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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추자 “디바보다 노래 잘 부르는 가수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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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내딘 그의 발걸음은 여장부처럼 위풍당당했다. 1969년 「늦기 전에」로 데뷔해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님은 먼 곳에」 「거짓말이야」 등을 히트시키며 가요사에 한 획을 그은 김추자가 노래처럼 더 '늦기 전에'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다음주면 발매될 정규 6집과 6월28,29일로 예정된 콘서트를 앞두고 5월27일 종로의 한 호텔에서 열린 컴백 기자회견에서 그는 “오래 기다려 준 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는 말을 거듭했다. 자리에는 소속사 이에스피 엔터테인먼트 박의식 대표와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씨가 함께했다.

 

만나고-김추자

 

1970년을 풍미한 김추자는 당시 하나의 현상이었다. 트로트와 스탠다드 팝이 국내 음악계를 주도하던 시대에 록과 소울, 사이키델릭을 결합하고 실험하는 신중현 작곡 김추자 노래의 음악은 대중에게 기존에 없던 완전 새로운 경험을 안겼다. 수줍음이라고는 없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도 시대를 앞선 것이었다. 임진모 평론가는 “김추자는 한국 댄스음악 최초의 아이콘”이라며 “우리나라 최초로 엉덩이를 흔들었다. 당시 시대배경을 고려하면 큰 도발이었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댄스가 필요한 곡에서 과거처럼 엉덩이를 흔들 거냐는 질문에 “당연히 흔들어야죠”라고 대답하는 김추자. 신보에 수록된 신중현 작곡의 「가버린 사람아」, 「몰라주고 말았어」, 「고독한 마음」, 그리고 고(故) 이봉조의 곡인 네오 트로트 「하늘을 바라보소」를 감상하는 순간에도 그의 표정은 노래에 젖어 있었고 몸은 작게 그러나 한껏 템포를 타고 있었다. 이야기 도중 노래의 한 대목을 거침없이 부르고, 음악에 대한 애정과 생각을 가식없이 전달했다. 어떻게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음악 활동을 쉴 수 있었는지 의아할 만큼 강렬한 열정과 자신감이었다.


33년 만의 컴백입니다. 오래 기다린 팬들에게 인사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를 오랜 세월 동안 한결같이 사랑해 주시는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더 늦기 전에 무대 위로 다시 돌아온 김추자입니다. 30년 이상을 평번한 아내로 엄마로 살다가 무대에 다시 선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기도 하고 설레는 마음도 들고 흥분이 되기도 합니다. 그동안 새로운 앨범 제작에 심혈을 기울여 왔습니다. 가수로서 좋은 노래를 불러 팬들에게 나서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니까요. 준비한 앨범이 올해 나와 다시 노래를 하고 무대에도 설 예정입니다. 긴 세월 동안 잊지 않고 끊임없이 저를 찾아준 팬들에게 멋있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무대 위에서 팬들과 즐거운 마음으로 만나고 싶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김추자

자녀분은 어머니의 가수 복귀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아이가 어릴 때부터 신중현 선생님이나 김희갑 선생님이 집에 와서 노래를 가르쳤기 때문에 '엄마는 왜 노래를 안 부르냐고' 그랬어요. 친구들이 유튜브로 엄마 노래를 알게 되면서 자기가 엄마 대신 대접을 받고 다녔대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도 엄마 노래 한번 부르는 거 보고 싶어 하지 않았냐기에 제가 “나는 늦었다, 나가려면 일찍 나갔어야지” 했더니 딸이 늦지 않았대요. 엄마 늙지 않고 주름도 없다고요. “엄마 노래해, 그 좋은 재주 아끼면 뭐해, 엄마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노래 안 들려주는 것도 나중에는 잘못이라고 뉘우칠 거야”라더군요. 그래서 언제부턴가 하려고 했었는데 살림만 하다 오랜만에 나오려니 이런저런 게 달라져서 적응이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도 내년이면 더 늦어지니 1년이라도 빨리 나오는 게 좋지 않나 해서 나왔습니다.

