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좌파』,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 『나는 왜 불온한가』, 『아웃사이더를 위하여』 등은 모두 김규항의 저서다. 『김규항의 좌판』이라는 제목을 듣고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지 대략 짐작이 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제목 앞에 ‘우리 시대 에피큐리언들의 26가지 생활양식’이라는 조금 독특한 부제가 붙었다. 에피큐리언은 무엇이며, 생활양식은 무엇일까? 15년 넘게 대표적 ‘좌파’ 칼럼니스트로서 활동하고 있는 김규항은 왜 인터뷰어로 나섰을까?
『김규항의 좌판』은 1년여 동안 저자가 전국 곳곳의 진보인사 26명을 만나 그들의 삶의 양식을 묻고 들은 기록이다. 희망버스 시인 송경동부터, ‘강정마을 지킴이’ 신부 문정현, 판화가 이윤엽, 음악가 김두수, 작가 김중미, 기타리스트 윤병주 등. 김규항이 직접 섭외하고 녹취를 풀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26명의 인터뷰이들은 ‘김규항의 좌판’으로 초대되자, 한결같이 모두 머뭇거렸다. “내가 자격이 됩니까?” “쑥스러운데요”라며 흔쾌히 수락하지 않았다. 김규항은 속으로 “인터뷰이를 잘 골랐구나” 싶었다. 김규항은 인터뷰이들을 마주하며, 새삼스런 존경심을 가졌다. 이들은 신념을 위해 행복한 삶을 포기한 사람이 아닌, 행복한 삶을 신념으로 삼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좌파는 불안의 아수라에서 자유로운 사람, 남과의 비교가 아니라 제 이성으로 판단하고 선택하며 그 판단과 선택들이 촘촘하게 짜여 ‘제 나름의 생활양식’을 이룬 사람이다. 좌파는 경쟁과 승리라는 감각적 즐거움을 좇아 불안의 아수라를 피하려는 사람들 곁에 피어난, 진정한 삶의 즐거움을 좇는 ‘에피큐리언(epicurean)’이다” (『김규항의 좌판』 6쪽)
책 제목이 ‘김규항의 좌판’이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벌여놓은 판에 ‘좌파’의 의미가 보태졌다. 어떻게 기획된 인터뷰인가?
말하자면 ‘좌파의 좌판’이다. 좌파에게 반감을 보이는 사람이든 존경을 표하는 사람이든 좌파에 대한 견해는 비슷하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행복한 삶을 포기한 사람, 사람들은 이런 견해 때문에 좌파를 자신의 삶에서 분리한다. 이런 생각이 오해라는 걸 보여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행복한 삶을 신념으로 삼은 사람, 행복한 삶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얼만큼의 불편을 감수하기로 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았다.
시인, 신부, 판화가, 해고노동자, 다큐멘터리 감독 등 26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인터뷰를 섭외하는 과정에서 인터뷰이들이 한결같이 머뭇거렸다고 들었다.
역설적인 기준이기도 한 것 같다.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하니, 반갑다고 하는 분이 한 분도 없었다. 자신이 자격이 되냐며 민망해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속으로 ‘내가 잘 골랐구나’ 싶었다(웃음). 이미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였던 분들도 많았지만, 인터뷰를 하게 되면 새로운 이야기들을 꺼내게 된다. 사적인 만남이 아니라, 독자를 대변해 질문을 하는 자리니까.
인물 선정의 기준은 무엇이었나?
‘인터뷰는 무엇이다’ 라는 주장을 갖고 있지 않지만, 내가 별로 존중하지 않는 사람인데 상대가 유명하기 때문에 하는 인터뷰는 흥미롭지 않다. 외국의 한 유명한 인터뷰어는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서 공격적인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독자들에게는 좋은 콘텐츠가 되더라도 나에게는 맞지 않는 것 같다.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내가 소개하고 싶은 사람, 그 사람이 가진 사회적인 가치보다 덜 알려진 사람들이다. 『김규항의 좌판』에 소개된 사람들 중에 문정현 신부님이나 김중미 작가님 같이 몇몇 분은 꽤 알려진 분들이다. 하지만 사실은 정작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분들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하면, 상대의 새로운 면을 보기 마련이다. 어쩔 수 없이 갖고 있었던 편견도 깨지고.
