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현대인은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공간이 곧 시간으로 치환된다. 이동할 때 고려 대상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시간이다. 시간적으로 이동하는 데 최단거리가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 일상에는 여유가 없다. 빨리 가야 하는 게 목표이다 보니, 주변을 둘러볼 틈은 더 없다. 조금 늦을 각오를 하고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 보자. 아니, 가려고 했던 길이라도 주변을 둘러보면서 걷자. 일상에서도 기억하고 기념할 공간은 넘친다.
『서울 재발견』은 일상을 재발견하는 책이다. 인구 1,000만이 사는 대도시 서울. 많은 한국인에게 서울은 일상적인 공간이다. 일상이라는 단어를 풀어 보면, ‘늘 그러함’ 정도일 텐데 특별할 게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서울에는 특별할 게 없을까? 많은 사람이 자고 먹고 생활하는 일상적인 공간이라서?
책을 쓴 이지나 작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서울에도 특별한 공간은 많다. 그저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을 뿐이다. 심지어 그녀는 인터뷰 중에 재발견한 서울은 “충격”이기까지 했다고 한다. 무엇이 그녀를 놀라게 했을까.
5년 넘게 찍어온 사진이 바탕이 된 책
여행작가가 된 사연이 궁금합니다.
국문과 학생이던 마지막 학기부터 라디오 작가 생활을 했어요. 평소 좋아하던 가수의 취미가 사진이기도 했는데, 그가 쓰던 카메라를 산 게 계기가 되어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하게 되었어요. 여행 가는 것도 좋아했고요. 여행 갔다 와서 그곳에서 모아온 팸플릿을 친구에게 나눠 주고, 여행지에 관해 이야기하곤 했는데요. 친구들이 여행지에 관해 물어봤어요. 언제나 정리를 잘해주었고, 또 누군가는 ‘자신이 감동한 것을 확실하게 전달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 이라고 말해줬어요. 그러다 나무[수:]에 도시를 주제로 한 여행 책으로 기획서를 냈는데, 그렇게 해서 첫 번째 책 『샌프란시스코』가 나왔어요. 그 도시에서 친언니가 공부하고 일을 하고 있었고, 서울에는 그곳에 관한 책이 거의 없었거든요. 언니도 저처럼 정리하는 게 습관이라 평소에 모아둔 자료가 있었고, 그곳에 놀러 오는 친구에게 이야기하듯이, 만든 책이었어요. 그 뒤로 꾸준히 출판사와 연결이 되어서 지금까지 사진 찍고, 글 쓰고 있습니다. 그 배경이 안에 도시이고, 그 안에 사람이 담겨 있고요.
『서울 재발견』에는 서울의 사계절이 담겨 있는데요. 시간적으로도 다양한데, 여러 공간을 다뤘습니다. 책 내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나요?
외국 친구가 많아서 그들에게 소개하기 위해서라도 서울에 관한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어요. 구체적으로 계획한 건 2년 전 여름입니다. 책을 만드는 데 영향을 준 사람이 추천사를 써 주신 나가오카 겐메이 디자이너에요. 이분이 『d design travel』 이라고, 일본의 47개 도도부현을 디자인 관점으로 보면서 소개하는 시리즈를 만들고 있어요. 그 책에선 무엇보다 그곳에 사는 사람을 담고 있어요. 그 지역에만 있는 것을 발견하고 소개하고요. 『서울 재발견』의 씨앗이 된 게 이분의 말과 책이었습니다.
원래부터 알던 사이는 아니었을 텐데 추천사를 받는 게 어렵지는 않았나요?
서울에서 행사가 있을 때 찾아간 적이 있어요. 그때 평소에 정말로 만나고 싶었던 분이라 한국의 기념품과 편지를 써서 드렸어요. 그 후 바로 일본에 갈 기회가 있어서 가서 그분 숍에 찾아갔는데, 우연히 뵙게 됐고, SNS를 활발하게 하는 분이라 그 안에서도 이야기 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 인연이 계속 이어졌죠. 그렇게 추천사를 받기까지 됐습니다.
책에 담긴 사진은 최근 2년 사이에 찍은 사진이겠네요.
그동안에 취미로 찍은 사진 중에서 5, 6년 전 사진도 넣기도 했어요. 계획하고 찍은 사진도 있지만, 아닌 사진도 있어요. 책에 넣으면서 마지막에는 다소 마음에 안 드는 사진도 있었죠. 예를 들어 구도가 마음에 안 드는데, 찍던 순간에 날씨는 정말 좋은. 그런데 돌아가서 그 장면을 찍을 순 없으니까... 아쉬워도 넣게 된 컷들이 있습니다. 생각하고 진행한 건 2년, 집중해서 완벽하게 빠져든 건 1년이지만 그 전에 찍어둔 사진이 바탕이 됐으니 제 마음 안에 있던 서울의 시간이 담겼다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총 걸린 시간은 5, 6년 정도죠. 그래서 출판사에도 말했어요. 이 책을 다시 쓰지는 못하겠다고요. (웃음)
사진도 사진이겠지만, 글을 쓰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릴 텐데요.
