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21일. 7년차 출판편집자 이환희 씨가 만 35세 발병한 뇌종양으로 반년간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날, 대한민국 출판계에는 각별한 애도의 물결이 일었다. 유명인이 아님에도 그를 추모하고 애도하는 글이 쏟아졌다. 고 이환희 편집자는 오랫동안 가수 윤종신 공식 팬클럽 ‘공존’에서 총무로 활동했다. 그의 발인 날, 윤종신은 SNS에 추모 글을 올려 ‘이환희’라는 이름은 연예 기사 포털 면을 장식했고, 은유 작가와 노명우 사회학자는 《경향신문》에 각각 칼럼을, 김현 시인은 출판잡지에 ‘이제야 당신을 알아 갑니다’라는 글을 써 추모했다. 서점 정치발전소는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이환희 편집자 추모 도서전’을 열기도 했다.
이환희 편집자가 세상을 떠나기 전 딱 두 달 전, 그의 동료 편집자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환희 편집자를 응원하는 저자, 역자, 동료들의 응원 메시지를 모아 작은 책을 만들고자 하니 짧은 글을 보내 달라”고. 이렇게 각별히 그를 여기는 사람들이 많으니 쾌차할 거라고 믿었지만 그는 6,661매의 글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이환희 편집자는 13년차 출판편집자 이지은 씨와 2016년 결혼했다. 친구 1년, 애인 1년의 시간을 거쳐 두 사람은 손을 꼭 맞잡고 “생활동반자법이 통과되면 이혼하자”고 약속했다. “서로의 남편과 아내가 아닌 온전히 평등한 동반자이길 바랐기에 삶의 동료, 반려자 등이 좀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들어 봐, 우릴 위해 만든 노래야』는 고 이환희 편집자가 생전에 남긴 글과 그의 아내 이지은 편집자가 쓴 글을 교차 편집해 묶은 에세이다. 이환희 편집자의 1주기에 맞춰 이 책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떻게 쓸 수 있었을까, 어떻게 만들 수 있었을까’라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그리고 해답을 책 속에서 발견했다. “우리는 비교적 일찍, 그것도 사별이라는 형태로 헤어졌지만 누구보다 밀도 높게 사랑했다고 자부한다.(59쪽)”는 이지은 편집자의 말. 『들어 봐, 우릴 위해 만든 노래야』는 한 부부의 사랑 서사를 뛰어넘는 책이었다. 누군가를 향한 애도로부터 시작한 글이지만 결국 나를 되돌아보게 하고 관계를 탐구하게 만들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습니다.
‘아, 그러면 내도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딱 1년만에 나온 책이에요. 짧으면서 또 긴, 길면서 짧은 시간이었을 것 같은데요. 책을 쓰면서 어떤 생각을 가장 많이 하셨는지 궁금해요.
책을 쓰는 내내 환희 씨가 계속 사는 방법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서로 모여 그 친구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하며 기억하고, 그 친구가 꿈꾸던 아름다움을 함께 실천한다면 그가 계속 사는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다고 정말 많은 면모를 가지고 있던 입체적인 친구가 고작 ‘편집자 이환희’, ‘이지은 남편 이환희’, ‘윤종신 팬클럽 총무 이환희’ 같은 한 줄로 기억되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 친구가 책 만드는 것을 정말 사랑하고 더 좋은 책을 위해 끝없이 고민했지만 그에 비례해 고통받았고, 제 반려자로서 딱 맞는 짝이었으나 동시에 가부장제와 결혼 제도에 속함으로써 많이 버거워했고, 모두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하고 혼자 곱씹은 뒤에 말을 내뱉는 진중한 타입이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정말 많은 고민과 노력을 했던 친구인 걸 알아주었으면 했어요.
덕분인지 책 출간 이후 환희 씨 지인들에게서 연락이 많이 왔습니다. 책 내줘서 고맙다고, 환희의 모르던 면을 발견해 기쁘다고요. 책에 등장하는 준혁 씨는 “환희 울보인 거 세상에 소문 다 났어요”라고 하더라고요.