 

타이틀 곡 「몰라주고 말았어」를 제외하고 유독 애착이 가는 곡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고독한 마음」, 그리고 「태양의 빛」. 「가버린 사람아」도 괜찮죠. (동석한 이에스피 엔터테인먼트 박의식 대표는 신중현 작곡의 「태양의 빛」이 가사 등 곡 자체가 세월호 피해자에게 힘을 주는 곡이라고 판단해 이미 다 만들어놓은 곡을 다시 편곡하고 녹음했다고 덧붙였다. 세월호 침몰로 김추자의 음반 발매와 공연은 예정보다 연기된 상황이다.)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는 에너지가 놀랍습니다. 자기 관리는 어떻게 하셨나요?


노래연습이나 춤 연습을 별도로 하진 않았고 항상 제 곁에는 부엌에도 응접실에도 라디오가 있어요. 다른 채널의 라디오들을 계속 틀어놓죠. 그래서 음악은 고루고루 들어요. (집에서는) 사람이 사는 곳이라 혼자 노래를 소리 높여 부를 수 없고, 노래를 위해 산꼭대기에 가서 부를 수도 없어서, 노래를 듣고 음미를 하죠. 요즘 트렌드는 이렇구나, 이 가수는 노래를 잘하네 하면서 밤낮없이 하루종일 그러고 있어요. 그렇게 음악을 듣기 위한 무질서한 생활을 한 10, 20년 했어요. 가족들이 음악에 미친 모양이라고.(웃음) 그래서 지금 현역 가수들, 하다 중간에 그만둔 가수들, H.O.T, 이후 걸그룹들 등 변천사를 다 알고 있어요. 신보 들으면서 제 나름대로 채점을 매겨요. 이 노래는 여기를 잘 살렸다 혹은 어디서 많이 듣던 노랜데 표절했구나 하는 것도 혼자 알게 됐고요. 누구를 딱히 꼬집으려고 하는 건 아니고, 그렇게 음악을 접하면서 한국음악과 외국음악의 다른 점들을 파악하는 거죠.

 

 요즘은 음악이, (과거에는) '님이 오실 때까지', '님이 아니면 못산다 할 것을', '님 그리워 우는 밤' 이러지만 (요즘에는) '니가 나를 어떻게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고', '니가 없으면 난 죽음이야' 식의 단어를 쓰죠. 어떻게 보면 사랑의 농도가 짙다고 할까? 후배 가수들에게 작곡을 의뢰하면 가사가 대개 인스턴트예요. (관계에 있어) 역사적인 게 없이, '너는 내게 말했지만, 난 네게 줄 수 없어' 등의 마치 꼬시기 작전의 노래 같은.(웃음) 작업송이 많은 것 같아요. 그게 저와는 안 맞지만, 멜로디 자체는 악기가 주는 이상한 향기와 소리가 나요. 그러면 서슴지 않고 밤이고 낮이고 춤을 춥니다. 템포가 좋으면, 작업송이든 뭐든 뜻에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멜로디에만 충실해서 춤을 춰요. 그러면서 스스로 체크를 많이 했어요. 거울을 보면서. 집에 거울이 참 많습니다.(웃음) 물론 음악이 그렇게 하라고 시키니까 하죠. 그러면서 다음에 무대에 나가면, 이런 리듬이 나오면 이렇게 부르면서 더 애절한 눈빛과..., 또 거기에는 신발과 모든 것이 다 갖춰져야 노래가 나오니까 코디도 잘해서 (무대에) 나가야지 하는 생각을 했죠.

 

라디오를 계속 들으셨으면 그간 가요계 흐름을 쭉 보셨을 텐데, 특히 눈에 띄는 후배 뮤지션이 있었나요?


TV를 보면 전부 다 춤을 추며 빠른 템포의 노래를 부르는데, 다들 열심히 하고 '너 죽고 나 살겠다' 하기 때문에, 천편일률적으로 다 그래서 누가 제일 좋다 그렇게 말할 수는 없어요. 얘가 좋으면 비슷한 애들이 또 막 나와요. 다들 잘 하는데, 얘네들은 쟤네들이랑 좀 달라, 달라서 좋아 그런 건 느끼지 못했어요. 머리도 화장도 다 비슷해서 어떤 때는 얼굴도 잘 못 알아봐. 그런데 다들 열심히 하더라고요.

