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는 한강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이다. 2011년 전작 『희랍어 시간』을 펴내고, 작가는 삶의 눈부신 이야기를 후속작으로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가장 찬란했던 파편들을 모으려 했지만, 여느 때와 다르게 속도가 나지 않았다. 아니, 진척조차 되지 않았다. 이유가 무얼까, 꽤 오랜 시간을 묵묵히 기다리던 끝에 작가는 ‘5.18 민주화운동’과 만났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일어난 열흘간의 민주화운동.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난 한강 작가는 가족과 함께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몇 달 전, 서울로 이사했다. 이후 명절 때마다 친척들이 ‘그 사건’에 대해 수군거리는 것을 들었다. 잊혔다고 생각했지만 작가에게는 해가 갈수록 또렷한 단상으로 남았다. 1994년 등단한 한강 작가는 작품을 쓸 때마다, ‘내가 왜 인간에 대해 이토록 의문을 갖고 있을까’를 생각했다. 소설과 시를 쓰면서 질문은 더욱 선명해졌다. 결국 훼손되어서는 안 될 것들이 무너진 1980년 광주의 기억을 더듬었고, 새로이 찾기 시작했다.
2013년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창비문학블로그 ‘창문’에서 연재한 『소년이 온다』는 중학교 3학년 소년 ‘동호’가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후,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 되면서 시작된다. 1980년 5월 광주를 배경으로 당시 상황과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참혹한 광주의 역사는 지난 34년 동안 많은 소설, 영화에서 다뤄졌다. “5월 광주에 대한 소설이라면 이미 나올 만큼 나오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소년이 온다』추천사(“이제 더 절실한 것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응징과 복권의 서사이기보다는 상처의 구조에 대한 투시와 천착의 서사”)가 해답이 될 수 있다.
소설이 출간되고 열흘이 채 지나지 않은 날, 사당의 한 카페에서 한강 작가를 만났다. 때이른 무더위가 갈증을 불러왔지만 어찌 보면 갈증의 원인은 날씨 탓이 아니었다. 34년 전 광주의 모습이 여전히 우리 사회 속에 보여지는 까닭에서였다. 작가는 요즘,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학교는 안산에 있다. 『소년이 온다』의 마지막 교정을 볼 즈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고, 작가는 안산에서 학생들을 마주할 때마다 소설 속 동호의 얼굴과 겹쳐졌다.
가장 찬란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지만, 광주가 있었다
3개월간 출판사 블로그에 연재된 소설이다. 단행본으로 출간되기를 많은 독자들이 기다렸다.
연재하고 나서 많이 고쳤다. 5장을 완전히 새롭게 썼다. 책으로 묶어진 게 세 번째 버전이다. 편집자는 괜찮다고 했지만, 마음에 차지 않았다. 인물에 많이 다가가지 못한 느낌이었다. 충분히 더 가깝게 다가갈 때까지 쓰고 싶었고 많이 노력했다. 감정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건 2장이다. 죽은 소년의 목소리가 너무 참혹해서, 가장 많이 고통을 느꼈던 것 같다.
취재를 하면서 소설을 준비한 시간까지 합하면 1년 반을 『소년이 온다』와 함께했다. 소설을 쓰면서 벌 받는 느낌을 받았다고 고백했는데.
실제로 있었던 일들을 배경으로 하니까 내가 누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책임감이 컸다. 인간으로서 마주하기 어려운, 인간의 가장 어둡고 참혹한 지점을 계속 들여다봐야 했기 때문에 그게 어려웠다. 현실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잔혹했다. 잔인한 것도 더 많았지만 사실만큼 못 썼다. 소설로 쓸 수 있는 한계였다. 더 잔인한 이야기를 쓰는 게 작가로도 힘들었겠지만 독자가 수용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다. 소설에 모든 걸 쓰진 못했지만, 작품 때문에 읽어야 했던 수많은 자료를 봐야 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34년이 지난 지금, 광주 이야기를 다시 꺼낸 건 어떤 이유에서였나?
원래 쓰려던 소설이 있었다. 인생의 가장 밝은 파편들을 모아 놓은 소설이었다. 그래서 내가 살아온 여러 삶 속에 들어가서 찬란했던 기억들을 끄집어내려고 했는데, 진척이 되지 않았다. 인생을 껴안을 수 없다는 의심이 들었고, 무언가가 내 앞을 막아 선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 이럴까? 오랫동안 생각을 했는데, 들여다보니 그 안에 광주가 있었다.