이지은 편집자님은 『편집자의 마음』을 쓰셨죠. 고 이환희 편집자님이 세상을 떠난 후 몇 차례 출간 제안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책을 출간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첫 책은 예상 독자를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 있었어요. 예비 편집자부터 3년차 내외까지, 사수 없이 혼자 고군분투하는 출판계 후배 동료들의 시행착오를 조금은 줄여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출간했어요. 반면에 두 번째 책인 『들어 봐, 우릴 위해 만든 노래야』는 어떤 이들이 읽으면 좋을지 잘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출판노동자니까, 책을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이들의 공이 들어가는지 잘 알잖아요. ‘고작 일기일 뿐인데 이런 글을 초판 2천 명이 사줄까?’ 출간해도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매일같이 일기를 올리다 보니 점점 많은 이들에게 노출되고, 덕분에 출간 제안 메일이 꾸준히 들어왔습니다. 응원하는 좋아요 수와 댓글들도 계속 늘어났고요. ‘이 글을 사람들이 왜 읽어 주는 거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죠. 많은 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책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제 질문을 받은 지인 가운데 한 분이 입안으로 말을 한참 고르더니 “저는 위로 받았어요”라고 대답해 주더라고요. 듣자마자 제가 그 말을 계속 기다려 왔다는 걸 알았어요. ‘아, 그러면 내도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위로 받았다”는 말이 동기부여가 됐군요.
네, 제가 주저하고 고민을 하니까 한 동료 편집자가 그러더라고요. “편집자들은 왜 그렇게 의미, 의미를 찾아대는지 모르겠어.” 다른 사람들은 출판사에 폐 끼치지 않을까, 세상에 의미를 주지 못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 안 하고 그냥 하고 싶으면 한다고요. 아마 편집자의 습習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출간을 결심하기까지 오래 걸렸던 게 아닌가 싶어요.
출간 제안에 주춤했던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는데요, 사별을 겪은 초반에는 환희 씨 1주기에 맞추어 ‘이환희 문집’을 독립출판물로 만들어야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었어요. 환희 씨 글을 찾아다니는 데 혈안이 되어 있던 때라, 이 글들을 읽을 만하게 편집해 그 친구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종종 그이를 떠올려 달라’는 의미와 함께 선물처럼 전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 애도 일기를 책으로 내자는 제안들에 큰 감흥이 없었던 것 같아요.
두 사람의 글을 함께 묶은 건, 출판사의 제안이었나요?
제가 후마니타스 출판사에 역으로 제안했어요. ‘환희 씨가 남긴 글들을 추려서 내 일기와 엮어보겠다’ '내 책이 아니라 우리의 책을 내고 싶다’고요. 환희 씨가 남긴 글들을 몇 번씩 탐독한 독자이자 그의 속내를 가장 깊이 들여다본 반려자, 매일 남의 글을 들여다보고 엮는 게 일상인 출판편집자인 제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애도라고 생각했어요. 환희 씨의 글과 제 글을 엮은 샘플 원고 두어 꼭지를 첨부해 메일을 발송했죠. 담당 편집자께서 며칠 세심히 고심한 뒤에 제 제안을 수락해 주었어요.
책의 흐름이 시간 순서대로가 아닙니다. 이렇게 편집된 이유가 있을까요?
환희 씨는 스무 살이던 2003년 1월 1일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서 비교적 정신이 온전하던 2020년 9월 21일까지 글을 쓴 사람이에요. 그래서 남긴 글들이 참 많았지만, 책 출간을 상정하고 쓴 것들이 아니다 보니 대부분 조각글이었어요. 한정된 글들 안에서 추려야 하는 상황이라 시간 순서대로 배열하기는 어려웠어요. 제 글을 기준으로 환희 씨의 글을 매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봄부터 겨울, 다시 봄이 돌아오는 계절감이 느껴지도록 읽혔으면 싶었습니다. 다만 꼭지 순서는 제가 면밀히 살펴볼 수 없었어요. 환희 씨 떠난 지 6개월쯤 지난 시기가 최종 원고 인도일이었는데, 제 글을 읽을 마주할 때마다 과거로 돌아가 그 일을 반복해 겪는 것 같아 마음이 너무 무거웠거든요. 아직 탈상脫喪을 하지 못한 주제에 어쭙잖게 덤볐다가 혼이 났던 거죠. 몇 번 시도하다가 포기하고, 환희 씨 글과 제 글을 어울리게끔 배치만 하고 연애부터 이후 이별까지 대충 나열한 뒤에 담당 편집자에게 “죄송해요. 도저히 못 보겠어요”라는 말과 함께 공을 넘겨 버렸어요. 원고도 편집자가 수정 요청하는 내용 위주로만 살폈고, 순서도 필요하다면 다시 배치해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제 원고를 기준으로 독자들이 받아들이기 편한 순서를 고민해 다시 배치하신 걸로 알아요.
