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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보라 “청각장애인 대신 ‘농인’, 변화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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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보라 감독 ⓒ김선혜

영화 <코다>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은 순간, 이길보라 작가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의 책 『반짝이는 박수 소리』로 ‘코다’를 처음 알았기 때문이다. 『반짝이는 박수 소리』가 처음 세상에 나온 2015년 이후로 ‘코다’를 아는 사람, ‘청각장애인’ 대신 ‘농인’이라 말하는 사람이 하나둘 늘었다. 청인들을 고요의 세계로 처음 안내한 지도 어느덧 7년. 『반짝이는 박수 소리』 전면 개정판을 들고 돌아온 이길보라 작가를 서면으로 만났다. 



‘코다’를 들어봤다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7년 만에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소감이 어떤가요?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처음 출간했을 때는 ‘코다'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는데 지난 7년 동안 코다, 농인, 수어, 장애, 다양성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이 커진 것 같아요.

어떤 순간에 인식의 변화를 느끼나요?

작년에 외국에서 한국어로 번역된 논픽션을 읽는데 ‘농인’이라는 단어가 나왔어요. 원문에는 deaf라고 쓰여 있었고요. deaf를 ‘청각장애인’이 아니라 ‘농인'이라는 한국말로 번역한 거죠. 농인이나 장애인에 관한 책이 아니어서 더 놀랐는데요. 그때 ‘농인’ ‘수어' ‘코다'라는 단어가 한국 사회에 알려졌다고 생각했어요.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처음 냈던 2015년과 비교하면 큰 변화죠. ‘코다’를 들어봤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많아졌고요.

2021년에 영화 <코다>가 나오기도 했는데요.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해요. 

영화는 아주 재미있었어요. 특히 청인 감독이 농인 배우를 섭외하여 수어와 농인 중심으로 촬영장을 만들어갔다는 지점이 좋았고요. 드디어 장애인을 연기하는 비장애인의 어색한 연기를 보지 않아도 되는구나 싶었고, 농인들이 영화의 중심에 설 수 있다는 생각에 더 좋았죠. 농인 중심의 촬영이 영화 연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코다>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죠. 배우 윤여정 씨의 수상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고요. 

아카데미 시상식은 정말 감동적이었죠. 한국인 배우 윤여정이 미국 배우 트로이 코처에게 수어로 이야기하는 장면과 트로이 코처가 손으로 말할 수 있도록 센스 있게 트로피를 받는 장면이 좋았고요. 하지만 한국의 언론이 ‘자랑스러운 윤여정! 장애인 배우를 도와주다'라는 프레임으로 집중한 건 정말 별로였어요. 한국 언론이 더 주목해야 할 게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한국 언론이 놓친 건 무엇이었을까요?

<코다>처럼 ‘코다'와 ‘농인'에 주목하는 영화가 큰 상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혹은 장애인 배우가 아카데미와 같은 큰 무대에서 수상하는 환경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을 해야 했다고 생각해요.


선하고 뻔한 질문이 있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다큐를 즐겨보셨다고요. 왜 다큐가 좋았나요?

논픽션 장르가 좋았어요. 현실에 일어나는 일인데 나의 현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이잖아요. 농인 부모가 가르쳐주지 못하는 것들을 다큐멘터리 영화와 논픽션 장르의 문학 작품에서 만날 수 있었죠. 다큐가 세상의 창이었던 것 같아요.

동명의 다큐 영화도 만드셨죠. 

<반짝이는 박수 소리>(2014)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고 이후 동명의 책을 썼는데요. 처음부터 책과 영화를 모두 만들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영화를 먼저 만들었는데 영화의 이야기를 책으로도 펴내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책을 쓰게 됐죠.

영화와 책은 다른 점이 많잖아요. 표현하는 방식도 달랐을 것 같아요. 

영화를 만들 때는 농인 부모님이 표정으로도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어 좋았어요. 일상의 소리라는 게 얼마나 작고 크게 느껴지는지 보여주고, 들려줄 수 있었고요. 그런가 하면 책을 쓸 때는 재구성할 수 없는 기억이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서 좋았죠. 영화를 만들고 배급하면서 생긴 이야기까지 전부 다룰 수 있었고요. 영화와 책이라는 두 개의 영역을 넘나들 수 있어서 다행이고 기뻐요.

가까운 사람의 이야기를 하거나 내밀한 무언가를 꺼내 놓다 보면 ‘나’라는 사람에 몰입해서 다른 사람을 주변화하거나 비장해지기도 하는데요. 작가님의 글에서는 그런 점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코다는 농인도 청인도 아닌 끼인 존재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렇다 보니 농인에게 청인을 설명하고 청인에게는 농인을 설명했던 경험이 많아요. 그래서 교차점에서 이야기하는 게 어렵지 않았던 것 같고요. 늘 해온 일이었으니까요.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고 볼 수 있었죠. ‘청인은 왜 저렇게 생각하고 말할까?’ ‘농인은 왜 저렇게 생각하고 말할까?’ 하고요.

경험을 바탕으로 한 노하우라고 할 수 있겠네요. 