어린 시절을 광주에서 보낸 까닭이었을까.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몇 달 전,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중학교 교사를 그만두시며 광주를 떠났다. 당시에 광주에는 없었지만 광주에 있던 친척으로부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일들, 끔찍한 폭력성을 가진 인간을 마주하게 됐다. 밝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인간의 어두운 면을 끄집어내지 못한다면 결국 밝은 소설도 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소설이 6장으로 이뤄졌는데, 각 장의 화자와 시점이 다르다.
장에 따라 느낌을 약간 다르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소년이 나와야 하니 소년의 이야기를 썼고, 다른 인물들을 생각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 달 정도 고민하면서 배열을 구성했다. 오래 생각해서 그런지, 결정이 난 건 한 순간이었다. 2장까지는 죽은 소년의 이야기니까, 3장에서는 그래도 숨을 쉬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은숙이도 고통을 받긴 하지만, 고문을 겪거나 그러진 않았으니까. 어쩌면 우리랑 가장 가까운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잠깐 숨을 돌리고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은숙’은 여고 3학년 때, 5.18을 겪었다. 이후 작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는데, 담당 원고의 검열로 경찰서에 끌려가 ‘일곱 대의 뺨’을 맞는다. 지금은 검열이 사라졌지만, 여러 형태의 검열은 아직도 남아있다.
그렇다.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어릴 때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아버지가 어떤 잡지에 투고를 하면, 글이 실려서 와야 하는데 잡지랑 같이 원고가 다시 배달되는 경우가 있었다. 뭔가 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한 글이었지만, 아버지가 그것들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분이 아니셨는데도 검열을 두려워하는 편집자가 1차로 검열을 한 거다. 어릴 때부터 이런 경험을 가까이에서 했기 때문에 상상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일이라고 여겨지진 않았다. 이 나라에 존재했고 최근까지 있었던 일이니까.
편집자로 일했던 경험도 있는데.
작가로 데뷔하기 전에 출판과 잡지 편집 일을 2년 정도 했다. 그래서 검열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더 실감이 났다. 최근에 한 선생님이 검열을 겪었던 시절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다. 모든 출판물이 검열과를 거쳐야 했는데, 먹선으로 그어진 원고를 보면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소년이 온다』에 나온 것처럼, 어떤 특정한 책을 유난히 싫어해서 나중에는 롤러로 밀어서 원고 뭉치가 이렇게 부풀어져서 다시 가지고 온 적이 있었는데, 오는 길에 계속 눈물을 흘리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름의 동호, 애쓰지 않고 그냥 있으려고 한다
3개월간 광주에서 취재를 했다. 소설과 현실이 어느 정도 일치하나?
사건 자체는 현실에 기반하고 있지만, 인물이 일대일로 대응되진 않는다. 동일방직 사건은 현실에 있었던 일이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선주’가 광주에 있었던 건 아니다. 친동생이 광주에서 3년 정도 살았는데, 마지막 1년 동안에 내가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동생 집에 자주 묶었다. 만약 80년대, 90년대에 이 작업을 했더라면 힘들었을 테지만, 여러 단체에서 정리를 많이 해놓아서 자료를 찾는데 어렵지 않았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 물어도 보고, 묘지도 몇 번 다녀왔다. 글을 쓰다 잘 안 써지면 찾아가고, 종교는 없지만 기도도 하고 그랬다.
실제 광주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겪고 지금도 광주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나.
기회가 될 때마다 물어봤다. 기억에 남는 한 분은, 지금은 너무 많이 퇴색되고 왜곡돼서 광주에서조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은 분위기가 더 크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착찹하게 “이제는 뭐 그런 마음 같은 거 없어졌지 않냐”고 말씀하시더라.
집필하면서 가장 쓰기 고통스러웠던 장면은 무엇인가.
한 장을 끝날 때마다, ‘아 이제 그만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각 장마다 힘든 순간들이 늘 있었다. 1장에서는 정대가 총을 맞는 장면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집단으로 총이 발포돼서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있는데, 시체라도 구하자고 맨몸으로 뛰어드는 사람이 수없이 많았다고 한다. 군인 측 증언에 따르면, 계속 총을 쏘는데도 불구하고 동료를 데리고 가기 위해 주저 없이 달려드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경험을 평생 못 잊는다고 하더라. 정대 이야기를 쓸 때는 ‘오늘은 이만큼 써야지’하고 작업실에 갔다가, 세 줄 이상 못 쓰고 그대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몇 시간 동안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어야 할 때가 많았다.