제 글에는 라디오 방송 때 썼던 원고 영향이 남아 있어요. 라디오 작가는 모든 게 소재잖아요. 이 책 안에서도 삶, 일상이 묻어날 수밖에 없고요. 친구들이 책을 보고 따뜻한 시선과 마음이 느껴진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좋은 글, 말을 모아서 오프닝 때 활용하거든요. 지금도 책 속이나 말 속에 활용하기도 해요. “Writing is a Discovery” 라는 말이 있잖아요. 쓰기 위해서 발견해야 하고, 발견했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서울을 발견이 아니라 재발견한 이유
이지나는 여행작가다. 그녀가 쓴 전작, 『샌프란시스코』『엄마 딸 여행』 『카페 수업』은 모두 공간에 관한 이야기였다. 채널예스의 인터뷰도 특별한 공간에서 진행했다. 그녀와의 인터뷰는 저자가 『서울 재발견』에 소개한 장소이기도 한 윤동주 기념관을 오가면서 이루어졌다.
시간과 노력을 많이 쏟은 책이니, 책이 나오고 나서 지금은 홀가분하겠네요. 어떻게 지내세요?
휴식기이긴 한데, 대학원에 진학해서 바쁜 대학원생으로 살고 있어요. 제가 쓴 책에 ‘도시’라는 단어가 참 많이 들어가요. 평소 관심이 있었던 분야이고 조금 더 확장해서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한 교수님을 뵙게 되었고, 현재는 건축 도시 디자인과 학생이 되었습니다. 서울 문묘 일원의 성균관을 참 좋아해서, 자주 갔었는데 결국 그 학교의 학생이 됐네요. 마친 짜인 각본처럼요.
책 제목이 『서울 재발견』입니다. ‘발견’이 아니라 ‘재발견’인데요. 책을 쓰기 위해서 서울의 곳곳을좀 더 집중해서 취재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시 발견한 서울은 어떤 공간이었나요?
서울에서 태어났고 원래 서울을 좋아했어요. 사진기를 사면서 이곳 저곳을 찾아보게 됐고요. 호기심이 많아요. 기사, 칼럼에 나오는 공간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직접 가서 보고 사진기로 담았어요. 무엇보다 서울은 저를 비롯한 사람들의 일상 안에 있는 도시에요. 일상이지만, 주변의 외국친구들 덕분에 이 도시만 갖고 있는 것에 조금 더 집중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매일 보는 것이나, 흔히 보았던 것을 조금 다르게 보는.. 사실 거창한 건 없어요. 제목이 재발견인 건 이 책이 재발견할 수 있게끔 하는 시선을 주면 좋겠다 싶어서예요.
예를 들어, 저는 명동성당을 자주 가는데요. 사람들이 명동성당이나 경복궁을 도로표지판이나 지하철역에서 자주 보겠지만 실제로는 가보지 않은 사람들도 많잖아요. 서울에 살기 때문에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잘 안 가는데요. 가 보면 관심이 없었어도 생각했던 것과 다르구나, 또는 이런 곳이 있었네? 하는 깨달음이 들 거예요. 저는 사람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조금 더 좋아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려면 조금 더 살펴봐야 하고, 자세히 보면 그 안에 구체적인 한 장소나, 공간이 담겨있게 되고.. 이 책을 보고 난 뒤에 그곳에 가 봤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서울은 다양한 공간입니다. IFC와 같이 최신식 고층 빌딩도 있고, 궁이나 학림다방 같이 오래된 공간도 있습니다. 주로 후자를 담았습니다.
카페를 좋아해서 『카페 수업』이라는 책을 썼어요. 그 책을 쓴 게 2010년인데 지금 그곳에 소개한 20곳 중 2/3이 없어졌어요. 슬프죠. 빨리 없어지는 것보다는 오래 남아 있는 곳을 찾아보게 되고, 그곳에 마음을 쏟기 시작했어요. 세련되진 않지만 오래된 곳, 사람들의 추억이나 시간이 담긴 곳을 좋아하게 됐어요. 물론 IFC 같은 곳도 갑니다만 선호하는 곳은 오래된 공간이에요.
그래서인지 조선시대 궁궐의 정원인 비원을 최고의 공간으로 꼽았습니다. 비원 외에도 좋아하는 장소가 있다면?