물론 처음부터 거리두기를 잘했던 건 아니고요. 영화를 만들고 책을 쓰는 과정에서 연습했던 것 같아요. 영화와 책에 등장하는 ‘보라'와 실제 보라와의 거리두기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지금은 저의 글과 영화에 등장하는 이들이 실제 인물과 같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길보라 작가 혹은 감독이 구축한 세상 속의 사람들이죠.

영화를 상영할 때마다 농인과 농문화, 코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 기뻤지만, 반복되는 선한 질문들에 지치기도 했다고요. 반복되는 것들로 지칠 때 어떻게 회복하나요?

일단 거리를 둡니다. 그 순간으로부터 빠르게 ‘퇴근’해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것들을 하면서 회복하고요. 그래야 다시 반복되는 선하고 뻔한 질문들에 웃으면서 답할 수 있거든요. 한편으로는 선하고 뻔한 질문이 있었기 때문에 저도 질문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왜 한국 사회는 이걸 지금까지 물어보는 거야?’하고요.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노력하면서 지형을 바꾸어나간다고 생각하는데요. 특히 장애 인권에 대한 최근 한국 사회의 반응을 보면 더 그래요.


이길보라 감독 ⓒ윤송이

질문, 그만 받고 싶기도 아니기도 해요

헬렌 켈러가 장애인 인권운동가인 동시에 우생학 지지자였다는 사실을 듣고 놀란 기억이 있어요. 고유한 개인인 동시에 사회 구조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구성원으로서 누구나 겪는 어떤 모순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됐는데요. 작가님은 자신의 모순을 느낀 적 있는지, 있었다면 어떻게 이를 이해하셨는지 궁금합니다.

100% 착하고 옳은 사람은 당연히 없겠죠? 모순까지는 아니지만, 상대방의 반응을 보면서 내 행동이나 발언을 다시 점검하는 것 같아요. 가령 책 속에 사춘기 시절의 보라가 좋아하는 남자애와 걷다가 엄마를 만나서 황급히 모른 척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당시에는 제가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조금 찔리긴 했지만요. 부모의 장애를 숨길 생각은 없었지만, 타이밍이 너무 일렀던 걸 어떡해요.

집에 돌아갔을 때 엄마가 불같이 화내며 ‘네가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너도 내 딸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걸 보고 깨달았죠. ‘엄마가 자신의 장애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데 어떻게 내가 감히 부끄러워할 수 있을까’ 하고요. 그날 이후로 엄마처럼 뻔뻔한 사람이 되기로 마음을 바꾸고, 누구를 만나도 부모님이 농인이고 저의 첫 번째 언어가 수어라고 말해요.

작가님이 기존의 언어 대신 나만의 언어를 찾은 것처럼, 어디선가 자신의 언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혹시 그런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요? 

자기와 비슷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와 완전히 다른 이들의 이야기도 들어보시길 권해요. 가령 저는 이민 2세대 자녀이거나 재일조선인의 경험을 들었을 때 ‘어떻게 코다의 경험과 이렇게 비슷할까’하고 놀라요. 그리고 이것이 코다만의 경험이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는데요. 그러고 나면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세상을 다르게 보는 힘이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할 테고요.

질문을 준비하면서, 작가님은 여러 상황에서 질문을 많이 받는 분이라는 사실을 새삼 생각하게 됐는데요.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있다면요?

맞아요! 이제 그만 받고 싶어요. 그런데 ‘질문을 받지 않을 때가 되면 나는 예술가로서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도달하기 때문에 그만 받는 날을 꿈꾸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웃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코다라서 가장 힘든 점’ ‘부모님이 농인이라서 힘든 점'인데요. 그럴 때마다 힘든 점, 좋은 점 다 있지만, 좋은 점이 더 많을 때도 있다고 답해요.

그렇다면 반대로 아무도 묻지 않아서 아직 하지 못한 이야기도 있을까요? 

글쎄요. 아무도 묻지 않아서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면 다음 작업으로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아마 글이 영화가 되고 영화가 글이 되는 방식이겠죠. 앞으로도 코다의 관점으로 낯설게 보기와 질문하기를 할 것 같은데요. 요즘 한국과 일본을 왔다 갔다 하며 지내고 있는데 여기에서 발생하는 경계인으로서의 관점도 잘 확장해보고 싶어요.



*이길보라(이보라)

글을 쓰고 영화를 찍는 사람. 농인 부모 이상국과 길경희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 아시아 8개국으로 배낭여행을 떠났고, 여행에서 돌아온 후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학교 밖 공동체에서 글쓰기, 여행, 영상 제작 등을 통해 자기만의 학습을 이어나갔다.‘홈스쿨러’, ‘탈학교 청소년’ 같은 말이 거리에서 삶을 배우는 자신과 같은 청소년에게 맞지 않다고 판단해 ‘로드스쿨러’라는 말을 제안했고, 그 과정을 2008년 자신이 제작하고 연출한 첫 영화 <로드스쿨러>에 담았다. 2014년에는 농인 부모의 시선으로 본 세상을 담은 장편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2018년에는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을 둘러싼 서로 다른 기억을 담은 영화 <기억의 전쟁>을 만들었다.



반짝이는 박수 소리
반짝이는 박수 소리
이길보라 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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