결국, 인터뷰는 뭘 물어보는 가가 중요하다. 어차피 인터뷰이는 질문에 대답을 하기 마련이니까. 『김규항의 좌판』에 소개된 분들이 기본적으로는 굉장히 이미지가 세고, 자기 주장이 강한 분들인 것 같지만, 사실 굉장히 겸허한 분들이다. 한 분야에 지속적으로 헌신하고 활동하는 분들을 보면, 인격적으로 어느 경지에 올라가지 못하면 이렇게까지 하기는 힘들다. 본의 아니게 수행이 된 사람들이다. 분노는 하지만, 화를 내는 모습은 상당히 보기 힘들다. 인터뷰를 하면서 인품을 많이 보게 된 것 같다.
26명 인터뷰이들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개인보다 이웃, 사회를 먼저 보고 언제나 현장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현장의 기준이 반드시 책상 밖은 아니다. 이를 테면 몸을 움직이는 곳만이 현장은 아니다. 현장은 생명력이 있어야 한다. 책상 위, 책상 밖 등 역할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현장적으로 치열하게 연구를 할 수도 있고 밖에서 투쟁을 할 수도 있다. 어떤 분들은 굉장히 필드에 나와 있지만 안이한 경우도 많다. 책에 소개된 음악가 김두수, 기타리스트 윤병주 씨 같은 경우는 좌파로 분류되는 분들이 아니다. 하지만 이분들 역시 자기 현장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공통적으로 질문한 내용은 무엇이었나?
인터뷰 말미에 “살기 괜찮아요?”라고 물으면, 모두들 표정이 밝아지면서 “좋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보면 의외일 수 있다. 힘들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힘들지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대답을 할 것 같지만, 대부분 “이렇게 안 살았으면 어떻게 했을까”라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 어떤 문제에 대해 무작정 피해서 살 수 없다는 걸,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느낄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현실이 어쩔 수 없다”는 말이다. 인문 공부를 그렇게 많이 하고 책을 읽으면서, 결혼할 때, 자녀 학원을 보낼 때, 가정 경제 관련한 문제가 생기면 하나 같이 현실이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그간 쌓은 인문, 교양이 용광로처럼 무너지고 있는 거다. 하지만 『김규항의 좌판』속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삶이 생기 있고 자존감이 있었다.
실험예술가 이한주 씨가 한 말 중에 “고민을 피하면 삶이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책에 소개된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고민과 사회를 연결하고 있다.
지금 세상이 그런 것 같다. 자기 삶과 여러 가지 것들을 직시하기가 너무 힘들다. 기본적으로 불안감에 쫓겨 살고 있기 때문에, 성과주의에 급급하다. 그렇게 살다 보니, 멘토라는 사람들이 나와서 사람들의 고민과 성찰을 대신해주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김규항의 좌판』사람들을 보고, 굉장히 힘들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이렇게 살기 힘든데, 저 사람들은 남을 위해서 저렇게 노력을 하니 얼마나 힘들까’라고 생각한다. 그 분들을 존경하다고 말하지만 역설적으로는 그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자신들과 분리한다. 그건 그들의 삶을 반대하는 거다. 존경할 뿐, 내 삶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니까.
‘존경’이라는 표현이 나올 때는 어떤 사람들을 마주할 때인가?
