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활발발』의 부제에 담긴 ‘담대하고 총명한 여자들이 협동과 경쟁과 연대의 시간을 쌓는 곳’을곰곰이 읽어본다. 양다솔, 이길보라, 이다울, 이슬아, 하미나. 이 이름들과 저 ‘담대하고 총명한’이라는 수식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협동과 경쟁과 연대’는 또 어떤가. 매주 수요일 저녁, 서로의 글을 “존경과 예의”를 담아 정직하게 비평하는 시간. ‘어딘글방’의 시간은 두껍게 쌓여서 지금 곳곳에 찬란한 빛을 내비치고 있다. 그리고 그곳의 중심이 되어주던 사람 ‘어딘’은 『활활발발』에 이렇게 썼다.
“풍성하고 윤택하고 장렬하고 쪼잔하고 비겁하고 명랑하고 다정한 글들이 삶을 찬연하게 만들었다. 축복받은 글방이었다.” _(121쪽)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습니다.
어딘글방과 어딘
책을 보고는 표지에 적힌 ‘어딘’이란 이름에 가장 먼저 눈길이 갔습니다. ‘김현아’가 아닌 어딘이라는 이름을 이 책의 지은이로 넣어야 했던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번 책에 어딘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건 위고출판사 조소정 편집자 님의 의견이었습니다. 작가가 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편집자는 책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종종 작가보다 더 작가의 글을 사랑하기도 하고요. 어딘이라는 이름으로는 처음 내는 책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조금 더 궁금해지는데요. '어딘'이라는 이름에 담긴 작가님의 정체성은 어떤 것인가요?
어딘은 ‘하자센터’에서 창의적글쓰기 프로젝트를 할 때부터 사용한 닉네임입니다. 다양한 연령대의 청년과 청소년이 모이는 글쓰기 모임에서 ‘언니’ ‘오빠’ ‘선배’ ‘후배’ ‘선생님’ 등 사회적 호칭을 쓰는 것이 글을 바라보는 데 혹은 피드백을 하는 데 선입견을 가지게 하지 않을까, 하는 맥락에서 나이와 상관없이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르기로 했습니다. 어떤 글이든 문자를 해독할 줄 안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읽는 것이고, 그러고 보니 책에는 ‘청소년관람불가’가 거의 없지요. 영화라면 ‘영상물등급위원회’ 같은 것이 있는 반면 책의 경우 심의기관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떤지 모르겠네요. 나이가 어린 ‘독자’와 나이가 많은 ‘독자’, 어느 편의 감상이 옳고 그르다고 할 수 없는 문제니까요. 합평의 과정에서 모든 사람의 의견은 평등합니다. 어딘의 의견도 여러 명의 의견 가운데 하나고요. 그리고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순간 약간 뻗대고 반항하고 싶잖습니까, 청소년 시기에는. 저만 그랬을까요(웃음).
작가님은 10년 넘게 글방을 해온 이유를 “재미있어서”(9쪽)라고 하셨죠. ‘재미’라는 말이 함축하고 있는 다양한 감정, 기억과 깨달음을 상상해보았는데요. 글방지기 이전의 김현아와 글방지기 이후의 어딘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어떻게 다른 사람인지 궁금합니다.
‘어딘글방’을 하기 이전에도 사실 다양한 형태의 글방을 했습니다. 20대 때는 ‘청계피복노동조합’에서 ‘문학반’이라는 이름으로 일주일에 한 번 모여 글 쓰고, 책 읽고, 엠티 가고, 문집 만들고 했고요. 학원에서 논술을 가르치면서도 많은 청소년들과 글쓰기를 했지요. 20대 내내 어린이글방도 계속 했고요. 그러니까 어딘글방은 그 연장선상에 있는 활동이었고 저한테는 자연스런 일이기도 했습니다. ‘글’을 매개로 사람들을 계속 만났던 거지요. 글을 매개로 사람을 만난다는 것, 참 뭉클한 시간들입니다. 가장 정직한 모습을 마주할 수 있는 순간이고요.
어딘글방이 배출(!)한 멋진 작가님들이 지금 출판계를 빛내고 있어요. 양다솔, 이길보라, 이다울, 이슬아, 하미나 등. 이분들의 시작과 성장을 지켜본 입장에서 동료 ‘글방러’들의 행보가 각별하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계세요?
그러게요, 참 훌륭한 작가들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냐면, 음... 안쓰러운 마음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의 분투를 잘 아니까요. 그럼에도 그들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질문은 참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라 흥미진진하게 관전하고 있습니다. 『활활발발』 책이 나오고 한 매체의 기자분께서 글방 시절 사진을 보내 달라고 하셨는데요. 아이고야,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습니다(웃음). 이 말인즉슨 우리가 글방을 할 적에는 우리의 이야기가 책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거죠.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면 사진이라도 좀 찍어 둘 걸 그랬습니다(웃음).