‘소년이 온다’라는 제목이 독자에게 주는 여운이 크다.
가장 마지막에 나온 제목이다. 처음 생각한 건 ‘여름의 당신’이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왔지만, 소년이 건너가지 못한 여름을 말하고 싶었다. 소설에서 소년을 계속해서 ‘너’로 부르지 않나. 여름이라는 계절이 생명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잔혹함이 있으니까. ‘당신’으로 말하고 싶었는데 너무 낭만적으로 보일 것 같고 성격이 전혀 다른 소설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 제목을 다시 생각했다. ‘여름의 동호’라는 제목도 생각했는데 출판사에서 거절했다(웃음). 나는 동호가 누군지를 아니까 ‘당신’보다 더 애틋하고 가까운 느낌이지만, 독자들은 ‘동호’를 모르는 상태에서 소설을 읽게 되니까. 며칠 밤을 고민해서 ‘소년이 온다’로 결정했다.
『소년이 온다』 최종 교열을 볼 때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안산에 있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터라, 마음이 더 무거웠을 것 같다.
안산에 사는 것도 아니고, 수업이 있을 때만 잠깐 다니러 가는 거였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또래 아이들을 보면 ‘동호’가 생각나기도 했고. 소설을 쓰고 나서는 한동안 벗어나기 힘든데, 이번 소설은 벗어나는 게 미안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벗어나려고 애를 쓰다가, 요즘은 그냥 포기하고 좀 있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벗어나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있자, 이런 마음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어떤 소재는 그것을 택하는 일 자체가 작가 자신의 표현 역량을 시험대에 올리는 일일 수 있는데, 한국문학사에서 ‘80년 5월 광주’는 여전히 가장 그러한 소재”라고 말했다. 이미 많은 작가가 광주 이야기를 작품화했는데, 그에 따른 부담감은 없었나?
부담감보다, 광주를 다뤘다고 하니 뭔가를 고발하는 소설일 거라고 사람들이 생각할까봐 걱정했다. 물론 증언하는 내용도 들어있지만, 증언함과 동시에 온 힘을 다해서 애도하고 응시하는 그런 소설이었으면 했다. 아직 많은 독자들의 이야기를 듣진 못했지만, 다행히 그렇게 많이 읽어주신 것 같다. 며칠 전 “고발하는 소설일 것 같아서 안 보려고 했는데 읽어보니까 소년이 가깝게 느껴졌다”는 리뷰를 읽었다. 내가 바란 게 바로 이거였는데 다행스러웠다. 『소년이 온다』는 내가 쓴 소설 같지가 않고 소년이 쓴 것 같다. 다른 인물의 이야기도 소년이 대신 쓰고, 다른 사람이 또 오면 이어서 쓰고. 그렇게 6장까지 쓰다가 7장(에필로그)만 내가 건네 받은 느낌이다. 2014년을 살아가고 있는 건 나 자신이니까, 나로부터 독자까지는 더 가까우니까, 동시대 사람이니까. 그렇게 느껴주길 바랐는데 가깝게 느껴주신 것 같아 다행스럽고 감사했다.
사랑에서 출발했고, 또 다시 사랑에서 출발한다
북 트레일러도 인상 깊었다. 작가가 직접 기획했다고 들었다.
한희정 씨가 음악을 무척 잘 만들어줬다. 처음에는 원고를 3장까지만 줬는데, 곡을 쓰려면 모든 장을 읽어야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라. 임솔, 임정환 두 감독이 영상을 찍었는데, 촬영현장에는 가지 않았지만 소설의 느낌을 잘 살려줄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생이 주인공인데, 영상과 딱 어울리는 친구가 지원을 해줘서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고 한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99쪽).” 소설 속에서 검열이 된 희곡에 나오는 문장이 영상의 내레이션으로 사용됐다.
처음부터 이 글귀를 영상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설 속 연극의 대사이지만 정말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당신들을 잃은 뒤, 우리들의 시간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집과 거리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어두워지지도, 다시 밝아지지도 않는 저녁 속에서 우리들은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잠을 잡니다. (『소년이 온다』 79쪽)
유독 ‘저녁’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등장한다. 동호는 햇빛을 좋아했는데, 우리에겐 저녁밖에 없는 삶이 됐다. 지난해 11월 출간된 첫 시집도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다.