서울문묘요! 그곳의 명륜당과 은행나무을 추천합니다. 자연이 이럴 수 있구나, 라는 사실이 충격적이기까지 했어요. 원래 자주 가는 동네가 아니었는데, 은행나무를 보러 자주 찾아갔고 그 시간은 이 책에도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한강도 몇몇 지구를 선호하는데 선유도 공원을 특히 좋아해요. 또 종묘에 처음 갔던 때는 눈이 왔는데 눈 앞에 펼쳐지던 장면이 참 근사했어요. 결정적인 한 장면, 마음에 남은 순간 때문에 좋아하는 장소는, 서울 곳곳에 있는 것 같네요.
오래된 공간을 좋아하는 것과 필름 카메라로 사진 찍는 게 관련이 있을까요?
디지털카메라도 쓰기는 합니다. 포토샵을 전혀 못하지만요. 필름 카메라가 디지털카메라보다 불편한 점이 있죠. 동네 현상소가 사라지면 현상소를 다시 찾아야 하고, 또 비용도 들고요. 그럼에도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보다는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에 애착이 가요. 라디오를 좋아했고 아직도 손 편지를 써요. 부탁이나, 감사를 전해야 할 때는 손으로 뭔가를 써서 청해야 한다는 저만의 원칙이 있어요. 책이 나온 뒤에 책에 이 나오는 데 도움을 주신 분들께도 책만 가는 게 싫어서 엽서도 써서 함께 전달했습니다.
책 내용 중에 주얼리 디자이너, 셰프, 플로리스트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추천하는 장소가 실렸던데요. 원고 받는 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그래서 친한 사람들 위주로 받았어요. (웃음) 이 책을 응원해준 주위의 분들에게 정중하게 부탁했죠. 직접 찾아가서 부탁하기도 했고요. 모두 이런 형태의 책에 지지를 보내준 분들이어서 참여해주신 분들도 즐거워하셨어요.
원고를 받은 사람이 혹시 함께 여행가고 싶은 사람이기도 한가요?
서울을 좋아하는 다양한 사람이 모여서 한 지역에 대해서 각자의 결과물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같은 공간이지만 다르게 볼 수 있는 사람들과요. 도쿄나 뉴욕, 파리에서는 그곳에 살고 있는 소설가, 일러스트, 아티스트가 움직여서 만들어지는 책이 있어요. 이런 책이 그 도시의 이미지를 결정하기도 하죠. 단순히 서울의 맛집, 공간을 소개하는 책은 많지만 저런 책은 드물어요. 보다 다양한 시선으로 도시를 바라보고, 또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런 여행작가가 되고 싶다
앞으로 쓰고자 정해둔 도시가 있나요?
처음에는 샌프란시스코, 다음에는 카페, 그리고 『엄마 딸 여행』이라는 국내 여행 책을 만들었어요.어쩌면 저의 시선도 한 번 외국을 거쳤기 때문에 서울에만 있는 것, 이 도시가 가진 매력이나 아름다움..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책에선 그렇게 제가 찾고 발견한 서울의 장소를 담았고요. 그런데 결국 공간을 완성시키는 건 그 안의 사람이라 사람에 관해서도 쓰고 싶어요. 서울 이외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곳은 외국은 도쿄, 한국은 제주요.
좀 추상적인 질문인데요. 작가님에게 여행의 의미는?
어떤 때는 완벽한 휴식이고, 어떤 때는 일이고, 또 어떤 때는 새로운 자극, 배움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합니다. 호기심이 많고, 또 좋아하는 것도 많아서 찾아갈 곳은 꼭 가보거든요. 미술관을 좋아해서 한 두 곳은 꼭 찾아가는데, 거기서 본 전시로도 많은 것을 느끼게 돼요. 그런데 멀리보고, 또 길게 보면 그런 여행도 결국 저라는 사람의 인생 안에 있는 것일 테니까, 여행의 의미가 곧 인생의 의미와 맞닿아 있을 것 같네요.
어떤 여행작가로 기억되길 원하나요?
무엇보다 공간과 사람을 잇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 같이 먼 곳을 갔다 와서 무언가를 쓰는 작가도 있고 그런 글도 좋지만 저는 제가 찍은 사진, 쓴 글로 독자가 뭔가를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계절과 시간에 반응하고 관찰력이 뛰어난 편인데 그런 것으로 일상을 재발견하게 하고. 환기하는, 그런 여행작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 인터뷰를 위해 쏘카(http://www.socar.kr/)에서 피아트 차량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쏘카는 카 셰어링으로 공유 경제를 지향합니다.
- 서울 재발견이지나 저 | 나무수
『서울 재발견 Rediscovery Seoul』은 기존의 가이드북이 보여주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서울을 소개하는 책이다. 정보를 가이드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스스로 어떤 주제를 갖고 도시를 여행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이미 가보았거나 알고 있는 장소일지라도, ‘낯설게 바라보기’를 권하며 자신의 감성에 맞는 서울을 재발견하도록 길잡이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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