘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막상 사회에 나와 보니까 현실은 그게 아닌 거예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계속 부딪히고, 일단 취업에서부터 한 번 확 꺾이죠. 회사에 들어가도 나를 온전히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고. 그리고 저는 성폭력의 경험이 반복적으로 그걸 확인시킨다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인간으로서 이 사람에게 가닿지 않고 있다, 나는 이 사람에게 그냥 성기를 가진 여자다’ 이걸 확인시켜주는 계기들이 성폭력이라고 생각해요. 연인과의 관계도 그렇고요.
이전 세대와는 다른 이유로 다른 고통을 겪고 있는 것 아닐까요.
작업을 하면서 고통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됐는데요. 청년들이 되게 힘들어하잖아요. 여성뿐 아니라 남성 청년도 너무 고통스러워하고 그게 파괴적인 방식으로 가기도 하는데, 인간은 고통이 고립되어 있을 때 그리고 그것이 의미를 갖지 못할 때 훨씬 고통스러워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군가 죽거나 내가 다치거나 앞길이 막혀도, 그게 민주화운동이라는 시대적인 사명과 묶였을 때는 좀 다른 맥락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다 같이 통과하는 공동체의 고통의 경험이 됐을 때, 의미가 부여된 고통은 사람을 좀 파괴시키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런데 내가 의미를 찾지 못할 때 그리고 그게 온전히 내 잘못인 것 같고 다른 사람과 연결되지 못할 때는 다르죠. 대표적인 게 가정폭력이나 성폭력이라고 생각하는데, 밖으로 말하기가 어려운 고통들이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들을 이제 막 발견하는 단계 같아요. 우리가 나이가 들어서 사오십 대가 되면 우리가 겪은 시대적인 어려움들이 되게 중요한 걸로 위상이 높아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것도 그런 작업 중에 하나일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냥 알아서 할게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인터뷰이들이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주체적인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맞아요. 정말 그랬어요. 두 가지를 계속 바랐는데, 하나는 우리의 고통이 인정받아서 이것이 폭력의 피해였다는 걸 말하는 것도 중요했고요. 또 하나는 우리가 그것으로만 이루어져 있지는 않다는 것, 우리가 이걸 되게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있고 나아가려고 하고 있고 그러기 위해서 공부하고 친구들을 찾고 동지를 찾고 거리에 나가서 싸우는 사람들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그게 사실이기 때문에. 그런데 언제나 폭력을 증언하는 자리에서는, 증언이 앞서다 보니까, 증언하는 사람에게서 피해자 외의 정체성이 순식간에 다 사라지고 되게 외로워지는 일이 자꾸 생기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놓치는 것들이 생기고요.
그렇죠. 그 사람이 가진 인간으로서의 복잡하고 입체적인 면들, 무엇보다도 자기 피해를 말하는 그 사람이 굉장히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걸 사람들이 놓치게 되는 것 같아요. 그걸 동시에 계속 말하고 싶었고요. 무엇보다도 그 사실을 인터뷰이들에게 전달하고 싶었어요. ‘지금 우리는 울면서 되게 힘든 이야기를 했지만, 보세요, 저한테 이 이야기를 해준 당신은 진짜 용기 있고 자기 목소리로 자기 이야기를 이렇게나 잘 전달하는 사람이에요’라고. 제 마음속의 독자는 거의 항상 인터뷰이였거든요. 구체적인 얼굴들이 늘 있었기 때문에 그걸 너무 말하고 싶었어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여성은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이미지로 그려질 때가 많았던 것 같은데요. 이 책의 인터뷰이들은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있어요. 자신의 서사나 고통을 직시하죠. 밑바닥까지 파고들어서 실체를 확인하고 이해하려 해요. 그 과정이 괴로울 텐데도 피하지 않죠.
