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말하는 ‘빠순이’었다. 아이돌부터 운동선수, 정치인까지 수많은 오빠를 사랑하고 존경했다. 화려한 무대 위에 있어야 할 오빠들이 하나둘 신문 사회면의 주인공이 되었고, 뜨거웠던 사랑은 허망하게 끝나버렸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라는 유명한 시구가 내 이야기 같았다. 20대부터 30대 중반까지, ‘덕질’을 인생의 비타민 삼아 살아왔다는 최지은 작가의 이야기다.
너무 쉽게 남자를 사랑했던 시절을 지나, 다음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 최지은 작가의 새 책 『이런 얘기 하지 말까?』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폐허가 된 자리를 돌아보되 거기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자리를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 기울어진 구조 위에서 끊임없이 흔들리지만, 넘어지지 않으려 노력하는 평범한 여성의 이야기다.
쓸까, 말까 망설인 이야기가 많았어요
‘내가 사랑한 남자마다 모두 폐허다’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어요. 이 문장에 반응하는 독자들이 꽤 많더라고요.
이 문장에 반응한다는 건 사랑했던 남자들에게 실망하고, 상처받았다는 거잖아요. 이런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쓴 사람으로서 반응해 주시니 반갑지만, 좋아해야 하는 건지, 슬퍼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웃음)
시를 패러디한 문장이잖아요. 어떻게 이 표현을 쓰게 됐는지 궁금해요.
어느 날 제가 좋아했던 남자 연예인 중 한 명이 성범죄자가 돼서 뉴스에 나왔어요. 그때는 그분을 좋아하지 않을 때였지만, 그래도 씁쓸하더라고요. 한때 나에게 매력적이었던 사람이 알고 보니 그렇게 멋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니까요. 비슷한 시기에 연예인뿐만 아니라 수많은 남성 명망가들의 안 좋은 뉴스가 연달아 터졌고, 그러다 아주 자연스럽게 떠올랐어요. 말 그대로 제가 좋아했던 세계가 다 폐허가 된 거니까요.
작가님과 같은 문제의식이 있으면서도 ‘덕질’을 멈추지 못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죄책감을 느끼거나 내적 갈등을 겪는 분들이 있죠. ‘페미니스트라면서 왜 그런 남자를 좋아해?’라는 비난을 받을까 봐 스트레스받을 수도 있고요. 비난하는 사람의 마음도 이해하지만, 개인의 모든 욕망을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제한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그저 각자가 더 잘 견딜 수 있는, 딜레마가 적은 방향을 선택하는 게 최선이지 않나 싶고요.
책을 끝까지 쓸 수 없을 것 같았다고요. 이유가 있나요?
쓸까, 말까 망설인 이야기가 많았어요. “이 원고는 빼주세요”, “이 이야기는 하지 말까요?” 같은 말을 정말 많이 했는데요. 독자를 가늠하기 어려웠거든요. 첫 책이 미디어 속 여성 혐오 이야기이고, 두 번째 책이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여성들의 이야기라면 이 책은 저의 이야기잖아요. 지금 덕질하는 이야기도 아니고, 이른바 ‘탈덕’한 사람의 이야기인데 이런 이야기가 재미있을까 싶어서 걱정했어요.
걱정과 달리, 재미있게 읽었어요. 더 정확히는 웃픈 마음이었는데요. ‘이런 얘기 하지 말까?’라는 질문에 ‘계속해주세요’라고 답하고 싶었어요. (웃음)
이번 책을 내고 나서 내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안도했어요. 사실 이 책을 내기 전까지, 제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폐쇄적인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거든요. 회사를 안 다닌 지 오래됐고, 예전에 다닌 회사도 일반 직장과는 조금 다른 곳이었기 때문에 내가 보통 사람들과 다른 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데 책을 내고 난 후에 비슷한 일을 겪었다든가 공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죠. 내가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서 좋았어요.
써야 풀어지는 마음이나 생각이 있잖아요. 혹시 이번 책을 내면서 글로 써서 특히 좋았던 이야기가 있다면요?
덕질 이야기죠. 부제가 ‘열정적 덕질과 그 후의 일상’이지만, 사실 덕질 이야기가 많지 않은데요. 책의 분량과 관계없이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한 번쯤 정리하고 싶었어요. 20대부터 30대 중반까지, 덕질은 제 삶에서 아주 큰 비중을 차지했거든요. (웃음) 내가 과거에 왜 수많은 남성을 덕질했는지, 어떤 이유로 그렇게 사랑하던 덕질을 그만두게 됐는지를 한 번쯤 정리할 필요가 있었던 것 같아요. 쓰고 나니 부끄럽긴 하지만, 하길 잘했다 싶어요. 덕질을 그만둔 사람으로서 앞으로는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한 번의 흔들림도 없었던 건 아니에요
말씀하신 대로 덕질 이야기보다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일상 이야기가 더 많아요. 날씬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여전히 날씬해지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고요. 어떤 순간에 그런가요?