그럼에도 쓰고 싶은 사람
무엇보다 글방러들을 ‘동료’로 바라보는 작가님의 태도가 내내 인상적이었습니다. 스승-제자 관계가 아닌 “언젠가 이들이 나의 동지가 되리라는 믿음”(149쪽)을 갖고 있는 존재로서 글방러들을 바라보시잖아요. 이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이는 곧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어른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마음이라고도 생각했거든요.
아마 어딘가에서 우리는 만났을 거다. 눈 내리는 만주벌판, 지리산 어느 골짜기, 광활한 시베리아 평원 그 어디쯤에서, 만났을 거다 이 생에 오기 전 어느 시절에. 밤을 새워 산을 넘고 식어버린 주먹밥을 함께 먹고 서로의 눈썹에 달린 고드름을 바라보며 깔깔 웃지만 눈두덩이 시큰거리던, 이 생에서 다시 보리라 생각지도 못했던 어느 시절에, 단단하고 유연하고 고운 네가 있어 비바람과 배고픔 따위 견디어내었으리라, 아직 이 생이 시작되기 전 어느 시절에.
황지은은 잘 사는 청년인가,
질문하지 않겠다
동지는 판단하지 않는 거다
믿을 뿐이다.
함께 일했던 청년들을 인터뷰한 ’잘 사는 청년’ 시리즈 중 ‘황지은’ 편에 썼던 글로 마음을 대신하겠습니다. 어린이글방을 하면서 늘 생각합니다. ‘이 양반들이 장차 세계를 구할 분들이다.’ 이들의 성장과정에 잠시 참여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지요. 영광의 시절을 만들어낼 분들이니까요.
『활활발발』에는 어딘글방에서 만난 멋진 글방러들의 이야기뿐 아니라 쓰는 사람의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가 가득해요. 글을 쓰는 삶, 글을 통해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얼마나 다를까요? 쓴다는 것은 한 사람의 삶에 어떤 의미를 준다고 생각하세요?
글을 쓰는 삶과 빌딩 청소를 하는 삶과 농사를 짓는 삶은 동등합니다. 어떤 삶이든 스스로의 경험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지요. 글을 쓰는 사람들은 ‘우연히’ 글쓰기를 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글을 쓰는 사람들, 쓰지 말라고 하는데도 쓰는 사람들. 그러니 그들은 글쓰기를 통해 세상을 해석하고 스스로의 삶을 조직하고 관계를 확장해 나가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겠지요. 글을 ‘통’하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고, 글을 ‘통’하지 않고 살았던 역사가 훨씬 더 길고, 글을 ‘통’하지 않고 살아가는 종種이 훨씬 더 많습니다. 코끼리도 개미도 천둥오리도 숭어도 느티나무도 글을 ‘통’하지 않고 생을 살아내지요. 쓴다는 것은 인류에게 큰 의미일 뿐 지구상의 다른 모든 생명들에게는 의미 없는 일이지요. 나무나 베는 일이라고나 할까요.(웃음) 다만 그럼에도 쓰고 싶은 사람은 쓰는 거지요.
한편 작가님은 우아한 독자로 남을 수 있으면, 웬만하면 쓰지 말라고도 하시잖아요.(웃음) ‘그럼에도 써야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업, 이라고 생각합니다. 하하. 글에게 멱살 잡힌 사람들.
그렇다면 작가님에게 글쓰기는 어떤 의미인가요? 시를 쓰는 것이 부끄러웠던 시절로부터 청소년들과 글을 쓰고 그들과 동료가 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쓰는 일은 작가님께 얼마만큼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그냥, 씁니다. 그러니까 제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글은 계속 쓰는 거지요.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일을 할 때도 그 이야기를 글로 썼습니다. 여행학교 로드스꼴라 이야기도 글로 썼습니다. 그 과정에서 만났던 근사한 사람들 이야기도 쓰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하와이 여행을 하면 글로 씁니다. 왜냐, 너무 아름답고 매혹적이고 가슴 아프고 분노하게 되고, 사랑, 하게 되니까요. 그러다보니 쓸 이야기는 너무 많고 그에 비해 나는 아프거나 바쁘거나 합니다. 글쓰기는 그러므로 저한테 특별한 일이라기보다는 일상적인 일입니다.
쓰기의 결기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느냐는 질문에 작가님은 “일주일에 한 편씩 한 번도 빠지지 않고 3년”(106쪽)이라고 답하곤 하신다고요. 꾸준한 수련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일 텐데요. 한편으로는 그 시간에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마음은 무엇일지도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 이러한 시간 앞에 서 있는 분들에게 어떤 말을 전해주고 싶으세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일도 일주일에 한 번, 3년을 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어떨 때는 맹장 수술을 할 때도 있고, 어떨 때는 이사를 해야 하고, 어떨 때는 엄마가 아프고, 어떨 때는 내 시간을 몽땅 털어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글은 그 과정에서 나오는 겁니다. 흔들리고 망설이고 주춤거리면서도, 가는 거지요, 스승과 사형(師兄)과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집요하게 나를 흔들고 길들이려 하고 굴종하게 만들려는 것들, 에 종종 결연하게 맞서야 하는데 그 결기는 오랜 수련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내 몸을 펜으로 만드는 훈련, 은 쉽지는 않지요. 요즘은 펜이 아니라 손가락이라고 해야 하나요.(웃음)
어딘글방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합평이 아닐까 싶어요. 혼자 쓰는 것과 합평을 해나가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명징하고 깐깐하고 정직한 비평의 언어가 쌓이고 쌓일 때 자신의 글에도 엄정할 수 있다”(39쪽)는 말씀이 중요하게 들리는데요.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말”로써의 합평의 의미를 설명해주신다면요?