맞아요. 정말 인터뷰할 때마다 ‘이 사람은 진짜 표범이다’라고 느꼈어요. 책에도 썼지만 ‘이 사람은 정말 으르렁거리는 느낌이다, 정말 에너지가 엄청나다’ 이렇게 느낄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자기 몸에 맞지 않는 곳에 있어서 자기가 표범인 것도 잊어먹고 있는 거고, 그 에너지가 어디 가지는 못하니까 자꾸 내면으로 향해서 우울의 형태로 가는데, 어쩜 이런 통찰을 할 수 있을까 놀라웠어요. 그걸 제가 ‘똑똑한’이라고 쓴 건, 학력이나 제도권 교육의 문제가 전혀 아니거든요. 그 정도로 자기 고통을 들여다봤다는 거예요. 완전히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랐는데도 스스로 체득하고 깨달은 거예요. 진짜 내가 하는 생각이 뭔지,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그게 너무 놀랍죠. 진짜 똑똑한 사람들이에요. 엄청 멋있고.
“이들은 미쳐 있고 괴상하지만, 동시에 오만하며 똑똑한 여자들이다.” 이 문장에서 책의 제목이 탄생했나요? 제목은 어떻게 지으셨어요?
『미괴오똑』은 친구가 지어준 제목이에요. 인터뷰이들 녹취를 풀면서 글을 쓸 때, 이 이야기가 저에게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못 건드리고 계속 망한 글을 썼었어요. 길을 못 찾았던 거죠. 그 과정에서 친구들이 피드백을 해주면서 많이 도와줬는데 ‘근데 이 여자들이, 이 미쳐있고 괴상하면서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이 자기 얘기를 너무 잘하잖아’라는 말을 했어요. 이 사람들이 피해자이고 환자만이 아니라 이야기하는 주체로서의 존재라는 걸 지적하는 말이었고, 그게 너무 맞는 말인 거예요. 어떤 전환점이 됐어요. 모든 게 다 혼재되어 있었고 말로 정리가 안 됐었거든요. ‘이게 뭐지? 고통만 말하면 안 되는데, 이 사람들은 되게 다를 수도 있는데 이걸 어떻게 동시에 말하지?’ 혼란스러운 상태였는데 기준이 될 줄기를 찾은 거예요. ‘아, 이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으로서의 존재이구나.’ 거기에 초점을 맞춰서 우울증이라는 말을 빼고 이 제목을 만들게 됐습니다.
인터뷰이들이 메일을 보내온 적도 있었죠? 작가님은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엮으셨고, 인터뷰 과정에서 모두가 글쓰기를 한 셈이에요. 대화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는 또 다른 지점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쓰는 행위는 내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더 중요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쓰는 것이 역사가 되잖아요. 그래야 멀리 갈 수 있고 누군가의 참고 문헌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미괴오똑』이 나오고 나서 얼마 안 돼서도 계속 인용 요청이 들어왔어요. 어떤 작가의 소설을 비평하는 글에 인용되기도 하고, 의료를 다루는 교과서에도 환자의 경험으로 인용이 되는 거예요. 저는 과학사를 공부했으니까 어떤 문제가 중요하게 여겨지려면 인용할 수 있는 글이 돼야 된다는 걸 알고 있긴 했거든요. 세상에서 권력을 가진 지식은 ‘쓰인 글들’이기 때문에. 그걸 하는 과정이었죠.
마지막 꼭지의 제목이 ‘상처는 자긍심이 될 수 있을까’예요. 작가님은 가능해지셨어요?
아니요, 아직이고요. (웃음) 자긍심이랑 자랑스러운 건 좀 다른 것 같긴 한데... 모르겠어요. 저도 항상 거기서 계속 미끄러져요. 아까 얘기한 여성의 수치가 몸과 붙어 있다는 이야기랑 되게 비슷한 것 같아요. 여전히 누가 저한테 조울증 환자라고 이름을 붙여버리면 수치스럽거든요. 말하기 좀 어렵고 탁 막히는 게 있어요. ‘그런가? 나 미친 애인가?’ 여전히 그 앞에서 약간 작아지는 거죠. 그리고 그건 제가 회복하거나 아예 없앨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계속 살아가면서 그렇게 지내야 될 텐데... 어려워요. 근데 저는 받아들이는 것까지는 왔어요. 내가 가진 성향으로 삶을 운용하는 것까지는 온 것 같아요. 그냥 이런 나를 포기하고 그냥 살자, 까지 왔어요. (웃음)
포기라고 하셨지만 수용이겠죠.
