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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작가] 곽민지 “보이지 않아서 내가 쓴 비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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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 ‘관찰형 예능’ 에세이

본격 비혼라이프 가시화 방송, 팟캐스트 ‘비혼세’를 시작했을 당시, 곽민지 작가는 프리랜서로서 코로나 시대를 헤쳐가고 있었다. 시작은 단순했다. 세상에 비혼 싱글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언제까지 기혼을 기본값으로 설정한 콘텐츠만 보면서 살아야 하나? 남이 하지 않으면 내가 하자는 생각으로 기획한 팟캐스트는 ‘망한 연애 올림피아드’, ‘비혼 경조사’ 등 주옥 같은 에피소드를 탄생시키며 누적 조회수 800만을 기록했다.

“미디어를 보면, 기혼자나 곧 결혼을 할 사람 이 두 가지만 다루는 게 답답했어요. 1인 가구를 보여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도 꼭 마지막 질문은 ‘결혼은 언제 할 거냐’로 끝나고요. 결혼을 아예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정말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저만 해도 결혼을 하지 않은 프리랜서이고, 주변에 혼자 사는 친구들이 많아요. 다들 평범하게 똑같이 살아가거든요. 무언가를 강하게 주장하기보다는, 이 사람들이 결혼한 사람만큼이나 흔하고 자연스럽게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팟캐스트가 조금씩 애청자를 늘려가던 초기, 눈 밝은 편집자가 ‘비혼’에 대한 책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비혼’ 이야기로 출발했지만, 결혼을 권하는 사회를 헤쳐가는 한 사람의 일상이 담겼고, 인간 비혼세를 보여주는 ‘관찰형 예능’ 같은 에세이가 됐다.

“팟캐스트를 시작한 지 한 달 밖에 안 됐을 때, 편집자님이 먼저 연락을 주셔서 비혼을 주제로 하는 책을 한 권 만들자고 제안하셨어요. 처음에는 솔직히 책이 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어요. 팟캐스트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비혼 이야기를 실컷 하는데, 책 한 권 분량의 이야기가 나올까 걱정이 됐었거든요. 그런데 확실히 글로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책을 쓰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많이 발견해서 저도 놀랐어요.”

‘비혼’으로 살면서 가장 못마땅했던 건, 선입견이 가득한 질문들. 비혼에는 거창한 결심이 필요하기라도 한 것처럼 ‘무슨 계기로 비혼이 됐느냐’, ‘부모님이 뭐라고 안 하시냐’, ‘노후 준비는 되어 있냐’는 식상한 물음들이 이어졌다. 그 때마다 진지한 답변을 하다가, 좀 더 유쾌한 나만의 대응 방식이 없을까 고민하게 됐다. 책의 제목이 된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에는 결혼을 전제로 하는 세상의 낡은 잣대를 향한, 곽민지식 대응법이 담겨 있다.

“비혼자가 투사처럼 비춰지는 것에 대해서 늘 안 좋은 마음이 있었어요. 그냥 결혼을 선택하지 않았을 뿐인데 사회 제도에 투항하는 것처럼 보는 것도 비혼자에게 덧씌워진 이미지 중 하나니까요. 그래서 처음 떠올린 제목은 ‘그런 질문을 받지 않습니다’ 였어요. 비혼자에게도 해당되는 말이고, 결혼을 했더라도 사회가 기대하는 역할 수행에서 벗어나면 무수한 질문을 받으니까요. 여기서 좀 더 유쾌함을 더할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나온 게 지금의 제목이에요. 무례한 질문을 받았을 때, ‘그런 질문은 받지 않습니다’라고 할 수도 있지만,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 그런 걸 물어봐’ 하면서 웃으며 넘어갈 수도 있잖아요. 그게 우리끼리의 구호처럼 되어도 재밌겠다 싶어서 정하게 됐어요.”