자기 삶의 양식을 가진 사람들을 볼 때, 존경스럽다. 사람들은 불안감에 빠져 있어서 자기 삶의 기준이나 취향, 양식이 없다. 남하고만 비교하고,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휘둘린다. 우월감을 갖고 또 열등감을 갖게 되는 이유다. 이것들에 대한 면역 체계가 삶의 양식이 되는데 돈, 차, 인테리어, 먹을 것 등 내가 살고 있는 사회와 문제에 대해 자기 관점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든 휘둘리지 않는다. 우리 나라에서는 극우보고 우파라고 해서 문제인데, 고전적인 우파적 가치인 충성, 명예, 자존심 등이 있는 사람들을 보면, 우파라고 하더라도 삶의 양식이 있기 때문에 멋있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때, 행동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의미가 앞선다기보다, 시간이 지나도 내 마음이 편한 쪽으로 선택한다. 남이 볼 때는 비장한 선택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선택을 그르치게 되면 그만큼 값을 치른다. 자기 스스로를 존경할 수 없기 때문에 무엇으로도 보상 받을 수 없다. 나는 그럭저럭 쪽 팔리지 않게 살아간다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현실적인 선택, 즉 두고두고 값을 치르게 되는 선택을 하면 결국 마음이 괴롭다. 즐겁지 않다는 거다. 창피하지 않은 선택을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이런 건 사회적 명성과는 관계가 없다. 원거리에서 보면 삶의 양식이 있어 보이는데, 옆에서 보면 없는 사람들도 많고, 굉장히 평범해 보이는데 근사한 삶의 향기가 나는 사람이 있다.
『김규항의 좌판』에 소개된 사람들이 근사한 삶의 향기가 나는 사람이 아닐까.
삶의 양식에 있어서는 소박하고 초라할 수 있지만, 자세히 보면 근사한 집처럼 보인다.
자발적으로 읽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나
‘기차길 옆 작은학교’를 꾸리고 있는 김중미 작가는 “어른이 되어서도 작은 집에서 가난한 사람들끼리 모여 살고 싶은 꿈을 꿨다”고 했다. 지금의 삶이 “어릴 적 꿈을 이룬 셈”이라고 말한 게 인상적이었다.
김중미 작가 같은 분들은 빈민운동을 하는 게 ‘예수의 실천’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좋은 거다. 이런 삶이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성장할 때 어떤 영향을 받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크고 높아지고 많아져야만 행복한 게 아니니까.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가치관이나 생활습관은 상당 부분이 학습된 거다. 김중미 작가 같은 삶이 무조건 좋고 이상적이라는 게 아니라, 완전히 반대쪽으로 키워지고 있는 아이들의 미래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요즘은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은 아이를 못 낳는다는 이야기도 한다.
어떤 것이 옳으냐의 기준으로만은 버티기 힘들다. 하지만, 어떤 것이 아이가 행복해 하는가, 어떤 게 좋은 삶인지를 생각하면 접근이 가능하다. 내 자녀가 대학 입시를 안 해서, 사람들은 부모의 교조적인 생각 때문에 다른 인생을 산다고 오해하는데, 좌파 우파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아이가 행복한가가 중요하다. 어떤 게 행복인가에 대한 고민을 안 하는 게 지금 사회의 가장 큰 문제다. 아이를 만들어놓고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 건, 어른이 아니지 않나. 고민은 안 하고, 할 줄 아는 건 불안해 하는 것밖에 없으니 모두가 지친다.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이야기를 듣고 싶다. 어른을 위한 칼럼집 10권을 쓰는 것보다 <고래가 그랬어> 한 권이 더 의미가 있다는 말을 했는데.
2003년부터 발행하기 시작했으니 벌써 10년이 넘었다. 초등학교 2학년이 넘어서부터 좀 편하게 보는 것 같지만, 1학년인데도 다 아는 거라고 말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중학생인데도 어렵다는 이야기를 한다. 며칠 전에 제주도에 사는 후배 집에 놀러 갔는데, 후배 아들의 친구가 이 집에 올 때마다 <고래가 그랬어>를 그렇게 열심히 봤다고 한다. 결국 부모를 졸라서 구독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점 판매량은 그리 많지 않지만, 정기 구독자 수는 꽤 많다. <고래가 그랬어>에는 일반 정기구독과 사회적 구독 ‘고래동무’가 있는데, 고래동무에서는 구독을 하면, 잡지가 보육원, 공부방, 탈북자 시설, 분교 같은 곳으로 전달된다. 고래동무 구독의 경우에는 한 권을 수십 명, 수백 명의 아이들이 보는 셈이니까 발행 수 대비, 독자들이 많은 편이다.