환희 편집자님이 쓰신 글 중, 가장 좋아하는 꼭지는 무엇인가요?
‘시작할 때의 마음’에 들어가는 글(16쪽)은 저희가 처음 사귀기로 한 날 밤, 집으로 돌아간 환희 씨가 잠들기 전에 쓴 거예요. 처음 만났을 때의 달뜸이 그대로 전해져서, 그게 너무 예뻐서 당시에 저 글을 캡처해 읽고 또 읽곤 했어요. 이후 제 친구들 사이에서 환희 씨 별명이 ‘환희 버터칩’이 된 결정적 계기가 된 글이에요.
또 ‘당신의 빈자리를 채우는 법’에 들어간 글(107쪽)은 읽을수록 마음 한쪽이 저릿해집니다. “힘든 시기에 당신이 옆에 있는 게 너무 고맙고 좋아서.” 저 말을 하며 눈물을 글썽이던 그의 표정이 여전히 생생하거든요. 환희 씨는 굉장히 여린 친구였는데, 그 감성을 제 앞에서만 드러냈어요. 제게 기꺼이 곁을 내주던 그 친구가 고마워요.
일상을 그리워하는 글들도 마음에 남아요. ‘언제 가장 보고 싶냐는 질문’의 글(339쪽)이 신혼 초 풍경을 표현했다면 ‘나에게 기대지 그랬어’의 글(65쪽)은 질병 이후 평범한 일상을 그리워하는 내용이에요. 두 글이 묘사한 풍경을 보면 환희 씨가 어떤 삶을 행복이라 여겼는지 알겠더라고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평범한 하루하루가 우리에게 행복이라는 걸 당시에는 몰랐죠.
너는 어쩜 그리 강하니
“누구보다 밀도 높게 사랑했다고 자부한다”(59쪽)는 문장에 눈길이 갔습니다. 그 밀도가 책에 담겨 있어서 좋았고요. 이 책을 쓰고 퇴고를 하고서 가장 많이 생각한 것, 느낀 감정은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시엄마가 미워서 쓰기 시작한 글들이었는데, 오히려 시엄마에 대한 미움이 많이 옅어졌어요. 시간이 지나고 사건에서 빠져나온 덕분이겠지만, 글을 쓰고 남들에게 읽힐 만하게 수정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게 되었거든요.
2020년 5월 환희 씨가 뇌종양으로 긴급 수술하고 같은 해 11월 떠나기까지 고작 6개월 걸렸더라고요. 준비 없이 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과정이 저희 가족 모두에게 처음이니까, 날벼락 같은 불행 앞에 서로를 배려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병간호하고 이별하는 과정을 압축적으로 겪으며 저도 많이 예민했고, 한없이 날카로운 저를 대하느라 시엄마도 부단히 고생했겠구나 싶은 마음이 이제야 듭니다. 언젠가 저희 엄마가 그러셨어요. “나는 너 같은 며느리 들어오면 너무 무서울 것 같아”라고. 저도 제가 제 며느리면 감당 못 할 것 같아요. 제가 사랑하는 아들의 반려자니까 저한테 져주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저도 며느리이기 때문에 시엄마와의 갈등이 많이 공감이 됐어요. 더불어 아들을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는 시엄마의 마음도 각별하게 이해가 됐어요.