습작시절, 을 누구나 거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걸작을 쓸 수는 없으니까요. 대부분의 작가들도 아마 습작시절 합평의 경험이 있을 겁니다. 합평은 내 글이 어떻게 읽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모이는 글방에서라면 사실 합평에 큰 상처를 받지 않아도 됩니다. 모두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글에 대해 말하는 것 같지만 동시에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니까요. 내 글도 변변치 못한데 남의 글을 비평하다니, 하는 생각 따위는 버리고 열심히 피드백을 하는 것이 밤을 새며 글을 써온 사람에게 보내는 존경과 예의입니다. 그리고 그 비평의 언어는 고스란히 쌓여 내 글에도 반영되니 합평을 즐기시길요.
글쓰기는 혼자 하는 행위지만 동료의 존재는 또한 각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딘글방의 치열함, 솔직함, 연대가 정말 인상적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어딘글방의 합평 규칙을 듣고 싶습니다.
‘나는 이 글의 최초의 독자다. 글쓴이는 이 글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 사생결단 치열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므로 아주 정직하고 정확하게 내가 읽은 소감을 말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글과 작가는 분리해서 생각한다. ‘나’라고 말해지는 사람조차 글에 나오는 등장인물일 뿐이므로 작가와 글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합평의 과정에서 나오는 종종 개인적인 이야기는 글방 밖으로 옮기지 않는다. 인용은 반드시 허락을 받고 한다.’ 등등입니다.
그런데 합평에는 왜 그러한 규칙이 필요한 걸까요? 어쩌면 이것은 글쓰기의 기본 자세, 쓰는 윤리와도 닿아 있는 이야기 같아요.
‘작가는 어떤 이야기든 쓸 수 있다. 이 세상에 쓰지 못할 이야기, 란 없다. 독자는 자신이 읽은 글에 대하여 어떠한 이야기도 할 수 있다. 다만 작가는 자신이 쓴 글에 대해 독자는 자신이 한 말에 대한 무게를 지면 된다’라는 것이 글쓰기와 책읽기의 윤리, 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라는 자 무릇 세상의 윤리를 의심하고 교란하고 넘어서려는 자, 이므로. 다만 어딘글방에서는 그 내용을 예의를 갖추어 하자는 정도, 라고 보시면 될 듯합니다.
언젠가 글방을 해보고 싶은 분들, 내게 맞는 글방을 찾고자 하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다양한 글방이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경향과 지향도 아마 조금씩 다르겠지요. 나는 어떤 글쓰기를 원하는가, 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고 그에 맞는 글방을 찾아가는 노력을 해보면 어떨까요. 그러니까 글쓰기를 통해 위로와 위안을 얻고 싶은 분도 있을 거고, 글쓰기를 업으로 해보고 싶은 분도 있을 거고, 글쓰기를 통해 사람을 만나고 싶은 분도 계실 거예요. 내 욕망은 어디쯤인지 잘 들여다보고 그에 맞는 글방을 찾거나 혹은 스스로 조직해보시길요.
어딘글방은 지금 어디쯤에 와 있나요? 앞으로도 계속될까요?
지난주에 새로운 글방을 시작했는데 오, 눈부시게 이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품은 사람들인지 함께 긴 여행을 떠나볼 예정입니다. 이 봄을 그들과 함께 보낼 수 있어 다행입니다. 좋은 시절에도 험난한 시절에도 우리 모두 서로에게 다행인 사람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어딘글방에 놀러오세요, 여러분.
*어딘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고, 1993년 전태일문학상을 받았다. 시민단체 ‘나와우리’를 설립해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문제를 풀기 위한 활동을 했고 청계피복 노동조합의 문화학교 일을 하기도 했다. 어린이 글쓰기교실, 입시논술, ‘고정희청소년문학상’ 등 글쓰기와 관련한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동안 학교 안과 밖의 청소년들이 경계를 넘나들며 서로를 지지하고 격려할 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 이후 공교육과 대안교육, 로드스쿨러, 홈스쿨러 등 다양한 영역에 속해 있는 이들과 다양한 문화작업을 기획 진행해왔다. 하자센터에서 청소년들과 함께한 ‘창의적글쓰기’ 프로젝트가 이후 ‘어딘글방’으로 이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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