제호 <고래가 그랬어>의 의미는 무엇인가.
재밌게도 이 질문은 꼭 어른들만 한다(웃음). 놀랍게도 10년 동안<고래가 그랬어>를 본 아이들 중에 이 질문을 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이 질문은 어른의 감각인 거다. 나라도 물어봤을 것 같다. 그런데 아이들은 잡지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는 “웃기네” “재밌네”, 이러면 되는 거다. 어른들을 위해 의미를 보태면, 생태 어쩌구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친근하게 여기고, 우리 편 같다는 생각을 하면 그게 좋은 제목이다. 우리 역시, 그런 의미 정도로 남겨 놓으려고 한다.
10년 전, 초창기 <고래가 그랬어>는 어떤 모습이었나? 아이들도 성장하듯이, 잡지의 성장도 있었을 것 같은데.
창간호를 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보통 ‘좋은 어린이책’이라고 하는 책들은 학부모나 교사들이 좋아하는 책이지,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이 아니질 않나. 나름 열심히 만들었는데<고래가 그랬어>를 보니 딱 그 모습이었다. 깔끔한 텍스트에 좋은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이건 어른이 좋아하는 어린이책의 모습이었다. 옛날로 보면, 평론가들이 별을 높게 매기면 ‘이 책은 재미없겠구나’ 생각한 것처럼. 창간 초기, 故 이오덕 선생님이 출간에 깊숙이 개입하셨는데, <고래가 그랬어>에 만화를 많이 넣게 되면서 싫어하시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무척 좋아하셨다. 이오덕 선생님은 우리말, 우리글을 중시하는 게 아니라 민중언어를 중시하는 분이셨다. 어른이 좋아하는 책이 아닌,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이<고래가 그랬어>의 목표다.
자녀의 독서교육에 있어서는 부모들의 관심이 줄지 않는다. 아이들의 독서,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현명한가?
최종적으로 말한다면, 아이가 책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부모가 인정해야 한다. 사람의 모습과 성향, 성격은 굉장히 다르다. 책을 통한 인문적 깨우침은 성숙의 한 방법일 뿐이지, 전체는 아니다. 옛날 어르신들은 책은커녕 학교도 한 번 다니지 못했는데, 인간이나 삶, 생태에 대한 깊은 사유가 있지 않나? ‘사람이라는 게 말이야~’ 같은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는 분들도 다 옛날 어르신들이다. 요즘 사람들은 인문 도서를 정말 많이 읽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같이 “현실이 어쩔 수 없다”는 말만 한다. 이런 말만 하는데 왜 그 많은 책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불안감에 찌들어 책을 읽을 뿐이지, 달라지는 게 없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 부모가 아이 앞에서 책을 읽는다는 말도 있다.
그것도 개연성이 있지만, 부모와 자식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부모가 인문적 정서로 똘똘 뭉쳐있더라도 아이는 책을 싫어할 수 있다. 아이가 책을 좋아했으면 하는 부모의 욕망은 어떻게든 드러나게 되어 있다. 이러면 아이한테는 독서가 숙제가 되는 거다. 자발적으로 읽지 않는 책이 무슨 양식이 되겠나? 정보 같은 건 이야기할 수 있지만, 마음에 깊게 들어오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독서를 너무 빨리 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속도와 양으로 자랑하는 사람들도 많다.
386세대부터 젊은 인텔리 부모들을 보면, 책을 지나치게 많이 읽는다는 생각도 든다. 오랜 기간에 걸쳐 쓰여진 인문서적을 하루 이틀 만에 읽고 리뷰를 쓰는 걸 보면, 뭔가 기괴하다는 느낌이다. 이런 시대일수록 한 권의 책을 오랫동안, 느리게 읽어서 거기에 들어 있는 사유와 형성된 결들을 발견하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김규항의 좌판』에 소개된 김하은 동화작가가 한 말이 기억난다. “가장 좋은 책은 불편함을 주는 책,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라고 말했다.