제게 공감했다는 말씀보다 시엄마에게도 공감해 주셨다는 말씀이 더 감사하네요. 언급했듯이, 처음에는 시엄마가 미워서 글을 썼어요. 저희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별하지 못하게 막는 듯한 그분을 용서할 수 없었죠. ‘우리에게 어떻게 했는지 낱낱이 기록하고야 말겠다’는 마음이 주체되지 않더라고요. 한 친구는 저를 보며 ‘분노가 너를 잡아먹을까 봐 조마조마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저를 어쩌지 못하는 시간들이었어요. 원망할 사람이 필요하기도 했고요.
사람들은 글을 쓰는 이의 입장에 우선 공감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제 글 아래에 시엄마에 대해 안 좋게 이야기하며 제 편을 드는 댓글들이 종종 달렸어요. 그게 또 그렇게 속상하더라고요. 살리고 싶어서 안간힘을 쓰는 그 마음, 제가 왜 모르겠어요. 그런 댓글이 달린 날은 ‘그분도 저도 환희 씨를 사랑하는 마음밖에 없던 것뿐인데, 상황이 저희를 이렇게 만든 것뿐인데’ 싶어서 저희 시엄마를 대변하는 글을 써내려 갔어요. 감정이 널을 뛰었죠.
실제 가족 이야기가 많이 들어 갔는데요. 고민은 없으셨나요?
책으로 엮기로 결심한 뒤에 가장 걱정되는 건 시부모의 반응이었어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의 부모가 제 글 때문에 다치는 건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편집자와 의논해 가족을 향해 널뛰는 감정의 파고들을 최대한 잔잔하게 만들려 노력했습니다. 원고를 다듬은 다음, 시아빠에게 한번 살펴봐 달라고 보내 드렸어요. 원고를 받아보신 시아빠는 “너희가 이토록 알뜰하게 살았다니 참 기쁘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제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부분을 코멘트해 수정하게 도와주시고, 또 제가 속상해했던 부분들은 따로 해명도 해주셨죠. 책에 시부모가 저희 집에 있던 환희 씨 옷을 다 가지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제가 빈 장롱을 보며 한껏 화를 내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그게 당시에는 저를 도우려고 한 행동이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스스로 정리하려면 너무 힘들 테니까 대신 해주려던 거였다고요.
시엄마는 책을 읽으셨나요?
시엄마는 환희 씨를 기억나게 하는 모든 것을 눈앞에서 치워 버리고 계세요. 그 ‘기억나는 모든 것’에는 저도 포함됩니다. 그러다 보니 원고는 보지도 않으셨고, 책도 읽지 않으실 것 같아요. 그래도 출간은 독려해 주셨습니다. 최근 환희 씨 1주기에 만난 시엄마가 “너는 어쩜 그리 강하니? 어떻게 100일 동안 글을 써서 그걸로 책을 만들어 내니. 환희는 어쩜 이렇게 똑똑한 마누라를 얻었을까” 하며 우셨어요. 두 분이 고마워하시는 것만으로도 책 낸 보람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남들과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글쓰기였다
애도의 글을 SNS에 올릴 때, 팔로워가 사라지기도 하고 좋지 않은 댓글을 읽게 되기도 하셨다고요. 지금도 SNS에 일상을 자연스럽게 올리시고 계시는데요. 지금은 어떤 마음인지 궁금합니다.
당시에는 이중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끝없이 바닥으로 추락하고 싶은 마음과, 누군가 저를 한없이 안아주고 위로해 주었으면 싶은 마음이 공존했습니다. 전자의 마음이 클 때는 그저 이불 속에 틀어박혀 한없이 침잠해 버리면 그만인데, 후자의 마음이 클 때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저를 위로할 수 있는 건 환희 씨뿐인데 그 친구는 지금 곁에 없잖아요.