 

오랜만의 녹음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특히 「하늘을 바라보소」 같은 트로트는 예전에 하지 않았던 장르인데요.

 

노래할 때 어려움은 없었어요. 옛날에 했던 것이고, 말씀 드린 대로 그동안 음악을 떨어트리지 않고 항상 옆에 두고 살았기 때문에 다시 부른다는 게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트로트도 제가 원래 창을 했기 때문에, 「늦기전에」에서 '(해당 소절을 부르며) 다시는 찾을 수 없어요' 이것도 창이잖아요. 사이키델릭에 창이 들어가는 게 참 이상하거든요? 근데 신중현 선생님이 한국식 록을 새롭게 도입한 거죠. 뽕을 부르는 건, 솔이나 록을 부르는 것만큼, 더 멜로디식이에요. 록이나 솔은 지르는 거지만 이거는 휙 감는 거 아닙니까. 꺾기. 야시시하게 잘 꺾어지더라고요.(웃음) 그게 '창'덕인 거 같아요. 그런데 원래 노래의 기본이 솔도 한이고 뽕짝도 한이거든요. 설움을 얘기하거든요. 다 한을 얘기하는 거니까 상통하는 게 있어요. 엔카도 부를 기회가 있으면 판 한번 낼 겁니다. 뽕은 이렇게 부르는 거야 하고. 마냥 여리게만 부르는 게 아니라. '미소라 히바리' 보십시오.(그의 노래 한 소절을 부른다) 참 강합니다. 우리나라 엔카와는 달리 앙칼지고 휘어잡는 게 있어요. 움직이지 가만있질 않더라고요. 아무튼 다른 분들은 「거짓말이야」 같은 옛 노래의 빠른 템포에 많이 익숙해지셔서 뽕은 잘 못 부를 거라 하지만 숨은 재주가 있답니다 제가.(웃음)

 

1981년에 결혼생활을 시작하면서 활동을 중단했는데, 그때는 어떤 결심을 하신 건가요?


연예계 생활할 때 간첩이다 뭐다 그런 이야기 너무 많이 들어서 연예계 생활이 하기 싫더라고요. 1969년에 춘천 좁은 데 살다가 넓은 데 와서 히트라고 쳤는데, 간첩이다 CIA가 왔다갔다 그러는데 그때는 정말 노래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결혼생활이 제게는 참 행복한 시간이었던 거 같아요. 다시 마음먹은 건 이젠 그런 것도 다 소화할 수 있으니까 더 늦기 전에, 목소리 더 망가지기 전에 들려주고 싶은 생각인 거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긴 공백기 동안 과거 김추자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셨을 것 같습니다. 과거 활동할 때 이런 건 좋았다, 이런 건 좀 아쉽다 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무대에서 공연할 때가 가장 좋았고요. 관객들도 박수 쳐 주고 같은 마음으로 공감하고 환호해 주고 그런 게 가장 즐거웠던 거 같아요. 그런 맛에 노래를 부르지, 맨날 간첩이라 그러면 노래를 부르겠어요?(웃음) 나가면 김추자 나왔다고 좋아하셔야 저도 좋은데 간첩이라 그러니 제가 노래를 할 수가 없었죠. 신중현 선생님도 말씀했듯이 노래는 몸을 움직여야 소리가 나온다고 보디랭귀지라 그러는데 그런 것도 팬들에게 어필이 됐을 거 같아요. 제가 노래만 부르는 게 아니라 그 노래를 가지고 표정이나 연기를 하니까. 그렇게 하려고 그런 게 아니라 저는 영화배우가 연기하듯 노래를 불러야 노래가 나오더라고요. 그게 그렇게 보기 싫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제가 봐도 「저무는 바닷가에」 그러면서 팔 벌리는 게 왜 이렇게 덜떨어지고 웃기지가 아니라, 꽤 잘했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선생님에게 있어 신중현 선생님은 어떤 의미입니까?