‘비혼’ 하면 외로울 것 같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는 독립된 개인들이 주고받는 다정함으로 가득한 책이다. 작가는 ‘1인 가구 비혼’으로 시작한 기획이지만, 쓰다 보니 점점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겼다고 말했다. 하나의 모습만이 ‘비혼’의 전형적인 이미지로 비치는 것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팟캐스트 <비혼세>에는 법적 결혼을 원하지만 할 수 없는 성소수자나 비혼과 결혼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 등 다양한 ‘비혼’의 사연들이 소개된다. 처음에는 왜 기혼자의 사연을 다루냐는 질문도 받았다. 그러나 작가는 소수자성을 가진 집단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다양한 사례가 가시화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팟캐스트를 시작하고 다양한 사연을 소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류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생겼어요. 제 팟캐스트는 기혼자인 분이나 딸을 양육하는 분도 많이 들으시거든요. 우리 사회에는 결혼을 원해도 혼인신고가 안되는 사람도 있고, 비혼이지만 1인 가구가 아닌 형태로 가족이나 친구와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요. 처음에는 ‘비혼’이라는 주제로 시작했지만, 진행하면서 시야가 많이 넓어졌어요. 청취자분들이 저를 업어 키운 거죠.(웃음)”



결혼과 사랑이 꼭 같은 것일까

사랑의 결말은 꼭 결혼으로 끝나야 할까?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에는 작가가 직접 겪은 K연애의 리얼리티도 등장한다. 결혼을 전제하지 않기로 합의했는데도, 연인의 부모님에게 애써 잘 보이려 한다거나, ‘사람 일은 모르는 거잖아’ 하며 너도 언젠가는 결혼을 하고 싶을 것이라는 넘겨짚음. 거기에 작가는 대답한다.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사랑의 크기가 작은 건 아니라고. 오히려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을 못 해주는 것이라고. 비혼 역시도 똑같이 존중 받아야 할 가치관이라고.

“사람들은 결혼을 기본값으로 정해두고, 정말 사랑하면 언젠가는 결혼하겠지 하잖아요. 그런데 제게 비혼은 똑같이 존중 받아야 하는 가치관이거든요. 이건 두 사람이 여행을 갈 때, 어디로 갈지 정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호주에 가고 싶은 사람과 남미에 가고 싶은 사람이 같이 여행을 떠날 수는 없잖아요. 연애도 그래요. 생각하는 사랑의 모습이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야 건강하게 연애를 할 수 있죠. 여행이라면 나를 사랑하면 네가 같이 남미를 가줘야지 할 수 있지만, 결혼은 그렇게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연애를 시작할 때, 이런 가치관을 밝히고 관계를 시작하려고 해요.”

물론 ‘파워 결혼주의자’로 평생을 살아온 가족들의 이해를 받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끊임없는 소통 끝에, 오히려 ‘비혼’은 가족들과의 새로운 대화 주제가 됐다.

“나의 확실한 정체성을 상대방이 알아주지 않을 때, 좋게 넘어가려고 하면 그 순간은 모면할 수 있겠지만, 그 다음부터는 대화가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희 가족은 말하는 걸 저만큼 좋아하거든요. 서로 답답하니까 의견이 다른 것을 계속 확인하고 물어보는 과정이 있었어요. 물론 평생을 기혼자로 산 부모님을 하루 아침에 바꾸는 건 쉽지 않죠. 저희 아빠는 아직 미련을 못 버리셔서 사위를 주려고 제일 비싼 술을 찬장에 두세요. 제가 작은 사위는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해도 모르는 일이니 안 딴다고 하시거든요.(웃음) 그렇게 완전한 이해에 도달하는 건 어렵지만, 그런 주제를 싸우지 않고 말할 수 있는 것도 굉장히 좋은 일 같아요.”