고민하다가 혼자 성당에 갔어요. 잘못을 고백하는 고해성사 보는 자리에서 신부님에게 “시엄마를 미워했습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고해성사를 볼 때 제 뒤에 다른 신도들도 줄을 쫙 서서 순서를 기다리거든요. 다음 사람을 위해서라도 보통은 빨리 보속(천주교식 숙제)을 주고 끝내는데, 그분은 특이하게 어디가 밉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이래저래해서 밉습니다, 대답했더니 갑자기 목소리를 한 톤 높이면서 “마음속에 사탄이 들어서 그렇다”고 하셨어요. 제 마음이 되어본 적도 없으면서 고작 몇 마디 듣고 멋대로 단죄하는 그 말에 속이 상해서 집에 돌아오는 내내 울었어요. 사람에게도 종교에도 기댈 수 없는 신세가 서러웠던 것 같아요. 혼자 있으면서 남들과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글쓰기였어요.
써야 풀리는 마음이 있죠.
이 일이 있기 전에는 개인 SNS에 시답잖은 일상이나 고양이 사진, 정치적 이슈 품평, 읽은 책 리뷰를 주로 올렸어요. 그러다 보니 순식간에 불안과 분노, 원망, 울음 같은 감정들로 가득해진 제 SNS가 기존 SNS 친구들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졌을 거예요. 매번 제 피드에 있는 글에 ‘좋아요’를 눌러 주던 이가 어느 날부터 안 보인다 싶어 찾아보면 어김없이 팔로잉을 끊었더라고요. 어떤 이는 “이제 그만 힘들어하고 어디 여행이나 좀 다녀와라”는 댓글을 달기도 했어요. 그때마다 ‘내가 남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구나. 이제 애도 글을 그만 써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했죠.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남들에게 읽히는 글이라면 효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제 고민을 들은 지인이 한마디 하더라고요. “아니, 언니 글이 싫으면 그 사람이 팔로잉을 끊어야지 언니가 글을 왜 그만 쓰는데요.” 듣고 보니 그 말도 맞잖아요? 게다가 글을 쓰면서 떨어져 나가는 이들보다 새롭게 연결된 이들이 훨씬 더 많아요. 제게는 그들이 나눠 주는 온기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계속 썼습니다.
처음부터 애도 일기는 딱 100일까지만 쓰려고 마음먹었어요. 100일 이후로는 저도 일상을 재건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호스피스 병동에 있을 때 환희 씨에게 약속한 게 있습니다. 제가 당신 몫만큼 살겠다고, 좋은 것도 많이 보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당신만큼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환희 씨 몫까지 살려면 제가 조금 바쁠 것 같아요. 종종 슬프겠지만 저희를 응원해 준 분들을 위해서라도 슬픔 안에만 살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온기가 필요할 때면 한없이 우는 소리로 가득한 글을 올릴 때도 있겠지만 되도록 전처럼 소소한 일상들로 제 피드를 채워 가야겠죠.
비슷한 아픔을 겪은, 겪고 있는 독자가 있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슬픔의 크기는 사랑의 크기와 비례해요. 그러니 참지 마시고 많이 울고 마음껏 슬퍼하시면 좋겠습니다. 돌아보면 한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던 그 시기를 꼭 겪었어야 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그 덕에 비교적 빨리 그의 부재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침잠하는 스스로를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도 괜찮지만, 당신이 얼른 떠오르기를 바라는 존재들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진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손잡아 달라고 말해 주길 기다리는 이들이 분명 곁에 있습니다. 없다고 느껴지면, 저처럼 손잡아 줄 이들을 찾아나서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지금의 이별이 영원한 헤어짐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곧 다시 만날 테고, 다시 마주했을 때 부끄럽지 않기 위해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조금 기운이 생기더라고요.
소중한 누군가를 떠나 보낸 사람이 곁에 있을 때, 가장 좋은 위로의 형식은 무엇일까요?
병원으로부터 환희 씨에게 남은 시간이 3개월 남짓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바로 휴직했어요. 그 친구를 잘 보내준 뒤에 회사에 돌아와 담당 작가들에게 복직 소식을 알리는 이메일을 돌렸는데요.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저자인 산만언니 작가님이 ‘미팅하자’고 짧은 답신을 주셨습니다. 본인 집으로 오라고요. 오래 기다리시게 한 만큼 죄송한 마음이 커서 얼른 미팅 날짜를 잡았죠.
