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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문경민 “세상이 알아야 하는 고통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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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희 씨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입양으로 시작되는 내 과거 따위 없는 셈 치고 잘 살아갔을 터였다.” 열여덟 유리는 생각했다. 딱 2년만 더 있으면 학교도 집도 떠날 수 있는데, 갑작스레 서정희 씨의 죽음을 통보받았다. 그는 “나를 입양했던 사람”이었고 “나를 버린 사람”이었다. 할아버지에게 나를 맡겨 두고 떠난 엄마였고, 동생 ‘연우’의 엄마이기도 했다. 서정희 씨의 죽음 이후 남겨진 세 사람, 유리와 연우와 할아버지는 한 집에서 살며 같은 공간과 시간을 나누게 된다. 그리고 점차 서로의 곁을 내어주고 지켜주는 ‘사이’가 된다. 

유리는 이들을 뒤로 하고 ‘훌훌’ 떠날 수 있을까. 여전히 그러기를 바랄까. 문경민 작가는 “깨어질 것 같았던 우리의 유리가 훌훌 털어 내고 훌훌 날아가기 시작한 것처럼, 이 소설을 읽은 당신께서도 훌훌 하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훌훌』로 ‘제12회 문학동네 청소년 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문경민 작가는 2016년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곰씨의 동굴」로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고, 지은 책으로 『딸기 우유 공약』, 『우리들이 개를 지키려는 이유』『용서할 수 있을까』 등이 있다. 우투리 설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우투리 하나린’ 시리즈를 썼고 『우투리 하나린』으로 ‘제2회 다새쓰 방정환 문학 공모전’ 대상을 수상했다. 



유리의 이미지가 투영된 작품을 쓰고 싶었어요

『훌훌』은 한 입양 가정의 어머니를 인터뷰하면서 시작됐다”고 작가의 말에 쓰셨습니다. 인터뷰하셨던 분께 초고 검토를 부탁하셨고 “그럼요! 당연히 해 드립니다. 그리고 꼭 검토해야 하고요”라는 답변을 받으셨다고요. 

네. 그 순간이 저한테는 굉장히 잊지 못할 순간이었고요. 저 자신도 중증 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예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잘 모르는 고통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그 사람들의 마음이 어떤지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되게 조심스럽게 접근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만약 제가 장애에 관련된 소설을 쓴다면 제 경험도 있고 정보도 많기 때문에 그 안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사실, 진실, 현실에서 벗어날 위험이 없을 거예요. 그런데 입양 관련해서는 제가 아는 게 아니다 보니까, 함부로 소재로 사용해서 당사자들에게 언짢은 기분을 들게 한다든가 우울한 느낌을 갖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고요. 이 이야기를 읽은 입양 가정에서 ‘우리 이야기를 써줘서 고맙다, 잘했다, 훌륭하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초고를 검토하셨던 입양 가정의 어머니는 어떤 말씀을 하셨어요? 

잘했다고 하셨어요. 잘 썼다, 좋다, 고맙다, 이렇게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했죠. 

처음 생각하셨던 제목은 『훌훌』이 아니었다고요. 

네, 『훌훌』은 곽수빈 편집자님이 지어주신 제목이에요. 제 감각으로는 『훌훌』 같은 제목이 안 나옵니다. (웃음) 처음에 원고를 썼을 때 제가 지은 제목은 ‘유리’였어요. 유리의 이미지, 느낌 같은 것들이 투영된 작품을 완성해 보자고 생각하고 시작했었거든요. 지금의 제목을 짓기까지 여러 후보들이 있었는데 『훌훌』이라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는 약간 띵 했습니다. (웃음) 걱정도 하고 고민도 했는데요. 결정을 할 때 제가 도서관에 있었어요. 거기 있는 수많은 장편 소설들의 제목을 쭉 훑어봤는데 ‘유리’ 같은 제목은 너무 많은 겁니다. (웃음) 그런데 아무리 봐도 『훌훌』이라는 제목은 없더라고요. 그래서 독특하다고 생각했고, 단어 자체의 느낌, 뉘앙스가 괜찮았습니다. 사실 이 소설의 내용이 무거운 이야기로 비출 수밖에 없는데, 제목이 그 모두를 잘 감싸 안아서 산뜻하게 만들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유리의 이미지, 느낌 같은 것들이 투영된 작품”을 완성하고 싶었다고 하셨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이미지를 갖고 계셨는지 궁금합니다. 