엄마 ‘쏘냐’는 팟캐스트에 출연하여 딸 못지않은 입담을 자랑하기도 했다. ‘비혼’ 자녀를 둔 엄마로서, 그는 딸의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세상에는 비혼을 택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웬만한 부모님은 서른을 훨씬 넘겨서 따로 사는 딸이 이번 주에 뭘 하고 살았는지 한시간 넘게 듣는 경험을 하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저희 엄마는 방송을 통해서 주변 사람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최근에는 뭘 먹었는지 세세한 정보를 다 알게 되는 거예요. 나중에는 ‘네 나이에 결혼 안 한 친구들이 주변에 이렇게 많다는 걸 몰랐다’고 하시더라고요. 엄마도 평생 기혼자로 살아오셨으니까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의 삶을 보신 적이 없었던 거예요. 그걸 팟캐스트가 많이 도와줬죠.”



우리에게는 다양한 사랑이 필요하다

‘비혼’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아이를 싫어하기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이다. 그러나 작가는 비혼을 하면서 어린이에 대한 생각이 더욱 깊어졌다고 말한다. 기혼자가 겪는 불합리함과 비혼의 입장을 모두 살펴보면서, 양육이 부모만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조카에게 좋은 양육자 중 한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곁에 있어 주었던 어린 시절의 어른들을 떠올리게 되기도 했다. 한 어린이가 자라기 위해서는 무수한 어른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비혼자에게 덧씌워진 이미지 중 하나가 아이를 안 좋아한다는 거예요. 조카를 예뻐하면 ‘애가 그렇게 좋으면 네 애를 낳아라’는 훈계를 듣고요. 그런데 한 사람이 자랄 때는 부모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잖아요.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조건 없이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는 인물이 있다는 건 큰 이모한테서 배웠고, 잘한 것도 없으면서 기죽지 않는 면은 작은 이모한테서 배운 거였더라고요. 길을 잃어버렸을 때, 엄마가 올 때까지 같이 있어줬던 신발 가게 할머니도 떠오르고요. 그 많은 어른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런 어른이 되고 싶고요.”

결국, 한 사람에게는 여러 종류의 사랑이 필요하다. 비혼 생활을 담은 에세이는 그간 애정을 쏟아왔던 대상에 대한 고백으로 이어진다. 번아웃이 오는 순간마다 나를 잡아줬던 ‘최애’ 김이나 작사가와 김희진 선수, 이동봉사로 만난 반려견까지, 결혼과 연애로 포착되지 않는 사랑의 순간들이 일상을 지탱한다.

“책을 처음 기획할 때, 생각한 제목 중 하나가 ‘남편은 없고 최애는 있습니다’ 였어요. 덕질이 얼마나 비혼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지 꼭 말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가장 어렵게 쓴 원고가 ‘덕질’에 대한 부분이었어요. 너무 사랑하다 보니까, 어떻게 쓰면 될지 굉장히 조심스러워지더라고요. 많은 ‘덕질 메이트’들의 검토를 받고 완성했죠.(웃음) 마지막에 김이나 작사가님한테 추천사를 받았는데, 읽자마자 감동을 받아서 울었어요. ‘결국 이 책은 비혼이라는 탈을 쓴, 내가 나를 책임지고 사는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 써주셨는데,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딱 그랬거든요.” 

‘고온의 사랑을 다루는 법에 대한 안내서’라는 김이나 작사가의 추천사처럼,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는 결혼을 택하지 않은 사람이 자신만의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우리에게는 다양한 사랑의 방식이 필요하다. 인터뷰 내내 ‘사랑’에 대해 말하면서, 떠올린 생각이었다.





*곽민지

배우자 없이 태어난 이후 살던 대로 살고 있다. ‘비혼 라이프 가시화 팟캐스트, 비혼세’ 제작자 겸 진행자. 『걸어서 환장 속으로』 『난 슬플 땐 봉춤을 춰』 『미루리 미루리라』 등을 쓴 에세이스트 겸 칼럼니스트이기도 하고, 광고와 텔레비전 프로그램, 모바일 콘텐츠를 만드는 제작자이기도 하다. 곽민아의 동생, 이준과 이솔의 이모, 맥주, 폴댄스, 여자 배구팀 그리고 고유한 사람들을 좋아한다.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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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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