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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님 “나를 있게 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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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때마다 눈물이 나는 책. 마음이 따뜻하게 차오르는 책.’ 김달님 작가의 에세이를 읽은 독자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감상을 말한다. 누구에게나 먹먹하게 가닿는 글을 쓰는 작가의 세 번째 책이 출간됐다. 백지 위에서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며 내내 ‘무엇을 더 쓸 수 있을까’고민했다는 작가. 그 막막함 앞에서 그는 주변의 사람들을 생각했다. 자꾸만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얼굴들, 지금의 김달님을 만든 사람들을. 



서른 넷의 김달님이 쓸 수 있었던 이야기 

3년 만에 출간된 책이에요. 소감이 어떤가요? 

이번 책은 ‘성덕’의 책이에요(웃음). 지난 2019년 <책읽아웃>에 출연했을 때 “친해지고 싶은 작가가 있냐”는 질문을 받고 ‘김혼비’ 작가님을 얘기했었는데, 이번에 추천사를 받았어요. 영화 <남매의 여름밤>의 윤단비 감독님도 추천사를 써주셨죠. 제가 사는 창원에는 상영관이 없어서 서울까지 올라와서 영화를 보고, 대본집까지 샀는데 말이에요. 표지 그림을 그려주신 ‘함주해’ 작가님도 오랫동안 좋아했어요. 편집자님이 함주해 작가님의 그림으로 표지를 만드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주셨을 때 너무 신기했죠. 정말 성공한 덕후가 된 것 같아요. 

글을 쓸 때 반복해서 듣는 노래가 있으시다고요. 이번 책을 쓰면서는 어떤 노래를 많이 들었나요? 

최근에 마무리한 원고들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 OST ‘우리 식구(My family)’를 들으며 썼어요. 가사가 없는 연주곡이라 집중할 때 듣기 좋더라고요. 이 책을 만들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노래는 천용성의 ‘보리차’예요. 글을 완성해서 편집자님께 보낼 때마다 글을 쓰면서 들었던 음악의 제목을 메일에 적어서 함께 보냈는데요. 편집자님도 그 음악을 들으며 책을 편집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출간이 늦어졌던 이유에 대해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한 시간만 1년”이었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첫 책 『나의 두 사람』이 ‘30년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을 모은 책이라면 『작별 인사는 아직이에요』는 그 후로부터 1년 동안 할머니를 간병하면서 떠오른 이야기들을 모두 쓴 책이었어요. 그렇다면 이 다음에는 무슨 글을 쓸 수 있을까, 생각하니 막막했어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썼으니 이제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고요. 편집자님께 이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그게 작가님의 삶이라고, 그 안에서 무엇이든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면 된다고 말씀해주셨죠. 덕분에 다시 시작할 수 있었어요. 



비슷해 보이는 일상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지는 생각이 있으니까요. 

맞아요. 저는 여전히 가족에 대해 쓰는 게 좋아요. 제일 쓰고 싶은 이야기이고,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예요. 그걸 빼고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힘들었는데 이번 책을 쓰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앞으로는 우리 가족의 다른 면들을 더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거든요. 예를 들면 지금까지 펴낸 책에서 할머니는 아픈 사람의 모습으로 많이 그려졌는데, 사실 무척 명랑하고 삶을 긍정하는 분이시거든요. 또 다시 책을 쓴다면 우리 가족의 새로운 모습을 더 많이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작가님의 시선이 확장된 느낌을 가장 많이 받은 건 ‘엄마’에 대한 글이에요. 이번 책에서는 경쾌하게 엄마를 회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나의 두 사람』에 실린 ‘마더’라는 글은 서른 살에 썼어요. 당시에는 그분에 대한 원망, 내가 불행하다고 느끼곤 했던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가 글에 담겼죠. 서른 네 살의 저는 그분을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종종 글쓰기 수업을 나가서 중학교 여학생들을 볼 때가 있는데, ‘우리 엄마가 저 나이에 나를 낳았구나. 얼마나 무서웠을까’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특히 이번에 글을 쓰면서 가장 많이 바뀐 건 그분이 나를 버렸다, 떠났다고 생각하기 보다 ‘엄마가 살아보고 싶은 삶을 선택했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거예요. 거기까지 나아가니 저도 좀 더 자유로워지더라고요. 