입양을 주제로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서 SNS에서 어떤 글을 봤어요. 입양 가족의 아버지가 올리신 글이었는데, 외국의 입양인이 테드(TED) 강연에서 했던 말에 주목하셨더라고요. ‘나는 살아오는 내내 깨어질 위험이 늘 있었던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살아왔다’라는 말이었어요. 제가 입양에 관련된 소설을 한 편 써야 된다면 가장 중요한, 가장 깊이 들어 있는 것을 끄집어내서 쓰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는데요. 그 강연자가 말했던 ‘나는 깨어질 것 같은 사람이었다’라는 말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미지를 갖고 작업을 시작해보자고 생각하게 됐죠.

주인공 ‘유리’는 어떤 인물로 그리고 싶으셨나요? 

일단 사람들에게 응원을 받을 법한 아이로 들어서기를 원했고요. 자기 힘, 자기 에너지로 헤쳐 나갈 수 있는 인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소설 속에서 유리는 일상에서의 노동을 걱실걱실 잘 해내는데 그런 힘이 있는 아이로 만들고 싶었어요. 자기 노동을 잘할 수 있는 사람, 잘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 억셈도 있지만 이면에는 여전히 불안하고 깨질 것 같은 구석도 있는 사람으로 점점 만들어 가게 됐습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

소설 초반에 유리를 입양한 엄마 서정희 씨가 사망합니다. 그리고 유리는 자신과 성씨는 같지만 아빠는 모르는 ‘연우’와 같이 살게 되는데요. 연우라는 인물을 등장시켜야겠다고 생각하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유리가 현재 처한 어려운 상황들이 있잖아요. 답답하고 불안하고, 탈출하고 싶기도 하지만 그게 근본적인 해결은 아닌, 그런 상황을 헤쳐 나가야 되는데요. 그 문제가 자기 자신을 챙기거나, 대학 시험을 준비하거나, 할아버지가 짜놓은 계획대로 돈을 받고 집을 나가서 자립하는 것으로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저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통해서, 자기 내부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시선을 돌리는 것을 통해서, 자기 상처도 치유할 수 있고 현재의 어려운 것들도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제 경험담이기도 하고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러면서 자기 삶을 끌고 나가요. 그래서 처음부터 유리가 자기의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누군가를 받아들이고, 돌보는 노동을 하고, 그 존재와 부대끼면서 서로의 속도 까서 보여주고, 그러면서 가족을 이루고 그 연대를 통해서 자기의 상처라든가 어려움 같은 것을 딛고 일어서게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결말에 대한 고민은 없으셨어요?

파국으로 끝나는 소설도 있잖아요. 다 엉망진창이 되고 막 죽고 터지고 폐허가 되고, 그렇게 결말을 낼 수도 있죠. 그런데 『훌훌』은 청소년 소설이고, 소설 자체가 갖고 있는 경향이랄까요 미학이랄까요 정서랄까요, 그런 것들도 동시에 포함하는 결말을 맺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조건 이 이야기를 파국으로 끝낼 수는 없고, 청소년 소설로써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마무리돼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결말 지점에서는 유리가 서정희 씨를 이해하는 장면으로 마무리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고향숙’ 선생님은 계속 유리에게 말을 걸어주는 느낌이었어요. 언제든 나한테 와서 이야기해도 돼, 나는 네 이야기를 듣고 싶어,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할까요. 

위악스러운 인물이 많으면 소설이 훨씬 더 다이내믹해지고 긴장감도 생기는데, 저는 그런 소설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어요. 세상에 좋은 사람들은 실제로 있거든요. 자기 역할을 잘 알고 하는 사람도 있고, 좋은 사람이지만 지난날에는 상처도 있고 어려운 일도 있었던 사람들이 실제로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저는 이 소설에 좋은 사람들, 좋은 어른들이 많이 등장하기를 바랐습니다. 자기 역할을 잘하는 어른들의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이들 사이에 고향숙 선생님에 대한 ‘소문’이 퍼져요. 다른 인물들도 소문에 얽혀있고요. 왜 그런가요?