간혹 장편을 쓰면서 시를 쓰면 그 분위기가 들어온다. 『소년이 온다』을 쓰면서 시도 함께 썼다. 이 소설을 쓸 때 「저녁의 소묘」를 썼다. 그래서 저녁 이야기가 두 작품에 겹쳐졌다. 「거울 저편의 겨울」 연작에 ‘학살을 기억하는 나는, 신도 인간도 믿지 않는 너를 기억하는 나는’이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 소설과도 연결된다. 보통 소설과 소설 사이에 시를 쓰지만, 잠깐 시가 써질 때가 있다. 『채식주의자』를 쓸 때는 「피 흐르는 눈」 연작을 썼다.
『소년이 온다』가 영화화가 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광주를 제대로 응시할 수 있지 않을까.
<화려한 휴가>나 <26년>과는 다른 분위기로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사건 중심보다는 인물의 내면을 따라가는. 영화화 제안이 온다면 흔쾌히 수락하고 싶다.
가장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다룸으로 인해, 작가로서 또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들 것 같다.
이 소설을 쓰면서 인간의 훼손돼서는 안 되는 것들이 훼손됐던 시간들을 들여다보며 고통을 많이 느꼈다.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울기도 많이 했는데. 최근 한 번역자가 쓴 글을 읽었다. 걸프전이 일어났을 때, 폭격이 일어나 수많은 민간인들이 죽었다는 뉴스를 듣고 버스를 탔는데 계속 눈물이 났다고. 이 눈물의 의미가 뭘까? 생각해봤는데,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이 글이 나에겐 최근에 들은 어떤 말보다 위로가 됐다.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느낀 고통이 ‘인간에 대한 사랑이구나’를 느꼈다. 다시 소설을 쓴다면 여기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 쓰려던 소설은 못 쓸 것 같다. 아직 형태는 없지만, 사랑에서 출발하는 이야기를 쓰게 될 것 같다.
작품을 마쳤지만 아직 벗어나지 못했으니, 지금이 더 힘들 때가 아닌가?
작품과 작품 사이가 힘들 때가 있다. 뭔가에 몰두해서 계속 그 생각을 진척시킬 때는 그것이 생활의 중심을 잡아주니까 흔들리지 않고 잘 살 수 있는데, 쓰지 않을 때는 뭘 써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느껴지는 괴로움이 있다. 장편일 때는 빠져나간 자리가 더 크게 느껴질 수 있으니 많이 흔들릴 수가 있다. 지금의 내가 그런 것처럼. 아직 내 삶의 중심에는 이 소설이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어떨지 모르겠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을 기억하기 위해서 일기를 써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작품을 쓰다 보면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고, 소설이 완성되고 나면 ‘내가 어떤 사람이었지?’ 되묻게 된다. 그런 걸 기억해야 하는 시기가 오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소설을 출간하고 독자를 만나는 일은 어떠한가?
책을 자주 내진 않으니, 많이 만나진 못하지만 뵐 때마다 좋다. 뭔가 진짜 내 편이 다 와 있다는 느낌이 든다. 불특정 다수가 아닌 내 소설을 아는 사람들이니까. 내 이야기라면 뭐든지 다 들어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어 행복하다. 아픈 것도 다 나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애정이 간다.
어떤 독자들이 『소년이 온다』를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나?
젊은 독자, 어린 독자들이 많이 읽어주면 좋겠다. 광주가 이제 점점 언급이 안 되고 있다. 교과서에도 자세한 정황이 나오지 않고 교육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모두가 모르게 된다. 유년시절에 조금이라도 경험을 했으면 그래도 알 텐데, 지금 사회는 이런 걸 알리려는 분위기 자체가 아니니까. 왜곡된 이야기를 듣기 쉬우니까 자라나는 세대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 소년이 온다한강 저| 창비
『소년이 온다』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맞서 싸우던 중학생 동호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과 그후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받는 내면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당시의 처절한 장면들을 핍진하게 묘사하며 지금 "우리가 '붙들어야 할' 역사적 기억이 무엇인지를 절실하게 환기하고 있다(백지연 평론가)." "이 소설을 피해갈 수 없었"고, "이 소설을 통과하지 않고는 어디로도 갈 수 없다고 느꼈"다는 작가 스스로의 고백처럼 이 소설은 소설가 한강의 지금까지의 작품세계를 한단계 끌어올리는, "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신형철 평론가)"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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