‘송백’, ‘동춘’, ‘대화’ 등 아버지와 고모들의 이름에 대해 쓴 글도 기억에 남아요. 모두 할아버지께서 지으셨다고요.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 특별하다고 느낀 건 언제부터였나요?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의 이름이 특이하다는 생각을 계속 했어요. 그 뜻을 살펴본 지는 얼마 안 되었고요. 어릴 때는 지금보다 더 낯을 가려서 제 이름을 별로 안 좋아했어요. 교과서에 ‘달님’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긴장되고, 혹시 선생님이 이름을 부를까봐 조마조마하곤 했죠. 그런데 첫 책을 출간하고 달님이라는 이름을 무척 좋아하게 되었어요. 이름과 이미지가 잘 어울린다거나, 할아버지가 멋진 이름을 지어주셨다는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김혼비 작가님도 추천사에 쓰셨죠. “김달님은 어쩜 이름도 김달님이야!” 

추천사를 받고 아이돌이 된 기분이었어요. 제가 BTS의 지민을 좋아하는데 “지민은 어쩜 이름도 지민이지?”라는 말을 자주 하거든요(웃음). 할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정말 좋아하셨어요.



나 혼자서 내가 될 수는 없으니 

이번 책에는 가족뿐 아니라 지금은 연락이 끊긴 어린 시절의 친구, 애인 등 작가님 삶에 영향을 미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어요. 어떤 글을 쓸지 생각하면서 떠오른 의외의 인물이 있나요? 

이번 책에는 두 엄마에 대한 글이 모두 실렸어요. 한 편은 저를 낳아준 엄마에 대한 글이고, 다른 한 편은 아빠의 재혼으로 생긴 엄마에 대한 글이죠. 두 번째 엄마는 ‘서영’이라는 가명으로 책에 등장해요. 사실 여태껏 서영에 대한 글을 써본 적이 없어요. 일기장, SNS 등 그 어디에서도 짧은 문장조차 써본 적이 없는데 문득 이 사람에 대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영을 좋아하는 마음과 별개로, 어색한 마음이 늘 공존했는데 최근에 많이 가까워진 것 같아요. 할머니, 할아버지를 간병하면서 지난 1년간 서영과 대화를 많이 나누었던 덕분인가 봐요. 서영에 대해 쓰게 된 게 가장 의외였고, 가장 애착이 가는 글이기도 해요. 

“사실은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있잖아. 나는 내가 엄마라고 부르는 걸 엄마가 원하지 않을까 봐 망설여진다고(63쪽)”라는 문장에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엄마’를 하나의 애칭으로 삼겠다는 생각도 애틋했어요. 

처음 만났을 때, 서영은 너무 젊고 예쁘고 세련된 여자였거든요. 줄곧 그녀를 좋아하는 마음이 컸지만 한 번도 표현을 해 본 적이 없었죠. 그런데 서영을 엄마가 아닌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한 명의 여성’으로 생각하니 마음이 훨씬 편하더라고요. 지금도 엄마라고 부르는 게 어색하긴 하지만, 엄마라는 말을 애칭으로 삼자고 생각한 덕분에 한 번씩 불러볼 수 있게 되었어요. 

책을 읽으면서 작가님 주변에는 ‘좋은 어른’이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각해보면 늘 저를 도와주려는 어른들이 있었어요. 고등학교 때는 국어 선생님께서 “엄마가 필요할 때 언제든 나에게 와도 된다”고 말씀해주셨고,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는 제 대학 입시 원서비도 대신 내주셨죠. 지금껏 만난 직장 상사들도 너무 좋은 분들이었어요. 최근까지 다녔던 회사의 상사 분께서는 이런 말씀을 해주시기도 했어요. “언제나 너를 지켜줄 수 있는 어른이 곁에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번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글을 읽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해요. 그들에게서 들은 말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요? 