유리가 두려워하는 것도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비춰질까’에 대한 부분이에요. ‘세윤’은 성장기를 거치면서 어떻게든 그 어려움들을 뚫고 있는 사람이고요. 고향숙 선생님은 그걸 어느 정도 극복하고 자기 아래에 두고 있는 거죠. 자기가 관리하고 있는 상처인 겁니다. 인물들 다 다른 사람들의 말, 시선, 그것들이 가져오는 압박감 같은 것들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갖고 있는데요. 유리도 ‘미희’도 세윤도 각자 대처하는 방식이 있어요. 저에게는 고향숙 선생님 갖고 있는 태도, 상처가 있고 찔리면 아프지만 그것에 넘어지지는 않는 어른의 태도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고통은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져 있을 수 있다

“모든 고통은 사적이지만 세상이 알아야 하는 고통도 있다.” 작가의 말에 쓰신 문장입니다. 세상이 어떤 고통을 아야 할까요?

제 딸에게는 자폐장애가 있습니다. 처음에 사람들한테 내 딸이 장애가 있다는 걸 밝히고 스스로 그걸 인정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시간이 흐른 뒤에 어느 날 가수 이상우 씨의 인터뷰를 봤는데요. 이상우 씨의 자녀도 발달장애가 있습니다. 아이의 장애를 끌어안고 잘 살아가려고 애써왔던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 거죠. 그 인터뷰를 봤을 때 너무 고마웠습니다. 되게 많이 위로가 됐어요. 그때 자기의 고통이라든가 어려움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 뒤부터 내 딸에게는 발달장애가 있다는 이야기나 현재 저의 마음 상태나 사정을 말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책의 작가의 말에서도 밝히셨죠. 

책의 후기에 제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한 것도 이상우 씨의 인터뷰와 약간 맥락이 닿아있는 생각이었던 것이죠. 저는 모든 사람들의 고통은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져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모든 사람의 고통은 다 특별하죠. 장애가 있는 사람의 고통은 특별하고 나의 고통은 덜 특별하고,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들이 운명처럼 맞닥뜨리게 된 고통에 대한 부분, 그리고 사회적인 평등이 전제되어야 자기에게 주어져 있는 삶의 권리를 마땅히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들에게 권리가 있다, 이 사람들도 잘 살아야 된다’라고 같이 이야기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상우 씨의 인터뷰를 보고 느꼈던 위로, 안도감, 연대감 같은 것들이 이 소설을 통해서 당사자들에게 느껴졌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더 하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을까요?

제가 어떤 소설가인가를 생각하면서 양팔 저울을 떠올리곤 합니다. 예술가와 기능공을 가늠하는 양팔 저울에서 저는 기능공 쪽에 조금 더 기울어 있는 소설가라고 생각해요. 저는 소설을 쓰는 게 좋습니다. 정말 잘 쓰는지는 모르겠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건 분명합니다. 단어와 문장으로 탄탄한 단락을 완성하고 사건을 마주한 등장인물의 마음과 행동을 따라가는 일을 좋아합니다. 쓰는 일을 마치고 컴컴한 밤에 집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아직 쓰지 못했다, 나는 아직 내가 써야 할 그 소설을 쓰지 않았다' 하고 되풀이해서 중얼거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제가 언젠가는 더 쓰지 못하는 때가 오리라는 것도 마음에 담고 살아요. 지금 계획하는 작품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이 일에 임한다고 하면..... 너무 오글거리려나요? (웃음)




*문경민

1976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에서 단편 소설 「곰씨의 동굴」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우투리 하나린』으로 2019년 제2회 다새쓰 방정환 문학 공모전 대상을, 『훌훌』로 제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쓴 책으로 고학년 장편 동화인 『딸기 우유 공약』, 『우투리 하나린 1 : 다시 시작되는 전설』, 『우투리 하나린 2 : 멈춘 시간에 갇힌 몸』이 있고, 주니어 소설 『우리들이 개를 지키려는 이유』, 『용서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언제나 말하고 있었어』 등이 있다. 장편소설 「화이트 타운」으로 2021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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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민 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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