네, 수용하는 것까지는 왔어요. 그리고 그 수용의 단계에 『미괴오똑』이 엄청난 도움을 줬죠.
다음 작업으로 생각하고 계신 건 어떤 건가요?
하고 싶은 거 많죠. 이걸 쓰면서는 제 안에 규율이 너무 많았어요. 하면 안 되는 게 진짜 많았거든요. 사실 그 규율 안에서 엄청 경직된 상태로 썼어요. 그런데 저는 되게 장난이 많고, 웃기고 밝은 면도 분명히 있거든요. 다음 작업에서는 좀 자유롭게 노닐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싶은데, 광기에 대한 얘기는 계속 가져가야 될 것 같고요. 지금은 키워드로만 있어요. 광기, 환각, 환상, 과학, 판타지, 그리고 페미니즘과 여성 사이의 계급. 이런 것들을 계속 가지고 갈 것 같아요. 그리고 좀 더 저를 보호하는 방식으로 썼으면 좋겠어요. 뭔가 내가 잘못해도 쉽게 공론할 수 없는, (웃음) 좀 더 편안하게 상상력을 밀고 나갈 수 있는 방식으로 쓰고 싶어요.
‘나를 더 보호하는 방식으로 쓰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이번 책에서는 그러지 못했다는 의미일까요?
음... 어쩔 수 없었어요. 뭔가 노출시키고 싶어서 했다기보다는, 일단 첫 번째로는 제 경험을 씀으로써 저를 좀 믿고 이게 중요하다는 걸 확인할 필요가 있었고요. 두 번째로는 인터뷰이들이 자기 얘기를 이만큼이나 해줬는데 제가 안 보이는 곳에서 그거를 전달하는 사람의 입장으로만 남는 게 되게 불공평하다고 느꼈어요. 이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했듯이 나도 나의 취약한 면을 공유함으로써 같은 쪽에 서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나왔어요.
더 하고 싶으신 말씀 없으세요?
제가 이 책을 쓰고 또 페미니스트 글을 많이 쓰니까 저에게 어떤 역할을 기대하고, 이삼십 대 페미니즘의 대변자라는 식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저는 그 기대를 충족시키고 싶지 않거든요. 그래서 ‘그냥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살 거고, 페미니스트로서의 정당한 모습 같은 것을 기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누구의 기대도 만족시키지 않고 그냥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뭔가 실망하셔도 어쩔 수 없다는. (웃음) 첫 번째 북토크에서도 이 얘기를 했어요. 너무 걱정되는 부분이었고 저를 옭아맸던 문제였거든요. 아마 제가 뭘 하든 욕할 거예요. 제가 화장을 해도 욕할 거고, 안 해도 욕할 거고, 내 얘기만 하면 내 얘기만 했다고 욕할 거고, 다른 사람 얘기하면 다른 사람 얘기 가져다 썼다고 욕할 거고, 뭘 해도 욕먹을 것이기 때문에... 그냥 알아서 할게요. (웃음)
*하미나 1991년생 출생. 논픽션 작가. 과학철학을 공부하고 싶어 학부에서 지구환경과학과 철학을 함께 전공했다. 과학사및과학철학 협동과정 대학원에 입학한 뒤에는 길을 조금 틀어 과학사를 공부했다. 같은 시기 2016년 강남역 여성 표적 살인사건 이후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여성 운동 단체 ‘페미당당’에서 활동가로 지냈다. 이 시기에 깊어진 우울증을 고민하다 이를 주제로 석사학위 논문을 쓰고 대학원을 탈출했다. 생계를 위해 칼럼니스트, 과학 기자, 글쓰기 교사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다 작가로 살기로 결심, 《시사IN》, 《한겨레21》, 《한국일보》 등 다양한 매체에 짧은 글을 기고하고 있다.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은 그간의 연구와 만남, 고민을 한데 모은 첫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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