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범죄가 발생하고 ‘사건’과 ‘가해자’에 대한 이야기가 세상에 넘쳐날 때 ‘피해자’는 뒤로 밀려난다. 사건 정황과 범죄 수법, 가해자의 신상과 범죄 동기가 주목 받을 때, 그곳에 피해자의 이야기는 없다.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피해자가 가장 먼저 마주하는 사람과 말과 태도에 대해. 우리는 말하지 않는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감내해야 하는 시간에 대해. 우리는 알지 못한다. 범죄 이후에도 이어지는 피해자의 삶에 대해. 이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는 『용서하지 않을 권리』는 우리로 하여금 듣게 한다. 피해자에게 어떤 생각과 감정이 찾아들고, 무엇이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되는지. 그리고 고민하게 한다. “범죄 피해자의 선량한 이웃”으로서 할 수 있는 일들과 되돌아봐야 할 것들에 관하여.
김태경 저자는 임상심리학자, 피해자학자, 범죄심리학자로서 오랜 시간 범죄 피해자들을 만나왔다. 그들이 후유증을 극복하고 일상을 회복하도록 돕는 동시에, 범죄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것이 알고 싶다>, <PD 수첩>,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 <차이나는 클라스>, <궁금한 이야기 Y> 등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냉철한 분석을 들려주는 이유다. 『용서하지 않을 권리』에도 “범죄 피해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줄어드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이 담겨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는 데만 몇 달이 걸렸다”고 쓰셨습니다. 집필을 결심하시기까지 우려하신 바가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집필 중에도 스스로 경계하신 바가 많았을 것 같고요.
무엇보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례를 제시해야 할 상황이 많을 것 같았기에, 자칫 너무 자극적이거나 적절하지 않은 표현을 사용해서 의도치 않게 피해자에 대한 오해를 조장 내지 심화시킬 것에 대한 염려가 컸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제가 이 책을 쓸 만큼 충분한 경험과 역량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내부검열을 위한 시간도 제법 필요했는데요. 부족하더라도 더 늦기 전에 쓰는 것이 낫다는 주변 사람들의 압박(?)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책에 담긴 이야기, 부제가 말하듯 “피해자를 바라보는 적정한 시선과 태도에 관하여” 오랫동안 말하고 싶으셨을 것 같아요. 말해야 한다는 책임을 느끼셨을 것 같기도 하고요.
네, 짐작하셨듯이 범죄 피해자에 대한 대중의 오해와 편견 해소를 위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껴 시작한 작업입니다. 범죄 피해가 강력한 심리적 트라우마인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 부정적인 측면만 강조하는 기존의 흐름을 끊어야 피해자 보호적인 환경 조성이 더 빨라질 것이라는 믿음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열망이 많이 작용했습니다.
『용서하지 않을 권리』라는 제목에서 ‘용서를 강권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해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피해자 자신을 위해서 용서를 해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교수님의 오랜 경험에 비춰보면 어떤가요?
우리는 일상에서 참 쉽게 용서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용서는 ‘미안하다’는 말을 들으면 자동적으로 생기는 마음 상태가 결코 아닙니다. 부정적인 사건을 수용해서 자신의 삶에 통합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 용서입니다. 이 때문에 용서는 당사자가 아닌 한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고 누구도 강권할 수 없습니다. 한편, 용서는 피해자가 자기 자신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결의 문제가 아닙니다. 용서하기로 마음먹는다고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용서’가 ‘선택’의 문제인 양 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 있습니다. 용서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마음이 너그럽지 못한 속 좁은 사람’으로 낙인 찍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당사자가 아닌 한 용서를 논할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책 제목에 ‘용서’와 함께 ‘권리’라는 말이 쓰여서 참 좋았습니다. 용서를 할지 말지는 피해자가 결정한다는 것, 피해자는 그러한 권한을 가진 주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어요. 피해자가 주체성을 잃지 않고 주변인에게 지지 받는 것이 심리 상담을 진행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나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용서할 권리가 피해자에게 있는 것은 분명하나 그것이 ‘선택’인 양 읽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범죄의 피해자’라는 이유로 그들이 삶의 주체성을 잃은 사람 내지 망가진 사람처럼 처우되는 것이 정당하지 않음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피해자가 범죄 피해에도 불구하고 삶의 주인으로써 주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도록 돕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실제 상담 장면에서도 저는 이런 자세로 피해자들을 대하고 있고, 이것이 피해자들의 통제감 회복-나아가 ‘나아지는 것’에 대한 책임과 권리를 가지도록 함으로써 삶의 재건 속도를 높여주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일상 경험을 토대로 범죄 피해자의 생각과 감정을 추측하며 그것을 이해라고 착각함으로써 무수히 많은 오해를 양산한다”고 쓰셨습니다. 섣부른 추측과 오해를 낳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자신이 아는 것이 ‘세상의 전부’라는 착각을 자주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 인간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아는 것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진리’라고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한 오해와 편견이 누군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므로 평소 내가 가진 상식이 타당한지 자주 검토하고 의심해 봐야 합니다.
“오해가 편견을 형성하고 그것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의 원인이 된다는 점”도 지적하셨는데요. 관련해서 ‘피해자다움’에 대한 집착과 강요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여전히 공고한 피해자에 대한 편견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것은 어떤 형태의 2차 가해로 이어지나요?