신중현 선생님은 제 음악과 제 음성과 저의 어떤 소리가 제일 미성인지, 어떻게 곡을 쥐어줘야 하는지 아시는 분입니다. 저와 제일 잘 맞는 베스트 콤비죠. 선생님도 그걸 잘 알고 계시고요.

 

이번 컴백을 가장 반긴 분도 신중현 선생님이었을 것 같은데 어떤 격려의 말씀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선생님이 다치셨다는 소리를 듣고 입원하신 병원으로 찾아뵀어요. 침대에서 맨발벗고 내려와서 두 손을 잡아주시더라고요. 노래 다시 부른다니 마음대로 불러, 좋은 대로 해, 나오면 좋지, 일 안하던 사람이 일 하면 좋지, 그러시더라고요. 잘 해 보라고. 그래서 녹음 되면 그거 갖고 집에 한번 찾아가기로 했어요.

 

현재 중장년층 남성들에게는 첫사랑이자 로망으로 기억되고 있으신데 거기에 대한 부담감은 없으셨나요?


중장년층이 좋아하는 건 애들도 좋아할 걸요. (신중현) 선생님의 곡이 다 감성적인 노래니까. 그만큼 곡을 감성적으로 뽑아내는 사람이 있나? 너무 다 즉흥적이고 폭발적인 노래를 하지......, 그런 거 젊은 애들도 좋아하죠. 요즘 젊은 애들도 지혜도 많고 명석하니까. 꼭 중장년층만 좋아하는 것도 아닌 거 같더라고요.

 

오랜만에 앨범을 내셨는데 어느 정도의 결과를 기대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저는 결과를 기대하고 부르진 않아요. 제가 노래를 잘 불렀으면 결과가 좋을 것이고 노래가 잘 못 불렀으면 결과가 안 좋을 테죠. 이번 앨범은 잘 불렀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저는 공연 위주로 활동하고, 좋은 무대가 있으면 할 참이에요. 그렇다고 여기저기 다니는 것보다 좋은 무대가 있으면 준비를 좀 해서 하고 싶어요. 했던 거 계속 우려먹지 않고, 준비를 좀 해서요.

 

영화나 뮤지컬 제작 이야기도 있었는데 추후에 작업을 진전하려는 계획은 없으신가요?


이현승 감독이 (저를) 영화화해서 우리나라의 계보적인 것, 이런 가수가 지금에서부터 시작되어 그 다음에도 어떤 가수로 이어져 역사가 된다는 걸 그리려고 했는데 영화판도 블록버스터니 뭐니 하다 보니 제작비가 커지고, 그래서 제가 돈 많이 들여서 할 거 뭐 있냐고 했어요. 이 감독은 아직 개인적인 라인업에 제가 들어 있다고 말해요. 이준익 감독도 < 님은 먼 곳에 > 한다고 애썼죠.

 

김추자 선생님에게 따라붙는 '원조 디바'라는 수식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디바 소리가 별로 좋지 않아요. 전설의 가수 누구, 국민적인 가수 그런 말. 제일 듣기 싫은 게 '국민적인 가수, 디바'라는 거예요.(웃음) 외국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하면 디바가 영어기도 하고, 억양과도 맞아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디바 그러면 좀 어색하고 맞지 않는 거 같아요. 다 디바야.(웃음) 그래서 딸한테 그랬어요. “나는 그냥 김추자라 그랬으면 좋겠어.” 디바, 국보적인 존재, 우리의 전설, 이런 말은 빼 줬으면 좋겠어요. 나는 그냥 김추자. 김추자고, 그게 좋아요. 디바라고 하지 말고 그냥 우리나라 말을 써서 '최고의 가수다' 그러면 되는 건데. 저는 그냥 한국에 노래 잘 부르는 김추자다. 그렇게 부르면 좋겠어요.

 

글/ 윤은지 (theotherso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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