작가님 집에 들어가자마자 그분이 부엌에 서서 프라이팬 위에 얇게 밀전병을 부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어요. 하필 손도 많이 가는 구절판을 만들고 계시더라고요. 제게 미뤄 두었던 책 얘기는 하나도 없이, 아무 말씀도 보태지 않으시고 그저 잘 꾸며진 식탁에 앉혀놓고는 자꾸만 제 접시 위에 그 얇은 밀전병을 올려 주셨어요. 당시 입맛을 잃어버려서 하루에 밥 한 그릇 정도 먹던 때였는데, 그날은 식탁 앞에 앉아 훌쩍거리면서 그 밥을 양껏 먹었어요. 그때 깨달았죠. ‘위로는 그냥 말없이 곁에 앉아 밥 한 끼 내주는 거구나.’ 그리고 감탄했어요. ‘한껏 불행해 본 사람은 불행한 사람을 어떻게 위로해야 되는지 아는구나.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날이 불행의 효용을 깨달은 유일한 날이에요.
불행에 빠진 이에게 힘내라는 말, 괜찮냐는 말들은 너무 공허해서 닿지 않아요. 그보다는 말없이 저를 한껏 껴안아 준 사람, “휴지로 눈물 닦으면 눈가 다 짓무른다”며 손수건 한 장 건네준 사람이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는 사람 옆에서 ‘그만 울라’고 하지 마시고, 말없이 기다려 주세요. 어깨가 필요할 때 가만히 내주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어떤 독자들이 각별히 이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최근에 어떤 분이 제 글에 댓글을 달아 주셨는데요, 저와 비슷한 시기에 반려자를 떠나보내고 제 글을 읽으며 꼭 자기 마음 같아서 위로 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첫눈이 오는데 연락할 사람이 없다는 글도, 어떤 것을 보아도 당신과 해본 것과 못 해본 것, 가본 곳과 못 가본 곳, 먹어본 것과 못 먹어본 것으로 구분한다는 글도,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 보면 ‘저 사람은 어떻게 저 나이까지 살아 있지’ 생각한다는 글까지 그분 마음과 꼭 같아서 많이 우셨다고요.
사랑하는 존재를 떠나보낸 적 있는 분, 떠나보낼 예정인 분들에게는 본인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또 있다는 사실, ‘나만 이런 일을 겪는 게 아니구나’라는 마음이 일말의 위안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그랬습니다. 남의 불행이 제 불행을 줄이는 데 하등 쓸모없음에도 그 옆에 있으면 제 불행이 조금 작아 보이거든요. 그게 제 불행의 역할이라면 그분들에게 기꺼이 나눠 써도 된다고 말하고 싶어요.
함께 책을 쓰신 환희 편집자님께, 이 지면을 빌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올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하기 위해 안에서도 밖에서도 치열하게 싸웠던 친구가 제 반려자라 너무 뿌듯했다고, 힘겨운 세상에 태어나 굳이 고된 나를 만나줘 고마웠다고, 다시 만날 때까지 당신 자리에서 안녕하라고, 나도 그러겠다고. 조만간 우리 다시 만나 못 다한 사랑 계속하자고 전하고 싶어요.
*이환희 7년 차 출판편집자, 정치적 삶을 실천하려 노력했던 생활정치인, 윤종신 공식 팬클럽 ‘공존’에서 10여 년간 활동한 ‘종신총무’, 두 마리 고양이의 집사, 그리고 같은 직업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지은의 반려인. 작은 몸에 큰 이상을 담고 살던 그는 만 35세에 발병한 뇌종양으로 반년간 투병하다, 2020년 11월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에 남긴 글 조각은 A4 2094쪽, 원고지로 6661매에 달한다. *이지은 13년 차 출판편집자, 작은 것에 애정을 기울이는 에코페미니스트, 『편집자의 마음』이라는 책을 쓴 작가, 두 마리 고양이의 집사, 그리고 같은 직업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환희의 반려인. 2020년 반려인 이환희와 고양이 리아가 동시에 암을 앓고 같은 해 세상을 떠나자, 이별과 애도의 과정을 담아 글을 썼다. 이 글들은 브런치 누적 조회 수 30만을 기록하는 등 많은 이의 공감을 받았다. |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