지금처럼 인터뷰할 때 그렇고요. 옷 가게에서 ‘이거 안 들어가는데요’라고 말해야 할 때도 날씬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요. (웃음) 생각해 보면 대체로 사람들 앞에 서야 할 때 날씬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 같은데요. 그러니 미디어에 계속 노출되는 사람이라면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감이 얼마나 심하겠어요. 다행히 저는 사람들 앞에 나설 일이 많지 않아서 나를 덜 미워할 수 있게 됐지만, 회사에 다니거나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외모에 대한 강박을 버리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이런 점을 생각해 보면 코르셋을 거부하는 속도도 각자 자신이 처한 상황마다 다르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결혼하고 남편이 생긴 후로, 코르셋을 버리는 일이 더 수월해졌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복잡한 심경이었다고요.
결혼하고 마음이 편해진 건 사실이에요. 더는 이성애 시장에서 평가받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있어요. 나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는 한 사람하고만 사랑을 주고받으면 된다는 사실이 저를 편하게 해주고요. 그런데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게 자존심 상하는 거예요. 책에서 이민희 작가님이 ‘남편과의 관계 안에서 나의 외모 강박감이 줄어드는 게 기쁘지만, 마음이 복잡하다’고 하신 것처럼요.
어떤 복잡함인지 알 것 같더라고요. 아주 모순적인 일이잖아요. 저는 왠지 모를 굴욕감이 들기도 했는데요. 어쩌면 페미니스트로 자신을 정체화하는 건 나의 모순을 선명하게 보는 일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정말 그렇죠. 최대한 모순을 줄이고 싶지만, 누구도 완벽하게 살 수 없는 것 같아요. 2018년 즈음부터 탈코르셋 운동이 대중화됐잖아요. 저도 그전까지는 페미니스트이지만 멋있고, 세련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거든요. 남자들에게 잘 보이고 싶다기보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리베카 솔닛 북 토크 사회 보는데 메이크업 받고 그랬던 거죠. (웃음)
하이힐도 신고 가셨다고요. (웃음) 엄청 솔직하게 쓰셨더라고요. 그날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어요.
그날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더라고요. 자주 생각했어요.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하고요. 사실 오늘도 머리를 드라이하고 왔는데요. (웃음) 리베카 솔닛 북 토크 이후로 깨달은 것 같아요. 기존의 공식을 따르지 않아도, 각자의 방식으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요. 머리를 꼭 길러야 할 필요가 없구나부터 시작해서 통이 넓은 바지가 더 편하구나 등등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더 좋아하는 스타일을 찾아가는 것 같아요.
‘100% 확신을 가지고 하는 선택은 없다’는 문장이 좋았어요. 아이를 낳지 않기로 선택하면서 했던 생각이라고 했는데 사실 모든 선택이 그런 것 같아요.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에도 썼는데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하면서 한 번의 흔들림도 없었던 건 아니에요. 아이를 낳지 않음으로써 인생의 중요한 무엇을 놓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이 있었죠. 지금은 그런 부대낌이나 흔들림이 많이 줄었어요. 어떤 선택을 하든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덜 흔들리게 되는 것 같아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깊이 고민하고 선택하면 ‘이 선택이 맞았구나’하고, 더 빨리 100%에 가까워질 수 있는 것 같고요.
‘어른 여자’는 환상일지 모르지만
젊은 여성과 나이 든 여성의 로맨스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여자 선배를 숭배했다가 실망하고 관계가 소원해졌던 경험, 누구나 한 번쯤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왜 젊은 여성들이 숭배할 대상을 찾아다니는 걸까요?
삶이 어느 정도 자리 잡기 전까지는 다들 혼란스러우니까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존재를 찾는 것 같아요. 그런데 남자는 위험하니까 본능적으로 여자 선배를 찾게 되는 것 같아요. 같은 여자로서 어려움을 헤쳐나간 사람이라는 사실이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저 사람은 이제 나처럼 실수하지 않고, 방황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갖추고 살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그 사람을 숭배하는 거죠.