무엇보다 피해자는 망가진 사람다워야 한다는 편견이 지배적인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는 울고, 두려워하고, 매달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상태에 놓여 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관련 전문가들조차도 범죄 피해자라면 응당 이런 상태에서 오랜 시간 동안 고통스러워하리라고 예상하는 것 같으며, 이 때문에 쉽게 PTSD(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포함한 정신장애 진단을 내리고 과잉보호 하거나 과잉 의존하도록 조장하기도 합니다. 물론 범죄 피해가 극도의 고통감을 초래할 만한 트라우마 사건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사건의 유형이나 가해자와 피해자 간 관계, 피해자의 인구통계학적 특성, 사건 후 경과된 시간의 양과 질 등에 따라 후유증의 양상은 매우 큰 차이를 드러냅니다. 누군가는 좀 더 빨리 회복하고 누군가는 좀 더 느리게 회복하고, 심지어 누군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이 악화되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들이 같은 방식, 같은 속도-좀 더 정확히는 자신들이 정해 둔 방식과 속도로 회복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충분히 오래 피해자가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피해자답지 못하다고 비난하고, 지나치게 오래 고통스러워한다고 생각되면 나약하고 망가진 사람 취급하는 모순을 드러내곤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피해자에게는 2차 가해로 경험될 수 있습니다.
책에서 ‘피해자의 회복과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이웃의 역할’을 알려주셨어요. 상황 별로 세세하게 짚어주셔서 큰 도움이 됐습니다. 말하기보다 듣기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것, 어설픈 위로나 공감보다는 침묵이 낫다는 것, 두 가지 사항이 기본이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네, 정확히 짚어주셨습니다. 묵묵히 피해자가 고통의 시간을 안전하게 잘 버텨내도록 곁을 지켜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진심을 담은 위로도 피해자에게는 공허한 말로 들릴 때가 많다는 것을 기억해 둬야 합니다.
‘제대로 된 공감’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그 사람의 마음을 ‘내’가 아닌 ‘그 사람의 견지’에서 헤아려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의 경험이 아닌 그 사람의 경험으로 들어가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쉽지 않을 수 있는데요. 잘 이해되지 않으면 어설프게 이해한 척하기보다 ‘따듯한 마음’으로 곁을 지키는 것이 더 낫습니다.
상담 과정에서 교수님이 가장 많이 건네시는 말은 무엇인가요?
제가 트라우마 상담 과정에서 내담자에게 가장 많이 건네는 말은 ‘당신의 지혜로운 자기의 힘을 믿으세요’입니다. 이 말은 범죄 피해로 인해 자기의 일부가 상처를 입었음에도 (다친 영역이 아니라) 여전히 온전하게 남아 있는 커다란 자기 영역이 있음을 알리고 그 힘에 주목하도록 안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이 말이 범죄 피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담자가 자기 삶의 주인이며, 자기 삶의 최고 전문가라는 감각을 유지하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가장 많이 삼키는 말이 있다면요?
애써 삼키는 말은 ‘나아질 것입니다’라는 표현입니다. 물론 나아지지 않을 것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하는 피해자에게는 확신감 있게 나아질 것이라고 반복해서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살인사건에서는 적당한 시기가 되기 전까지는 절대 나아질 것이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유족들이 (스스로) 나아지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라고 말해주실 때도 있나요?
상담 과정에서 제가 먼저 ‘용서’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경우는 (적어도 제가 기억하는 한) 없습니다. 다만, 피해자가 먼저 ‘용서’를 언급하는 경우에는 용서의 의미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합니다. 그런 다음 선택은 피해자 스스로 하도록 돕습니다. 용서하겠다고 마음을 먹어야만 편안함을 조금이라도 느끼는 사람도 분명 있으니까요. ‘용서하지 않는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서둘러 ‘용서’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는데요. 그것 역시 그들의 선택이니 하고자 하는 대로 두는 것이 제 원칙입니다. 하지만 언제든 용서하기를 취소할 수 있다고 꼭 말합니다. 그것 역시 피해자의 선택이니까요.
트라우마 피해자를 상담하는 과정에서 ‘대리 외상’을 경험하거나 ‘연민 피로(compassion fatigue) 증후군’을 겪기도 한다고요. 교수님도 후유증을 경험했다고 하셨는데, 그 시기는 어떻게 지나오셨나요?
연민 피로(compassion fatigue) 혹은 공감 피로(empathy fatigue) 증후군은 STS나 대리 외상, 소진 등과 중첩되는 개념으로 정서적 혹은 육체적 소진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공감이나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능력이 감소하는 것을 말한다. _192쪽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피해자들의 모습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 대리 외상이나 연민 피로 증후군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희가 트라우마 상담 과정에서 활용하는 다양한 자가 치유 기술과 동료와의 교류도 그것들을 이겨내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더불어 일상과 일의 경계를 분명하게 구축하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교수님이 하시는 일이, 교수님의 인간관?세계관을 바꾸기도 했나요?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범죄 피해자들이 회복해 나가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인간의 선량한 의지와 내적 지혜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저의 인간관과 세계관을 바꿔주었는데요. 크기에는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누구나 내면에 선량한 부분을 지니고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책에서 “외상 후 성장”에 대해 말하셨습니다. 트라우마적 사건을 경험한 후에도,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성장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를 포함한 트라우마 상담가들은 ‘트라우마 직후’부터 회복을 위한 심리내적 작업이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모든 트라우마 후 증상은 극복을 위한 노력의 결과이며 회복의 징후인 셈이죠.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성장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 속도와 방식에 개인차가 있을 뿐이죠.
*김태경 우석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서울동부스마일센터(강력범죄피해자전문심리지원기관) 센터장으로 재직 중이다. 범죄 피해자들이 후유증을 극복하고 일상을 회복하는 고된 과정을 돕기 위해 힘쓰고 있다. 또한 대법원 전문심리위원, 검찰청 과학수사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형사사법기관의 의뢰를 받아 가해자와 피해자의 심리분석이나 진술 신빙성 관련 자문을 제공하는 임상심리학자이자 피해자학자, 그리고 범죄심리학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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