동의한다. 불편함의 범주에 있을 때, 인상 깊은 책들이 많다. 지금 현재의 나에게 쾌감을 주는 게 아니라, 자꾸 뭔가를 건드려서 내가 괜찮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 불편하지만 그걸 보게끔 하는 책이 읽을 이유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김수영 시인에게 가장 큰 영향 받아
칼럼니스트 김규항 앞에는 언제나 ‘B급 좌파’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2002년 저자가 펴낸 책 제목이기도 한데.
글의 제목, 책의 제목이었을 뿐인데 왜 이렇게 불리는지 모르겠다. 즐겁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불편하지는 않다. 글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인텔리들의 어떤 사고, 우스꽝스러운 속성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글 쓰는 사람들은 왜 구름 위에 앉아 있나? 왜 자기 이야기는 안 하지? 이런 불만이 많았다. 글을 쓰면서부터는 김수영 시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내가 읽은 김수영은 모두 자기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읽기 민망할 정도의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남을 욕하려면 내 이야기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한국 지식인들에게 그런 면이 부족하다. <씨네21>에 글을 쓸 때, 나 스스로 ‘꼴에 지식인이랍시고’, ‘어쭙잖게’라는 의식이 많았다.
38세 나이에 뒤늦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전업으로 글을 쓰는 사람치고는 늦었다고도 볼 수 있는데. 글을 쓰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1998년도에 <이매진> 이라는 문화잡지가 있었다. 기자를 하던 후배가 펑크 난 원고를 때워달라는 연락을 했는데, 술김에 승낙을 했다. 그 후로 <씨네21>에서 일하던 선배가 글을 계속 써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서, 당시 번역가 일도 끊기도 해서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썼던 글은 어떤 내용이었는지 궁금하다.
당시 록 담론이 유행이었는데, 왜 자꾸 모범생, 인텔리들이 록에 깃발을 꽂으려고 하는지 화가 나서 그런 이야기를 썼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드럼도 치고 국악도 했는데, 내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빴다(웃음). 뭔가 어려운 록 이론을 제시해서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글을 쓴 기억이 난다.
요즘, 자꾸만 쓰게 되는 글의 주제는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아이들 문제다. 교육 문제는 여러 가지 사회 문제 중 하나가 아니라 최전선이다. 좌우도 없고 괴멸된 상태다. 최근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많은 분들이 빠져나갈 곳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이 같은 사건이 끊임없이 불거지고 있지만, 현실에 대한 분노가 과거를 망각시키고 있는 것 같다. 과거의 기억과 현실이 병행되어야 하는데, 과거를 망각하기 위해 지금의 현실에 집중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중앙 언론지의 1면을 쓸 기회가 주어진다면, 쓰고 싶은 글이 있나.
우리 애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보다 더 의미 있는 이야기는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아이들이 되도록이면 불행하지 않게, 너무 가난해질 까봐 아등바등하고 불안해 하는데, 그런 걱정의 결과는 전체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든다. 아이들이 불행한 사회에서 내 아이만 행복할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어른스럽지 못하지 않은가.
『김규항의 좌판』을 누군가에게 선물을 한다면, 어떤 사람에게 주고 싶은가.
사는 게 답답하고 불안한 사람들, 되도록 현실적인 선택을 하려고 하는데 해답이 안 나오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26명의 사람들은 뭔가 특별하고 헌신적인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꼭 그렇게 불안해 하지 않아도 적은 걸로도 즐겁게 살 줄 아는 사람이다. 『김규항의 좌판』을 다른 말로 한다면, 진짜 사랑과 우정을 누리면서 사는 사람들의 사례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김규항의 좌판김규항 저 | 알마
『김규항의 좌판』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길든 일상적 상식에 균열을 일으키는 예술인들, 그리고 첨예하고 격렬한 저항의 자리에 섰던 활동가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대해 말하는 이들과 달리 말이 아닌 행동으로 내일을 향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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