글 ‘그곳으로 가자’의 주인공인 친구가 “침대 머리맡에 편지 몇 장을 붙여놨는데, 불면증이 오거나 괴로울 때 그 편지를 읽으면 계속 살고 싶어진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그중에 제가 쓴 편지도 있다고요. 이번 책의 낭독 영상을 그 친구가 찍어줬는데, 제가 ‘그곳으로 가자’를 읽었거든요. 책이 출간되기 전에 영상을 찍었기 때문에 친구는 원고의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꼼짝없이 자기에 대해 쓴 글을 듣게 되었죠. 제가 글을 읽다가 몇 번을 울어버려서 NG가 많이 났는데요(웃음). 촬영을 마치고, 친구가 “머리맡에 둘 수 있는 편지가 하나 더 생겼다”는 말을 해줬어요. 그 말이 너무 좋더라고요. 

글쓰기 수업에 온 아이들에게 ‘내가 기쁨을 느꼈거나, 슬픔을 느꼈던 순간 한 가지’를 생각해보라는 과제를 내주셨죠. 작가님께 같은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최근에 느낀 기쁨과 슬픔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가 출간된 게 최근의 가장 큰 기쁨이에요. 독자 분들의 리뷰와 지인들의 응원을 보느라 내내 들떠 있었어요(웃음). 무엇도 이 기쁨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아요. 가장 슬픈 일은 2시간 전에 할머니의 면회가 취소된 거예요. 코로나 때문에 요양병원에 계신 할머니와 대면 면회를 하는 게 어려웠는데, 얼마 전부터 한시적으로 허용되어서 일년 만에 할머니를 만질 수 있는 기회가 왔거든요. 그런데 병원에 또 확진자가 나왔다고 해요. 날씨가 좋을 때 하루라도 빨리 할머니를 만나고 싶어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글을 쓰는 내내 ‘너무 사적인 이야기로 읽히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이 책을 읽은 분들이 “나의 가족과 친구들을 떠올리게 한다”는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책에 “나는 결코 나 혼자서 내가 될 수는 없음이라고(157쪽)”이라는 문장이 있는데요. 여러분을 지금의 여러분로 만들어 주었던 어떤 시절과 사람들을 떠올려볼 수 있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김달님

1988년, 1939년생 김홍무 씨, 1940년생 송희섭 씨의 손녀로 태어났다. 이름은 세상을 밝게 비추는 사람이 돼라는 뜻으로 할아버지가 지어 주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너무 어린 나이에 예기치 못하게 부모가 된 자식을 대신해 오십의 나이에 갓난아이 보호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태어나자마자 할머니, 할아버지와 늘 셋이 함께였다. 할머니가 타 주는 분유, 할아버지가 사 주는 요구르트, 할머니와 캔 봄나물, 할아버지가 숨군 제철 채소, 할머니표 김치국밥, 할아버지가 사 온 돼지고기를 먹고 무럭무럭 자랐다. 열 살에 할아버지가 직접 지은 집으로 이사했는데, 얼마나 좋았는지 “그림 같은 우리 집”이라는 글을 썼고 학교에서 상을 받았다. 지금도 고향집에 놀러 온 손님들에게 할머니가 곧잘 꺼내 놓는 자랑거리. 그 집에서 셋이서 너무 덥지 않게, 너무 춥지 않게 여름과 겨울을 났다. 스무 살에 할머니 할아버지에게서 독립해 지금은 경남 창원에서 사회적기업 공공미디어 ‘단잠’의 기획팀장으로 일하며 매일 글을 쓴다. 2017년 카카오 브런치에 '마이 그랜드마더 그랜드파더'를 연재해 ‘브런치북 프로젝트’ 금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나의 두 사람』이 있다.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
김달님 저
수오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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