완벽하다고 생각되는 누군가를 선망함으로써 안정감을 느끼고 싶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나이는 들었는데 아무것도 못 하는 것 같아서 혼란스러울 때 어른처럼 보이는 여자 선배를 만나는 게 큰 위안이 됐어요. 그런데 누구든 완벽하지 않잖아요. 덕질도 마찬가지지만, 누군가를 숭배할 때는 그 사람이 나에게 보여준 것만 가지고 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보여주지 않은 무엇까지 내가 만들어내거든요. 내가 만들어 놓은 판타지를 좋아하는 측면이 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내가 숭배하던 여자 선배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돼요. 그때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실망하고, 멀어지기도 하고요. 노라 에프론의 책을 읽고, 이 사람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걸 알고 놀랐죠.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나만 경험했던 일이 아니구나 싶어서 반갑더라고요.
책을 쓰고 나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또 놀랐는데요. 그때 알았죠. 여자들이 비슷한 시기에 한 번쯤 겪는 일이라는 걸.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때 저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줬던 분들은 ‘얘는 왜 나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나?’ 싶었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이 나한테 얼마나 친절했는지를 생각하면 복잡한 마음 끝에 정말 감사했다는 생각이 들고요.
지금 약간 울컥하신 거 같은데요.
이상하게 저 글을 다시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나더라고요.
고마운 마음에서 나는 눈물일까요?
미안함도 있죠. 관계가 오래 유지되기도 하지만, 점점 멀어지다 끝나기도 하잖아요. 고마운 마음을 충분히 전하지 못하고, 끝날 때가 많고요. 관계가 끝날 때는 내가 받은 게 얼마나 고마운 건지 몰랐으니까요. 그래서 이 글을 쓰면서 마음이 복잡했어요.
그 선생님께서 이 글을 보시면 뭐라고 하실까요?
이미 보셨고요. (웃음) 사실 쓰면서 많이 고민했어요. 글 속에 등장하는 선생님이 제 글을 보실까 봐요. 그런데 책 나오고 얼마 안 돼서 글 잘 봤다고 연락을 주셨더라고요.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끝에 어쩌면 어른 여자라는 건 환상일지도 모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에 공감하는 동시에 그래도 이 선생님은 나보다는 계속 어른이고, 항상 내 앞에 있는 사람이겠구나 싶었어요.
별것 아닌 이야기, 계속할 것 같아요
어머니 이야기도 많이 나오더라고요.
쓰고 보니 엄마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더라고요. 세 번 중에 한 번은 한 것 같아서 민망하기도 했는데요. 사실 제가 엄마랑 아주 친한 딸은 아니에요. 어떤 면에서는 저와 가까운 여자 중에 나랑 가장 다른 사람이어서 신기하게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런데도 어머니 이야기를 계속 한 건 왜일까요?
중요한 사람이니까 저도 모르게 계속하지 않았을까 싶고요. 나이가 드니까 엄마가 얼마나 저한테 최선을 다했고, 개인으로서도 좋은 사람이었는지 알게 됐어요. 왜냐하면 저에 관해서 엄마가 원하는 대로 된 게 거의 없거든요. (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제가 하는 일을 부정하거나 깎아내리지 않으셨어요.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그게 아주 고맙고 대단한 거더라고요.
대단하시네요. (웃음)
제가 아이 없는 삶을 살기로 했기 때문에 부모님이 안 계시면 제 인생에서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는 사라지는 거잖아요.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남은 시간 동안 어떻게 하면 부모님과 잘 지낼 수 있을까 하고 많이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엄마 이야기를 많이 쓰게 된 것 같고요.
저자소개 마지막 문장에도 눈길이 갔어요. ‘본의 아니게 아는 게 진심이 되는 편이다’인데 어떤 의미인가요?
많은 일을 하면서 살지는 않지만, 가능한 마음이 움직이는 일들을 하는 것 같아요. 비장하게 결심하면서 무언가를 하는 편은 아닌데 그게 무엇이든 하려고 하면 마음을 다하게 돼요. 예전처럼 누군가를 무작정 숭배하지는 않지만, 사람에 대해서도 비슷하고요. 사람들이 더 잘 살 수 있게 하는 방법이나 그것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심으로 고민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하고 싶은 걸 하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고요.
책의 마지막 문장이 재미있어요. 문장이 완결되지 않은 채 ‘그리고’라는 접속사로 끝나는데요. 그리고 다음에 어떤 내용이 이어질까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 이야기가 독자에게 어떤 의미와 재미를 줄 수 있을지 계속 의심하면서 썼다고 했잖아요. 책을 내고 나서 별것 아닌 것 같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어주고 공감하는 분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요. 이제는 조금 제 글을 믿을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도 편한 마음으로 더 별것 아닌 이야기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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